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자유게시판

<김문홍의 영화에세이 66> <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 삶이 삶에게 뛰어들다

작성자드라마 45|작성시간23.12.11|조회수2 목록 댓글 0

❲김문홍의 영화에세이 ❳ 66 

 

 

삶이 삶에게 뛰어들다

김희정 감독의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김 문 홍

 

삶의 의미를 잃은 사람의 삶의 여정

 

사람이 죽는다는 것의 애통한 슬픔은 그 사람을 다시 이 세상에서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늘 생각은 나는데 그 사람을 자신의 눈앞에서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은 얼마나 비극적인가. 그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없고, 목소리를 들을 수 없고, 손을 잡아볼 수 없다는 것은 또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그 사람을 볼 수 없고 자신의 기억 속에서만 볼 수 있을 뿐이지 현실 속에서는 만날 수 없다는 것의 이 이율배반적인 갈증은 어떻게 해소할 수 있으며, 만나긴 만날 수 있되 이미지로만 만나야 하는 환상의 허전함은 또 어떻게 달래야 한다는 말인가.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으로만 만나야 하는 사람들의 삶의 여정은 정말 고통스러울 것이다.

자연사가 아니라 사고로 죽은 사람의 어처구니없음은 슬픔의 농도가 더 짙고 깊을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려다가 느닷없이 변을 당한 사람의 경우는 더 슬플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내고 자신이 죽어버린 경우와, 두 사람이 함께 죽어버린 경우는 슬픔의 차원이 다르다. 죽어가던 사람의 유족은 미안함이 앞설 것이고, 죽어가던 사람을 살리려다 죽은 사람의 유족은 어이없고 화가 날 것이다. 김희정 감독의 독립영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2023, 103m)는 후자의 경우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두 사람의 고통스러운 삶의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의 원작은 소설가 김애란의 단편 소설집 <바깥은 여름>에 실려 있는 동명의 단편소설을 모티브로 한 영화이다. 신혼의 꿈에 부풀어 있던 서명지의 남편은 중학교 교사인데, 체험 학습을 갔다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제자를 구하려다 그만 제자와 함께 목숨을 잃어버린 경우이다. 서명지는 슬픔을 달래기 위해 사촌 언니가 기거하는 폴란드 바르샤바 여행을 통해, 그리고 물에 빠져 죽은 동생 지용의 누나 지은은 그 충격으로 온몸이 마비되어 병원에 입원 되어 삶을 포기하다시피 한다. 이 영화는 남편을 잃은 서명지와 동생을 잃은 지은의 현재의 일상과 과거의 기억이 서로 교차되면서 서사가 진행되고 있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영화의 중반까지는 두 사람의 관계가 소상하게 밝혀지지 않은 채 진행되다가, 어느 순간에 그 관계가 밝혀지면서 클라이맥스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하는 형태로 진행되어 처음에는 많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두 사람 중 지은은 어느 순간에 제자를 구한 명지의 남편과 명지에게 미안함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서사는 급박하게 속도를 가하며 감동의 물결을 일으킨다. 어떻게 보면 감동을 자아내며 눈물을 쏟게 하는 멜라드라마에 빠질 수 있는 함정을 극복하고, 이 영화는 담담하고 객관적으로 두 사람의 현재적 일상과 과거의 기억을 보여줄 뿐 최루적인 서사를 내보이지 않은 채 냉담하게 보여주면서 감상성을 용케 극복해 나간다. 그런 만큼 영화를 보는 관객 역시 3인칭 관찰자의 시점으로 두 사람의 현재와 과거를 좇을 뿐이다. 그러다가 폴란드에서 돌아온 명지가 은지가 힘겹게 쓴 편지를 읽고 상대의 입장과 슬픔을 공감하면서, 그동안 아무런 소식의 기별이 없던 서운함을 넘어서 다시 살아야겠다는 희망의 끈을 붙잡게 되면서, 이 영화는 슬픔을 극복하면서 삶에 대한 희망으로 헤피엔딩을 고하게 된다.

 

바르샤바 여행과 친구의 연민을 통한 슬픔의 극복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두 사람, 남편을 잃은 명지와, 동생을 떠나보낸 은지의 슬픔에 대한 반응과 극복의 형태는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명지는 사촌 언니가 있는 폴란드 바르샤바 여행을 통해, 은지는 병원에 입원하게 되는 과정을 통해 슬픔의 수용에 따른 반응을 보인다. 명지는 폴란드에 유학 온 대학 동창인 현석을 만나게 되어 시내 곳곳을 여행하는 과정을 통해, 은지는 동생 지용의 친구 해수가 자신에게 베푸는 연민을 통해 슬픔의 감정을 둔화시켜 나간다.

