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明恵上人(みょうえ, 묘에 1173-1232)
: 마츠오 겐지 선생은 <인물로 보는 불교사>(김호성 역, 동국대학교 출판부, 2005)에서
가마쿠라 초기의 화엄종 스님인 묘에 스님을 "가마쿠라 신불교의 기수들, 둔세승(遁世僧)"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16세(1188년)에 출가하여 동대사(東大寺, 토다이지)에서 구족계를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일단 관승으로 출발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후 21세에 공청(公請, 조정의 법회나 강의)에 참가하라는 명령을 거부함으로써(어떤 성격의 국가적 법회였는지,
또 묘에 스님은 무슨 이유로 조정의 명을 거부했는지 나와 있지 않아 인터넷을 뒤적거려 봤습니다만 찾지 못 했습니다)
관승에서 이탈하여, 둔세승이 됩니다.
스님은 특히 석가모니 부처님에 대한 믿음이 강렬하여 인도로 건너갈 계획을 세우고 구체적으로 하루에 몇 보를 걸으면
천축(인도)으로 갈 수 있는지 계산하고 계획했으나 끝내 천축으로 가지는 못 했습니다.
화엄종과 밀교를 함께 공부, 수행하면서 현밀 융합에 애쓰셨습니다.
1212년에는 호넨 스님의 <선택본원염불집>을 혹독하게 비판하는 저서 <최사륜(摧邪輪)>을,
그 이듬해에는 이 책을 보완한 <최사륜장엄기(摧邪輪莊嚴記>를 지어 호넨의 전수염불 주창을 비판했습니다.
즉, 전수염불은 보리심 없이도 오직 아미타부처님을 믿고, 염불만 해서 구제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 즉 불도 수행의 근본이 되는 菩提心을 경시하는 삿된 주장이라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설하신 계율을 중시하는 것이야말로 부처님의 법을 따르는 것이며
불교 본연의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 보리심을 중시하며 평생 동안 몸소 계율을 호지(護持),
특히 그 실천궁행에 매진하며 자각성불하기 위해 절치부심 치열하게 수행했던 묘에 스님의 입장에서 봤을 때,
아무 것도 필요없고, 아미타부처님의 본원력을 믿고 오직 '나무아미타불' 육자 염불만으로
어렵지 않게 구제 받을 수 있다는 호넨 스님의 전수염불론은 받아들이기 힘든 정말 충격적인 주장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전수염불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정토제종의 이행(易行)제창을 받아들이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예를 들어 여성 재가자들을 위해 가나(仮名↔真名/まな/漢字)로 논저를 저술하는 등
재가자들이 보다 가까이 다가설 수 있도록 불교 대중화와 교의 해석의 자유화를 모색했던 것입니다.
"南無三宝後生たすけさせ給へ"라고 외도록 했다거나 "南無三宝菩提心、現当二世所願円満"이라고 찬하기도 한 것을
보면 정토문의 이행도를 굉장히 신경썼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목할 만한 또 하나는
관승에서 이탈한 둔세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고토바(後鳥羽天皇,1180-1239)로부터 토가노의 땅을 하사받아
코잔지(高山寺)를 창건했다는 점입니다.
일단 관승을 이탈하여 둔세하게 되면 관으로부터이 그 어떤 지원도 끊기는 것이 관례였는데 말입니다.
(참고로 호넨 스님의 경우 둔세하여, 둔세라 해도 기껏 같은 히에이잔(比叡山)에서 조금 깊은 산중인
구로다니(黑谷別所)로 들어가 개인적 수행에 힘을 쏟은 정도였음에도 불구하고, 둔세승이었기에 양식도 없어
힘들었고, 이에 스승이신 에이쿠(叡空) 스님께서 양식을 대 주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둔세승이 천황으로부터 땅을 하사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이 또 있습니다.
현재 교토부의 남쪽인 야마시로(山城國)에 선묘니사(善妙尼寺)를 건립했다는 것입니다(젠묘니지의 위치가
좀 더 구체적으로 어디쯤인지는 찾지 못 했습니다. 일설에는 코잔지 인근의 토가노오의 어디쯤이었을 것이라는
설도 있고 히라오카(平岡)였다는 설도 있습니다).
'선묘'라는 이름이 낯익습니다. 맞습니다. 여기서 '선묘'는 의상 스님을 사모했던 당나라의 그 선묘입니다.
그러니까 묘에는 신라 화엄종의 영향을 받았으며, 심지어 의상 스님을 따랐던 여인 선묘마저 중히 여겼던 것 같습니다.
* 사족 : 옛날에 교토 토가노오(栂尾)의 코잔지(高山寺)를 참배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놀랐습니다.
대웅전 뒷편에 선묘를 위한 네모난 우물이 있고, 대웅전 앞마당에는 선묘(龍이 된 선묘?)가 드나들 수 있도록
불룩하니 길을 만들고...
우리의 영주 부석사와 아주 비슷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말 너무 닮아서 거기가 옌가, 여기가 걘가... 잠시 아득했더랬습니다.
* 伝教大師 사이쵸(最澄, 766/767-822)
* 弘法大師 쿠카이(空海, 774-835)
* 源信和尙 겐신(恵心僧都/えしんそうず, 942-1027)
* 西行法師 사이교(1118-1190)
* 法然上人 호넨(1133-1212)
* 親鸞聖人 신란(1173-1263)
* 一遍上人 잇펜(1239-1289)
* 明恵上人 묘에 (1173-1232)
신란, 묘에 두 분 스님의 탄생 연도가 1173년으로, 같군요.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