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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와 동시

[어른이 읽는 동화] 안선희/ 안녕, 내 동생

작성자김도식마르티노|작성시간24.10.15|조회수49 목록 댓글 0

 엄마가 임신하더니 많이 변했어. 자주 피곤해하고 좋아하는 음식도 달라졌어. 엄마는 원래 고기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고기반찬만 먹었어. 뱃속의 아기가 먹고 싶어 한다나. 내 동생은 외계인인지 밥하는 냄새가 싫대

 

 

 

“소영아, 우리 얘기 좀 할까?”

아빠가 물었어.

“응, 아빠. 조금 이따가‧‧‧”

한참 게임에 빠져 있던 터라 힐끔 아빠를 보고, 이내 컴퓨터로 눈길을 돌렸어.

“빨리 나와.” 

아빠는 잠시 내가 하는 게임을 보다가 어깨를 톡 치고 나갔어 .

아빠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게임이 끝났어. 얘기 좀 하자는 아빠의 말이 신경 쓰였어. 내가 뭐 잘못한 일이 있었나? 엊그제 엄마가 학원에 늦겠다고 재촉하기에 문을 꽝 닫고 나갔던 일이며, 핸드폰 보느라 아빠에게 대충 인사했던 일이 떠올라 잠시 머뭇거리다 거실로 나왔어.

괜한 걱정이었어. 아빠는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거든.

아빠가 사과를 정성스레 깎아서 엄마에게 주었어. 아빠는 내게 사과를 주면서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어.

“소영아, 너 동생 갖고 싶다고 했지?”

“네? 아, 네‧‧‧”

뜬금없는 질문이라 나는 대충 대답했어.

“드디어 네게 동생이 생겼단다”

아빠가 함박미소로 엄마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어.

엄마도 방긋 수줍게 웃었어. 며칠 전부터 소화가 안 되고 헛구역질을 해서 병원에 갔더니 아기를 가졌대.

“네에?”

순간 멍했어. 뭐라고 해야 할 텐데 말이 생각나지 않았어. 하지만 엄마와 아빠의 얼굴을 보니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어.

“진짜? 와, 신난다”

손뼉을 치면서 소리 높여 말하고 내 방으로 왔어. 나는 방에 들어와 의자에 털썩 앉았어. 아까 신난다고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전혀 신나지 않았어. 마음을 숨기려고 큰 몸짓으로, 큰 소리로 말한 거야.

실은 난 외동이라서 좋아. 그렇다고 아빠 말이 틀린 건 아니야. 동생이 있으면 좋겠다고 투정 부린 적도 있었거든. 그건 진심이 아니었어. 갖고 싶은 것이 있을 때에만 동생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졸랐어. 이를테면 강아지가 그랬지. 친구 집에 갔더니 강아지가 너무 귀여운 거야. 엄마에게 사달라고 하자, 강아지는 보살펴야하는데 바빠서 안 된다고 했어. 그래서 집에 오면 혼자 있어서 심심하다고 동생 낳아달라고 졸라댔지. 어이없는 표정을 하던 엄마는 내 성화에 결국 하얀 강아지를 사 왔어. 내가 돌보기로 하고 말이야. 하지만 강아지는 얼마 후 할머니 집으로 보냈어. 왜냐고? 친구와 함께 강아지를 데리고 놀 때엔 재미있었지만, 그 친구가 이사 가고 나니 혼자 강아지와 노는 게 그다지 재미가 없는 거야. 아니, 강아지 키우는 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 다행이도 강아지는 시골로 가서 할머니의 절친이 되었어.

엄마가 임신하더니 많이 변했어. 자주 피곤해하고 좋아하는 음식도 달라졌어. 엄마는 원래 고기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고기반찬만 먹었어. 뱃속의 아기가 먹고 싶어 한다나. 내 동생은 외계인인지 밥하는 냄새가 싫대. 그래서 배달 음식을 먹는 일이 많아졌어. 처음엔 좋았는데 차츰 시켜먹는 것도 지겹더라. 예전처럼 엄마가 해주는 밥이 먹고 싶었어.

엄마는 냉장고 문을 열면 고약한 냄새가 난다고 싫어했어.

“윽. 소영아, 빨리 닫아. 방금 아빠가 물 마실 때 먹지 그랬어?”

