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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강신(姜紳) 형제들...1605년 채부인 경수연에 참여하다.

작성자송훈(松薰)|작성시간22.07.19|조회수58 목록 댓글 0

어머니만을 위한 경수연도 열렸다...

1603년 이거(李籧)의 대부인 채씨가 100세가 되자 선조가 선물을 하사하고 이거에게는 가선대부로 별슬자리를 올려주고, 한성부 우판윤으로 삼아 채씨를 위열한다. 그리고 그 해 9월에 수연을 열었고 그 장면을 그림으로 그린다. 그 뒤 1605년 4월 한준겸이 여러 재상에게 각자의 어머니를 모시고 100세를 넘긴 채부인에게 같이 헌수하자고 발의한다. 70세 이상 모친을 모시는 자제들이 함께 참여해 수계하기로 결정한다. 계원은 아래의 열세명이었다.

 

강신(姜紳) : 진흥군........파평윤씨, 정경부인 계미생, 83세.......차부인.....동래정씨, 정경부인, 을사생

박동량 : 금계군...............선산임씨, 정경부인, 신묘생, 75세                여흥민씨, 정경부인, 경오생           

윤돈 : 판서.........................고성남씨, 정경부인, 병술생, 80세                완산이씨, 정부인, 계축생

홍이상 : 동지중추부사...문경백씨, 정경부인, 무자생, 82세                안동김씨, 정부인, 갑인생, 63세

한준겸 : 이조참판.............거창신씨, 정부인, 무자생, 74세                  .......

남이신 : 병조참판.............거장신씨, 정부인, 병신생, 75세                  나주이씨, 정부인

이거 : 동지중추부사........인천채씨, 정부인, 갑자생, 103세                 전의이씨, 정부인, 무술생 93세

강인(姜絪) : 진창군

민중남 : 여흥군..................      이씨, 정부인,      생, 84세                   ...............

윤수민 : 참지.......................한양조씨, 정부인, 갑신생, 86세                  청주한씨, 정부인(숙부인)

권형 : 장악원 첨정.............      김씨, 정부인, 무인생, 88세                  ..........

이원 : 주부

강담(姜紞): 익위

 

잔치는 4월9일에 열기로 했다. 임진왜란 직후라 요란하게 음악을 연주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선조가 늙은 어버이를 위해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금지하지 않았기에 강신 등 일곱명은 예조에 그 사실을 상기시키며 선조에게 보고해 허락을 받아달라고 요청했다...선조는 허락했다. 

선조는 8도에 명해 잔치 비용을 도와주라 명한다. 이에 장흥동 갑제에서 모여 잔치를 열고 경수연이라 칭했다.

1605년의 잔치는 100세를 넘은 노인이 생존한 데다 또 당대 최고위 관료와 명사가 벌인 것이기에 특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까닭에 잔치는 그림으로 그려졌다. 

현재 서울역사박물관이 소장한 <경수연도첩>은 서문과 발문이 없어 화가가 누구인지 또 누가 화첩을 제작했는지 알수없지만, 대개는 1605년 당시에 그려진 게 아니가 한다. 화첩도 여럿 제작되었겠지만 병자호란을 거치며 거의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남아있는 1605년 경수연을 기념해 그린 그림들은 모두 후대에 다시 제작한 것이다. 홍익대학교박물관이 소장한 <선묘조제재경수연도첩> 역시 1605년 제작한 원화를 병자호란 때 잃어버려 1655년에 다시 그린 것이다.

위에 소개한 계원중에 남이신이 있고 그의 어머니 거창신씨가 경수연에 참여했으니, 아마도 남이신 집안에서 다시 그린 것일 터이다.

두 화첩에 의하면, 계원 중 열명의 어머니(대부인)가 참석했고, 또 열명의 며느리(계원의 아내)도 참석했다.

채부인이 103세로서 북쪽 벽에 앉았고, 진흥군 강신의 어머니가 명부(命婦)로서 같은 반열에 나란히 앉았다.

나머지 대부인 여덣명이 동쪽가 서쪽에 나누어 앉았고, 그 뒤로 부인들이 앉았다. 참석한 대부인과 부인의 명단은 이렇다.(위에 첨부)

이 외에 수십명의 자제와 연회를 보조하는 인력이 참가했으니 정말로 보기 드문 성대한 행사였던 것이다.

이 날의 잔치는 풍성했고 흥겨웠다. 그 장면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수레가 골목을 가득 메웠고 온갖 풍악이 함께 울려 퍼졌다. 여러 재신이 번갈아 앞으로 나아가 술잔을 올렸고 차례로 일어나 춤을 추었다. 사람들은 부러워해 마지않으면서 세사에 드문 성사라고 했다. 대개 백세라는 수는 정말 거의 없는, 어쩌다 드물게 있는 일이다. 그 외 잔치에 모인 다른 경재의 대부인들 중 일흔 넘는 사람이 아홉분이나 되었으니, 또 어찌 그리 성대한 일이던가?

 

그림을 살펴보면 앞서 언급했듯 중앙에는 채부인과 강신의 어머니가 앉았고, 좌우로 재신들의 어머니와 아내들이 앉았다. 그리고 그 앞에는 대부인들께 절을 올리는 재신과 일어나 춤을 추는 재신들이 있다. 그런데 재신들, 곧 아들들 역시 고위관료로서 따로 잔칫상을 받았다.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각각 독상을 받은 재신이 있다.

1605년에 그려진 이 그림은 화첩이 여럿 제작되어 잔치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병자호란 때 흩어지고 잃어버리기도 해 뒤에 다시 복구되기도 했다. 경수연에 참여했던 남이신의 집안(의령남씨)에서는 1655년에 복구본을 제작했다...158 - 164쪽

 

그림으로 읽는 조선여성의 역사, 강명관, 2012년, 청아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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