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11월 28일자로 작성된 독립청원서는 일제의 악랄한 정책, 조선의 처지, 조선 독립의 당위성이 골자였다. 특히 일제는 대만을 근거지로 남양군도까지 장악하여 세계적인 제국을 꿈꾸며 미국과도 전쟁을 벌일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아편장수로 가장한 여운형은 북간도에서는 여준을, 블라디보스톡에서는 박은식, 이동녕, 이동휘, 강우규등을 만나 사정을 설명했다...204쪽
1919년 9월 2일
이른 아침부터 남대문역에서 남산 총독부 관저에 이르는 연도에는 기마경찰을 비롯하여 수많은 군중이 도열해 있었다. 이윽고 말쑥한 차림을 한 준수한 용모의 사내가 삼엄한 호위를 받으며 남대문역 구내를 빠져나왔다. 그가 마차를 타려는 순간 허름한 차림의 노인이 군중 사이를 비집고 나와 마차를 향해 폭탄을 던졌다.
폭탄을 마차를 폭파시키지 못하고 옆으로 비켜나가 터져버렸다. 마차는 쏜살같이 역광장을 벗어났으나 광장은 선혈이 낭자한 사람들과 비명소리로 아비규환이었다. 마차 가까이에 있던 수행원, 경비병, 신문기자 등 37명이 중경사을 입은 것이다.
마차를 타고 광장을 빠져나간 사람은 제3대 총독으로 부임한 사이토 마코토였고, 폭탄을 던진 노인은 65세의 강우규(姜宇奎)였다.
...
조선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예기치 못한 폭탄세례를 받은 신임총독의 체면은 말이아니었다. 강우규는 수류탄을 던진 뒤 군중속으로 사라져 몸을 숨겼다...
사이토는 3대 총독이 모두 군인이었지만 앞으로 문관도 총독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놓겠다는 사실을 먼저 밝혀 강압적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했다. 또 부드러운 느낌을 풍기는 문화라는 말이 들어있었는데 여기에서 '문화정치'라는 말이 처음 생겨났다...
267 - 268쪽
강우규(姜宇奎) ;
평안남도 덕천 출신으로 1911년 북간도로 망명했다. 이 후 연해주를 넘나들며 조국의 독립을 논의했다.
1919년 3.1운동 소식을 듣고 자신이 가입해있던 블라디보스톡 신한촌노인단 길림성 지부장이 되어 조직적인 시위운동을 펼쳤다. 노인단의 투쟁노선에 따라 일본 총독을 암살하기로 하고 서울에 잠입했다. 그는 사이토에게 수류탄을 던진 뒤 서울 시내에 숨어지내다가 밀정 김태석에게 체포되었다...267쪽
김태석은 경기도 경찰부 형사과장으로 악명높았으며 사이토에게 폭탄을 던진 강우규를 체포, 고문한 일제앞잡이였다.
1924년 그는 이렇게 실토했다.
'생활비가 없어 도저히 생활을 꾸려갈 수 없을 정도가 되어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꾸며대 돈을 빌려서 쓰고 지내왔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게 마련인데 죽는 놈은 조신인뿐이다. 일본에 등을 돌려도 살 수 없고 일본에 빌붙어도 살 수 없다. 그대로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조선인다.'
이 이야기는 조선일보에 실렸으나 삭제가 되어 일반독자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명색이 형사과장의 처지가 이러했으니 그 실태를 잠작할 만하다. 그러니 조선인 채용을 늘리고 대우를 개선한다고 공포한 것은 거짓으로 가득찬 가면극이었던 셈이다...272쪽
한국사이야기 제20권, 이이화, 2003년, (주)도서출판 한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