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4-55 : 명(明) - 다섯 번째

작성자同行二人|작성시간23.09.08|조회수50 목록 댓글 0

-- 편지 제4권 55 --

 

948독, 명(明) - 다섯 번째

 

 

지난 816일에서 18일까지, 세종 영평사(주지 : 광원환성스님)에서는 한국불교의 새로운 물결이 일었습니다. 바로 제1회 정토안거입니다. 저도 참여하려고 했으나, 개인사정으로 참여하지 못했습니다만, 나중에 사진을 보니 참으로 희유(希有)한 일이었습니다.

 

대학 강의실과 같은 책상에 앉으셔서 강의를 들으시는 젊은 스님들이 10명이었습니다. 그 뒷모습 사진이 있었는데요. 요즘 어디 가서도 이렇게 진지하게 스님들이 공부하시는 모습을 뵌 일이 없습니다. 저희 대학에서도, 스님들만의 강의가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재가자 학생들과 섞여서 공부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그 내용 역시 예사롭지 않습니다. <<아미타경>>을 원효스님께서 주석한 <<불설아미타경소>>와 지금 우리가 <편지>를 통해서 공부하는 신란스님의 정신염불게를 원문, 즉 한문으로 읽고서 해설을 듣는 강의를 23일 동안 했습니다. 강사는 <<불설아미타경소>>는 미탄스님이, 정신염불게는 영관스님이 하셨습니다.

모두 대한불교조계종 스님들만을 모시고 안거를 한 것은, 장차 종단 안에서 이 정토안거가 어떤 제도적인 시스템 속으로 들어갈 수 있기를 희망하고 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정토불교에서의 안거는 우리나라에서는 없었습니다. 저도 일본 정토진종에서 하는 안거를 벤치마킹해서 해보자고 한 것입니다. 정토진종에서 안거는 2주 정도 합니다. 전국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스님들이 해마다 여름에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강사는 1년 반 전에 정해지는데, 강사로 위촉되면 곧바로 강의교재를 집필합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책을 강본(講本)’이라 하는데, 부러운 일입니다. 우리로서는 당장 쫒아하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렇지만 해마다 지속해 가노라면, 발전하리라 믿습니다.

 

내년 안거의 교재를 미리 선정하고, 미리 홍보해서, 미리 공부를 하고 참여할 수 있는 쪽으로 노력할 생각입니다. 안거 강사가 현재로서는 미탄스님과 영관스님 두 분밖에 없습니다. 두 분은 각기 박사, 석사를 하신 분입니다. 정토불교 연구로 박사나 석사를 하시는 분이 더 나온다면, 안거 강사로 초빙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기간도 하루 정도는 늘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 중입니다.

이번 안거 소식은 불교신문에서 보도되었으며, 곧 발행될 <<일본불교사공부방>>에서도 특집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안거가 가능했던 것은, 많은 대중들을 수용해서 숙식을 제공해 주시고 공부할 수 있게 후원해 주신 영평사 주지스님의 성원 덕분이었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하루 하루 성장해 가는 우리 정토불교에 관한 소식을 전해드렸습니다. 이제 그런 희망찬 마음을 안고, 정신게공부를 시작합니다. 먼저 한 번 읽겠습니다. 가능하면, 이웃에 방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소리 내어서 읽어주십시오. ‘밝을 명이 들어간 구절을 좀더 주의하시면 좋겠습니다.

 

귀명무량수여래(歸命無量壽如來) 

나무불가사의광(南無不可思議光) 

법장보살인위시(法藏菩薩因位時)  

재세자재왕불소(在世自在王佛所)

도견제불정토인(都見諸佛浄土因) 

국토인천지선악(國土人天之善惡)

건립무상수승원(建立無上殊勝願) 

초발희유대홍서(超發希有大弘誓)

오겁사유지섭수(五劫思惟之攝受)

중서명성문시방(重誓名聲聞十方)

보방무량무변광(普放無量無邊光)

무애무대광염왕(無碍無對光炎王)

청정환희지혜광(淸淨歡喜智慧光)

부단난사무칭광(不斷難思無稱光)

초일월광조진찰(超日月光照塵刹) 

일체군생몽광조(一切群生蒙光照)

본원명호정정업(本願名號正定業)

지심신요원위인(至心信樂願爲因)

성등각증대열반(成等覺證大涅槃)

필지멸도원성취(必至滅度願成就)

여래소이흥출세(如來所以興出世)

유설미타본원해(唯說彌陀本願海)

오탁악시군생해(五濁悪時群生海)  

