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전설이라 할 수 있다. 호동(好童)은 유리왕의 셋째 아들인 대무신왕의 차비(次妃)에게서 난 소생이다. 왕은 그를 심히 사랑하여 호동(好童)이라 이름하였다. 대무신왕 15년 4월에 왕자 호동이 옥저(沃沮)를 유람하였는데, 낙랑의 왕 최리(崔理)가 여기 나왔다가 호동을 보고 "그대의 얼굴을 보니 보통 사람이 아니로다. 그대야말로 북국(北國) 신왕(神王)의 아들이 아니겠는가 ?' 하며 호동을 데리고 돌아가 사위를 삼았다. 그 뒤, 호동이 고구려에 돌아와 낙랑(樂浪)에 있는 아내 최씨녀(崔氏女)에게 사람을 보내어 전하기를 "그대의 나라 무구(武庫)에 들어가 고각(鼓角-북과 나팔)을 몰래 찢어버린다면 내가 그대를 아내로서 맞아들이려니와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부부가 될 수 없으리라." 하였다. 그 이유는 낙랑에는 옛날부터 신기한 고각이 있어 적이 침입하면 스스로 울리는지라, 그로써 침략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과연 최리의 딸(낙랑공주)은 몰래 무고에 들어가 예리한 칼로 그 고각을 찢어 버리고 호동이게 그 사실을 알렸다. 호동이 그 말을 듣고 왕에게 고하여 낙랑을 공격했다. 최리는 고각이 울리지 않으므로 안심하고 있다가 고구려군이 성 밑에 이르러서야 깜짝 놀라 무고에 가보니 벌써 고각은 부서져 있었다. 그 사실을 안 최리는 마침내 딸을 죽이고 항복하고 말았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낙랑이라는 나라가 문제인데, 역사에는 낙랑에 대해서 나라로 표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죠. 우리가 아는 낙랑이라는 것은 한나라의 무제가 고조선을 점령하고 그땅에 사군을 설치하면서 그 사군의 하나가 낙랑이라고 알고있는데 낙랑공주의 낙랑이 만약 이 낙랑이라면 당연히 낙랑군이라고 표현을 했겠죠. 게다가 한무제가 설치한 낙랑군의 태수는 최씨가 아닙니다. 또 이상한 것은 이때 낙랑이 멸망하였다는 기사와 다르게 그 후에도 낙랑은 지속이 되다가 미천왕에 의해서 멸망을 하였다고 기록이 되어 있다는 점이죠. 이런 여러 기사를 종합해 볼때 낙랑공주의 낙랑은 한사군인 낙랑군과 다른 한 소국의 이름이 아니었나 하는 겁니다.
이는 고구려 초기에 여러 소국을 병합해 가며 확장되어가는 과정을 표현한 기사로 봄이 적당할 것입니다. 물론 자명고라는 북에 대한 이야기 등은 허구일 가능성이 많으나 이는 낙랑의 강성함을 표현한 것이며 이러한 기사는 사실일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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