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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암다실의 도코노마

작성자이현옥|작성시간18.01.29|조회수1,086 목록 댓글 0

초암다실의 도코노마



일본 건축의 특이한 양식인 도코노마는 다다미보다 약간 높게 만들어져 일반적으로 족자를 걸거나 꽃이나 명품을 장식하는 공간인데, 초암다실에서는 ‘궁극의 장소’로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여기서는 도코노마의 구조적인 특징과 그 정신적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하는데, 우선 차의 유래에 대해 잠깐 짚어보고자 합니다.


일본에 차가 처음 유입된 것은 견당사(630~894)에 의해 중국에서 전래되었으나, 실질적인 차 문화는 가마쿠라시대(1192~1333)에 불법을 공부하러 宋나라로 유학해 일본 임제종의 개조가 된 에이사이(榮西、1141~1215)가 宋에서 가져온 차 종자를 재배하며 널리 퍼뜨린 데서 유래합니다. 처음에는 약용(藥用)으로 쓰인 차는 가마쿠라 시대의 새로운 권력집단인 무사계급의 비호 아래 기호품으로 자리 잡고, 무로마치시대(1336~1573)에 이르러서는 ‘투차(鬪茶)’라는 놀이로 유희화합니다.  ‘투차’란 차 맛을 보고 차의 산지를 가려내는 일종의 게임으로, 신흥귀족들은 투차를 즐김과 동시에 중국에서 들여온 문방구며 미술품인 중국 수입품을 당물(唐物)이라고 애지중지하며 호화로운 사교모임을 가졌는데, 이를 소위 서원차(書院茶)라고 합니다. 즉 서원차는 무사계급의 서원양식 공간(다다미, 장지문, 도코노마가 갖춰진 양식)에서 화려한 다도구를 감상하며 사교 모임을 즐기는 다도를 말합니다.


이런 다풍(茶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사람이 등장하는데, 소위 초암차의 시조로 불리는 무라타 슈코(村田珠光,1423~1502)입니다. 저 저명한 잇큐(一休,1394~1481) 선사에게서 참선을 배운 그는 당물(唐物) 일색인 당시의 호화찬란한 다회에 다다미 네 장 반 되는 초암풍의 다실을 만들어 소박하고 고담한 미를 이루려고 하는데, 차 문화에 禪수행 정신을 도입하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이후 슈코의 뒤를 이은 다케노 죠오(武野紹鷗, 1502~1591)는 초암차에 진실로 조심하고 깊이 겸손하며 거만하지 않는 ‘와비’라는 미적 이념을 구현하여 초암차를 와비차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이 와비차에도 선의 정신이 바탕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와비차를 소위 완성시킨 이가 죠오의 제자인 센노리큐(千の利久, 1522~1591)입니다. 리큐는 당시 대혼란기인 전국시대(戰國時代)를 통일한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 1434~1582)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7~1598)의 다도를 책임지는 총괄자의 지위에 있었는데, ‘초암다도는 불법으로 수행 득도하는 것이 제일의 목적이다’며 와비차의 방향을 확실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센노리큐는 선이 지닌 종교성과 이를 건축적으로 완성시키는 예술미를 같이 추구하고 강조함으로써 와비의 미를 초암다실에 구현하고 있습니다. 이런 와비미가 지니는 종교성과 예술성이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난 곳이 바로 도코노마인데, 센노리큐가 추구한 도코노마의 구조적 특징과 정신적 의미를 알아봅시다.


초암다실의 출입구는 니지리구치라는 가로 60cm 세로68cm인 좁고 낮은 출입구로 무릎걸음으로만 통과할 수 있는데, 고개를 숙이고 몸을 웅크려서 이 출입구를 통과해서 고개를 들면 ‘족자만큼 으뜸가는 도구는 없다’는 족자가 걸려있는 도코노마를 우러러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 도코노마의 기원은 원래 불화(佛畵)를 걸어 예배를 올리던 곳으로 경건한 마음으로 우러러보던 장소인데, 그래서 구조적으로도 일반적인 객실의 다다미보다 약간 높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객실은 응접실이나 거실의 역할을 하는 곳으로 일상적인 행위가 행해지는 곳인데,  이 객실의 중심위치에 있는 도코노마는 신성시되는 장소인 만큼 여기에 함부로 발을 들여 놓거나 하는 행위는 할 수 없으며, 도코노마에 걸린 족자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다다미 한 장 정도를 떨어져서 감상하도록 되어있는 성스러운 의미를 지닌 공간입니다. 리큐는 다도구에서 가장 중시되는 족자의 길이에 맞춰 도코노마의 천장 높이를 조절할 정도로 도코노마의 건축미적인 측면에 깊은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을 대신하는 가장 중요한 족자를 거는 도코노마가 지닌 본래의 의미를 살릴 것을 가장 중시하여 도코노마가 단순한 장식을 보여주기 위한 장소가 아닌 불법으로 수행하고 득도하려는 본래의 취지를 살려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손님과 주인 모두 다도삼매의 일심득도할 물건인 족자’를 우러러보면서, 초대한 주인이 손님에게 자신의 다도구를 과시하려는 그런 자신을 버리는 무아(無我)의 정신을 이 도코노마 앞에서 실천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도코노마는 무아라는 긍극의 깨달음을 상징하는 장소로서 건축구조상으로도 사상구조상으로도 중요한 측면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에는 이 도코노마에 얽힌 작은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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