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방학엔 어디론가 뜻 깊은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운이 좋게도 어느 보살님의 소개로 김호성 교수님의 “일본불교사 강좌기행”에 동참 할 수 있었다.
비록 함께 소개서를 낸 스님들과 동행 할 수 없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공항에 도착하자 생각지도 못한 일행 분들을 만나서 반가웠고 더 뜻 깊은 여행이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비행기를 타는 것만으로도 마냥 설레고 신이 났는데 어느새 간 사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간사이 국제공항은 일본 혼슈[本州] 오사카만[大阪灣] 해상에 있는 국제공항으로 일본 오사카 도심에서 40km 떨어져 있으며 바다를 메워 인공 섬을 만들어 공항을 세운 것이라 한다. 양옆에 바다를 가로 질러 도로를 달리는 동안 과연 어떤 세계가 눈앞에 펼쳐질지 궁금했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창밖에 풍겨지는 분위기는 사뭇 한국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일본불교의 어머니 산이라 하는 히에이 산에 도착하자 ‘아! 이곳이 일본이 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천태종의 총본산인 히에이 산의 중심으로 엔랴쿠지의 발상지인 동탑으로 먼저 향했다. 일본 절에 첫 발을 내딛게 된 곳이 라서 그런지 법당 안에는 어떤 부처님이 앉아서 기다리고 계실까 무척이나 궁금했다.
히에이산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여러 탑을 돌아보는 내내 무상법문의 한 구절이 입안에서 떠나지지 않고 흥얼거려 진다.
가도 오는 곳곳마다 그대로가 극락이니, 첩첩 쌓인 푸른 산은 부처님의 발자취요~ 맑은 하늘 흰 구름은 부처님의 설법이고, 대자연의 고요함은 부처님의 마음이니~ 쭉쭉 뻗은 나무들이 모여 있는 울창한 산 그대로가 극락이었다. 히에이산은 산 자체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멋스러운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3박4일의 일정에서 연력사와 영평사, 천광사의 절을 둘러보며 일본 절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고 우리나라의 절과는 다른 몇 가지의 점을 발견 할 수 있었다.
절에 들어서자마자 문 앞에서 바로 신발을 벗고 들어가면 법당과 요사채가 모두 한 통로로 연결되어 있어 신발을 신고 벗고 하는 번거로움이 없어서 좋았다. 무슨 깊은 뜻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알길이 없다. 모든 것은 하나로 통한다는 만법귀일의 뜻인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도 한국사찰과는 다르게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절에 단청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리고 법당에 탱화가 모셔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일본 기행에 와서 제일 아쉬웠던 점 중 하나인데 얼핏 가이드인 김상의 말을 듣기로는 일본의 습한 날씨 탓에 단청을 하지 않는다고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한국 사찰은 다채롭고 화려한 반면에 일본의 사찰은 단조롭고 투박스럽게 보이기까지 했다. 본사에서 법당 불사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꼭 단청불사를 하기 전에 보았던 법당의 모습과 같은 인상을 느꼈다. 나무결이 그대로 보여서 인지 왠지 따듯한 느낌...살아있다는 느낌...
또 다른 특징이 있다면 절 안에 조경이 정원식으로 잘 되어 있다는 점이다. 항상 도량에는 물이 흘렀던 것 같고 소나무 등 조경수들로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 놓은 것 같다. 그래서 인지 꾸밈없는 자연그대로의 법당이 더욱 어우러져 돋보여 보인다.
그런데 의외로 법당 안의 분위기는 달랐다. 어둑 어둑하니 신비스럽기까지한 법당은 길게 늘여진 장식들로 화려했고 들어오는 사람들로 하여금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냈고, 한국 법당에 근엄하고 큰 부처님에 익숙해서 그런지 일본 절에 계신 부처님은 뵙기가 힘들다.
일본의 재미있는 특징 중 하나는 어느 절을 다니나 가는 곳 마다 절 안 밖으로 안치되어 턱받이를 두르고 계신 지장보살님이 계시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지장보살은 사산이나 낙태한 아이들의 영혼인 미즈노꼬(한국에서는 수자령)를 보호하는 보살로 알려져 있으며 또 지장보살님께 지극히 기도를 드리다보니 죽은 자신의 자식 같다는 생각에 어린아이용 빨간 턱받이가 목에 둘러져 있고, 사탕, 장난감 등을 옆에 놓기도 한다고 한다.
