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제4권 끝, 1948독, 「정신염불게」 총정리

작성자카페지기|작성시간26.06.19|조회수22 목록 댓글 0

편지4권 끝, 1948, 정신염불게총정리

 

 

참으로 오랜 만에 편지를 드립니다.

많이 바빴습니다.

오랜 동안 편지를 못 보내서 송구하오나, 그만큼 다른 분야에서 권진을 하고 있었습니다.

(혹은 장차 권진을 위한 공부를 하면서 살았습니다.) 

이제 이 편지로 제4권은 회향합니다.

41을 받으신 날부터 매일 한 번 씩 정신게를 읽어주신 분이라면 모두 1,948독을 하신 것입니다.

처음에는 1,000독을 목표로 하였습니다만, 오래 끌었습니다.

편지 제11부터 계산하면, 10년이 됩니다.

애당초 편지를 쓰는 취지는 정토말씀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이고, 기성 매체로부터 그런 취지의 글을 청탁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또 제가 자비로 책을 만들어서 보내드리지 못하는 형편이라, ‘이메일로 정토말씀을 전해보자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편지는 마지막 미디어다라고 말씀드리기도 했습니다.

물론, 모델이 없지 않았습니다.

바로 정토진종의 중흥조이자, 본원사(本願寺) 제8세인 렌뇨(蓮如, 1415-1499) 스님이 ‘「편지」[오후미(御文), 또는 고분쇼(御文章)라고 불립니다. 테가미(手紙)가 아닙니다]를 써서, 지방의 신도들께 보내고, 신도들이 모여서 읽고 했습니다.

그 덕분에 본원사를 크게 중흥하여, 오늘날 일본불교 최대의 종파가 되었습니다.

일본사람 여덟 명 가운데 한 사람은 정토진종 신도라고 할 정도입니다.

 

정신게말씀을 총정리 하기 전에, 몇 가지 정토뉴스를 알려드립니다.

이는 신란스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정토진종은 그 종교적 체험이나 그 신행이나 다 지금 성행하고 있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우리나라 불교에서 정토말씀이 지금 널리 퍼지고 있습니다.

우상향(右上向)하고 있음을 알리려는 뜻에서입니다.

첫째는 지난 513일 동국대에서, 120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학교 공식기구가 주최하는 정토불교학술세미나가 열렸습니다.

주제는 신라 경흥(憬興)스님의 무량수경연의술문찬(無量壽經連義述文贊)의 정토사상에 대해서입니다.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권인한 교수님으로부터 일본 에도시대에 간행된, 현존 최고(最古)의 간본(刊本, 인쇄본)을 기증을 받은 것이 인연이 되었습니다.

권교수님은 제가 구결학회(口訣學會)에서 뵙게 되었는데, 이 책의 존재를 듣고서 연구가 끝나면 우리 학교로 기증해달라고 권진하였던 것입니다.

권인한 교수, , 김천학 교수, 한명숙 교수, 미탄스님이 발표했습니다.

둘째는 󰡔법보신문󰡕왜 다시 정토불교인가라는 주제의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이재형 대표의 청탁 덕분입니다. 2주에 한 번씩, 200자 원고지 14매 분량을 쓰게 됩니다.

이미 첫 회분이 신문에 실렸습니다. ‘인터넷 법보신문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많이 읽어주십시오.

셋째는 동국대 미래융합교육원 불교학과(학점은행제)에서 여름 계절학기 수업으로 정토학을 강의합니다.

오는 6월 27일 개강해서 815일까지, 모두 8주 동안, 매주 토요일 오전 3시간, 오후 3시간 강의합니다.

저의 책 처음 만난 관무량수경(동국대학교출판부)을 교재로 합니다.

현재까지 11분이 접수하셨다 하므로, 충분히 강좌는 성립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이제 정신게공부를 총정리합니다. “정신게 한 마디로 말하면 (  )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  ) 속에 들어갈 말은 무엇일까요?

3음절입니다.

잠시 생각해 보십시오.

정답은 삼귀의(三歸依)입니다.

법・승에 귀의하는 노래입니다.

첫째, 불귀의(佛歸依)입니다.

귀명무량수여래, 나무불가사의광에서 무량수여래와 무량광여래에게 귀의하고 있지 않습니까.

무량수여래와 무량광여래는 아미타불의 두 이름입니다.

둘째, 법귀의(法歸依)입니다.

법장보살인위시부터 난중지난무과사까입니다.

모두 42구절 인데, 이 안에서 신란스님은 과연 어떤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를 해명하기 위해서, ‘정토삼부언(淨土三部言)’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토삼부언, 지금 제가 처음으로 쓰는 말입니다.

정토삼부경은 다 아시는 것처럼, 󰡔무량수경󰡕 󰡔아미타경󰡕 󰡔관무량수경󰡕의 셋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 삼부경에는, 각 경전마다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말이 있을 터입니다.

이를 통틀어, ‘정토삼부언이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차례대로 인용해 봅니다.

 

󰡔무량수경󰡕 :  가령 제가 부처가 되더라도, 시방세계의 중생들이 (저의 이름을 듣 고 나서는) 지극한 마음으로 믿고 좋아하며 저의 나라에 태어나고자 하여, 예컨대 열 번 (저의 이름을) 염하여도 만약 태어나지 못한다고 한다면, 위없이 높고 올바른 깨달음을 얻지 않겠습니다. 다만 무간지옥에 떨어질 다섯 가지 죄(五逆罪) 와 정법을 비방하는 (죄를 범한 경우에는) 제외합니다( → 있는 그대로 포용합니다)

 

󰡔아미타경󰡕 : 사리불아, (겨우) 조그마한 선근과 복덕 인연으로는 저 나라에 왕생 할 수 없다. 사리불아, 만약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아미타불(의 이름을 설하는 것 을) 듣고나서, 그 이름을 굳건히 지니되 하루든, 이틀이든, 사흘이든, 나흘이든, 닷새든, 엿새, 이레든 한결같은 마음으로 어지럽지 않아야 한다.