명지의 슬픔에 대한 반응은 피부에 돋아나는 붉은 반점을 통해 나타난다. 그것은 일종의 피부 감기로 슬픔의 육체적인 반응이다. 그 반점은 와지엔키 바르샤바 대성당을 현석의 안내로 찾아가게 되면서 잦아드는 실마리를 찾게 된다. 대성당에는 쇼팽의 심장이 보관돠어 있는데, 그것은 쇼팽의 누나가 프랑스에서 국경을 넘어 그곳까지 가져온 것이다. 성당에는마태복음6장을 인용한 쇼팽의 글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라는 글이 부착되어 있었다. 쇼팽의 심장을 프랑스에서 이곳까지 가져온 쇼팽 누나의 심정이 어땠을까를 상상하게 되면서 명지는 슬픔을 누그러뜨릴 실마리를 찾게 된다, 은지는 병원 침상에서 의도적으로 떨어자는 자학적 행위를 통해 슬픔에 반응하게 된다. 그러다가 평소에 가깝게 지내며 동생을 따르던 해수가 여러 가지 관심을 보이자 해수의 진심을 깨닫게 되면서 살아갈 희망의 단서를 만나게 된다. 명지는 폴란드 여행에서 맞닥뜨리는 역사적 일화가 주는 감동적인 이미지를 통해 슬픔을 극복하고, 은지는 마치 동생에게 하던 것처럼 자신을 돕는 해수의 진심을 통해서 살아가야 될 이유를 찾게 된다, 해수의 진정성에 대한 선명한 예증은 자기 어머니에 대한 위선을 발견하는 것으로 정점을 이룬다. 지은이가 퇴원하게 되면 당분간 자기 집에서 묵게 하고 싶은데 어머니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확답을 내리지 않는다. 그런 어머니에 대해 해수는 자기 책에다가는 좋은 말 다 써놓고 저런 반응을 하는 엄마 행동이 무척 모순적이다. 제발 내일 눈 뜨게 되면 어른이 되게 해 주세요라고 생각하는 태도에서 확연하게 읽을 수 있다. 해수의 생각은 겉과 속이 다른 기성 세대의 위선적인 행동의 모순을 명확하게 지적히고 있는 것이다.

명지는 귀국하기 위해 공항으로 가는 도중에 낯설지만 충격적인 풍경을 발견하게 된다. 택시 기사는 바깥의 풍경을 가리켜 보이며 차를 잠시 멈추어야 한다고 망한다. 바르샤바 봉기일을 기념하기 위해 바르샤바 모든 시민들이 행동을 멈추고 애도하는 광경을 보게 된 명지는, 사적인 감정으로 남편의 죽음을 슬퍼한 지금까지의 자신을 반성하게 되면서 자신의 애도 방식에 대해 회의하게 된다. 지은은 동생 친구의 진정성 있는 도움을 통해 살아야겠다는 희망을 발견하게 되지만, 명지는 폴란드 여행에서 느낀 역사적 일화를 통해서 자각하게 되는 차이를 드러내게 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지은의 희망 찾기는 구체적이고 명료하지만, 명지의 경우는 다소 관념적이고 작의적인 장치를 통해서 자각하게 되는 방식이 조금 억지스러운 느낌을 준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명지에게 결정적인 슬픔의 극복을 주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지은이 보낸 편지 내용이 주는 진정성 때문이었다는 것을 봐도 확연하게 알 수 있다.

 

삶이 삶에게 뛰어들다

 

지은이가 보낸 편지를 발견하고 읽게 되는 명지의 장면은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가까운 반전이다. 이 시퀀스는 명지와 지은의 장면이 서로 교차되면서 이루어진다. 지은이가 보낸 편자를 읽는 명지, 안간힘을 쓰며 재활 운동을 하는 은지의 결의,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나는 명지, 지은이의 편지를 읽는 명지의 모습이 대사 없이 침묵으로 교차되다가, 어는 순간 지은이가 편지 읽는 모습으로 바뀌면서 이 영화는 감정의 파고를 높이기 시작한다. 지은이의 다음과 같은 편지는 감동 그 자체이다.

꿈에서 지용이를 만나고 나서 권도경 선생님의 사모님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날 겁이 많은 지용이가 물속에서 마지막으로 움켜쥔 것은 차가운 물이 아니라, 권도경 선생님의 손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놓입니다. 권도경 선생님이 지용이 손을 잡아주신 걸 잊지 않고 살겠습니다. 꿈속에서 우리 지용이가 누나에게 밥 잘 먹으라고 한 것처럼, 사모님도 밥 잘 먹으면서 힘을 내십시오.”

명지는 새로운 마음으로 바르샤바의 현석에게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쓴다. 삶이 죽음에게 뛰어든 것이 아니라, 삶이 삶에게 뛰어든 것인지도 모른다.“로 끝맺는 명지의 편지는 자신의 애도 방식이 틀렸다는 것을 자인하며, 이제부터는 삶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 진정한 애도의 방식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은유적 상징이다. 이 영화는 진정한 애도의 방식이란 어떤 것이냐고 우리에게 묻는다. 그 사람을 마음속에 묻어두고 생각만 해서는 안 되고, 그 사람이 자신과 이웃에게 어떤 선한 영향력을 주었는지 생각하며 그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것이 진정한 애도가 아니겠느냐고 질문한다.

 

이 영화는 죽음에 대한 진정한 애도의 방식은 슬픔을 하루 빨리 극복하고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라고 암시하고 있다. 결국 진정한 애도는 사랑하는 사람의 애도에만 묻혀 있을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이 세상에 남겨놓은 삶의 흔적을 사랑하며 살길을 찾는 것이 애도라고 얘기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기억 속에 묻어야 한다. 묻어두었다가 삶이 고통스러울 때는 한 번씩 기억을 꺼내 행복했던 추억으로 위안을 삼아야 한다.그것이 진정한 애도의 방식이다. 그 사람은 현실의 일상적 공간에서는 볼 수 없고 만날 수 없지만, 기억 속에서 자주 만나 위안을 받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자신과 이웃에게 어떤 선한 영향력을 주었는지가 관건이다. 미워하던 사람은 땅에 묻어야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은 가슴속에 묻어야 한다. 사랑해서 잊을 수 없는 사람은 남아 있는 이들의 가슴 속에 그리움이라는 불멸의 인장을 남긴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남은 이의 기억 속에 오래 살아있지 못하면 그 사람의 삶은 아무 의미가 없다. 기억 속의 삶이 진정한 삶이고 그것이 곧 진정한 애도의 방식이고,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는 불멸의 길이다. (계간 문장2023, 겨울호)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