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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rt小說> 비바람 속에서

작성자김종상|작성시간23.12.03|조회수18 목록 댓글 3

<smart小說>
                                           비바람 속에서
                                                                                              佛心 김종상(金鍾祥)


 오후에 할머니 갈비뼈 통증이 점점 심해져 왔다. 며칠 전 밤에 용변을 보려고 일어나다가 전동침대에서 떨어져 다친 것이다. 할머니는 파킨슨 증후군으로 거동이 어렵다. 침대에 변기가 붙어 있어 일어나기만 하면 용변을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래서 일어나는 할머니를 돕기 위해 할아버지는 침대 옆 쇼파에서 잔다. 그런 할아버지를 깨우기가 미안해서 할머니가 혼자 일어나려다가 떨어진 것이다. 머리를 부딪치지 않았나 겁이 났는데 갈비뼈가 아프다고 했다.
119를 불러 병원에 갔다. 갈비뼈에 금이 갔다며 주사를 놓고 진통제 처방을 해줬다. 저절로 치유될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통증을 진통제로 진정시켜왔는데 오늘 갑자기 통증이 심해졌다는 것이다. 간병사 노릇을 하는 할아버지가 초조했다. 거동이 어려우니 병원에 가기도 쉽지 않았다. 또 태풍이 북상중이라 밖에는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119를 부르려니 할머니는 싫다며, 진통제를 더 먹어 본다고 했다. 약을 많이 먹는다고 될 일이 아닌 것 같았다. 통증이 점점 심해진다니 할아버지 마음이 불안해졌다.
“여보! 그럼, 아이들을 부릅시다.”
할아버지가 직장에 간 자식들에게 연락을 하자고 했다. 할머니가 절대로 안 된다며 반대했다.
“자기들 살기도 바쁜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는 싫어요.”
“그럼 어떻게 해요. 약을 먹어도 통증이 멎지 않는다면서.”
“이러다가 죽으면 모두가 편하게 될 테니, 그냥 두세요.”
이러니 대안이 없다. 마을의 가까운 재활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할머니를 안아 일으켜 휠체어에 태웠다. 밖을 보니 퍼붓는 빗줄기가 문제였다. 우산 두 개를 준비했다. 할아버지가 휠체어를 밀고 아파트를 나섰다. 그러나. 비바람은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우산이 있어도 할머니는 팔을 못 쓰니 우산을 제대로 펴서 들 수가 없고, 할아버지는 휠체어를 밀어야 하니, 비바람을 감당할 수가 없다. 비를 거의 그대로 맞으며 병원으로 향했다. 아파트에서 병원 가는 길은 약간 내리막이라서 휠체어 부레크로 속도를 조절하며 내려갔다. 그것도 힘이 부쳤다. 내리막에서 미끄러져 쓰러질 것만 같아 휠체어를 옆으로 세워서 쉬었다가 내려가곤 했다.
날씨는 이런 두 늙은이의 처지를 알 리가 없다. 바람은 뒤집힌 우산마저 빼앗아 갈 것 같았다. 우산이 도움은커녕 도리어 짐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시골에서 장마철에 비를 맞으며 아버지를 따라 모심기를 하던 어린 날을 회상하며 버티었다. 그때는 비를 맞아도 시원해서 좋았다. 땀과 섞여 입으로 들어오는 빗물을 핥으면 짭조름했다. 전설만 같은 옛이야기다. 이제는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구십 고개, 너무 늙었다. 하루만큼 산다는 것은 하루만큼 죽어가는 일이다. 생명의 잔고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내리막길을 지나 파출소를 돌아서면 병원이 있는 빌딩이다. 이 정도라도 병원이 가까이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두 늙은이는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어 병원문을 밀었다. 병원 바닥에 물이 떨어지는 것이 미안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대기실의 사람들 시선이 일제히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로 쏠렸다.
“에그머니, 노인네가 이게 무슨 일이에요?”
“세상에나, 이렇게 비를 맞으며 병원을 오시다니, 자녀들은요?”
대기하던 환자들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휠체어를 끌어주고 할머니를 부축해서 등받이 의자에 앉혔다. 손수건을 꺼내어 빗물을 털어주기도 했다. 모두가 고마운 분들이었다.
“비를 이렇게 노박이로 맞으며 오시다니요.”
간호사가 수건을 가지고 왔다. 수건으로 얼굴은 닦았지만 물이 흐르는 옷은 어쩔 수가 없었다.
“세상에. 119라도 부를 것이지. 이게 뭐예요?”
