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올해 한국은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됐고, 중국은 시진핑, 일본은 아베 총리의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새해에는 동북아 삼국의 지도자 바뀐 상황에서 새로운 역학구도가 설정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진 상태입니다. 동북아 평화를 위해 한중일 삼국 불교계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답 : 그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한중일 세 나라의 불교 역시 그 나라의 사회문화적 상황 속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경우 현재 국가주도로 불교가 부흥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는데, 국가의 입장과 다른 입장을 취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의 경우에는 일본 사회 전체가 ‘우경화’되어 가고 있는데, 그 안에서 불교가 어떻게 얼마나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가 의심스럽습니다. 우리의 경우에는 워낙 사회 안에서 불교의 영향력 자체가 적은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WFB세계불교도우호대회와 한중일불교대회 등 교류 증진을 위한 대회는 많습니다. 특히 차기 WFB대회는 중국에서 열릴 것으로 보여 중국이 주창한? 동북아 황금연대에 대해 관심이 몰리는 상태입니다. 동북아 황금연대의 뜻과 의미가 궁금합니다.
답 : 누구를 위해서, 무엇에 대해서 ‘연대’를 하자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연대’에는 위험한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시아의 근대사에서 ‘연대’는 부정적인 흔적을 남겼습니다. 일본은 제국주의 시기에 “아시아는 하나다”라고 하면서, 아시아의 연대를 높이 주장하였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실제로는 이웃나라를 지배하는 데 합리적인 기제로 사용하였습니다. 이른바 아시아주의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고, 그러한 이데올로기가 대동아공영권의 이념적 지주가 되었음을 우리는 잊을 수 없습니다. 한중일 세 나라의 불교계가 서로 소통(疏通)하고, 이해(理解)하는 것이 중요하지 연대가 중요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 입장에서는 그러한 점을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리라 봅니다. 그래야 하지, 그 연대에 맞장구를 치면서 연대의 주도권을 꿈꾼다는 것은 헛되게 보입니다. 다만 ‘연대’라는 말이, 교류를 하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거절하기 어려운 장밋빛이라서 곤혹스런 점이 있기는 할 것입니다.
3. 불교도들의 세계대회에서 이뤄지는 논의가 선언적 수준을 넘어서 현실 불교와 나아가 사회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할까요.
답 : 결국 문제는 타자(他者)를 향해서 “우리 평화롭게 지내자”는 이야기를 하기는 쉽지만, 그 나라로 다시 돌아가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의 경우에도 독도문제나 역사문제로 일본에 대해서 국민감정이 악화일로를 걸을 때, 그런 국민감정에 맞서서 “중요한 것은 일본과 공존 공생해야 한다. 미래를 향해서 나아가자”라는 이야기를 하기 어렵다는 데 있는 것이지요. 일본이나 중국의 불교계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4. 최근 중국 불교가 유대가 아닌 동북아시아 불교의 주도권을 잡으려고 한다는 느낌을 적지 않게 받습니다. WFB 세계불교대회에서도 티베트 불교 관계자를 입장 시켰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항의를 하는 등 주최 측에 결례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2010년 한중일 대회에서는 기자조선 담론으로 한국불교 측의 공분을 사기도 했습니다.
적지 않은 사건이 있었지만 현재 한국불교는 중국불교와의 마찰을 피하기 위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데요. 동북아 교류관계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중국불교의 패권주의에 대해 대응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답 : ‘티벳불교’ 문제에 대해서는 확고한 입장정리가 필요하리라 봅니다. 불교라는 종교의 입장에서 볼 때 티벳불교는 하나의 독립적인 역사와 문화를 갖는 ‘불교의 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그 ‘티벳불교’는 이미 우리에게는 타자(他者)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불교 전통 안에 상당히 뿌리깊게 들어와 있습니다. ‘불교’나 ‘한국불교’의 입장에서는 티벳불교는 결코 배제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점을 설득하여야 할 것입니다. 동북아평화를 위한 불교의 역할은 세 나라의 불교가 각기 ‘국가’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느냐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불교’로 들어가야 할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중국이나 일본에 대해서도 ‘국가’로부터 벗어나서 ‘불교’ 안으로 들어오라고 이야기해야 할 것입니다.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부터가 그렇게 ‘국가’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 말입니다.
5. 일본에서는 불경기 등으로 인한 정권교체로 우경화가 진행되고 있어 우려를 낳습니다. 일본불교에서는 그러한 움직임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일본과는 문화재 환수 과거사 청산 등 새해의 과제가 많습니다. 새해 일본불교와의 교류와 한국불교계가 대일교류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전망해 주십시오.
답 : 민주당 정권을 경험해 보았지만, 외교 문제에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한일불교계의 교류가 당장은 한일관계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리라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보다 장기적인 측면에서 불교의 역할이 필요할 것입니다. 지금 일본인들(특히 젊은이들)이 한국을 싫어하는 비중이 많이 올라갔고, 우리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독도문제나 역사문제가 다 해결된 뒤에 서로 사랑하자, 라는 것은 불교의 입장이 아닐 것입니다. 영토문제나 역사문제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한국사람과 일본사람이 서로를 좋아할 수 있는지를 불교가 고민하고, 불교의 교류가 그러한 일에 디딤돌을 놓아야 한다고 봅니다.
6. 올해 눈길을 끄는 것 중 하나가 일본 조동종의 참사비가 군산 동국사에 세워진 것입니다. 이치노헤 쇼코 스님의 동지회(동국사를 지원하는 모임)에서 세운 것인데요. 이 같은 역사 청산은 삼국 불교계의 과제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중일 불교사를 삼국이 공동으로 저술하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바라보시는지요
답 : 동국사에 일본 조동종의 참사비가 건립된 것은 의미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종단 차원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조동종은 허락없이, 참사문을 부분인용하여 세웠으므로 저작권 침해라면서 석비를 반환하라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역사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 한중일 세 나라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느냐 하는 ‘공존의 철학 마련하기’입니다. 또한 솔직히 다른 나라 불교사를 쓸 수 있는 역량도 없습니다. 공동역사서 보다는 서로 다른 나라 불교를 배워오도록 유학승(留學僧)을 파견하고 교환하는 것이, 지금 단계에서는 더욱 실제적인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