 

󰡔 관무량수경󰡕 : 지극한 마음으로 소리가 끊어짐이 없게 하여 십념(十念)이 갖추어 지도록 나무아미타불이라 일컬어라.

 

제가 밑줄 그은 부분을 비교해 본다면, 아미타경과  관무량수경은 같습니다.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칭명(稱名)염불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떻습니까?

무량수경에 보면, 아미타경이나 관무량수경과 공통되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지요?

열 번 아미타불의 이름을 염하는 것은 공통됩니다.

하지만, 두 경전과 달리 지극한 마음으로 믿고 좋아하며라는 말이 하나 더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을 먼저 말하고, ‘나무아미타불이라는 행()은 그 믿음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도록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여기에서 무량수경과 다른 두 경전 사이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신란스님은 믿음까지 말하는 무량수경, 믿음을 기반으로 그 위에 자리하는 칭명을 말하는 무량수경을 더욱더 의지하게 됩니다.

즉 정토불교의 맥락에서 다른 불교와 구별해서 말할 때는 정토삼부경을 하나로 말하게 됩니다만, 정토불교 안에서 어떻게 믿고 어떻게 행할 것인가 라는 문제를 생각할 때는 무량수경을 선택합니다.

무량수경의 입장에서 아미타경 관무량수경을 비판하게 됩니다.

다른 불교와의 비교 위에서 행하는 교판을 외적 교판이라 할 수 있다면, 같은 종파 안에서 행하는 교판은 내적 교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외판(外判)과 내판(內判)으로 줄여서 말해도 좋습니다.

이 역시 제가 만든 신조어인데, 저는 신란스님의 교판사상을 살피면서 이렇게 교판에는 두 차원이 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신란스님이 왜 제18원을 지심신요원(至心信樂願)’이라 이름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인명분타리화라는 구절에서, 유일하게 관무량수경에 나오는 분타리화라는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아미타경으로부터의 인용은 아예 없습니다.

흔히 무량수경을 그냥  무량수경이라고 하는데, 왜 신란스님은 대무량수경이라고 하는지 알 수 있게 됩니다.

지심신요와 칭명염불을 함께 말하는 것이야말로 위대하다고 보신 것이지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법귀의 부분에서입니다.

셋째, 승귀의(僧歸依)입니다.

인도서천지론가, 중하일역지고승에서 마지막 구절 유가신사고승설까지입니다.

인도의 논사로 용수와 천친(=세친), 중국의 고승으로 담란, 도작, 선도 세 분 스님, 마지막으로 일본의 겐신, 호넨 스님 등 모두 일곱 분입니다.

7고승 내지 7조로 불립니다.

여기서 우리나라 불자들에게는 하나의 의문이 떠오를 수 있습니다.

왜 신란스님은 우리나라 스님들은 고승들 속에 넣지 않았는가?

한두 분 넣어서, 8고승이나 9고승이 될 수도 있었지 않은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우리 스스로 찾아보아야 합니다.

신란스님이 교행신증에서 인용하는 스님들 중에 신라의 경흥(憬興)스님 같은 분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인용하는 맥락을 살펴보면 어떤 지식 정보를 의지하는 맥락에서일 뿐입니다.

신심을 중시하는 신란스님에게, 신심의 선배로서 우리나라 정토가(淨土家)들이 인식되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문제는 그저 민족감정이나 정치적인 맥락에서 이해될 수는 없습니다.

철저히 신란의 정토사상이 형성되는 맥락에서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미 영관스님께서 석사논문 신란의 7고승에 한국 고승이 없는 이유 연구를 통해서 살펴본 바 있습니다.

이상과 같이, 정신게를 삼귀의로서 이해하여 살펴보면서 하나 느낄 수 있는 것은 편지 제491에서 정신게의 구성, 즉 과목(科目) 나누기를 통해서 살펴본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신게가 삼귀의라고 한다면, 이상에서 살핀 것처럼 분절(分節)해서 이해할 수 있다면, 정신게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 불귀의 : 귀명무량수여래, 나무불가사의광

 ├ 법귀의 : 법장보살인위시 난중지난무과사

승귀의 : 인도서천지론가 유가신사고승설

 

결국, 불교신앙은 불법승 삼보에 대한 귀의로부터 시작하고 귀의로 끝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신앙의 모습을 신란스님은 정신게라는 정토시로서 표현하고 있고, 제자들을 교육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이로써 저의 정신게공부도 일단락짓습니다.

그동안 애독해 주신 동행(同行) 여러분께 진심으로 머리를 숙여서 감사드립니다.

매 번 편지를 쓰기 위하여, 이 책 저 책을 찾고 읽으면서 공부를 한 것이야말로 저의 큰 살림밑천이 되었습니다.

신심자본(信心資本)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신게를 이어서, 5권에서는 저의 숙원사업으로 남아있는 텍스트 무량수경을 함께 공부하고자 합니다. 그때 또 읽어주시길 빕니다.

 

렌뇨스님이 편지를 통해서 정토진종을 중흥한 것처럼, 저도 이 편지를 통해서 우리 불교 안에 정토불교의 위상을 높이고자 합니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함께 해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2026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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