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한시대의 인물

[독립운동가]김치연[金致淵]

작성자★無孔笛|작성시간12.03.27|조회수36 목록 댓글 0

성명

김치연

생존기간 1908;19세 ~ 미상
출생지 경기 마전
운동계열 의병
사망지
훈격(연도) 애족장 (95)
공적내용 경기도 마전(麻田) 사람이다.박종한(朴宗漢) 의진에 가담하여 경기도 장단(長湍) 일대에서 활약하였다.러일전쟁 직후 일제의 강요와 위협 아래 1905년 11월 체결된 「을사륵약(乙巳勒約)」은 우리 민족에게 국망의 위기를 절감하게 하였다. 국권강탈 행위인 을사륵약은 일제가 그간 은폐해 왔던 한국 식민지화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었다. 이렇게 되자 우리 민족은 본격적인 반일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그것은 크게 두 방향에서 진행되었다. 하나는 장기적인 실력양성운동으로 언론활동·종교활동·교육활동·학술활동 등을 통한 국민 계몽운동이었고, 다른 하나는 즉각적인 무력투쟁인 의병운동이었다. 특히 의병운동은 1907년 7월 「정미7조약(丁未7條約)」에 따른 군대해산으로 해산군인들이 대거 의병대열에 참여함으로써 전국적인 국민전쟁으로 확대되었다.김치연은 이같은 시기에 박종한 의진에 투신하여 의병활동을 시작하였다. 특히 그는 1908년 음력 2월경 박종한 의병장의 지휘 아래 동료 의병 30여 명과 함께 경기도 장단군 일대에서 군자금품을 수합하면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다가 피체되어 1908년 8월 29일 경성공소원에서 징역 5년을 언도받고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11월 10일 대심원(大審院)에서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註·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제1집 16∼18면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