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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 진주강씨(晉州姜氏) 본관 연혁 알아보기 ★

작성자강성심/민들레|작성시간10.02.17|조회수554 목록 댓글 2

진주강씨(晉州姜氏)
[요약정보]
본관명 진주(晉州)
성씨명 강씨(姜氏)
본관소재지 경상남도(慶尙南道) 진주(晉州)
본관이칭 -
시조 강이식(姜以式)
[상세내용]
본관 연혁
진주(晉州)는 경상남도 남서쪽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삼한시대에 소국인 고순시국(古淳是國)이 있었던 곳이다. 백제 때는 거열성(居烈城)이었고, 신라 문무왕 때 신라의 거열주(居烈州)가 되었으며, 757년(신라 경덕왕 16) 9주 5소경제의 실시와 함께 강주도독부(康州都督府)로 고쳤다가, 혜공왕 때 청주(菁州)로 개칭되었다. 고려 초에 강주(康州)로 환원되었다가, 983년(성종 2) 전국에 12목을 둘 때 진주목이 되었다. 995년(성종 14)에는 정해군(定海軍)이라 하고 절도사(節度使)를 두어 산남도(山南道)에 속하게 하였다. 1012년에 안무사(按撫使)로 고쳤다가, 1018년(현종 9)에 진주목으로 복구되었다. 1310년(충선왕 2)에 진주로 강등되었다가 1356년(공민왕 5)에 다시 진주목으로 회복되었다.
1392년(태조 1)에 진양대도호부(晉陽大都護府)가 되었다가 1402년(태종 2)에 진주목으로 환원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진주부 진주군이 되었다가, 1896년에 13도제(道制) 실시로 경상남도 진주군이 되었다. 1931년에 진주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1939년 진주읍이 시로 승격하면서 나머지 지역이 진양군으로 개칭되었다가 1995년 진양군이 진주시에 통합되었다.
성씨의 역사
진주강씨는 고구려 때 도원수를 지낸 강이식(姜以式)을 시조로 삼는다. 강씨가 진주에 세거한 것은 8세 강우덕(姜友德)이 이거(移居)한 이후부터라고 한다. 그렇지만 고구려 멸망 이후 강씨 집안이 북방에서 남쪽인 진주로 남하한 것은 신라의 삼국 통일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통일신라시대에 강진(姜縉)이 진주 지역의 진양후(晉陽侯)로 봉해지면서 본관을 진주로 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이외에 강우덕의 부친으로 고려 말 문하찬성사를 지낸 강시(姜蓍)의 아들이며 우왕의 사위였던 강회계(姜淮季)의 형인 강회백(姜淮伯)이 진양(晉陽)에 귀양 간 계기로 진주를 세거지로 삼았다는 설도 있다.
진주강씨의 시조인 강이식의 묘소는 만주 심양현(瀋陽縣) 원수림(元帥林)에 있다는 설이 있다. 이 설에 따르면, 봉길선(奉吉線) 원수림(元帥林) 역 앞에 병마원수강공지총(兵馬元帥姜公之塚)이란 큰 비석이 있었다고 하는데, 중국 문화혁명 때 소멸되고 돌조각과 거북좌대만이 묘역에 남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설은 확인된 바가 없다.
분적종 및 분파
《조선씨족통보》에 의하면 강씨는 진주, 금천(衿川), 안동(安東), 배천(白川), 해미(海美), 동복(同福), 광주(光州) 등 여러 본관이 있다. 그러나 현전하는 강씨는 모두가 진주강씨에서 분적했다는 것이 통설이다. 강이식을 동일 시조로 하여, 강계용(姜啓庸)을 중시조로 하는 박사공파(博士公派), 강위용(姜渭庸)을 중시조로 하는 소감공파(少監公派), 강원용(姜遠庸)을 중시조로 하는 시중공파(侍中公派), 강민첨(姜民瞻)을 중시조로 하는 은열공파(殷烈公派), 강감찬(姜邯贊)의 아버지 강궁진(姜弓珍)을 중시조로 하는 인헌공파(仁憲公派) 등이 있다. 박사공파는 어사공파(御使公派)라고도 하며, 시중공파는 관서대장군파(關西大將軍派)라고도 한다.
인헌공파는 강감찬의 출생지가 금천(衿川)이라고 하여 금천강씨라고 한다.
주요 세거지
경상남도 남해시
경상남도 진주시
경상북도 영풍군
전라북도 순창군
제주도 북제주군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진주강씨는 300,724가구 총 966,710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尹昌鉉, 보명사, 1929)
《진주강씨대동보(晉州姜氏大同譜)》(1994)
진주강씨 사적연구회 사이트(www.jinjukang.co.kr)

 

[진주강씨(晉州姜氏)의 인물들]

 

