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장 나라 탈출기
서해안 한머리
격렬비열도에서 가장 가까운 태안반도 비탈길 어느 농가의 닭장이다. 스무 평 공간으로 수탉 한 마리와 암탉 스물일곱 마리가 오종종 모여 사는 그 울타리이다. 그리고 그물망 꼭대기로 동그랗게 오려진 구멍을 뚫고 팽나무 줄기가 우산처럼 세워진 채 바람을 받는 중이었다. 얼핏 보기에는 풍경처럼 평화로웠는데.
해마다 봄이 오면서 병아리가 태어날 때마다 숫자가 늘어났지만 수시로 죽으면서 감소되기도 했다. 주인 뱅칠 씨가 들어와 모가지를 비틀기도 했고 이따금 해적처럼 쳐들어오는 족제비의 송곳니에 찔려 시체가 되어 끌려 나가기도 했다. 그리고 닭장 안의 수탉은 딱 한 마리로 고정불변이었지만 암탉의 숫자는 들쑥날쑥 바뀌었다 .
주인 뱅칠 씨 역시 수탉이란 건 딱 한 마리만 있어도 괜찮다는 생각이었다. 남자가 하나만 있어도 수십 여자 닭 모두 유정란을 만들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또 있다. 툭하면 싸우고 붙었다 하면 끝장을 내는 난투꾼 근성 때문이다. 수컷들은 그랬다. 일단 만났다 하면 매섭게 노려보았고 살짝 얽히기라도 하는 찰나 막장까지 치달렸다. 피가 철철 흐르고 눈알이 빠져 달랑달랑 흔들려도 도통 멈추지 않는 것이다.
‘울타리 하나에 왕이 두 명이면 절대 안 된다.’
그 철칙을 지키기 위해 숨통이 끊어질 때까지 싸우는 것이다. 그래서 오두막 주인 뱅칠 씨도 1대27의 성비를 ‘억압의 안정’ 상태 그대로 놔두었던 것 같다. 닭장 안이 시끄럽지 않아야 알도 쑥쑥 잘 낳기 때문에 그 구조를 바꿀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다만 수탉이 너무 늙으면 ‘세대교체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긴 했었고.
지금 대장은 일곱 살이 막 지나가는 수탉 ‘숑이’이다. 새빨갛고 빳빳하게 세워진 닭볏만 봐도 영락없이 대장처럼 보였다. 특히 키가 작은 암탉 틈에 섞여 있으면 풍채의 표시가 더 확연했다. 체격도 월등하게 우람했으며 카랑카랑 터트리는 목소리도 위용의 몸집에 딱 어울렸다. 그가 팽나무 기둥을 빙글빙글 돌다가 볏을 세우고 현란한 날개를 펼치며 우뚝 서서.
“꼬끼횻! 모두 고개 숙엿.”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겁쟁이 암탉들부터 사시나무처럼 와들와들 흔들렸다. 즈이끼리는 제법 깡다구 좋다는 일진 암탉 영이가 재빨리.
“동작 좀 봐라, 빨리빨리 움직여 임마. 치도곤 맞고 부러지기 전에.”
함께 윽박지르면 다른 닭들은 날개를 접은 채 다소곳이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그 강압은 주인 뱅칠 씨가 겉보리 바가지 들고 들어설 때 특히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러니까 그물망 안의 배식 질서는.
숑이가 가장 먼저 배를 완전히 채우고 나야 기다리던 구경꾼 암탉들 중 총애받던 순서대로 쪼아먹을 수 있었다. 얼굴도 예쁜 아부꾼 영이가 가장 먼저였고 하얀 부리로 끼 부리며 눈웃음치는 경이가 두 번째였다. 세 번째는 번호표 순서를 기다리던 노란 날개 상이였고 그 뒤 나머지는 한참 기다린 후 한꺼번에 오그르르 섞여 먹었다. 그렇게 몇몇 암탉들만 일방적으로 총애를 받았고 나머지는 대개 순서가 돌아올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순서를 어기면 당장 불똥이 튀었다. 누군가 중간에 끼어드는 기미만 보이면 숑이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머리를 퍽퍽 찍었으므로 아무도 그 ‘불평등 질서’에 대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숑이가 암탉들을 대하는 차별도 강도(强度)가 더 심해졌다. 지렁이나 굼벵이 같은 단백질 먹이가 생겼을 때에 가장 먼저 영이를 불렀고 경이는 그다음 차례를 동동 구르며 기다렸다. 다른 닭들은 침묵의 생존 타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은 억울하지만 노여움을 표시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팔자인가 보다’ 세월을 흘려보내는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새봄이 올 때마다 암탉들이 생산한 달걀로 아기 병아리들의 부화가 축복처럼 쏟아지긴 했다. 그러나.