응신여래여실언(應信如來如實言)

능발일념희애심(能發一念喜愛心)

부단번뇌득열반(不斷煩惱得涅槃)

범성역방제회입(凡聖逆謗齊回入)  

여중수입해일미(如衆水入海一味)

섭취심광상조호(攝取心光常照護) 

이능수파무암(已能雖破無闇)

탐애진증지운무(貪愛瞋憎之雲霧) 

상부진실신심천(常覆眞實信心天)

비여일광부운무(譬如日光覆雲霧)  

운무지하무암(雲霧之下無闇)

획신견경대경희(獲信見敬大慶喜)  

즉횡초절오악취(卽橫超截五惡趣)

일체선악범부인(一切善惡凡夫人)  

문신여래홍서원(聞信如來弘誓願)

불언광대승해자(佛言廣大勝解者) 

시인명분타리화(是人名分陀利華)

미타불본원염불(彌陀佛本願念佛) 

사견교만악중생(邪見憍慢悪衆生)

신요수지심이난(信樂受持甚以難) 

난중지난무과사(難中之難無過斯)

인도서천지론가(印度西天之論家) 

중하일역지고승(中夏日域之高僧)

현대성흥세정의(顯大聖興世正意) 

여래본서응기(如來本誓應機)

석가여래능가산(釋迦如來楞伽山) 

위중고명남천축(爲衆告命南天竺)

용수대사출어세(龍樹大士出於世) 

실능최파유무견(悉能摧破有無見)

선설대승무상법(宣説大乘無上法) 

증환희지생안락(證歡喜地生安樂)

현시난행육로고(顯示難行陸路苦) 

신요이행수도락(信樂易行水道樂)

억념미타불본원(憶念彌陀佛本願) 

자연즉시입필정(自然卽時入必定)

유능상칭여래호(唯能常稱如來號) 

응보대비홍서은(應報大悲弘誓恩)

천친보살조론설(天親菩薩造論說) 

귀명무애광여래(歸命無碍光如來)

의수다라현진실(依修多羅顯眞實) 

광천횡초대서원(光闡橫超大誓願)

광유본원력회향(廣由本願力廻向) 

위도군생창일심(爲度群生彰一心)

귀입공덕대보해(歸入功德大寶海) 

필획입대회중수(必獲入大會衆數)

득지연화장세계(得至蓮華藏世界) 

즉증진여법성신(卽證眞如法性身)

유번뇌림현신통(遊煩惱林現神通) 

입생사원시응화(入生死園示應化)

본사담란양천자(本師曇鸞梁天子) 

상향란처보살례(常向鸞處菩薩禮)

삼장류지수정교(三藏流支授淨教) 

분소선경귀락방(焚燒仙經歸樂邦)

천친보살론주해(天親菩薩論註解) 

보토인과현서원(報土因果顯誓願)

왕환회향유타력(往還廻向由他力) 

정정지인유신심(正定之因唯信心)

혹염범부신심발(惑染凡夫信心發) 

증지생사즉열반(證知生死卽涅槃)

필지무량광토(必至無量光土) 

제유중생개보화(諸有衆生皆普化)

도작결성도난증(道綽決聖道難證) 

정토가통입(唯浄土可通入)

만선자력폄근수(萬善自力貶勤修) 

원만덕호권전칭(圓滿德號勸專稱)

삼불삼신회은근(三不三信誨慇懃) 

상말법멸동비인(像末法滅同悲引)

일생조악치홍서(一生造悪値弘誓) 

지안양계증묘과(至安養界證妙果)

선도독불정의(善導獨佛正意)  

긍애정산여역악(矜哀定散與逆惡)

명호현인연(光名號顯因緣) 

개입본원대지혜(開入本願大智慧)

행자정수금강심(行者正受金剛心)

경희일념상응후(慶喜一念相應後)

여위제등획삼인(與韋提等獲三忍) 

즉증법성지상락(卽證法性之常樂)

원신광개일대교(源信廣開一代教) 

편귀안양권일체(偏歸安養勸一切)

전잡집심판천심(專雜執心判淺深) 

보화이토정변립(報化二土正弁立)

극중악인유칭불(極重惡人唯稱佛) 

아역재피섭취중(我亦在彼攝取中)

번뇌장안수불견(煩惱障眼雖不見) 

대비무권상조아(大悲無倦常照我)

본사원공불교(本師源空佛敎) 

연민선악범부인(憐愍善惡凡夫人)

진종교증흥편주(眞宗教證興片州) 

