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동요가 사라지는 나라
정용원
우리 조상들은 전래동요(구전동요)를 부르며 인정을 나누고 서민 생활의 애환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살았다. 어린이와 어른들이 일을 하거나 놀이를 할 때 불렀던 ‘새야 새야’ ‘둥개둥개’ ‘개구리’ ‘두껍아, 두껍아’ ‘해야 해야 나오너라’ ‘멍멍개야 짓지마라(자장가)’ 등의 동요는 ‘대부분 서민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였다.
예부터 전해오는 전래동요나 구전동요 중에 즐겨 부르던 대표작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개굴개굴 개구리 너희 집이 어디냐? 미나리밭이 내 집이다.
-해야 해야 나오너라. 붉은 해야. 김칫국에 밥 말아먹고 장구치고 나오너라.
-자장 자장 우리 아기 잘도 잔다. 우지마라 우리 아기 잠 깨울라. 멍멍개야 짓지마라.
-금자동아 은자동아 금을 주면 너를 사랴, 은을 주면 너를 사랴.....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우리가 일상 사용하는 언어 속에 사상과 감정이 들어있듯 동요 속에도 기쁨, 즐거움, 슬픔, 그리움, 희망, 노함 등이 담겨있다. 그 시대 민족의 혼이나 정서가 배어있는 내용이다.
동요란 어린이들의 감정이나 생각을 담아서 표현한 문학 장르의 하나, 또는 거기에 곡을 붙여 부르는 노래를 말한다. 여기서 어린이의 감정이나 생각이란 천심 또는 불심이라고도 하고 진심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는 곧 동심과 같은 맥락이다.
현대 동요는 동심의 시를 율조에 맞춰 노래한 것이다.
그런데, 21세기 컴퓨터 만능시대에 진입하면서 우리나라는 엄청난 가치관 격변의 파도가 밀어닥쳤다. 요즘 어린이들이 동요를 외면하고 대신 트로트를 유행처럼 부르고 어른들이 이를 눈감고 박수를 치는 것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사회병리 현상인데, 어른들은 나라의 안정을 흔들고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 이런 현상을 무관심하거나 즐기고 있다.
얼마 전, KBS 아침마당에 출연한 초등 4학년 여자 아이가 트롯트 가수가 되는 게 꿈이라면서 ‘천년학’을 구성지게 부르는 걸 봤다.
-님 만나러 가는 길이 가시밭길이라도 당신이면 마다 않고 저 세상도 따르겠네.
아아아 아아아 그 님은 어디 있나 하루를 천년같이 찾아 헤매이는 애달픈 한 사람의 천년학 사랑..... 밤을 새워 산까치는 눈물로 지새는데 그 님은 소식 없고 긴 한숨만 쌓여가네.....
이를 본 시청자도 방청객도 진행자도 혀를 내두르면서 천재 가수라고 박수를 치고 입이 닳도록 칭찬을 했다. 이 노래뿐만 아니라 훨씬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트로트를 노래자랑 대회에서 부르는 걸 자주 목격했을 것이다.
11살 여자아이가 당신을 저 세상에라도 따라가고 천년같이 찾아 헤매는 애달픈 한 사람의 천년학 사랑....눈물로 지새는데 그 님은 소식 없고 한숨만 쌓여간다는 가사 내용을 얼마나 이해하고 공감하며 이 노래를 부를까? 미성년 어린 소녀가 과연 이런 가사와 곡에 빠져들어 목청이 찢어져라 처량하게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나는 그 아이를 정신연령에 맞는 아이로 보이지 않았다.
전국 노래자랑대회에서도 이런 기현상을 자주 보고 어이가 없어서 허탈한 심정에 사로잡힐 때가 많았다. 다섯 살 아이가 힙합 가수처럼 손발을 휘저어가며 혀짧은 발음으로 목청을 높이는 아이가 과연 미래에 필요한 인재이고 신동이라 할 수 있는가? 노래자랑 진행 MC가 그런 아이를 추켜세우고 지나친 칭찬을 하고 관람자와 시청자들이 넋이 나갈 정도로 경탄을 하는 게 과연 정상인가?
요즘 노래자랑 대회에서 동요를 부르는 모습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지난날 학교 학예발표회에서 예쁘게 동요를 부르던 시대는 가버렸다. 어린이들에게 꿈을 길러주는 아름다운 동요를 부르며 자라도록 하긴 커녕 힙합, 트로트에 대한 호응이 뜨겁게 달아오른 세상이 되어버렸다. 요즘 아이들은 학교에서 동요를 가르쳐도 가사를 외우거나 부르지 않는다. 교사도, 학부모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수수방관 하고 있다. 최신 가요나 팝, 영화, 뮤지컬 OST 수록곡 등을 더 즐겨 부른다. KBS, MBC 창작동요제에도 큰 관심이 없다. 거기서 뽑힌 동요가 널리 불려지지 않는 현상은 이상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MBC 창작동요제는 그마저 중단한 지 오래 되었다. 방송에서 어린이 시간 프로마저 없애 버린 것은 인성교육을 포기하고 상업적 이익만을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동요를 재미없다고 생각하고 지루하게 여긴다. 몇 해 전, EBS TV가 동요의 재미를 알려주기 위하여 ‘싱 앤 댄스-동요 구출작전’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으나 이마저 걸그룹 에이프릴의 레이첼 예나가 나와 춤을 추면서 동요를 부르는 모습을 보였지만 호응을 받지 못했다. 동요를 부르면 마치 수준 낮은 어린 사람 취급을 받을까봐 피하는지도 모르겠다.
