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욕망과 그 치유
방학이면 일본이나 일본불교에 관한 책을 몇 권을 읽는데, 이번에는 겨우 한 권 정도 읽었나 싶습니다. 점점 방학이 짧아지는 느낌이 듭니다. 그 책은 『우게쓰 이야기(雨月物語)』(이한창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8)입니다. 문학과지성사에서 펴내는 대산세계문학총서에는 이 책보다 먼저 『헤이케 이야기』가 옮겨졌습니다.
『우게쓰 이야기』는 에도 시대에 우에다 아키나리(上田秋成, 1734-1809)라는 사람에 의해서 쓰여진 설화집입니다. 모두 9편입니다만, 요즘 말로 하면 환타지같은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것같습니다. 일본에서는 이 "우게쓰이야기"가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하는데, 영화는 아직 못 보았습니다.
『우게쓰 이야기』에 실린 아홉편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작품은 바로 첫번째 이야기는 '시라미네(白峰)'라고 제목합니다. 시라미네는 지금 시코쿠의 가가와(香川)현에 있는 산 이름입니다. 백봉산이라는 산이 있다 합니다. 가가와현은 시코쿠라는 섬을 크게 열 십자를 그어서 넷으로 나눈다면, 동북쪽에 있는 현입니다. 옛날 나라 이름으로는 사누키(讚岐)라고 하였습니다. 사누키 우동, 으로 유명한 그 사누키입니다.
이 사누키 지방은 당시에는 유배지로서도 역할을 한 것같습니다. 정토종의 개조 호넨스님이 이쪽으로 유배를 갔었고요. 오늘 이 '시라미네' 이야기의 주인공 둘 중의 하나 스토쿠(崇德, 1119〜1164)천황이 이리로 유배를 옵니다. 바로 '시라미네'라는 산에서 유배를 살다가 죽습니다. 또 한 사람의 주인공은 사이교(西行, 1118-1190)스님입니다. 우리 "인물로 보는 일본불교사" 속에서는 염불과 진언을 함께 닦은 스님이라는 점에서 다루어지고 있지만, 더욱 유명한 것은 와카(和歌, 일본의 정형시로서 5, 7, 5, 7, 7이라는 음절수를 지켜야 한다)의 시인이자 평생 많은 곳을 여행했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방랑문학의 한 클라이맥스라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우게쓰 이야기』의 '시라미네'는 사이교스님이 스토쿠 천황의 묘를 참배하면서 위로하는 중에, 스토쿠 천황이 나타나서 대화를 하는 상황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설화집인 이 책 밖에서 나가서, 역사 속으로 좀 들어갔다 올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이 이야기를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토쿠 천황은 75대 천황입니다. 4살에 천황에 즉위를 해서 18년 동안 천황노릇을 하다가, 물러나게 됩니다. 물러나, 은퇴한 천황을 상황(上皇)이라 합니다. 이렇게 일찍 천황이 되었다가 일찍 은퇴하는 것은 어떤 특수한 예가 아니라, 당시의 일반적 관례였다고 합니다. 헤이안 시대 말기에 후지와라(藤原)가문에서 천황가에 딸을 바쳐서, 천황의 외척으로 정치의 실권을 잡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섭정(攝政)이나 관백(關白)이 되어서는 천황을 허수아비로 만들었던 것이지요. 그러려니 아무래도 천황이 나이가 들고, 힘이 생기면 불편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 아기였을 때 천황을 만들어주고서는 장성하면 곧 은퇴를 시킵니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현직 천황과 은퇴한 상황 사이에 권력다툼이 생길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바로 이런 일이 스토쿠 상황에게 일어납니다. 그는 원래 아버지 토바(鳥羽)천황의 첫째 아들로서 천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물러주게 되는데, 이 때는 아직 아버지 상황 역시 살아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뜻에 따라서 동생인 고노에(近衛) 천황에게 자리를 물러주게 됩니다. 불행하게도 이 고노에 천황이 일찍 죽게 되자, 스토쿠는 자기의 맏아들 시게히토(重仁)를 천황으로 앉히고 싶어했습니다. 지난 번에는 아버지 뜻대로 했으니, 이번에는 제 뜻대로 해야 할 것 아닙니까 라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버지 토바상황의 고집대로 겨울 세 살이던 동생, 즉 토바 상황의 세 살 된 아들 도시히토(體仁)가 76대 고시라가와(後白河) 천황이 됩니다.
이 사이를 일단 도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습니다.
토바(74) --- 스토쿠(75)
--- 고시라가와(77)
--- 고노에(76)
형제상속이 된 것입니다. 이때 쌓인 불만이, 아버지 토바상황이 죽자 고시라가와 천황측과 알력을 빚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알력이 극심하게 되자, 스토쿠 상황이 현 천황을 향하여 칼을 빼듭니다. 그렇지만 패하게 되고 마는데, 이 난이 호겐 원년(1156)을 '호겐(保元)의 난'이라 합니다. 고시라가와 천황의 입장에서 모반의 수괴가 된 스토쿠 상황은 시코쿠의 사누키에 있는 시라미네 산으로 유배를 가게 된 것입니다.
한편, 사이교 스님 역시 좀 늦게 출가하는데 전직이 사무라이입니다. 그러다보니 천황가와는 이리저리 설키는 관계가 아닐 수 없습니다. 토바 상황과도 인연이 있었고, 스토쿠 상황과도 인연이 있었다 합니다. 무사였던 그가 출가하게 된 계기는 어느날 친구와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데, 그 다음 날 친구가 죽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크게 무상(無常)을 느기고서는 출가를 하였다 합니다.