“남자가 태어나면 죽여야 한다.”
숑이는 그 철칙에 길들이라며 강압했고 실제로 그대로 이행했다. 그 대신 ‘당근과 채찍’처럼 짝짓기 기술로 보상의 시늉을 냈다. 그때만큼은 평소의 포악한 얼굴을 지우고 친절 마스크로 변신했고 암탉들도 무력하게 받아들였다. 아주 잠깐 인자해진 표정을 보며 닫혔던 몸을 편안하게 열어주는 것이다. 영이와 경이가 주로 첫 상대였지만 기분이 엎(up)될 때에는 27마리 모두를 번갈아 상대했으니 괴력의 파워이다.
먼저 오른쪽 날개를 땅바닥에 붙인 자세로 빙글빙글 도는 ‘닭 팽이 묘기’로 여자들의 시선을 끌어들였다. 그러다가 목청에 힘을 주고 피를 토하듯 ’꼭끼횻‘ 소리 지르면 암탉들이 쭈삣쭈삣 간택 순서를 기다렸다. 자, 이제 숑이가 목을 돌리면서 순서대로 하나씩 등허리에 올라탈 차례이다. 일대다(多)의 애정행각에도 전혀 불만 없이 차례를 기다리는 풍속도이다. 가장 총애를 받는 영이의 등허리에 먼저 올라탔고 그다음 경이 옆을 배회하다가 슬그머니 덤볐다. 그리고 심심할 때마다 다른 암탉들 꽁지 위로 번갈아 덮치면 저마다 몸을 쪼그린 채 성은(聖恩)이라도 입듯이 감읍하며 받아들였다.
시간은 아주 짧았다. 수탉과 암탉의 총배설강이 붙었다가 떨어지는 타이밍이 겨우 3초 정도였다. 몸이 겹치자마자 부리로 암탉의 목을 물어 자세를 뻣뻣하게 교정시켰다. 그뿐이었다. 수탉이 내려오면 암탉이 몸을 털며 깃털을 정리했다. 아무튼 그 짧은 교미로도 수정란을 낳고 병아리 숫자를 불려냈으니 대단한 정력이요, 막강한 번식력이다.
거기까지였다. 짝짓기 시간이 지나자마자 다시 포악한 원조 성깔로 변신했다. 특히 자신 이외의 남자는 단 한 명도 살려두지 않겠다고 번번이 공표했으니 악랄함의 극치이다. 그러니까 그의 논리는.
“옛날 궁궐에도 밤이 되면 사내라고는 임금님 혼자만 남았었다. 나머지는 모두 내시와 궁녀였으니 얼마나 평화로운 태평성대였느냐? 지금부터 이 울타리에 그 시대 대궐의 평화를 리바이벌시키겠다. 음하하.”
달걀일 때부터 암수 감별을 철저히 점검했다. 수컷 알은 뾰족했고 암컷 알은 둥근 모양으로 구별되었다. 그게 안 되면 햇빛에 비춰 요리조리 돌려가며 더 속속들이 검사했다. 공기주머니 위치가 계란의 넓은 쪽에 드러나는 즉시.
“수컷 종자닷!”
소리 지르면 영이가 깽깽이 걸음으로 달려와.
“여기 가져왔어요. 네, 네.”