간호사가 대걸레로 대기실 바닥에 떨어진 물을 닦으며 말했다. 그 말에는 바닥에 물을 흘린 것이 귀찮다는 뜻인 것 같아 모두에게 죄송했다. 할아버지는 얼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노인네끼리만 이 우중에 오시다니, 너무 힘들었겠어요.”
의사도 혀를 끌끌 차며 진찰을 했다. 주사를 놓고 진통제 처방을 해주었다. 갈비뼈에 금이 간 것은 별다른 치료가 없으니, 시일이 지나면 좋아질 것이라고 했다. 처음 종합병원에 갔을 때와 똑같은 처방이었다. 진통이 문제인데 그 원인은 분명치 않다는 것이었다.
병원 옆에 약방이 있어 약을 타가지고 나섰지만 비바람은 계속되고 있었다. 두 늙은이가 모두 물젖은 걸레 꼴이니, 비바람을 걱정할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아파트로 가는 길이었다. 병원에 올 때는 내리막이었지만 아파트로 가자면 약간 오르막이라 힘이 더 들었다. 구십 노인이 휠체어를 밀기에는 힘겨웠다. 똑바로 올라가기는 어려웠다. 어디 도움을 청할 데도 없었다. 조금이라도 힘이 덜 들게 왼쪽으로 갔다가 오른쪽으로 가는 갈지(之)자 형으로 휠체어를 밀며 올라갔다. 코앞에 있는 아파트도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다.
그때였다. 휠체어를 밀며 안간힘을 쓰는데, 뒤쪽에서 찻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승용차가 길가에 정차하고 있었다. 차에서 한 아가씨가 내렸다. 아가씨는 우산을 펴들고 곧바로 쫓아왔다. 말없이 한 손으로 우산을 받치며, 할아버지가 잡고 있는 휠체어를 밀었다. 갈지(之)자로 길바닥을 쓸고 있던 휠체어가 똑바로 아파트를 향해 올라갔다. 아가씨는 스무 살 남짓한 앳된 얼굴이었다. 뜻밖이었다. 구세주란 말은 이런 경우에 쓰는 금언인 것 같았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있나. 아가씨가 아니었으면 못 올라왔을 거예요.”
“할아버지, 할머니! 세상에 이 우중에 이게 무어예요. 어디 갔다 오세요?”
“병원에 갔다 오는 길인데, 비가 와서 그만……”
“비가 문제가 아니에요. 식구는 아무도 없어요?. 어르신 두 분뿐이세요?”
할아버지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아가씨를 바라보며 계면쩍은 웃음만 보냈다.
아가씨는 아파트 현관까지 휠체어를 밀어다 주고는 목례를 하며 건강을 빈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문득 저런 딸 하나만 있었으면 열 자식 부러울 것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고마워요. 이렇게 우리를 도와주시다니. 아가씨는 누구세요?”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아가씨가 누구인지나 알고 싶었다.
“그냥 지나가던 길이에요. 어르신네 두 분의 정겨운 모습이 참 아름다웠어요. 건강하세요.”
아가씨는 밝은 미소를 보내며 거센 빗줄기 속으로 총총히 걸어갔다.
“너무너무 고마워요. 조심해 가세요.”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현관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아가씨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계속되는 비바람 속으로 아가씨는 다시 한번 뒤돌아보고는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할머니 눈에서는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를 두 줄기 더운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할아버지도 빗물을 훔치듯 주름진 두 손으로 얼굴을 자꾸 닦아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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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도식마르티노 | 작성시간 23.12.07 훌륭한 글, 감사합니다!
  • 작성자김종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12.09 김도식 선생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이야기라 망서리다가 소설 형식으로 써본 이야기입니다.
    소설로 등단 한 것은 1958년이지만 근간에는 동시만 쓰다가
    모처럼만에 요사이 사람들이 선호하는 스마트 형식으로 써보았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김도식마르티노 | 작성시간 23.12.10 어쩐저 선생님의 자전적인 이야기였군요. 울컥했습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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