내가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자, 엄마가 고개를 돌리고 얼굴을 찌푸렸어.

“고 녀석, 참 까다롭네.”

그러면서도 아빠는 엄마 배를 가리키며 미소 지었어. 시원한 물도 마음 놓고 먹지 못하게 하다니, 속상했어.

게다가 엄마가 자주 구역질을 했어. 먹고 싶던 음식을 먹고도 먹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더라고. 얼마나 힘든지 토하고 나오는 엄마의 눈에 눈물방울이 맺혀 있었어.

엄마는 나에게 부탁하기 시작했어. 가게에서 우유나 계란을 사 달라 하더니 어떤 날엔 갑자기 딸기가 먹고 싶다고 해서 사거리에 있는 큰 마트까지 갔다 오기도 했어.

청소하던 날이었어. 청소기를 돌리다가 엄마는 핼쑥한 얼굴로 머리에 손을 얹고 숨을 크게 내쉬었어.

“엄마, 힘들어요? 제가 할게요.”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청소기를 건네고 침대로 가 누웠어. 그런데 고맙다는 말 한 마디 없으니 어쩐지 섭섭했어. 청소가 힘들어서가 아니야. 내가 4학년이잖아. 엄마가 바쁠 땐 내가 청소기를 돌리곤 해. 그러면 엄마는 집이 반짝반짝 빛나네, 소영아, 고마워. 사랑해 하면서 폭풍 칭찬을 퍼부어 주거든.

주말에는 아빠가 청소는 물론 식사준비까지 다 했어. 아빠는 지방에서 일을 하기에 주말에 집에 오시거든. 아빠는 쉬지도 않고, 엄마가 말만 하면 무슨 일이든지 했어.

“여보, 아기가 수박이 먹고 싶대요.”

아빠가 벌떡 일어나 나갔어. 한참 후 빈손으로 온 아빠는 편의점을 돌아도 없다고 미안해했어. 한밤중에 수박이 먹고 싶다니, 아빠를 귀찮게 하는 동생이 미웠어.

엄마 얼굴이 점점 꺼칠해져 갔어.

방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 엄마가 불렀어.

“소영아, 우유좀 사다줄래?”

“네에.”

대답했지만, 인현왕후전을 읽고 있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야. 궁녀였던 장희빈이 권력을 차지하려고 온갖 계략을 꾸며 중전인 인현왕후를 괴롭혔어.

“너 아직 안 갔니?”

문이 벌컥 열리며 엄마가 하는 말에 짜증이 묻어났어.

“어, 아직.¨

나는 당황해서 후다닥 책을 덮었어.

“뭐야, 부탁한 지 언젠데 아직 이러고 있는 거니.”

엄마가 실망했다는 표정으로 나갔어.

“이거 읽고 가려고 했단 말이에요,”

내 목소리도 뾰족해졌어. 난 엄마와 아빠에게 야단맞은 기억이 거의 없어. 그런데 오늘 엄마에게 혼이 난 거야. 전 같으면 설령 엄마 말을 안 들었어도 책을 읽느라 그랬다면 이해해주었을 텐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어. 이게 다 동생 때문이야. 지가 뭔데 우리 가족을 괴롭히는가. 엄마를 통해서 이것저것 명령을 내리는 것 같았어. 나는 동생의 노예가 된 기분이었어.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어. 동생아, 나오기만 해 봐라. 내 가만두지 않고 복수하리라 마음먹었어.

금요일 일찍 아빠가 집에 와서 우리는 다 같이 산부인과에 갔어.

“동생이 생겨서 좋겠네? 이름이 뭐니?”

엄마가 진찰대에 올라가는 동안 의사 선생님이 물었어.

“김소영이요.”

“어디, 소영이 동생 좀 봅시다.”

의사선생님은 엄마 배에 투명한 젤을 바르고 기계를 올렸어.

“아기 심장이 뛰는 소리에요.”

“지지지직 푸푸푹, 지지지직 푸푸푹.”

전철이 지나가는 소리 같기도 하고, 청소기 돌리는 듯한 소음이 심장소리라니 신기했어.

“여기는 아기집이고 이게 아기에요.”

