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객의 신년 만필
신채호(申寀浩)
문예 운동(文藝運動)의 폐해(弊害)
낭만주의, 자연주의, 신낭만주의 등의 구별도 잘 못하는 자가 현대에 가장 유행하는 굉굉(轟轟)한 서방 문예가들의 유명한 소설이나 극본 등을 거의 눈에 대해 보지 못한 완전히 문예의 문외한이, 게다가 십여 년 해외에 앉아 조선 문단의 소식이 격절(隔絶)하야, 무슨 작품이 있는지, 얼마나 낫는지 어떤 것이 환영을 받는지 알지 못하니 어찌 조선 현재 문예에 대하야 가부를 말하랴. 다만 3․1 운동 이래 가장 현저히 발달된 자는 문예 운동이라 할 수 있다. 경제 압박이 아모리 심하다 하나 아귀(餓鬼)의 금강산 구경 같은 문예 작품의 독자는 없지 안하며, 경성(京城)의 신문지에 끼여 오는 책사 광고(冊肆廣告)를 보면 다른 서적은 거의 십오 년 전 그때의 한 꼴이나, 시인과 소설 선생의 작물(作物)은 비교적 다수인 듯하다. 그래서 나의 난필(亂筆)이 문예에 대하야 망론(妄論)을 한 마디 하려 하나 아 재료가 없어 남의 말이나 소개하고 모으랴 한다. 일즉 중국 광동(廣東)의 ‘향도(嚮導)’란 잡지에 그 호가 몇째던지, 작자가 누구이던지를 지금에 다 기억하지 못하는 중국 신문예에 대한 탄핵의 논문이 났었는데 그 대의를 말하면 ‘중국 연래에 제1혁명, 제2혁명, 5․4 혁명, 5․7 운동……등이 모다 학생이 중심이었다. 그러더니 근일(近日)에 와서는 학생 사회가 왜? 이렇게 적막하냐 하면 일반 학생들이 신문예의 마취제를 먹은 후로 혁명의 칼을 던지고 문예의 붓을 잡으며 희생 유혈의 관념을 버리고 신시, 신소설의 저작에 고심하여, 문예의 도원(桃源)으로 안락국(安樂國)을 삼는 까닭이다. 몇 구의 시나 몇 줄의 소설을 지으면 이를 팔아 그 생활비가 넉넉히 될 뿐더러 또한 독자의 환영을 받아 시가라 소설가는 하는 명예의 월계관을 쓰며 연애에 관한 소설을 잘 지으면 어여쁜 여학생이 그 뒤를 따라 무한한 염복(艶福)을 누리게 됨으로 혁명이나 다른 운동 같이 체수(逮囚)와 포살(砲殺)의 위험은 업고 명예와 안락을 얻으며 연애의 단꿈을 이루게 됨으로 문예의 작자가 많아질수록 혁명당이 적어지며 문예품의 독자가 많을수록 운동가가 없어진다 하였다. 나는 이 글을 읽을 때에 3․1 운동 이후에 沈積(침적)하여진 우리 학생 사회를 연상하였다. 중극은 광대, 침혹한 대륙인 고로 한 가지의 풍조로써 전국을 멍석말이할 수 없는 나라어니와 조선은 청명협장(淸明狹長)한 반도인 고로 한 가지의 운동으로 전 사회를 곡감꼿치 떼이듯 할 수 있는 사회니, 즉 3․1 운동 이후 신시, 신소설의 성행이 다른 운동을 초멸(剿滅)함이 아닌가 하였다.
