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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은겸) <지켜진 아이들 -입양- > 연작 동시집 출간

작성자이은겸(이수경)|작성시간23.10.30|조회수59 목록 댓글 8

한국출판문화진흥원 2023년 우수출판콘텐츠 지원 사업 선정 작이 출간되었어요.

지켜진 아이들 입양-연작동시집이에요. 입양아들의 풀빛 마음, 꼭 한 번 만나보셨으면 해요. ^ ^

 

아래는 <지켜진 아이들-입양-> 강력한 첫 독자가 되어 주신 임재해 교수님의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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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해 <국립 안동대학교 (Andong National University) 명예교수>

 

《민속문화론》, 《민족신화와 건국영웅들》, 《민속문화의 생태학적 인식》, 《민속문화를 읽는 열쇠말》, 《마을문화의 인문학적 가치》, 《고조선문명과 신시문화》 등 33책

 

'입양' 문제를 다룬 연작 동시집

 

이수경의 지켜진 아이들 입양-

 

- 어른들이 꼭 읽어야 할 문제작-

 

동시는 동심을 가진 작가라야 쓸 수 있는 작품이다. 동심은 어린이들의 순수한 마음이자 순진한 생각이다. 순진한 생각이 사람 세상과 만나면 인심을 낳고, 자연 세상과 만나면 천심을 낳는다. 따라서 동심은 인심을 넘어 천심을 아우른다. 동심이 천심에 이르러도 시심이 없으면 동시를 쓸 수 없다. 시심은 세상을 자기만의 서정으로 노래할 수 있는 독창성으로 발휘된다. 그러므로 동시는 동심과 천심, 시심이 잘 어울려 하나의 노래로 조화를 이룬 예술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작가 이수경의 동시집 <<지켜진 아이들: 입양>>은 입양을 주제로 일련의 연작 동시를 묶어낸 작품집이다. 하나의 주제로 연작 동시를 지어 동시집을 내는 일부터 예사롭지 않다. 우리 아동문학계에서 이러한 연작 동시집을 일찍이 보지 못했다. 우수출판콘텐츠로 선정될 만한 작품집이다. 연작 동시인 까닭에 제목은 제각각이지만 모두 입양아라는 서정적 자아가 시의 주체이다. 작가는 오씨 가정에 입양된 오사랑이 되어, 작품 속에서 서정적 자아로 살아간다.

 

작가의 서정적 자아가 이처럼 입양아가 되는 것은 동심만으로는 모자란다. 입양아의 마음은 예사 동심과 다르다. 입양아는 버려진 동심과 사랑받는 동심을 함께 지니고 있는 까닭이다. 낳은 어머니로부터 버려진 슬픔과, 길러주는 어머니의 따뜻한 모정이 서로 스며들어 발효되고 숙성된 입양아의 동심은 예사 아이들의 동심과 사뭇 다르게 마련이다. 입양아의 두 갈래 동심을 하나로 아우를 수 있는 것은 천사의 마음이라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작품마다 서로 다른 개성의 천사를 서정적 자아 오사랑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작품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머리글부터 보자.

 

사랑아.

길러준 사람이 엄마야. 낳아 준 사람이 아니라.

그냥 너는 내 아이야.

 

머리글 첫 부분이다. 작가는 부모 없는 아이 오사랑을 입양한 엄마가 되어 머리글을 썼다. 머리글 사랑이에게를 읽으면서 나도 이러한 입양부모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홈빡 빠져들었다. “기르는 사람이 엄마야. 난 네 엄마가 되기로 했어. 그러니 너는 내 아이야.” 낳아준 사람이 아니라 길러준 사람이 엄마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너는 내 아들이라고 하지 않고 내 아이라고 했다. 차마 아들이라고 할 수 없어서 그랬을까. 입양아가 딸일 수도 있으니까 아들로 성별을 확정하지 않으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머리글을 읽어보면, 저자는 사랑이의 입양 엄마가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동시집의 시적 자아는 엄마가 아니라, ‘지켜진 아이들입양아들이다. 낳은 부모로부터 버려진 입양아 오사랑이 시적 자아가 되어, 입양 부모의 자녀가 되고 입양 가정의 가족이 되어가는 연작시이다. 입양 엄마가 되었던 저자는 작품 속에서 입양아 오사랑이 되어 누나와 동생까지 입양한 부모와 새 가족을 이루며 사랑의 기쁨을 누리는가 하면, 때로는 낳아준 엄마 생각에 슬픔에 잠기기도 한다.

