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작은 놀이터에 삽 하나를 두고 갔네
임수현
삽이 삽일 수 있는 건 그걸로 뭔가 퍼낼 수 있기 때문이지요
너는 어느 해
잠옷을 입은 채 맨발로
밤의 한 모퉁이에 서 있었다
그림자들이 모여들어 하나둘 부은 다리를 주무른다
능소화가 담을 훌쩍 뛰어넘으며
뒤돌아보는 것이다
이만큼 했으니 좀 봐달라고
펴지지 않는 살림에 대해
안 된다 안 된다 하며 해주는 마음도 있다
너는 밤의 모퉁이를 찢어
세간의 목록을 빼곡히 적는다
전기요금 영수증이 현관 앞에 쌓이고
가스가 끊긴 집에서 모녀의 입김이 뿜어져 나올 때
한 사람은 삽을
그들은 초가 필요했다
빈방 있음
너는 공평하게 불행을 나눌 것이다 손바닥만 한 케이크를 열두조각으로 나눌 때처럼
하늘은 가난이 날아가지 못하게
진땀을 누를 것
너는 모래 삽 하나를 두고
그 집 앞을 떠나지 못해 문고리를 잡았다 놓았다
햇반 같은 달이 떠오를 때까지
너는 밤의 한 모퉁이에 흰 그림자처럼 오래 서성인다
어떻게 끝날지 다 알고 있잖아
그 집에 다른 세입자가 매끄럽게 흘러들어온다
두고 간 삽으로
장미꽃을 심을지도
창작과비평 2025년 겨울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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