의사 선생님이 커서로 크고 작은 검고 하얀 점들이 움직이는 것들을 짚으며 알려주었어. 우리는 컴퓨터 화면이 뚫어져라 쳐다보았어. 저렇게 조그맣고 동그란 점들이 자라서 사람이 된다니 신비롭기만 했어.

검사가 끝나자 의사 선생님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어.

“노산인 데다가 산모 자궁이 약해서 잘못하면 유산될 수도 있어요. 갑자기 배가 아프거나 출혈이 있으면 곧바로 병원에 오세요. 그럼, 다음 주에 봅시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빠는 보디가드처럼 엄마를 부축하며 걸었어. 월요일 아침, 아빠는 몸조심하라고 몇 번이나 당부하고 지방으로 떠났어.

학원에 갔다 오다가 문방구에 들렀어. 공책을 고르다 보니 무지개색 띠를 두른 딸랑이가 보였어. 거기선 문구 말고 장난감도 팔거든. 주머니에 용돈이 남아 있어서 공책과 딸랑이를 계산대에 올려놓았어.

집에 오니 엄마가 자고 있어서 가만히 내 방으로 들어갔어. 가방에서 딸랑이를 꺼내어 흔들어보았어.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렸어.

“내 동생 곱슬머리, 개구쟁이 내 동생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서너 개

아빠가 부를 때는 꿀돼지,

엄마가 부를 때는 두꺼비,

누나가 부를 때는 왕자님,

랄라랄라.“

딸랑딸랑 리듬에 맞추어 조그만 소리로 노래를 불렀어. 병원에서 보았던 동그란 점이 웃고 있는 것 같았어. 딸랑이를 책상 서랍에 고이 넣어두었어.

나는 침대에 누워 어제 읽다만 인현왕후전을 읽었어. 악독한 장희빈은 인현왕후 인형을 만들어서 바늘로 찌르면서 죽으라고 빌었어. 어진 인현왕후는 장희빈의 저주 때문인지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어. 그 사실을 알게 된 숙종이 장희빈에게 사약을 내렸어.

“으윽!”

소리를 지르며 잠에서 깨었어.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나 봐. 좀비에게 쫓기며 길을 잃고 헤매다가 겨우 집을 찾아서 들어가려는 순간, 좀비가 뒤에서 내 어깨를 잡는 거야. 너무 놀라서 눈을 번쩍 떴어. 꿈이었구나 안도의 숨을 쉬었어. 온몸이 땀에 흥건히 젖어 있더라고.

“엄마.”

엄마 방으로 갔더니 엄마가 없었어.

‘마트에 가셨나?’

이 꿈 이야기를 하면 엄마는 크려는 꿈이라며 안아주겠지. 엄마 품이 그리웠어. 어서 엄마가 왔으면 좋겠어. 아까 꿈이 생각나서 또다시 진저리를 쳤어. 한 줄기 서늘한 바람이 스쳐갔어.

물을 마시려고 냉장고로 가다 보니 식탁 위에 엄마의 메모가 있었어.

‘엄마는 병원에 갔다 올게. 혹시 늦으면 냉장고에서 반찬 꺼내서 먹어.’

급하게 썼는지 글씨가 빼뚤거렸어. 엄마 글씨는 교과서 글처럼 반듯한데 말이야.

무슨 일일까 궁금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어. 벨소리는 울리는데 받지 않았어.

한참이 지났는데도 엄마가 오지 않았어. 엄마에게 또다시 전화를 했어. 몇 번이나 전화했지만 받지 않았어.

나는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어. 그런데 아빠도 전화를 받지 않았어.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었어. 의사 선생님은 유산할 수도 있다면서 이상이 있으면 곧바로 병원에 오라고 했어. 컴퓨터를 켜고 유산을 검색해보았어. 유산이란 태아가 생존 가능한 시기에 임신이 종결되는 것이며 유산의 종류와 수술에 대한 치료법 등이 나와 있었어. 잘 이해할 수는 없지만 아기가 죽었다는 뜻인 것 같아. 쿵쾅쿵쾅 가슴이 심하게 뛰기 시작했어.