 

엄마와 닮았다는 소리가 좋아

내가 잘 생겼다는 소리보다

아빠와 붕어빵이라는 소리가 좋아

내가 똑똑해 보인다는 소리보다

 

입양부모와 하나 되고 싶은 입양아의 소망이 담긴 시이다. 낳은 아이처럼 부모를 꼭 닮고 싶은 소망이 있다. 따라서 어떤 칭찬의 말보다 엄마를 닮았다’, ‘아빠 붕어빵이다소리가 제일 듣고 싶은 말이다. 낳아준 부모와 자식처럼 남들에게 부모와 닮은 아이로 보이고 싶은 것이 소망이다.

 

엄마 눈 속을 들여다보면/ 내가 있어.// 나를 가슴으로 낳았다고 하는데/ 엄마 눈으로도 낳았나 봐.” 입양아의 처지에서는 나를 길러주는 입양 엄마로서는 뭔가 좀 모자란 듯하다. 그래서 나를 낳은 엄마가 필요하다. 입양 엄마가 나를 가슴으로 낳았다고 하는데 그렇기만 할까. 엄마 눈 속에 내가 있는 걸 보면, 눈으로도 낳았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안심이 되지 않아서 길러주는 부모에 관해 더 각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나를 낳아준 부모님을

모르는 건

불행이 아니야.

지금 엄마를

만날 수 없었다면

그게 바로

불행인 거야.

 

시적 자아는 입양 부모를 길러준 부모가 아니라 나를 낳아준 부모로 믿고 싶다. 그러나 그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낳아준 부모에 집착하는 한 현실에 적응할 수 없다. 따라서 낳아준 부모를 찾는 것보다 입양 엄마를 만난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사실을 자각한다. 그러나 가슴 깊은 곳에 부모로부터 버려졌다는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은 채 깊게 남아 있다. 그러한 잠재의식은 꿈속에서 나타난다. 그래서 가끔씩 슬픈 꿈을 꾼다. 엄마에게 버려지는 아픈 꿈이다.

 

나를 낳아준 엄마에게

버려지는 꿈을 꾼 밤

놀라 일어나

어둔 방에 앉은 밤

옆에서 자던 동생도

갑자기 훌쩍이던 밤

동생도 나처럼

아픈 꿈을 꾸었을까?

 

엄마에게 버려지는 꿈을 꾸다가 놀라서 깬 입양아 오사랑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눈물이 코끝까지 적신다. 오사랑은 낳아준 엄마에 대한 두 가지 감정이 엇갈린다. 하나는 낳아준 엄마에 대한 본능적인 그리움이며, 둘은 낳아준 엄마로부터 버려지는 아픔이다. 둘 가운데 잠재의식에 더 깊이 갈무리된 것은 버려지는 아픔이다. 그러나 길러주는 엄마의 사랑이 넘칠수록 낳아준 부모에 대한 마음도 사무친다. 그래서 마침내 낳아준 부모를 너그럽게 이해하기에 이른다. 그야말로 성숙된 그리움이다.

 

나를 낳아 준 부모님은

돌아가셨을 거야.

아니, 아니

내 손을 놓쳤을 거야.

버린 것은 아닐 거야.

버려진 것은 아닐 거야.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 거야.’

나는

그래, 그래.’

낳아준 부모가 된 듯

자꾸 고개를

끄덕였어.

 

입양아들은 예사 아이들보다 더 빨리 성숙한다. 자기 마음보다 이쪽저쪽 어른들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야 한다. 그러느라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는 배려의 마음까지 길러진다. 자기도 모르게 낳아준 부모 마음을 헤아린다. 알지 못하는 저간의 사정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넉넉하게 이해하는 마음도 품게 된다. 매사에 삼갈 줄도 알고 참을 일도 잘 알아차린다. 남들이 자기를 두고 하는 말도 곧이곧대로 듣지 않고 돌려서 듣는 너그러운 마음도 지녔다.

 

버려진 애

버림받은 애

보육원에서 골라서 온 애

이웃 사람들이 하는 말을

이렇게 듣기로 했어

선택받은 애

부모님이 지켜주는 애

 

입양아는 자신을 두고 숙덕거리는 이웃의 소리에 민감하다. 입양아라고 차별하며 뒷말을 하는 사람들의 눈총도 아플 수밖에 없다. 곧이곧대로 들으면 상처만 깊어진다. 나름대로 바꾸어들으면 선택받은 애가 되어 어깨를 펴고 당당할 수 있는가 하면, ‘부모님이 지켜주는 애가 되어 믿는 구석이 있고 뒷배도 든든해지게 된다.

