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불교 문화원형 비교 연구
2010. 10. 15 인도철학과 만종
대부분의 신화적 서사시에 나타나는 “영웅”의 모습은 흡사하다. 어린나이에 말할 수 없는 시련과 고생을 하고,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 보금자리에서 추방되거나 스스로 떠나 새로운 곳인 황야나 사막등에서 스승을 만나 정신적 재탄생 과정을 거치고, 드디어는 자기를 버린 그 고향이나 부족으로 돌아가서 찬란한 권위를 되찾는다는 것이다. 신화시대를 지나 현대 소설을 분석하는 방법에도 이를 통한 알레고리나 구조주의적 입장이 이용된다. “로망”의 주인공은 결국 그 사회의 모순속에서 태어나 그 총체적 극복을 위해 발버둥치곤 한다. 하지만 현대 소설에서는 그 주인공은 “문제적 개인”으로 성격지어지고 대부분 자기 삶의 과업을 완수하기보다는 그 모순을 드러내는데 까지 성공하고 그의 내면은 기괴하게 왜곡되거나 변형되곤 한다는 것이다. 문제적 개인의 삶은 그래서 비극적이라고 할 수 있다. 로망의 알레고리에 비추어보는 현대인은 모두 다 비극적 현실에 처해 있으며 모순된 현실의 무게앞에서 일그러진다는 것이다. 죄르지 루카치등의 문예이론이나 르네 지라르의 비평론은 이러한 면을 뚜렷이 보여준다. 자고 나면 벌레로 변한 자신을 발견하는 이른 아침이거나, 어떤 거인의 삶에 견주어보는 한낮에도 왜소한 스스로를 느끼기 때문이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카프카의 변신등은 이러한 것들을 보여주는 예로 설정된다.)
일본 선 불교의 원형을 찾아가는 길목에서 여러 차례 이러한 느낌을 갖곤 했다. 다시 말해 도겐의 일생에도 “영웅”이야기와 유사한 구조가 깃들어 있다. 당시 일본 귀족층의 집안에서 태어나지만, 거의 폐족이 되어 어린나이에 절집으로 보내진다. 관승으로서의 성공 지향적 태도들로 만연한 그 절집의 일상에서 현실에 대한 모순을 느낀 그는 스스로를 장식품이나 소모품처럼 여기게 되자 수행자로서의 정체성을 새로이 하고자 낯선 곳을 향해 떠나야 했던 것이리라. 일본국으로의 귀국 후 그는 자신의 법맥을 활발발하게 펼쳐 나가며 부촉받은 법에 대해 한치의 의심없이 자신의 걸음을 걸었다. 도겐은 결국 묵조선의 방법으로 오늘날까지 일본에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당대의 혼돈과 모순된 현실에 대한 탈출구로서 도겐은 더욱 엄격한 기준으로 자신을 몰아세우고 이러한 선명성을 바탕으로 여타의 수행풍토와 차별되는 존재로 부각된 것이라 여겨진다. 입송 당시에 드러난 태도들이나 그후 그의 행적들에서 이런 면모를 읽을 수 있다. 또한 근본주의적 입장을 보이는 그의 저서들에서도 이러한 수행정신의 원형을 찾아볼 수도 있다. (도겐에 대한 토의중에 그의 행적이 상당히 근본주의, 원리주의적 입장을 고수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물론 불교에 이러한 ~~주의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불교 근본주의라는 말은 그 자체가 모순이니까 말이다. 그의 수행가풍에 대한 것이겠지만 그는 엄격한 데가 있었으며 이 엄정한 정신성과 수행이 조동종의 가풍을 일본으로 이식할 수 있게 한 저력이라고 보자는 것이며 전설적 위인으로 우뚝서게 된 배경 역시 마찬가지라고 여기자는 것이다.
선명성과 차별성 그리고 엄격함을 수행의 기반으로 삼은 도겐의 面授嗣法은 적어도 일본의 불교 현실에서는 법맥을 이어가는 전형으로 기념되며 기려진다. 동산과 조산의 법맥이 이어져 천동산의 여정으로 면면히 이어져 왔고, 이 법맥은 드디어 바다 건너 일본으로 가게 된다. 신심탈락을 깨달음의 증거로 내세운 도겐에게 여정선사는 “덧붙이기”를 탈락신심이라 하며 대륙의 법을 섬으로 “덧붙여” 주는 것이다. 조동종의 가풍인 지관타좌는 굉지정각에 의해 이론화되는데 정각과 거의 동시대의 인물이 간화선의 적법 중흥조인 대혜종고선사이다. 또 도겐의 바로 윗대에는 임제선의 영서(에이사이)선사가 있었다. 한반도의 선맥인 간화선과 견주어 볼 때, 그리고 일본내의 수행풍토를 一瞥할 때 기묘한 상관관계랄까 대칭적인 면이 있다고 여겨진다. 영화 “패러랠”에서는 하나의 원형(아키타잎)이 시대를 거쳐 약간의 변형을 통해 재반복되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물리학에서는 이를 “형태 형성장”이라고 부르곤 한다. 종교적 영웅 도겐의 삶에 드러나는 傳法을 非隱蔽性(알레떼이아)의 면에서 바라보거나 포스트모더니즘의 검을 가지고 권위를 해체시키고 파헤쳐 보면 이러한 모습이 드러남직하다.
하지만 이런 면을 살펴보아야 한다. 도겐은 신화의 주인공도 아니고 로망의 등장인물도 아니다. 역사적 인물이기에 그는 신화와 로망 두 개의 정신 사이에 위치하며 위인전의 인물이 되어 버린듯하다. 태양의 밝은 빛의 세례를 받으면 신화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전설이 된단다. 특히 가마꾸라 시대는 상당히 어수선한 시대였다. 몽고군의 침입과 막부 정치의 혼돈이라는 시대적 배경속에서 일본 선 불교의 영웅 도겐은 자기 면목을 찾아 獨露一物의 경지인 지관타좌의 수행을 전수받아 당시의 일본에 이를 보여주었다. 偏正五位(曹洞五位)의 수행방법과 밀실에서의 독참과정을 통해 근본적인 교의를 부촉받고 신표를 전해 받는 傳法과 인가의 전통은 권위를 지니며 앞으로도 가끔씩은 권력현상의 하나로 힘을 발휘할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든다. 전수와 인가방식은 사자상승의 법맥이며, 이를 아비쉐카라고도 하는데, 非人不傳의 전법이라고 본다면 이글에서 보는 해석방식은 삼보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여겨질까 저어된다. 그렇지만 권위가 인습이 되어버린 후, 권력화된 종교 제도에서 힘의 논리가 법통으로 표출될 때, 마치 카스트제도나 골품제도등에서 보이는 배타적 밀폐성은 정통성을 주장하는 것과 비례해서 위험할 것이다. 사실 도겐이 면수사법을 중요시 한데는 그의 근본주의적 성향때문이며, 정법의 해이나 쇠퇴가 나타난 당시 일본의 불교 승풍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깨침의 경험과 형식이 일치해야 한다고는 해도, “嗣法하는 嗣書가 없다면 천연외도”라는 말에서 우리는 이러한 위험성을 감지한다. 후대로 가면서 종통복고운동이 일어나고 그 기저에는 이러한 사법론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며, 나아가 사법논쟁은 에도시대를 거치면서 만산, 독암, 천계등의 종학자들의 논리속에서 더욱 철저한 근본주의적 성향을 가속화한다. 면수사법의 명암은 이렇게 대칭적으로 표출되며 일본불교의 한 원형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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