예술주의의 문예와 인도주의의 문예에 어떤 것이 옳은가
전술(前述)과 같이 설혹 신시와 신소설이 성행하는 까닭에 사회의 모든 운동이 침적하다 할지라도 만일 순 예술주의자에게 말하면 ‘빈처(貧妻)의 단속것은 팔아서라도 훌륭한 몇 짝의 신시를 삼이 가(可)하며 강토의 전부를 주고라도 자미있는 몇 줄의 신소설을 바꿈이 가하다.’ 하리니 그까짓 운동의 침적 여부야 누가 알겠느냐? 하리라. 존화주의(尊華主義)를 위하야 조선이 존재하며 삼강 오륜을 위하야 인민이 존재하며 권선징악을 위하야 역사와 소설이 존재하며, 기타 모든 것이 자(自)의 존재할 목적이 업시 타(他)의 무엇을 위하야 존재한 줄로 단정한 누백 년 래(來) 노예 사상에 대한 반감으로는 현 세계에 인도주의의 문예가 예술주의의 문예를 대신하려 함에 불구하고 나는 곧 예술 지상주의로 찬성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예술도 고상(高尙)하여야 예술이 될지어늘 환고랑자(紈袴浪子)의 육노(肉奴)가 되랴는 자살귀(自殺鬼)의 강명화(康明花)도 열녀(烈女)되는 문예가 무삼 예술이냐, 누백만(累百萬)의 아귀를 곁에다 두고 일 원 내지 오 원의 소설책이나 팔아 일포(一飽)를 구하려는 문예가들이 무슨 예술가이냐, 금강(金剛)의 경(景)이 아모리 좋을지라도 기아(飢兒)의 눈에는 일시(一是)의 반(飯)만 못 하며 솔거(率居)의 화송(畵松)이 아모리 명작이라 할지라도 익수자(溺水者)의 눈에는 일편(一片)의 목판(木版)만 못 하며 살도 죽도 못 하게 된 조선 민중의 귀에는 모든 미려한 가극(歌劇)과 소설의 이야기가 백두산 속 미신귀(迷信鬼)인 조 선생(趙先生)의 강신필(降神筆)만 못하리니 일 원이면 일가 인구(一家人口)의 며칠 생활할, 민중의 눈에 들어갈 수도 없는 이 원 삼 원의 고가(高價) 되는 소설을 지어 노코 민중 문예라 호호(呼號)함도 얄미운 짓이어니와 민중 생활과 접촉이 업는 상류 사회 부귀가 남녀의 연애 사정을 그림으로 위주하는 장음 문자는 더욱 문단의 수치이다. 예술주의의 문예라 하면 현 조선을 그리는 예술이 되어야 할 것이며 인도주의의 문예라 하면 조선을 구하는 문예가 되어야 할 것이니 지금의 민중에 관계가 없이 다만 간접의 해(害)를 끼치는 사회의 모든 운동을 소멸하는 문예는 우리의 취할 바가 아니다. 구주(歐洲) 각국에는 매양 문예의 작물(作物)이 혁명의 선구가 되었다 하니 이는 그 역사와 환경이 다른 까닭이니 조선의 현재에 비할 것이 아니다.
<동아일보, 1925.1.2>
▶ 작품 해설 : 나라를 잃은 시대고(時代告) 속에서 추구해야 할 절대 절명의 과제는 노예의 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것이 되어야 하며, 학문과 문예와 청년의 운동도 ‘조선의 현재’를 살리는 것이 되어야 함을 역설하면서, 이에 반하는 모든 것들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지은이의 사상가적이고도 혁명가적 면모와 이 글의 중수필적 특성을 확인하면서 읽어 보도록 하자.
♣ 감상의 길라잡이
이 작품은 중국에 머물며 독립 운동에 가담하고 있던 작자가 국내 독자들을 위해 쓴 것이다. 이 글에는 국권 상실의 시대에 우리 문예의 의식과 사명이 오로지 일제강점기라는 현실 극복에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현실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여기에 제시된 부분은 문예 운동의 피해를 비판한 부분이다. 작자는 오랫동안 해외에 있었으므로 조선의 현실을 정확히 알지는 못하나, 근래 문예 운동이 성행하는 사실을 안다고 하며 그 문예 운동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음을 비판한다. 그 비판을 위해 중국의 한 잡지에 실린 중국 문예 운동의 폐해에 대한 글을 인용하는데, 중국의 경우가 우리의 경우와 유사하다는 것이 작자의 주장이다. 결국 문예 운동의 성행이 다른 사회 운동을 소멸시키고 있다는 것이 작자의 판단인 것이다.
♣ 작품의 해제
작자 신채호
갈래 경수필
성격 비판적
제재 조선 문예의 현실
주제 조선 문예에 대한 비판과 그 나아갈 길의 제시
♣ 구절 연구 및 분석
#.․굉굉 : 소리가 굉장하고 요란하게 우르렁거림. ․격절 : 사이가 서로 동떨어져 연락이 끊어짐. ․책사 : 서점. ․망론 : 부질없는 망령된 말. ․안락국 : 극락정토 ․염복 : 아름다운 여자가 잘 따르는 복. 여복 ․체수 : 죄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로 오래가두어 둠. 혹은 오래 가두어 둠.
#. 낭만주의 자연주의 ,~대하야 가무를 말하라. ; (신채호 자신으로서는)문예사조도 잘 알지 못하고, 당시 유명한 서양문학가들의 작품도 읽어보지 못하여 문학예술에 전문적 식견도 없고, 조선을 더나 중국에 망명한 지가 10년이나 되어서 조선의 현재 문학작품이나 그 경향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말할 수 없다.
#. 아귀의 금강산 구경같은~독자는 없지 안하며, ; 경제 사정이 어려워도 밥보다는 문예적 미를 구하는 사람이 없지 아니하며
#. 중국은 광대 참혹한~수 없는 나라이어니와 ; 중국은 넓고 큰 대륙이기 때문에 한 가지 사조나 경향으로 전국을 일거에 다 지배할 수 없는 나라이어니와.
#. 3.1 운동 이후 신사,~초멸함이 아닌가 하였다. ; 3.1 운동 이후 조선의 문사들에게 예술 지상주의적 신시, 신소설 등의 문에 저작 경향이 지배적이어서 민족의 현실을 생각하고 개혁하는 운동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