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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승

제18조 가야사다존자(伽耶舍多尊者)

작성자無盡藏|작성시간11.08.25|조회수17 목록 댓글 0

제18조 가야사다존자(伽耶舍多尊者)



有種有心地이면 因緣能發萌이니라

유종유심지 인연능발맹

於緣不相碍하면 當生生不生이로다

어연불상애 당생생불생



종자가 있고 마음 땅이 있으면

인연에 의해서 싹이 발하나니라.

인연에 서로 걸리지 아니하면

남에 당하되 남이 남이 아니로다.



1.

씨앗이 있고 땅이 있으니 시절 인연 따라 싹이 발하는 것이다. 또한 인연에 걸리고 막히고 구애됨이 없을 것 같으면 생(生)을 당하되 남이 남이 아니요, 일체 경계 속에서 온갖 마음을 일으키되 일으킴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도인이 공부가 깊어지면 일은 예전과 다름없이 처리하나 점점 일없는 한가한 도인이 되나니 일만 경계(一萬境界)에 불리자성(不離自性)인데 성품에 무엇이 바쁘리요. 그 자리는 일념미생전 자리요 일원상 자리며 천지미분전 자리다. 무생법인 자리요 일념미생전 소식을 알아서 당생생불생 (當生生不生)해 버리고 무생법인(無生法印)해 버리면 최고 여래 자리요 이 공부에 토가 떨어져 버리는 것이다. 7불 게송 하나만 요령 잡고 그것으로 밀고 나가면 된다. 어떻게 풀 매는 것 하나하나 맬 때마다 가르쳐 줄 수 있겠는가? 잡초를 알아 버리면 쭉 매고 나가는 것이다.

당생생불생하여 희로애락을 쓰더라도 희로애락에 걸리지 않아야 된다. 일념미생전 자리를 회복하는 것이다. 공부하는 이들이 어디에 걸리면 안된다. 항상 표준이 당생생불생, 일념미생전 자리, 원상, 무생법인 자리에 회복하는 것이다. 국이 적은 것보다는 큰 것이 큰 것이요, 큰 것보다는 국이 없는 것이 더 큰 것이니, 국 없는 도인이 되면 누가 가히 폭 잡을 수 없는 것이다. 한 스님이 있었는데 그 스님을 시기하는 사람들이 여자 공양주가 있는 데로 그 스님을 오라고 한다고 거짓 전하고, 그쪽으로 가니 {스님이 여자 공양주와 좋아한다}고 북을 치며 쫓아내니 스님이 허허 웃으며 같이 북을 치며 나가면서 종부선인<북을 치는 선인> 이니라 하였다니 걸림 없는 해탈 자재한 스님의 모습을 보여 주심이다.

2.

옷깃만 스쳐도 몇 십생 인연이라고 했는데 부모나 형제나 부부나 부자가 되었다는 것은 무한한 세상에 맺어진 깊은 인연이다. 그 인연을 조금 싫다고 버리거나 미워하면 안된다. 또 조금 좋다고 죽거니 살거니 끌려 버려도 안된다. 좋거나 나쁘거나 당생생불생해 버리면 된다. 웃어 버리면 된다. 과거심, 현재심, 미래심 다 바다에 던져 버려야 불보살이다.

천지 만물지역여(天地萬物之歷旅)라, 천지는 만물이 쉬어 가는 여관이다. 한 생을 눈 한번 깜짝하는 것으로 불보살들은 생각하는데 그 생을 미워하지도 싫어하지도 놓아 버리지도 않는다. 산에 가서 선(禪)만 하는 것이 불보살이 아니라 한 가정에 있으면서 가정을 잘해 나가야 불보살이다.

가정의 인연이 어느 때 만날지 모르는 것이니 그 인연을 좋게 만들어야 한다.

불교에서는 여래 자리를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이라 했고, 유교에서는 화이불류(和而不流), 도교에서는 희로애락 애오욕이 다 생기고 경계가 나고 나면 다 보내 버리고 해서 편안한 극락 자리에 머물러라 하였다. 그 자리하나 얻어 버리면 죽기로 애태울 것도 죽기로 걱정할 것도 다 없다.

성자들은 다 그렇게 살으셨다. 그러니 풍래소죽(風來疎竹)에 풍과이죽불유성(風過而竹不留聲)하고 안도한담 (雁渡寒潭)에 안거이담불유영(雁去而潭不留影)해야 하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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