선택본원홍악세(選擇本願弘惡世)

환래생사륜전가(還來生死輪轉家) 

결이의정위소지(決以疑情爲所止)

속입적정무위락(速入寂靜無爲樂) 

필이신심위능입(必以信心爲能入)

홍경대사종사등(弘經大士宗師等) 

증제무변극탁악(拯濟無邊極濁悪)

도속시중공동심(道俗時衆共同心)

유가신사고승설(唯可信斯高僧說)

 

(『교행신증』 제2권)

 

오늘 공부할 구절은 도작스님 찬탄에 나오는 유명정토가통입입니다. 이 구절은 바로 앞에 나오는 도작결성도난증과 함께 짝을 이룹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편지 제448(이 카테고리 목록에 편지4-48가 있습니다ㅡ 동행이인)에서 한번 살펴본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중복을 최대한 피하고자 합니다. 그 편지를 갖고 계신 분은 한번 복습해 주시고, 안 갖고 계신 분은 알려주시면 보내드리겠습니다.

 

도작스님(道綽, 562-645)은 당나라 때 스님으로 담란스님(曇鸞, 476-542)의 제자이고(담란스님 사후 20년에 태어나셨기에 실제로 뵈온 일은 없습니다. 다만, 담란스님의 비문을 읽고서 정토문으로 입문했다 합니다.), 선도대사(善導, 613-681)의 스승입니다. 처음에는 <<열반경>>을 공부하다가, 정토문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최근에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일본의 어떤 학자가 하는 말이 중국불교는 <<열반경>>, 한국불교는 <<화엄경>>, 그리고 일본불교는 <<법화경>>이라고 합니다. 그 경전들이 각 나라에서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고 중시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중국에서 가장 중시된 <<열반경>>을 읽고 강의하시다가 정토불교로 오셔서는 <<안락집>>을 짓습니다. 그 중에 성도문의 가르침은 깨치기가 어렵고, 오직 정토문만이 가히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 말이 들어가는 부분만 인용해 봅니다.

 

 

그러나 위대한 성인(석가모니 부처님 옮긴이)께서는 자비를 베푸셔서 극락 으로 돌아가도록 권하셨다. 만약 여기(성도문 옮긴이)에 이르러서 나아가고자 하여도 수승한 과보는 올라가는 것이 어렵다. 오직 정토불교의 문 하나가 있어서 가히 (부처님께서는) 자비()로써 (중생들을) 슬퍼하시면서 들어갈 수 있게 한 것 이다.

 

이러한 도작스님의 입장, 즉 불교 전체를 성도문(聖道門)과 정토문(淨土門)으로 나누어 놓고, 성도문은 깨닫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오직 하나 정토문밖에 없다는 판단은 큰 영향을 미칩니다. 대표적으로 신란스님의 스승 호넨스님을 들 수 있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호넨스님은 정토종 독립의 이유와 방법을 담은 책 <<선택본원염불집>>(선택집)을 쓰셨습니다. 그 첫머리를 바로 <<안락집>>의 이 부분을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정말로 도작스님의 말씀에 동의하십니까? 아니면, 동의하지 못하십니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한번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사실, 그러한 대답을 찾기 전에 먼저 놀라운 일이 있습니다. 바로 도작스님 같은 분들은 정토문의 불교가 성도문의 불교보다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수승하고, 더 높은 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놀라운 일 아닙니까?

 

