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위 날다
안수현
키위새의 배를 가르는 상상
상큼하지, 연둣빛 과즙이 흐르고
아무도 죽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깎아놓은 키위 뒤엔 카키빛 털 외투,
거친 살결을 쓰다듬어 본다
새큼한 향이 번지고
번데기가 움트다 찢어지면
거짓말에 능숙한 반투명 나비 하나
애벌레 시절 마지막으로 먹은 건
초록색 키위의 과육 한 입이라더니
한바탕 뱉어내는 숨의 빛깔은, 엥?
거짓말 하는 사람이 싫어
나는 거짓말쟁이
거짓말이 싫다는 거짓말을 해
거짓말밖에 할 수 없는 병에 갇혀
뛰어오르지 못할 입구를 바라보는
날씨 개구리
개구리 뒷다리를 먹어본 적이 있다는
얄팍한 나비도 역시 거짓말쟁이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고
제 몸보다 큰 알을 낳다 죽는 새
칼집을 내지 않으면 산산조각 난대
치밀어 오르는, 겨우내 참아온
배고픔 때문에
그럼에도 베어 물 수밖에 없다던데
토막 난 몸으로도 살아갈 수 있다면
그럼 모든 게 진실이라 믿고
키위 한 알을 통째로 벗겨
엷어진 나비 등께에 얹어줄 텐데
날개가 조금 비틀려 휘청거린다
녹아내린 과육이 틈새를 메우며
날아간다, 찐득한 더께로부터
잔털을 풀풀 날리며
키위가 키위를 낳으면
뉴질랜드 라벨이 붙은 한 마리 거짓말
숟가락으로 퍼먹으려고 반을 가를 때
다른 것이 흘러나오면
엥, 이거 상상 아니었나
양 볼에 거짓말보따리 달고
또 다시 호기심만으로,
제 날개로 날아가는 키위 한 마리
뒤돌아보지 않는 걸 보니
정말 죽은 것 같다
—계간 《포지션》 2026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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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현 / 1998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 수료. 202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