오사랑을 입양해서 사랑으로 길러주는 엄마는 본능적 모성을 넘어선 성모라 할 수 있다. “동생이 입양되던 날/ 살며시 구경하던 날// 엄마가 동생 볼에/ 입 맞추던 날// 아빠는 울먹이며/ 사진 찍던 날오사랑을 입양한 부모가 다시 동생을 새로 입양하는 날의 눈물겨운 상황이다. 입양하는 동생 오희망에게 입 맞추는 엄마는 성모다. 그 모습을 사진 찍으며 울먹이는 아빠는 성부다. 성모와 성부가 따로 없다. 고아 오사랑과 오희망을 입양하는 엄마 아빠가 성모이자 성부이다.

 

나를 입양해 준

고마운 엄마

사랑으로 잘 키워준

참 예쁜 엄마

그래도 조금 걱정이 된다.

우리에게 사랑을 모두 다 줘서

그 사랑 줄어들어 없어질까 봐

혹시나 그 사랑, 다 닳을까 봐.

 

입양 엄마의 사랑이 고마우면서도 걱정된다. 자기와 동생에게 사랑을 모두 다 주게 되면 사랑이 줄어들거나 닳아 없어질까 봐 염려된다. 그래서 조금만 아껴 달랠까?” 부탁하고 싶은 심정이다. 천사의 마음이다. 이 동시집에는 입양주제의 연작시가 수록되어 있으므로 하나의 아름다운 서사를 엮어낸다.

 

입양 할 때 가족들을 처음 만나 사랑 눈치를 보다가 오사랑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면서, 점차 만들어 가는 가족으로 나아간다. ‘입양 와서 한 달이 지나고 서로 익숙해지자 마침내 완벽한 가족을 이루며, 흔들리지 않는 뿌리 내린 집에 이른다. 연작시의 마지막 작품은 이다.

 

잠결에

눈 떠보니

엄마는 동생을

안고 잔다.

아빠는 내게

팔베개를

해주었네.

 

우리 서로/ 행복을 안고/ 잔다.” 이 작품의 마지막 구절이다. 안겨 자는 행복보다 안고 자는 행복이 더 크다. 흔히 말하는 행복한 결말에 이르렀다. 서사 작품으로는 묘미가 적은 결말이다. 그러나 입양을 다룬 연작시의 서사로는 그저 그만인 결말이다. 시에는 본디 결말이 없지만 연작시의 경우에는 결말이 있다. 마지막 시가 결말 구실을 한다. 결말의 시에는 잠 속에 평화가 가득하다. 행복한 결말을 넘어 평화로운 결말이다.

 

시집을 읽다가 보면, 입양 부모가 되었다가 입양아가 되었다가 두 갈래 감정이입이 서로 교차된다. 어느 쪽이든 가슴 한 구석이 뭉클하게 마련이다.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주는가 하면 마음을 따뜻하게 다독여 주기도 한다. 그러다가 마지막 작품을 읽고 나면 온 세상이 다 평화롭다. 그러므로 스스로 입양아가 되어 글썽이다가 마음의 평온을 찾게 만드는 가족 시집이다.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과 함께 온 가족이 모두 읽어야 할 문제적 동시 작품집이다.

 

작가는 입양아를 지켜진 아이로 자리매김했다. 흔히 버려진 아이라는 말의 선입견에 정면으로 맞서는 자리매김이다. 작품 속에서는 더 나아가 사랑받는 아이로 형상화되어 있다. 그러고 보면 유기견이라는 말도 바꾸어야 할 것 같다. ‘버려진 개라는 유기견의 호명은 일종의 낙인찍기인 까닭이다.

 

유기견도 이제부턴 오명의 굴레를 벗겨줘야 할 것 같다. 누군가 데려다가 기르면 유기견이라는 개는 없다. 유기견을 대체할 만한 이름을 찾아보자. 왜냐하면 누군가 사랑으로 거두어 기르는 개이기 때문이다. ‘유기견대신 입양견이면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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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이은겸(이수경)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11.06 고맙습니다, 정혜원 선생님! 주신 귀한 축하, 소중히 품습니다. 벌써 미틈달이 되었네요. 모쪼록 꾀꼬리단풍처럼 곱게 물든 시간만 만나시길 바랍니다.
  • 작성자원유순 | 작성시간 23.11.07 의미가 있는 동시집이군요. 축하합니다. 사랑받는 시집이 되기를.
  • 답댓글 작성자이은겸(이수경)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11.09 고맙습니다, 원유순 선생님. 주신 축하, 이 귀한 축하. 사랑이 가족들과 나누겠습니다. 입양 가족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_()_
  • 작성자이규희 | 작성시간 23.11.07 제목만으로도 뭉클해지는 동시집, 축하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이은겸(이수경)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11.09 잘 지내시지요? ^^ 우리 이규희 선생님. 멋진 선생님! 바쁜 걸음 멈추고 이렇게 큰 축하를 주셔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어요. 시집 속 사랑이네 가족과 행복하게 나누겠습니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 늘 건강 살피며 행복한 시간만 빚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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