우리는 대개 이렇게 생각하지 않잖아요? 정토불교가 불교라 인정하더라도, 그러한 정토불교는 어디까지나 하근기 중생들을 위해서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 아닌지요? 하근기 중생들을 위한 방편으로 말해지는 것이 정토불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정말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고, 많이 듣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논리 속에 들어있는 것이 하나 있지요? 그렇게 정토불교는 하근기를 위한 방편이라고 할 때, 그 스스로는 어떻습니까? 하근기라 생각하고 있을까요? 그 스스로는 어느덧 은연중에 상근기라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사람이라야, 어느 정도로 많이 수행해야 상근기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사실, 오늘 편지를 쓰기 위하여 이 구절을 두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저는 도작스님이나 호넨스님과 같은 정토문의 스승들이 갖고 있는 입장을 정면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음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특히 한국불교의 상황 속에 놓여 있는 정토불교의 입장을 지나치게 고려해서 나온 결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한국의 불교계 상황이나 불교학계 상황에서 성도문 불교보다도 정토문 불교가 더욱 우수한 불교이다. 성도문은 이제 증득하기 어려운 것으로 결론 낫다. 남아 있는 것은 다만 하나 정토문 밖에 없다.” 이러한 이야기를 못해 왔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런 이야기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얼마나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요? 성도문을 금과옥조로 여기고, 정토문은(=정토문의 불교를 구성하는 정토삼부경은) 제대로 읽어본 일이 없는 분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그런 점이 사실, 무섭습니다.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정면대결을 피하고, 정면에서 우리 정토불교가 더욱 우수하다고 말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실, “두 말할 것도 없이 성도문 불교가 제일이다. 가장 수승한 불교다. 그러니 제발 여러분들은 성도문 불교를 이왕지사 선택했으니, 어서 빨리 성불해서 우리 같은 사람을 제도해 주십시오. 저는 근기가 하열하여 성도문 불교가 감당이 안 됩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정토문 불교를 합니다.”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그러면 대개는 더 이상 다그치거나 몰아치지는 않습니다. 놓아둡니다. 그런데 도작스님이나 호넨스님이나 신란스님은 다 그런 분들이 아닙니다. 정신게의 저자 신란스님도 그분 나름의 교판(교판)을 통해서 정토불교, 그 중에서도 󰡔무량수경󰡕의 불교가 최고라고 말합니다. 그런 신란스님의 교판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를 기다리겠습니다만, 󰡔교행신증󰡕 6 화신토(化身土)권의 마지막 부분에 이른바 후서(後序)’라는 것이 있습니다.

후서는 책 뒤에 붙이는 서문이라는 말입니다. 󰡔교행신증󰡕을 다 쓰시고는, 한 평생을 회고하면서 이 책을 집필한 취지를 말씀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첫 머리를 이렇게 시작합니다.

 

곰곰이 생각하니, 성도문의 모든 가르침은 수행과 깨달음이 폐지된 지 이미 오 래지만, 정토진종에서 도를 깨치는 것은 이제 더욱 성행하고 있다.

 

사실, 성도문이 더 우수하나 정토문이 더 우수하나? 이것을 이론적으로 따질 수도 있겠지만, 불교가 철학이 아닌 바에야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성도문에서 중생들을 잘 제도해 주고 있나, 아니면 정토문에서 중생들을 더 잘 제도해 주고 있나? 이것이 문제 아니겠습니까?

문제는 교리의 우수성이 아니라 중생제도의 우수성일 것입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성도문 불교에서 이루어지는 수행과 깨달음에 대한 소식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 문 밖에 있어서이겠습니다. 하지만, 정토문 불교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제 자신 그 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정히, 신란스님의 평가 그대로, “지금 성행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지금 성행해 가고 있습니다.”라고 확언(確言)할 수 있습니다.

그 증거는 제가 다 갖고 있습니다. 제게 들여오는 우리 동붕(同朋)들의 신심나는 소리, 안심을 얻어가는 소리, 그렇게 신앙이 성장해 가는 소리를 아침저녁으로 듣고 있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이 편지를 읽으시는 독자분들이 보여주시는 반응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그런 이유에서, 이제는 우리의 근기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무량수경>>의 삼배(三輩)를 말합니다. 상배, 중배, 그리고 하배입니다. 여러분은 상배입니까? 스님이라야 상배입니다. 그럼 중배입니까? 재가불자도 중배가 될 수 있지만, 재력이 많아서 물질적인 보시를 많이 할 수 있을 때 중배입니다. 중배도 못 되겠다고요? 그러면, 모두 하배입니다. 하배에게는 오직 나무아미타불염불하는 것, 이것 하나밖에 없는 것 아닌가요? <<무량수경>>은 그렇게 말합니다.

그렇게 염불하는 것 외에는 길이 없다는 이야기를 도작스님은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곧바로 이어서 만선자력폄근수, 원만덕호권전칭이라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자력으로 만 가지 선행을 닦는 것은 중배에서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 중배가 아닙니다. 그래서 도작스님은 그런 것을 폄훼(貶毁)하셨다는 것입니다. 폄훼는 낮추어서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배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원만 덕호, 아미타불을 오롯이 일컬어라는 이야기를 도작스님께서는 하셨던 것입니다. ‘전칭은 오롯이 나무아미타불만 하라는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이라고 말입니다.

이제 이론이나 철학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중생제도의 맥락에서 볼 때, 즉 우리 자신의 근기를 감안해 볼 때, 우리는 상근기다 상배라고는 할 수 없는 몸입니다. 역시 도작스님처럼, ‘유명정토가통입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다음 편지는 도작스님의 제자인 선도스님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202397일   김호성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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