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봄날
김윤정
“벌써 봄인가. 햇볕이 따뜻하네.”
“그러게. 나도 뒤통수가 따뜻하군.”
출근길이 바쁜 행인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답을 했다. 어제까지 쌀쌀하던 기온이 오늘은 기지개를 쭉 펴고 싶을 정도로 포근했다.
“할배는 오늘도 안 자려고요?”
가삼이가 졸린 얼굴을 하고 물었다.
“늙으면 본래 잠이 없다고 하잖아. 가로등이라고 다르겠냐.”
가삼이 하품소리가 도로에 퍼질 것 같았다.
“아함. 나는 잠이나 잘래요.”
도로에 줄지어선 가로등이 일제히 꺼졌다. 나는 등을 껌뻑이며 꾸역꾸역 잠을 참았다. 밤에 일할 것을 생각하면 지금 자야 되지만, 요즘은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며칠 전 가로등 관리인 서씨가 다녀간 이후로 더 그랬다.
“나도 이제 슬슬 은퇴인데 너도 벌써 그럴 때가 됐냐?”
서씨는 나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도로가 깔리고 가로등이 하나씩 설치될 즈음 매일 밤 일찍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던 서씨였다. 해가 지나면서 가로등 관리인이 바뀌었지만 서씨는 꾸준히 우리를 돌보았다. 우리 이름을 붙여준 것도 서씨였다. 도로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로등 일 이 삼. 줄여서 가일, 가이, 가삼....... 다만 내가 제일 오래되어 할배라고 불렀다.
“팀장님, 그냥 저희가 하겠습니다. 이렇게 맨날 직접 나오시고.”
서씨의 부하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안절부절못하며 말을 들었다.
“그냥 간단한 일인데 뭐. 눈치 주는 거 아니야.”
서씨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서씨는 종종 밤하늘을 보러 오기도 했다.
“어이 양반아. 가로등 아래에서 무슨 별이 보이나 그래.”
서씨는 마치 내 목소리가 들리기라도 한다는 듯 그럴 때면 어김없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어떤 하늘이든 밤하늘은 그윽한 맛이 있지.”
그런 서씨가 은퇴를 한다니 내 마음도 어딘가 울렁거렸다. 밤길을 밝히다 새벽 별이 뜨는 것을 보고 차 소리와 사람들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드는 하루하루를 보냈더니 어느 덧 나도 서씨처럼 나이를 먹었다.
“이렇게 은퇴를 하려고 보니 내가 제일 가슴이 뜨거웠던 때가 여기였네.”
서씨는 눈이 붉어지며 말했다.
‘가슴이 뜨거웠던 일.’
내 마음이 더욱 뒤숭숭해졌다. 저녁이 어스름 내려올 때쯤 바로 옆 횡단보도 근처에 악사 하나가 자리를 폈다. 작은 가방을 열고 악기를 꺼내 끼잉끼잉 음을 맞추었다. 바이올린이었다. 기이잉 긴 소리를 내고 연주가 시작되었다. 비발디 사계 중 봄. 뒤쪽 전자상가에서 클래식을 좋아하는 상가 주인이 종종 틀어놓는 음악이었다. 가로등들이 잠을 깼다. 일할 시간이었다. 나는 조금 더 힘을 주어 가로등 빛을 냈다. 악사에게까지 빛이 닿았다.
“오, 바이올린 소리. 길 막힐 생각에 지쳤는데 기분이 좋아졌어.”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음악이야. 가는 길에 치킨이나 사가지고 갈까. 가족들이 좋아하겠지?”
“봄 음악이네. 마음에 새싹이 피어나는 것 같아.”
근처 회사에서 쏟아지는 사람들이 저마다 유쾌한 대화를 나누었다. 일부는 악사 곁에 모여 발끝을 까딱이며 음악을 들었다. 내 마음도 밝아지는 것 같았다.
“바이올린 소리 처음 들어봐요.”
가삼이는 잠이 깨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오랜만에 듣네 그려. 가삼아 음악을 들으니 몸에 힘이 좀 도는 것 같지 않니?”
가삼이는 갸우뚱하면서 배시시 웃었다.
“가슴이 뜨거웠던 때.”
음악 소리에 묻혀 서씨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할배 그게 무슨 말이에요?”
가삼이에게 서씨 이야기를 해주었다.
“글쎄요. 가슴이 뜨거운 일이 뭘까요? 나는 여기 온 지 이틀밖에 안 됐는데. 나는 가로등이니까 가로등 일만 생각했어요. 도로에 온다고 했을 때는 설레서 잠을 못 자긴 했어요. 그거랑은 다른 건가?”
