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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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시성 임동 부근에 있는 진시황의 능은 한 사람의 묘라기에는 너무 큰 인공산이다. 진시황이 죽은 기원전 247년부터 2년에 걸쳐 만들었다.
진(秦)이 주(周)의 제후국이 된 것은 기원전 771년이었다. 중국 전체로 보면 서북쪽인 감숙. 청해 일대의 유목민 12족을 통합한 실력을 인정받아 주 왕실이 제후로 인정한 것이다.
기원전 325년 함양으로 수도를 옮기고 나서 혜문왕 때 주나라식 칭호인 공(公)을 거절하고 왕을 칭한다. 이어 파촉을 아우르고 나서 초나라를 압박하기 시작하면서 세력이 커진다.
진시황의 소년 때 이름은 정(政)이다. 아버지 자초가 조(趙) 나라에 볼모로 가있을 때 낳은 아이다.
어머니 강희(姜熙)는 부호였던 여불위의 애첩이었다. 강희가 자초에게 시집왔을 때 이미 여불위의 아기를 몸에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 진위야 어찌되었건 자초는 여불위의 도움으로 조나라에서 돌아와 화양부인의 양자가 되고 화양부인의 도움으로 부왕의 뒤을 이어 장양왕이 되었다. 장양왕이 일찍 죽고 어린 정이 등극하자 모후가 된 강희가 아들 대신 섭정을 한다.
정(政)이 성장하여 스스로 시황제임을 선포하고 어머니와 불륜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재상 여불위를 퇴진시켜 죽게한다.
이어 이사를 등용하여 법치주의를 펴서 전국시대의 강국이었던 초,연,제,조,위,한을 차례로 굴복시켜 통일제국을 완성한다.(기원전 220년)...200쪽
김병모의 고고학 여행 제2권, 김병모, 2006년, (주)한국커뮤니케이션
중국역사에서 진시황이 누구의 자식인가는 계속 세인의 관심사였다. 사마천은 진시황이 사생아라는 점을 확신한다. 그는 이 점을 <사기> 열전 <여불위>전에서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이 <여불위 열전>에서 소개되는 여불위를 비롯하여, 자초, 진시황의 어머니, 노애 그리고 진시황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물에 대하여 사마천이 동정심을 가지고 우호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사람은 전혀 존재하지않는다. 특히 진시황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성과 이름도 밝히지 않음으로써 이미 경멸의 뜻을 담고 있으며, 그녀에 대한 묘사의 중점 역시 오로지 그녀의 방탕 음란에 맞춰져있다. 그리하여 <여불위 열전>의 전편에 흐르고 있는 것은 증오와 경멸로 묘사된 한편의 집단 스캔들이라 할 만하다.
역자 해설...16쪽
진시황 출생의 비밀
조나라의 수도인 한단은 예로부터 미인향으로 잘 알려진 풍류의 도시였다. 돈 많은 여불위는 돈의 위력으로 미모의 무희들을 집에 들여놓고 있었다...
임신한 사실을 숨긴 채 자초에게 재가해 갔다. 후에 자초는 사내아이를 얻었는데 그 아이의 이름이 정(政)이며 바로 6국을 평정하고 천하를 통일했으며, 뒤에 <호랑>이라 칭해졌던 진시황이었다.
그 즈음 진나라는 백기 장군이 장평에서 조나라의 40만 대군을 격파하고 뒤이어 조나라 수도 한단을 포위했다. 이때 자초는 목숨을 빼앗길 위기에 몰렸지만 여불위가 황금 6백근으로 관리를 매수하여 자초는 조나라를 탈출할 수 있었다.
조나라는 자초의 처자를 죽이려고 했는데, 자초의 부인은 원래 조나라에서도 갑부로 꼽히는 집안의 딸이었기 때문에 안전하게 피신할 수 있었다...19쪽
자초는 진나라의 왕위를 계승하니 그가 바로 장양왕이다. 여불위는 승상에 임명되었고 낙양지역의 10만호를 식읍으로 삼았다. 생모 하희는 하태후로 칭해졌으며, 화양부인은 화양태후로서 존경을 받으며 살았다...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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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왕은 옹(雍)에서 태후를 맞아들여 함양에 살도록 했다가 다시 감천궁에서 기거하게 했다...28쪽
사마천 사기56, 사마천, 소준섭 번역, 2016년, (주)현대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