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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와 동시

[스크랩] [♡동화 나눔]간식 오해 / 함영연

작성자김춘남|작성시간23.08.11|조회수58 목록 댓글 0

간식 오해

함영연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은 유쾌하지 않다. 일하는 엄마 대신 유치원에서 동생 수아를 데려와야 하고, 집 청소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발길이 무거우면 가끔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사 먹는 걸로 위안을 삼았지만 얼마 전에 분식집이 문을 닫아서 그것도 여의치 않게 되었다.

“수련아, 같이 가자!”

민지는 나와 같이 가는 게 좋은지 아이들이 다 들을 정도로 내 이름을 크게 불렀다.

집 방향이 같은 민지와 나란히 가다 보니 어느 새 민지네 집 앞이었다. 헤어지려는데 민지 엄마가 내다보며 잠깐 들어왔다가 가라고 했다.

“그렇게 해.”

민지도 팔을 끌었다. 수아를 데리러 갈 시간의 여유가 있었지만 내키지 않았다. 나는 아빠가 돌아가신 뒤로 남의 집에 가본 적이 없다. 할아버지가 집에 와서 해준 말이 가슴에 새겨진 탓이다.

“아빠가 없을수록 행동 조심해야 한다. 특히 남에게 피해주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해.”

할아버지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천장을 쳐다보았다.

“잠깐 놀다가 가.”

민지가 내 손을 잡고 재촉했다. 얼결에 나는 민지네 집에 가게 되었다.

“어서 와라. 햇감자 쪘으니 먹고 가렴.”

멋쩍어하는 나에게 민지 엄마가 권했다. 햇감자란 말에 입맛이 당겼다. 아빠가 돌아가신 뒤로 엄마가 식당 일을 하고 있어서 직접 해주는 간식은 기대할 수 없었다.

“민찬아, 수아 언니야.”

민지가 동생에게 나를 소개했다. 서로 왕래는 안 했지만 수아와 민찬이가 같은 유치원을 다니는 것은 알고 있었다. 민찬이를 보니 유치원에 있을 수아 생각이 났다. 엄마는 내가 학교를 마치고 여유 있게 데려올 수 있도록 수아를 오후반으로 신청했다.

“어서 먹으렴.”

민지 엄마가 포슬한 햇감자를 접시에 내왔다. 학교에서 급식을 먹었는데도 간식 배는 따로 있는지 맛있게 먹었다.

그날부터 민지네 집은 참새가 방앗간 들리듯이 오가는 곳이 되었다. 갈 때마다 민지 엄마는 간식을 주었다. 고구마나 옥수수를 쪄주었고, 부침개도 해주었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민지가 손을 끌어서 민지 집으로 갔다. 민지 엄마는 김밥과 과일을 주었다. 민지네서 먹는 게 익숙해져서 맛있게 먹는데 주위가 조용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민지와 민찬이가 포크를 들고 나를 보고 있었다. 눈에는 알듯 모를 듯한 미소를 띠고 말이다. 둘의 접시는 이미 비어 있었다. 웬지 분위기가 어색했다.

‘뭐지? 날 불쌍하게 생각하는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비집고 들어왔다. 나는 얼른 포크를 내려놓고 집에 가야 한다며 나왔다.

‘그럴 리 없어! 내가 간 게 아니고 들렸다 가라고 해서 간 건데 뭐.’

마음을 다독여도 불편한 마음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도리어 자주 드나든 것이 화가 났다. 수아를 데리고 오는 중에도 둘의 눈빛이 떠오르면 마음이 불편했다.

“언니, 오늘도 민지 언니네 갔다 왔어? 오늘은 뭘 먹었어? 맛있었어?”

수아가 눈치 없이 물었다. 민지네서 간식 먹었다는 말을 한 번 해줬더니 묻는 것이다.

“그만 물어라.”

인상을 팍 썼다.

“왜 그래? 언니 화났어?”

수아가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다정한 눈길을 주기엔 내 마음이 넉넉하지 않았다. 문제가 생기면 그날 해결하라던 엄마 말이 생각나서 잊는 쪽을 선택했다.

다음 날 교실에 들어서는데 민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수련이도 좋아해. 진짜 잘 먹어.”

민지가 아이들에게 내 이름을 들먹이고 있었다. 게다가 먹는 이야기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걸 참았다.

“이거 마셔. 민지가 네 것도 챙기네. 붙어 다니더니 단짝이 되었나 봐. 부럽다.”

은아가 음료수와 쿠키를 내밀었다.

“괜찮아. 나, 그거 안 좋아해.”

찬바람 나게 말하고 자리에 앉았다.

“어? 너 이 음료수 좋아하잖아. 혹시 기분 안 좋은 일이 있니?”

민지가 다가왔다. 반갑지 않았다.

“별일 아니야.”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쉬는 시간에 민지가 말을 걸어도 살갑게 대할 수 없었다.

‘내가 자기 집에서 간식 먹은 일을 떠벌린 걸까? 내가 달라고 해서 먹은 것도 아닌데.’

