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해]의 똘똘이 엄마와 그 주막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다가
글 : 권창순
내가 뭉태의 조언대로 섣달대목이니 술 먹으러가자니까 똘똘이 엄마는 선선히 따라나선다.
물론 똘똘이는 낮잠을 자고 있고, 똘똘이 아버지는 새벽같이 나무를 팔러 읍내엘 가고 없으니 술 먹으로 가는데 방해될 것은 하나도 없다.
똘똘이 아버지에게 들키면 무조건 줄행랑을 치라는 뭉태의 말을 나는 가슴깊이 새기며 아랫말 주막으로 똘똘이 엄마를 데리고 갔다. 나야 뭐, 뭉태처럼 그럴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똘똘이 엄마의 그 소리 좀 듣고 싶을 뿐이다.
뭉태와 그 사건이 있은 후에도 똘똘이 엄마는 들병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똘똘이 아버지 몰래 소리공부를 해왔다니, 나는 뭐, 그 소리 좀 듣고 싶을 뿐인데 이것이 그리 큰 죄는 안 될 것이다.
“먼 산 바라보는 도야지 코라, 하하하! 자, 쭉 한잔 하세요.” 하고는 똘똘이 엄마에게 술을 권했다.
“그쪽도 한잔 하게유.” 내 말에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 듯 똘똘이 엄마는 벌컥벌컥 시원스레 막걸리를 마신다.
“아직도 들병이가 되고 싶나요?”
“그쪽도 알다시피 들병이가 되면 이밥에 고기국도 먹을 수 있으니 오죽 좋겠어유. 그런데 그자식이 사람 버린다고, 딴 서방 차고 내가 달아난다고 지랄이예유.” 하면서 또 한잔을 들이킨다. 유심히 똘똘이 엄마의 얼굴을 보니 이마가 훌떡 까지고 양미간이 벌어진 게 소견이 탁 트여 보인다. 물론 아기자기한 맛이 없고 이조로 둥글넓적이 내려온 하관에 쑥 내민 게 입이지만 그래도 소리를 할 땐 귀엽지 않을까.
“그쪽도 알다시피 들병이가 얼굴만 이뻐서 되는 게 아니지유. 수단이 있어야지유.”
“수단이라니요?”
“들병이가 되려면 담배도 먹고 술도 마실 줄 알고 사람도 주무를줄 알아야 하는데, 꼭 얼굴이 반반해야 하는 건 아닐 거구먼유. 누구든지 술에 취하면 얼굴보다는 흥겨움을 좋아하니까 소리로 얼마든지 주무를 수 있을 테니 그게 수단이지유.” 하면서 담배꽁초를 입에 문다.
“그럼 그 수단 좀 보여 주세요.” 그러자 똘똘이 엄마는 두 손으로 응뎅이를 치며 질그릇 물러앉는 소리로 아리랑타령을 부른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춘천아 봉의산아 잘 있거라. 신연강 배타면 하직이라”
“에이, 그 흔한 아리랑타령 말고 신식창가를 한번 불러 보세요.”
“흥타령이나 노랫가락도 좋지만은 그래도 야학에서 귀동냥으로 배운 신식창가가 최고지유.” 하면서 목청껏 뽑아 올린다.
“피었네, 피었네, 연꽃이 피었네. 피었다구 하였더니 볼동안에 옴쳤네.”
“젊어서도 할미꽃 늙어서도 할미꽃, 아하하하 우습다, 꼬부라진 할미꽃.”
“어때유? 이만하면 들병이로 나서도 충분하지유?”
“술기운 때문인지 몰라도 아주 흥겹습니다. 그러니 그 신식창가 나도 좀 가르쳐 주세요.” 하자 똘똘이 엄마가 보강지에 쪼그리고 앉아서 부짓갱이로 솥뚜껑을 톡톡 두드리듯 술병을 젓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선창을 한다.