처음엔 턱받이를 두르고 계신 지장보살님 우습기도 하고 어색하게 보이기만 했는데 기도를 드리는 사람의 정성어린 손길과 마음을 생각하니 가슴 한편이 짠하기만 하다.
나의 관심을 가장 끌게 한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사찰 입구 길 한쪽에 설치되어 있는 그림판이다. 우리나라 법당 벽에 그려있는 벽화를 연상케 하는 이 그림판들은 어떻게 이 절이 세워지게 되었는지 그 배경을 이야기 식으로 자세하게 그려놓았다.
대부분 우리나라의 사찰들은 글로 써놓은 곳이 많은데 일본사찰은, 불교의 진리를 자연스럽게 시각적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알기 쉽게 전달하기 위한 불교미술의 의의를 잘 활용하는 것 같다. 다른 나라사람이 와서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그림으로 충분한 교감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면은 정말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각 절들은 나름대로의 특색이 있어 인상 깊게 본 것들도 제각각인데 그 중 히에이 산에서는 "天"자 모양의 조형물로 신성구역을 표시한다는 “도리이”라고 하는 문이다. 이 문은 우리나라 솟대나 홍살문과 비슷한 뜻을 내포하고 있다 한다. 일본의 전통 종교인 신도에서는 새를 '신의 사신'이라고 믿어 왔기 때문에 사람의 뜻을 신에게 전달해 주는 새가 쉬어 가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도리이라고 부르는데 교수님의 말씀처럼 곧 화투의 고도리를 생각하게 하여 웃음이 나온다.
천광사에선 박물관 앞에 쭈삣 쭈삣 서있는 나무부처님도 인상이었고 달력에 먹으로 그린 지장보살님과 부처님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주머니에 돈을 탈탈 털어서 샀던 일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3군데의 사찰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사찰을 한군데 꼽으라면 영평사를 말할 것이다.
영평사도 다른 사찰과 마찬가지로 그 분위기가 비슷했는데 스님들이 수행하고 계시는 모습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일본에 계신 스님들은 어떻게 수행하고 있는지 무척이나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스님들의 생활 전반을 이해 할 수는 없었지만 수행하는 모습들을 일부러 신도들에게 감추려 하지 않고, 우리나라의 사찰처럼 스님들이 수행하는 곳이라며 일반인 출입통제 구역이라는 푯말도 보지 못했다. 있는 그대로 여실히 보여주며 신도들이 다니는 것에 대해 아랑곳 하지 않는 다는 점이 특이하다고 생각을 했다. 어떻게 보면 신도들의 신심을 더 고취시키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평사에서 받은 가장 큰 교훈은 벽에 붙어 있는 포스터의 한 글귀에서 이다.
희심(喜心), 노심(老心), 대심(大心)...
전좌 교훈(典座敎訓)에 작사 작무(作事作務)할 때, 희심(喜心)․노심(老心)․대심(大心)을 갖고 하라는 주의 사항이 있다고 한다. 일을 할 때 그저 멍청히 할 것이 아니라, 희심, 노심, 대심의 삼심(三心)을 항상 가지고 하라는 것이다.
첫째, 희심이란 삼보와 대중들에게 공양하는 음식물을 손수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기쁨을 느끼는 것을 말하고,
둘째, 노심이란 부모의 마음이며 자신의 형편을 돌아보지 않으며 오직 내 자식이 잘 자라나기만을 염두에 두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추위는 돌아보지 않고 옷을 자식에게 입히며, 자신의 더위를 돌아보지 않고 내 몸으로 자식의 그늘이 되어주는 자애로운 마음가짐으로 삼보를 공양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셋째 대심, 이른바 큰마음이란 큰 산과도 같고 큰 바다와도 같은 치우치지 않는 마음을 말하는 것인데 이렇게 세 가지 마음을 가지고 음식을 만든다면 이미 그 음식에는 사랑의 마음과 정성의 마음이 들어 있기 때문에 만드는 이나 먹는 이가 다 같이 복을 지을 수 있다고 한다.
교수님의 간단한 설명을 들으며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수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좋은 교훈이라 생각하여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다시 한번 염두 해 두었다.
이렇게 사찰들을 돌아보며 3박4일의 일정을 마치면서 미쳐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해보게 되었고, 내면에의 것들을 되돌아보며 정리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일본에서의 색다른 경험들은 앞으로 내 인생에 있어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는데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