가삼이는 도통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러게. 나도 이제 그만할 때가 되니 마음이 어수선해서 그런가봐. 그래도 가끔 전자상가에서 들려오는 노래 들으면 들썩들썩 춤을 추고 싶어. 뭔가를 하고 싶은 그런 게 가슴이 뜨거워지는 일 아닐까?”
가삼이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할배도 참. 가로등은 움직일 수가 없잖아요. 낮 동안 한숨도 못 자서 그러시나요?”
나는 허허 웃었다.
밤이 제법 깊었다. 악사가 마지막 곡을 연주하고 바이올린을 가방에 넣었다. 악사의 발걸음이 어딘가 무거웠다.
“저 이도 시름이 있는 겐가.”
다음날 악사는 조금 이른 시간에 자리를 폈다. 서씨도 일찍 가삼이를 보러 왔다.
“등도 정상이고 교체는 잘 되었나 보네.”
서씨는 가삼이를 올려보며 악사의 연주를 들었다. 서씨는 뒤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두 잔 사 와서는 악사 옆에 두었다. 악사는 연주를 계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씨는 한참동안 흥얼거리며 연주를 들었다. 악사가 음악을 멈추고 바이올린을 가방 위에 두었다. 주머니에서 빵을 꺼내 반쪽을 서씨에게 내밀었다. 커피를 홀짝이던 서씨가 웃으며 악사 옆에 서서 말했다.
“바이올린을 켜면 가슴이 뜨거워지나요?”
악사는 빵을 먹다가 잠시 생각에 잠기는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하면 되는 줄 알았지요. 주변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했어요. 저 때문에 가족이 힘든지 몰랐습니다. 아내는 저 대신 돈을 버느라 몸이 많이 상했습니다. 그 몸으로도 저에게 항상 힘내라고 했지요.”
악사는 말을 더 잇지 못했다.
“아이고, 식사하시는 데 내가 괜히 방해했군요.”
서씨는 미안해했다.
“허허허, 아니에요. 옛날 생각이 잠시 났어요. 조금이라도 그 마음을 갚아야 하는데.”
서씨는 악사를 가만히 바라보다 말했다.
“부인은 아마 악사님을 돕는 것으로 가슴이 뜨거웠을 거예요.”
악사는 마저 남은 빵을 입에 가득 넣고 꼭꼭 씹었다. 옷에 묻은 빵가루를 털고 다시 연주를 시작했다.
“종종 음악을 들으러 오겠습니다.”
서씨가 인사를 했다. 악사는 붉어진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둘의 대화를 듣던 가삼이가 말했다.
“자신을 위하는 것도 남을 위하는 것도 모두 가슴이 뜨거워지는 일인가 봐요.”
나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밤이 깊어지고 있었다. 웅성웅성. 도로 맨 끝 가로등부터 요란했다.
“옆으로 전달, 전달. 도로 끝에 안개가 잔뜩 꼈대. 금방 여기도 안개가 몰려올 거야.”
금세 밤안개가 자욱이 내려앉았다.
“가삼아, 오늘 같은 날은 사고가 많으니 우리가 더 열심히 불을 켜야 해. 바다에 등대처럼 길을 알려줘야 해.”
가삼이는 눈을 땡글땡글 떴다. 퇴근길인 자동차들이 거북이보다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었다. 악사는 연주를 계속했다.
“갑자기 왜 이렇게 춥지? 봄 아닌가?”
길 가는 사람이 옷깃을 여미며 말했다. 아무도 악사 옆에서 음악을 듣지 않았다.
“악사도 오늘은 일찍 들어가는 게 낫겠는데요.”
가삼이는 안타까운 듯 말했다.
“어? 눈이다. 할배 눈 와요.”
내 머리에도 차가운 것이 톡, 토독 떨어졌다. 눈이 오자 사람들은 우왕좌왕했다.
“오늘 눈 온다고 그랬어? 그런 소식 못 들었는데. 봄에 무슨 눈이야.”
“아, 얼른 집 가야겠다. 아우, 이게 무슨 일이래.”
사람들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악사는 손을 호호 불고 다시 연주를 시작했다. 차이코프스키 멜로디라는 곡이었다. 차가운 기온이 조금은 올라가는 것 같았다. 사람들 발걸음 속도도 조금 늦춰졌다. 도로가 막혀 답답해하던 사람들도 마음이 풀어지는 것 같았다.
“음악이 참 대단하긴 한 것 같아요. 그죠?”