그렇지만 사이교 스님은 스토쿠 상황이 유배지에서 살아있을 때는 위로방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이교"의 저자, 다카하시 히데오(高橋英夫) 선생은 이에 대해서 "사이교가 스스로 선택한 정치적 '무', 즉 본질적인 출가둔세의 '은(隱)'에 불가피한 특성이다."
사이교는 정치와 지근거리에 있었지만, 출가 이후에는 정치와 거리를 두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스토쿠 상황의 유배시에는 방문을 하지 않았다가 죽고 나자, 몇 해 뒤에 사누키의 '시라미네'로 갑니다. 묘를 눈 앞에 두고서, 시인이 어찌 느끼는 바가 없겠습니까. 한 수 읊었습니다.
마쓰야마(松山)의
파도치는 물결은
변함없건만
천황이신 당신은
흔적조차 없구려(『우게스 이야기』, 14쪽)
마쓰야마는 지금도 가가와 현의 도시 이름입니다. 아마도 시라미네가 그 지역과 가까운 것같습니다. (저는 마쓰야마의 전철역까지 밖에 못 가보았습니다.) 권력이 어찌 저 파도치는 물결만큼 영원하겠습니까. 만고의 역사가 가르쳐주는 진리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런데 밤에 스토쿠 상황이 사이교 스님 앞에 나타납니다. 귀신 형상입니다.
사이교, 그대는 아무것도 모른다. 요즈음 세상에 일어났던 어지러운 난리는
모두가 짐이 일으킨 것이다. 이 세상에 살던 때부터 마도(魔道)에 깊이 심취하였
던 짐이 헤이지(平治)의 난을 일으켰으며, 죽은 후에도 계속하여 국가와 조정에
커다란 재앙을 내려 복수를 하려고 하였다.. 이제 두고 보아라. 곧 천하에 커다
란 재앙이 일어날 것이니.
이를 원령(怨靈)이라 합니다. 스토쿠 상황처럼, 뭔가 원한을 갖고서 죽은 사람이 죽은 뒤에 원령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사람은 이 원령을 두려워합니다. 전쟁에서 적을 죽이고서, 다시 그 적을 위로하는 신사를 지어주거나 절을 짓는 심리도 여기서 오는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당시 천하가 어지러운 것, 이른바 난세로 접어들었던 것이 모두 스토쿠 상황의 원령이 한 장난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이야기되고 있는 헤이지의 난은 호겐의 난이 일어난 뒤 3년 후에 일어납니다만, 쉽게 이야기하면 이렇습니다. 호겐의 난에서 스토쿠 상황 편을 무찌른 편에 속한 사람들, 즉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다시 권력 다툼이 일어나서 싸우게 된 것입니다. 억울하다 싶은 쪽에서 들고 일어났지만, 아직 때가 아닌지 지게되는 것이지요. 이때 이긴 사람이 다이라노 기요모리(平 淸盛)이고 진 편에서 죽어간 사람들 중에 미나모토노 요시토모(源 義朝)가 있습니다.
스토쿠 상황이 말한 “곧 천하에 커다란 재앙이 일어날 것이라”한 그 재앙은, 어쩌면 다이라(平)씨의 권력이 어떻게 미나모토씨로 옮겨가는 과정을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미나모토노 요시토모의 아들이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 賴朝)입니다. 바로 일본 역사상 처음으로 막부정권, 즉 무사들이 실권을 장악하게 된 것입니다. 가마쿠라 막부가 그것입니다. 이 천하의 대란, 그 과정을 담담히 불교의 무상사관(無常史觀)을 갖고서 서술한 이야기책이 바로 『헤이케 이야기(平家物語)』입니다.
이러한 스토쿠 상황의 이야기를 듣고서 사이교 스님은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스토쿠 상황 스스로는 그가 일으킨 난이 마치 왕도정치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상황께서 지금 하신 말씀은 사람의 도리를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사리사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두 사람 사이에는 좀더 논전이 이어지지만, 그것은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마지막으로 끝내 권력의 욕망, 권력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상황에게 사이교 스님은 와카를 한 수 지어서 방하착하기를 권유합니다.
상황이시여
옛날 옥좌를 새삼
어이하리오
오직 바라옵기는
부디 성불하시길
그러자 상황은 "안색이 부드럽게 변하고 괴이한 불꽃도 점점 옅어지면서 조금식 꺼져가더니 이윽고 상황의 모습도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와카는, 시는 하나의 치유효과를 발휘합니다.
마치 다라니와 같습니다. 그래서 『샤세키슈(沙石集)』에서는 "와카가 다라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경우에도 향가가 그런 역하을 하기도 했었지요.
어쨋거나 권력의 지근 거리에 있던 무사가 세상의 무상을 느끼고, 출가하여 은자로서 여기저기를 방랑하던 삶을 살았던 사이교를 내세워서, 가장 권력에 집착하였던 한 권력자와 대비시키고 있는 작품이 바로 '시라미네'입니다. 또 그러한 질기고 질긴 권력에의 집착이라는 병을 치유하게 합니다.
이미 떠난 옛날 옥좌를 새삼 어이하리오. 그 욕심 다 버리고, 이제 네세에서 후세의 보리를 이루소서.
그렇게 노래하였던 분이 방랑의 시인, 은둔의 시인 사이교였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또 한 분의 스님입니다.
나무아미타불
*** Everyday공부방 글입니다. 몇 번인지는 잊었습니다.
청량월 보살님이 주신 "우게쓰이야기"를 읽고서
그 첫번째 이야기, 즉 사이교(西行)스님 이야기를 쓴 것입니다.
제 주제 중에 탈(脫)권력이 있어서, 애착이 가는 글입니다.
유에스비에 있었습니다.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