그때 책상 위에 놓인 인현왕후전이 보였어. 장희빈의 저주로 인현왕후가 죽었다는데‧‧‧. 학교에서 강낭콩 키우기 할 때 선생님이 하신 말이 떠올랐어. 식물도 말을 알아듣는다면서 사랑으로 키우라고 하셨어. 좋은 말을 해주면 쑥쑥 자라지만, 식물에게 나쁜 말을 하면 크지 못하고 시들시들 죽는다고 했어.

‘아, 어쩌면 동생은 내가 자기를 미워했던 걸 알았을까? 그래서 죽은 걸까?’

“안 돼. 죽지 마.”

내가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외쳤어. 너무도 답답하고 무서웠어.

“동생아, 죽지 마! 하느님, 내 동생을 지켜주세요. 제발요!”

난 두 손을 모으고 간절하게 기도했어. 한줄기 눈물이 흘렀어.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 나는 문을 박차고 뛰쳐나갔어.

저만치 골목 어귀에 택시가 섰어. 내리는 사람은 엄마였어.

“엄마!”

큰 소리로 불렀지만 엄마는 대답이 없었어. 수술받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대답할 힘도 없는가 봐. 땅바닥을 보며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어.

나는 엄마에게 내달렸어. 엄마 앞에서 와락 엄마를 안았어.

“엄마, 잘못했어요. 다 저 때문이에요. 엄마, 미안해요. 엉, 엉.”

내가 울면서 잘못을 빌었어.

“소영아, 왜 그래?”

엄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는 나를 떼어내면서 말했어.

“죄송해요. 내가 동생을 미워했어요. 엄마, 많이 아팠지요? 엉, 엉. 엉.”

내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어.

“무슨 말이야? 아프다니 누가?”

엄마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어.

“엄마, 유산된 거 아니에요?”

“유산이라니?”

“엄마, 병원에 간다면서요.”

“오늘 할머니 병원에 간다고 했잖아.”

그제야 생각이 났어. 어제 저녁, 할머니와 통화할 때 엄마는 오늘 치과에 간다고 했었어. 할머니가 임플란트한다고 했었는데 말이야.

“아, 다행이다. 엄마, 고마워요!”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채, 깡충깡충 뛰었어. 엄마는 의아하다는 듯이 나를 보았어.

“그런데 왜 전화 안 받았어요? 괜히 걱정했잖아요.”

내가 뾰루퉁한 얼굴로 물었어. 엄마가 무사한 건 다행인데 걱정을 너무 많이 해서 화가 나더라고. 전화만 받았으면 괜한 염려를 하지 않았을 거잖아.

“아, 그건‧‧‧. 병원 화장실에서 핸드폰을 떨어뜨려 고장이 났어. 지금 핸드폰 수리 맡기고 오는 길이야.”

엄마가 내 눈물을 닦아주면서 말했어.

집 안에 들어서자 엄마는 피곤하다고 외출복을 갈아입지도 않고 누웠어. 나는 얼른 머리에 베개를 받쳐주었어.

“그런데 소영이가 동생을 미워했나보구나? 좀 서운한 걸?”

엄마가 빙그시 웃으며 내 얼굴을 살짝 꼬집었어.

“그게 아니라, 동생이 우리를 너무 힘들게 하니까요. 그래도 진짜 싫은 건 아니에요.”

나는 붉어진 얼굴로 몸을 꼬면서 말했어.

“맞아. 요 녀석이 좀 얄밉기는 하지?”

엄마가 가볍게 배를 두드렸어.

“아니에요. 태어나면 내가 잘 보살펴줄 거예요.”

“실은 아기 낳을 일이 걱정되는데 든든하구나. 고마워요. 우리 딸!”

엄마가 꼬옥 안아주었어. 세상이 온통 밝아지고 마음이 날아갈 것처럼 가벼웠어.

“안녕? 내 동생아, 건강하게 자라야 해.”

나는 엄마의 배에 뺨을 대고 살며시 쓰다듬어 주었어.

 

안선희/ 2017년 눈높이 아동문학상 대상 당선, 천강문학상 대상 당선, 2022년 천태문학상 수상, 지은 책으로 동화집 《날 부르지 마》《진돌이를 찾습니다》《내 몸에 벌레가 산대요> 《주사? 무섭지 않아요》 등이 있음.
출처 : 문학인신문(http://www.munhakin.kr)


출처 : 문학인신문(http://www.munhaki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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