가삼이는 흘깃 악사를 보면서 말했다. 사람들이 모두 제 갈 길로 가고 나니 거리에 차가운 공기가 가득했다. 눈은 바람을 타고 조금 더 굵어졌다. 차곡차곡 발밑에 쌓여가는 것이 느껴졌다. 눈보라처럼 휘몰아쳤다가 함박눈이 쏟아지기를 반복했다. 휘휘 거센 바람에 눈이 몰려올 때 마다 혼이 빠지는 것 같았다.
“어휴, 내일도 난리겠네요.”
가삼이가 한숨을 쉬었다.
“......소리가 안 들려.”
나는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할배 뭐라고요? 바람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요. 뭐가 안 들려요?”
가삼이가 투덜거렸다.
“가삼아, 바이올린 소리가 안 들려.”
나는 얼른 아래를 훑었다. 바닥은 온통 하얀 눈이었다. 눈바람이 강해서 뭐가 뭔지 잘 보이지 않았다. 악사가 있던 자리는 둔덕처럼 눈이 쌓여 있었다. 악사였다.
“할배, 악사 아니에요? 악사가 쓰러졌어요.”
얼른 정신을 차려야 했다.
“가, 가삼아. 도로 끝 가로등한테 전달해 깜빡이라고 가로등을 깜빡이라고 해. 여기 악사가 쓰러졌다고 알려.”
나는 길 건너 가로등에게 목청껏 소리쳤다.
“어이, 내 말 들려? 등을 깜빡여. 빨리, 빨리. 옆에도 전달해줘. 악사가 쓰려졌어.”
가슴이 뜨거워졌다. 나는 등을 마구 깜빡였다. 무슨 일인가 갈팡질팡하던 가로등들이 등을 깜빡이기 시작했다. 도로 끝에서부터 활주로처럼 빛이 퍼지다가 모였다.
“여기 사람 있어요!”
사람들에게 목소리가 들릴 리 없었다. 머리 등이 깨질 듯이 불을 반짝였다.
“아니 눈 때문에 어떤지 보러 왔더니 가로등이 왜 이래?”
서씨 목소리였다.
“여기라고 여기.”
나는 조금 더 등을 빠르게 반짝였다. 다른 가로등들이 나의 등 속도에 맞추어 방향을 알려주듯이 악사의 위치로 등빛을 모아주었다.
“응?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불빛을 따라 움직이던 서씨는 악사를 발견했다. 서씨는 악사 위에 쌓인 눈을 털며 흔들어 깨웠다.
“여봐요! 일어나요. 정신 차려요.”
악사는 움직이지 않았다. 서씨는 다급히 119로 전화를 했다.
“길에 사람이 쓰러졌어요. 응급차 좀 보내주세요.”
서씨는 자기 옷을 벗어 악사에게 덮었다. 손으로 악사의 팔과 등을 비벼 열을 냈다. 나는 다른 가로등과 같이 반짝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여기에요, 여기.”
서씨가 응급차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가로등 길을 따라 119가 도착했다. 119는 떨고 있는 서씨와 몸이 굳어 있는 악사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바로 병원으로 갔다. 응급차에 오르기 전 악사의 입에서 작은 입김이 흘러나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제야 맥이 풀리는 것 같았다.
긴 밤이었다. 새벽녘이 되니 눈이 그치고 봄 날씨에 눈이 쌓인 풍경이 보였다.
“허 거참. 어제 날씨 대단했어. 그렇지 않아? 이 봄에 눈이라니.”
“그래도 나무에 눈 쌓인 게 너무 예쁜데요?”
사람들이 눈이 쌓인 풍경을 보며 신기해했다. 나는 지난밤을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제는 그렇게 춥다고 난리더니. 사람들은 밤새 우리가 얼마나 바빴는지 모르겠죠?”
가삼이가 하품을 하며 말했다. 전자상가에서 뉴스가 들려왔다.
“밤사이 갑작스레 내린 눈에 당황하셨죠? 예보 없는 폭설로 눈 내리는 봄날이었습니다. 눈 때문에 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는데 그 중 기적 같은 사례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쓰러진 행인을 구한 가로등 이야기입니다. 행복대로 가로등들이 영상에서 보는 것과 같이 마치 트리 등처럼 반짝반짝 빛을 내었습니다. 담당자의 말로는 시스템 오류라고 하는데요, 그 빛이 쓰러진 사람 위치를 알려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봄날의 기적일까요?.......”
“다행이다. 휴.”
나는 안도의 웃음이 나왔다.
“가삼아. 기적이라고 하는구나. 나는 어제 가슴이 많이 뜨거웠단다. 너도 그랬니?”
가삼이는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졸린 눈을 끔뻑이며 웃었다. 가삼이 머리 위에 쌓였던 눈이 바람에 흩날려 반짝이를 뿌린 듯 했다.<끝>
아동문학사조 제 9호 게재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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