생각이 불편한 방향으로 가지를 쳤다.

그날도 학교 공부를 마치고 가방을 챙기는데 민지가 다가왔다.

“수련아, 집에 가자.”

나는 잠시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마음에 없는 소리를 했다.

“엄마가 일하는 곳에 갔다가 갈 거야.”

“알았어. 잘 갔다 와.”

민지가 교실을 나갔다. 민지와 같이 가기 싫어서 천천히 걷다가 엄마가 일하는 식당으로 갔다.

“아줌마 딸 왔네요.”

사장님이 주방 쪽으로 소리쳤다. 설거지를 하던 엄마가 손을 닦으며 나왔다.

“어쩐 일이니?”

“엄마 보고 싶어서 왔지.”

“저녁에 볼 건데 싱겁기는. 어여 동생 데리고 와.”

엄마가 등을 토닥였다. 더 머물 수 없어서 수아를 데리러 갔다. 맞은편에 학원 가방을 든 민지가 오고 있었다.

“수아 데리러 가는 거니?”

민지가 아는 척을 했다. 곱게 들리지 않았다.

“…….”

“수련아, 우리 말 좀 해. 내가 잘못한 거라도 있니? 갑자기 날 대하는 게 달라져서 속상해.”

민지가 볼멘소리를 했다.

“그건 네가 알 텐데.”

민지가 울상이 되어도 모른 척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고 나오는 민찬이도 만났다. 민지가 싫으니 민찬이도 반갑지 않았다.

“누나, 요즘 왜 놀러 안 와?”

민찬이가 물었다.

“너네 집 놀러갈 정도로 한가하지 않거든.”

톡 쏘아댔다. 민찬이는 잠시 쭈뼛하더니 말했다.

“누나, 미안해.”

“뭐가?”

“누나보다 먼저 포크를 내려놓아서.”

“무슨 말이니?”

“누나가 말해줬어. 수련이 누나가 화났다고.”

“신경 쓰지 말고 어서 집에 가.”

나는 더 이상 어린 민찬이와 말하고 싶지 않았다. 민찬이는 크게 잘못한 것처럼 고개를 떨어뜨리고 갔다. 마음에 걸렸지만 수아를 데리고 와서 바로 청소하느라 잊고 있었다.

“언니, 나 속상해.”

수아가 짜증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방 청소하다가 수아를 돌아보았다.

“왜?”

“친구들은 밥을 빨리 먹는데 나만 늦게 먹어.”

“그게 어때서?”

“내가 다 먹을 때까지 친구들도 숟가락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어.”

“다 먹었으면 숟가락을 내려놓아야지, 말이 되니?”

문득 먼저 포크를 내려놓아서 미안하다던 민찬이 말이 생각났다. 무슨 의미인지 궁금했다.

“잠깐 집에 있어. 민지네 집에 갔다 올게.”

수아에게 당부하고 민지네 집으로 갔다.

“어서 와라. 요즘 왜 안 오나 했단다. 민지는 학원에서 곧 올 거야.”

민지 엄마가 반겼다. 민찬이가 거실로 나오며 말했다.

“엄마, 나 간식 먹을 때 먼저 포크 내려놓지 않을게요. 엄마가 그러라고 했잖아요.”

“얘도 참, 누나와 같이 천천히 먹으라는 말이지.”

민지 엄마가 웃으며 말했다.

‘그런 거였구나.’

나는 민지 엄마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아줌마, 간식 주셔서 고마웠어요. 다 맛있었어요.”

“고맙긴. 포크 하나 더 놓은 건데. 우리 민지 친구라서 고마워.”

민지 엄마가 다정하게 말했다. 따스함이 가슴에 스몄다.

“어, 수련아!”

학원에서 돌아오던 민지가 놀라서 눈이 동그래졌다. 나는 민지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단짝으로 지내기 위해 나에 대해 말했다.

“민지야, 내가 쌀쌀맞게 해서 미안해. 할아버지는 아빠가 안 계시기 때문에 행동을 더욱 조심하라고 하셨어. 남 피해주지 말라고도 하셨지. 그래서 남의 집에 가길 꺼렸는데, 너희 집은 자연스럽게 가게 되었어. 너희 엄마가 다정하게 반겨줘서 그런 것 같아. 그런데 저번에 포크를 들고 나를 보는 너희들이 날 불쌍하게 여기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어.”

“그런 게 아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니? 서운해.”

“오해란 걸 알아. 오해하는 동안 마음이 편하지 않았어.”

“난 친구를 데리고 온 건 네가 처음이야. 사실 우리 엄마는 새엄마야. 나는 새엄마와 별로 친하지 않았는데, 네가 우리 집에 오면서 새엄마와 많이 친해졌어. 내 친구에게 잘해주는 새엄마가 좋아졌거든.”

민지도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간식 먹다가 생긴 오해가 스르르 풀리고 있었다.

 

출처 : 소년문학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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