그러나 내가 창가를 따라하지 않고 열정(?)적인 똘똘이 엄마의 모습만 멍하니 바라보자,
“그쪽말여유. 내가 쥐었다 논 개떡처럼 보여유?” 하고 똘똘이 엄마가 묻는다.
누가 똘똘이 엄마의 이런 열정(?)적인 모습을 보고도 쥐었다 논 개떡이라고 할 것인가.
“그놈이 날 쥐었다 논 개떡같다고 했지만유. 그게 다 정분이 넘치니까 하는 말이지유. 내가 그놈을 불밤송이 같다 하는 것도 같은 이치지유. 훅하면 서로 대들려고 노리고만 있으니까 동리에서는 우리 속도 모르고 까따귀들이라고 하지만유. 농사를 지어도 남는 것은 없고 빚에는 몰리고 그러니 그놈도 배길 수가 없어 트죽 태죽 꼬집어가지고 한바탕 나를 훌두들겨 대지만 그놈 맘이 내 맘이니 그래야 살지 어찌 궁한 살림을 살수 있겠어유. 다시 내가 먼저 부를 테니 따라서 해봐유.”
똘똘이 엄마가 술병을 두드리며 선창을 한다.
“젊어서도 할미꽃 늙어서도 할미꽃.”
응뎅이를 뚜드리면서 나도 “젊어서도 할미꽃 늙어서도 할미꽃.”
똘똘이 엄마가 “아하하하 우습다, 꼬부라진 할미꽃.”
이어서 내가 막 “아하하하 우습다, 꼬부라진 할미꽃.”을 하려할 때다.
지게문을 박차고 들어온 불밤송이가 “아하하하 우습다, 꼬부라진 할미꽃.” 한다.
나는 순간 앞이 캄캄했다. 똘똘이 아버지가 참나무지게막대기를 움켜잡고 나를 노려보고 있으니 언제 내 허리가 꼬부라진 할미꽃 신세가 될지 모른다.
이럴 땐 뭉태의 말대로 줄행랑이 제일인데 온몸이 얼어붙어 꼼짝할 수가 없다. 이젠 죽었구나 하고 불밤송이의 처분만 바랄 수밖에 별도리가 없다.
무서운 침묵이 얼마나 지났을까.
“아하하하 우습다, 꼬부라진 할미꽃.” 불밤송이가 덜덜덜 떨고 있는 내 어깨를 툭 치며 옆에 앉는다. 순간 나는 참나무지게막대기가 내 어깨를 후려치는 줄 알았다.
“아하하하 우습다, 꼬부라진 할미꽃. 하하하하 쥐었다 논 개떡, 이 참나무지게막대기 덕분에 눈길 삼십 리 잘 다녀왔소.” 하는 게 아닌가.
“불밤송이, 두 짐이니 80전을 받았지유?“
“아무렴, 내가 누군가. 똘똘이 아버지가 아닌가. 일천오백원 재산가가 아닌가. 하하하하!”
나는 갑작스런 상황에 어리둥절했지만 그냥 함께 웃지 않을 수 없다. 까따귀 부부의 이런 점잖은 모습을 보니 내가 꼭 도깨비에게 홀린 것 같다.
“자 한잔 하게유!” 불밤송이가 다시 한 번 내 어깨를 툭 친다.
“어서 한잔 하게유!” 똘똘이 엄마도 재촉한다.
하여 셋이 쭈욱- 막걸리를 들이켰다.
그리고 불밤송이가 “아하하하 우습다, 꼬부라진 할미꽃!” 하더니
“힘들어도 살아야지유. 들병이로 나서든 말든 굴대 같은 아들 낳으면서 살아야지유. 나야 이 겨울엔 열심히 나무를 해다 팔고, 우리 쥐었다 논 개떡은 또 똘똘한 똘똘이 동생을 낳고 또 낳고 어휴! 우린 부자구나. 안 그런가? 아하하하 우습다, 꼬부라진 할미꽃!”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