강거효(姜居孝) 강겸(姜謙) 강경서(姜景敍) 강구손(姜龜孫) 강국진(姜國鎭)

강규환(姜奎煥) 강극성(姜克誠) 강기동(姜基東) 강난형(姜蘭馨) 강노()

강대수(姜大遂) 강대적(姜大適) 강대주(姜大周) 강덕룡(姜德龍) 강맹경(姜孟卿)

강명규(姜明奎) 강문규(姜文奎) 강문진(姜文鎭) 강문형(姜文馨) 강문회(姜文會)

강민저(姜敏著) 강민첨(姜民瞻) 강박(姜樸) 강백(姜栢) 강백년(姜栢年)

강병두(姜炳斗) 강봉수(姜鳳壽) 강사상(姜士尙) 강사필(姜士弼) 강삼(姜參)

강상인(姜尙仁) 강서(姜筮){1} 강서(姜緖){2} 강석구(姜碩耉) 강석덕(姜碩德)

강석빈(姜碩賓) 강석창(姜碩昌) 강선(姜璿){1} 강선(姜銑){2} 강선여(姜善餘)

강섬(姜暹) 강성좌(姜聖佐) 강성태(姜聲邰) 강세구(姜世龜) 강세규(姜世揆)

강세윤(姜世胤) 강세황(姜世晃) 강수(𢢝){2} 강수곤(姜秀昆) 강숙경(姜叔卿)

강시(姜蓍) 강시경(姜時儆) 강시영(姜時永) 강시원(姜時元) 강시환(姜時煥)

강신(姜紳){2} 강신명(姜信明) 강언룡(姜彦龍) 강여재(姜與載) 강여호(姜汝㦿)

강연() 강영(姜怜){2} 강용구(姜鎔求) 강우(姜虞) 강우규(姜宇奎)

강우형(姜友馨) 강욱(姜昱) 강운(姜橒) 강원(姜源) 강위빙(姜渭聘)

강유(姜瑜) 강유후(姜裕後) 강윤(姜潤){1} 강윤형(姜允亨) 강은()

강응정(姜應貞) 강응태(姜應台) 강응환(姜膺煥) 강이상(姜履相) 강이식(姜以式)

강이오(姜彛五) 강이천(姜彛天) 강익(姜翼) 강익문(姜翼文) 강인(姜絪){1}

강인(姜繗){2} 강인식(姜寅植) 강일순(姜一淳) 강자평(姜子平) 강재항(姜再恒)

강정환(姜鼎煥) 강제(姜霽) 강종경(姜宗慶) 강주(姜籌){1} 강주(姜籒){2}

강주호(姜周祜) 강준흠(姜浚欽) 강진() 강진구(姜鎭求) 강진규(姜晉奎)

강진원(姜振遠) 강진휘(姜晉暉) 강진희(姜璡熙) 강징(姜澂) 강찬(𧄽){2}

강창규(姜昌奎) 강창제(姜昌濟) 강첨(姜籤) 강태수(姜台壽) 강필경(姜必慶)

강필로(姜必魯) 강필리(姜必履) 강필신(姜必愼) 강필효(姜必孝) 강학년(姜鶴年)

강항(姜沆) 강헌지(姜獻之) 강현(姜顯){1} 강현(){2} 강형(姜詗)

강호보(姜浩溥) 강혼(姜渾) 강홍립(姜弘立) 강홍중(姜弘重) 강회계(姜淮季)

강회백(姜淮伯) 강효원(姜孝元) 강흥업(姜興業) 강희맹(姜希孟) 강희복(姜熙復)

강희안(姜希顔) 강희언(姜熙彦) 강희열(姜熙悅) 고봉(高峰){2} 정일당강씨(靜一堂姜氏)

강문한(姜文翰) 강봉람(姜鳳覽) 강운상(姜雲祥) 강즙(姜楫) 강한(姜漢)

강호(姜鎬) 강회중(姜淮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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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都熙(도희) | 작성시간 10.02.20 강회백(姜淮伯)이 진양(晉陽)에 귀양 간 계기로 진주를 세거지로 삼았다는 설도 있다.
    -->큰 죄없이 귀양을 보낼 경우 본향으로 보내는 경우도 있어 이 설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봅니다.
  • 작성자강희만공인 | 작성시간 10.07.29 통정공 강회백의 아버지가 공목공이시고 공목공이 진산부원군이시고 공목공의 아버지가 문경공이시고 문경공의 아버지가 휘 창귀가 진원부원군이십니다. 이를 볼 때 이미 진산이나 진원이 거론된걸 보면 당시부터 진주를 본향으로 했던 강씨가 진주강씨라는게 익히 알려져 있지 않았으까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윗분들 중에 왜 강억이라는 분은 없는지 ?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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