동요나 가곡이 1970년대 이후부터 대중음악에 밀리면서 라디오와 TV등에서 점차 자취를 감추더니 이제는 거의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어린이들이 어른들의 세계에 빠져들어 어른들의 감정을 노래한 트로트를 좋아한다는 것은 어린이를 어린이가 아닌 어른의 축소판으로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 것이다.
이원수 선생이 지은 ‘고향의 봄’ 동요는 해방 이후, 첫 돌 지난 아기부터 백발 노인까지 오랫동안 너도 나도 즐겨 부른 국민애창곡이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회식자리에서, 동창회에서 모였다가 헤어질 때는 ‘고향의 봄‘을 제창했다. 심지어 북한에서도 한 때 ’고향의 봄‘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 노래를 거의 부르지 않는다. 고향을 잃어버린 실향민들은 더욱 더 ‘고향의 봄’을 부르면서 향수를 달랠 것 같은데. 이제는 그 고향마저 잊고 사는 것 같다. 북한을 탈북한 실향민들은 황폐한 고향의 모습이 떠올라 안타까운 감정 때문에 ’고향의 봄‘ 노래가 현실감과 멀어서 부르기 어려울 것으로 짐작되지만 남한의 60대 이상 노인들마저 마음의 고향까지 잃어버렸는지 이 동요를 잘 부르지 않는 원인을 알 수 없다.
북한은 간난 아기 때부터 공산체제 유지를 위한 사상 주입용 가사를 지어서 노래 부르게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진부한 사랑타령이나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형 사랑은 또 왜 이래’ 같은 어지러운 세상 풍자 노래와 어린이답지 않은 어른 모방의 가사와 곡을 당연한 듯이 부르고 있다.
요즘 아이들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OOO아파트인데요.”하고 대답을 하는 세상이니
‘고향의 봄’ 노래가 실감이 나지 않을 것이다. 자연을 떠난 아이들이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린 동네...’ 같은 가사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트로트 같은 말초 감각을 건드리는 짜릿한 감흥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학생들에게 착하고 고운 심성을 길러주지 못하는 노래를 가르치고 아름다운 추억도 심어주지 못하는 어린 시절을 보내게 할 수는 없다.
아이는 아이답게 길러야 한다. 아이에게 해로운 음식을 먹이고 비련의 슬픈 노래나 퇴폐적인 사랑타령을 부르게 하고 어른 흉내를 내면 그 아이는 바르게 자랄 수 없다.
어린이 놀이터와 골목길에 아이가 사라지고 동요가 사라지고 가곡도 사라지고 구수한 옛날 이야기도 사라지고 고향도 존경심도 참사랑도 사라지고 있다. AI가 인간을 대신하여 모든 걸 해결해주는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 연령으로는 어린 아이가 맞는데 아이 같은 아이가 없고 애어른만 있으면 이 나라는 희망이 없다. 어린이들에게 어린이다운 꿈을 심어 주는 어른은 드물고 물질만능주의, 출세지향주의, 쾌락주의 가치만을 심어주는 어른이 많다.
동심을 상실한다는 것은 인간성을 상실한다는 것과 같다. 동심을 상실한 정치인들이 내로남불을 밥 먹듯 하고 전과자 범죄소굴 같은 국회의원들의 팬덤정치를 보고 배운 어린이들이 과연 미래에 어떤 세상을 만들까 상상하면 소름이 돋는다. 아이들이 아이답지 않은 말과 행동을 하도록 교육환경을 만들어놓았으니 학교 폭력이 난무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성폭행 살인사건이 빈발하고 제자가 선생님을 폭행하는 극한상황까지 일어나는 원인을 규명하고 근본적인 예방과 대처를 하고 있는가? 도대체 누가 그 책임을 질 것인가? 컴퓨터 만능시대, AI시대에 일어나는 인간의 윤리 실종현상을 어쩔 수 없는 자연현상이라 여기고 자포자기하고 방치할 것인가? 이 모든 책임은 어린이를 어린이답게 길러주지 못한 어른들에게 있다.
어린 시절 동요 대신 랩이나 트로트를 즐겨 부르다보면 어른들의 잘못된 생존경쟁 방식이나 건전하지 않은 남녀관계, 금전만능주의를 모방하게 되고 도덕불감증으로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방송국이나 공영 언론매체에서 옛날처럼 어린이 시간을 신설하고 ‘동요’부르기’ ‘창작동요제’ 같은 프로그램을 편성해주면 나라의 미래를 밝혀주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 아이를 낳지 않아 국가 소멸을 걱정하고 지구 온난화로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데 어린이마저 병들게 해서는 안 된다.
동요 부르기 운동은 우리 아동문학가들이 먼저 일으켜야 한다. 그러나 아동문학가들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일 것 같다. 어린이 보호단체나 동요작사 작곡가들의 힘만으로도 불가능하다. 전 국민이 인성교육으로 아름다운 국가,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려면 어릴 때부터 아름다운 동요를 부르도록 정치인, 교육자, 문화예술가, 문인들이 나서서 범동요회복운동 시민단체를 결성하고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대전환 정책을 서둘러 세워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