받치는 찰나 부리로 와장창 으깨면서 흩뿌려진 노른자까지 쭉쭉 빨아먹었다. 울보 팡이가 팽나무 뒤에서 훌쩍거리긴 했으나 나머지는 안중에도 없이 생계란 파티 구경에 빠지는 것이다. 다행히 계란 감별 위기를 피하더라도 중병아리 즈음에 빨간 볏이 나오면서 들통이 났다. 당연히 가차 없이 찍었다. 그렇게 죽은 병아리와 달걀이 이미 수십 개가 넘었디. 그러거나 말거나.
“할 말 있나?”
레이저 눈빛으로 제압하는 순간 그물망 전체가 깊은 적막에 빠졌다. 몇몇 암탉들이 슬프게 바라보긴 했지만 저항할 엄두까지는 내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더 적응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나중에는 두려움의 감각조차 무디어지다가 아예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랬다. 차라리 망각이 편안했다. 살상을 막지 못 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보다 그냥 못 본 척 슬그머니 넘어가는 루틴에 익숙해진 것이다. 딱 하나 모성애 깊은 명이암탉만 빼고.
이상한 암탉 하나가 나타나긴 했다. 깡마른 명이암탉이 혼자서 팽나무 꼭대기로 부득부득 올라가는 행태가 눈에 띄는 게 수상한 것이다. 그물망 바닥으로 이따금 수컷 닭똥처럼 분비물이 떨어지는 것도 해괴하긴 했으나 솔직히 아무 관심도 없었다. 개나리 노란 빛깔이 하늘로 번지던 어느 봄날, 숑이가 갸우뚱하며.
“왜 자꾸 거기에 오르는 거냐?”
쓰무하게 묻기는 했다.
“운동이요.”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올 거면 괜히 힘만 들지 않느냐?”
“나뭇가지 흔드는 게 재미있어요. 이파리 갉아먹는 벌레들 구경도 하고.”
“구경이라니? 무슨 생뚱 소리냐? 벌레는 단백질 보충하는 우리의 자양분이다.”
어이없는 표정으로 괜히 다른 암탉들을 쳐다보다가 느닷없이.
“잘 들어랏! 무조건 먹는 게 최고다. 시간 낭비하지 말고 개구리 하나라도 삼켜서 단백질을 보충해라. 아니면 겉보리 모아 양식을 보충하던지.”
목청을 높여 꼬약꼬약 소리 지르면 끄떡끄떡 시늉으로 재빨리 응답했다. 다른 닭들도 팽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보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솔직히 나뭇가지 등반 자체가 만만찮은 시도였으므로 일찌감치 포기하는 것이다. 좁은 마당에서 살면서 운동 신경이 둔해진 이유가 가장 크다. 숑이가 오르지 못한 것도 날마다 먹고 홰에서 낮잠만 잔 탓이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 말라’는 격언 때문은 아니지만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마음 편하다는 생각도 있다.
마찬가지였다. 숑이가 아껴주는 암컷 영이와 애첩 경이도 오르지 않았다. 총애받는 만큼 잘 먹더니 비곗살에 배불뚝이가 되면서 나무 타기를 무서워했다. 옆구리가 퉁퉁 불면서 날개까지 무거워져 흔들지 못하는 것이다. 걸음마조차 간신히 뒤뚱뒤뚱 정도이니 조류(鳥類)임을 포기한 거나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명이암탉 혼자 몰래 애벌레를 물고 팽나무 꼭대기에 올라도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숑이도 ‘먹이를 숨겨놓고 나무에 오르는가 보다’ 하며 쓰무하게 쳐다만 보았으니 나머지는 무사통과이다. 닭들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몸을 숨기기 쉬워지면서 먹이 배달이 쉬워진 측면도 있다. 병아리들이 또 태어나 이듬해 봄에는 서른여섯 마리로 불어났으니 더 이상 증가하면 닭장 면적이 부족할 판이던 즈음인데.
먹거리 작업 중이던 명이암탉이 화들짝 놀란 건 갑자기 나타난 닭 때문이다. 정이였다. 언제부터였나, 몸집이 밥공기처럼 자그마한 정이 혼자 팽나무 꼭대기에 오르는 게 보였던 것도 같다. 지금도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멍때리던 모습이 어른거리기에 바싹 다가서서.
“엥! 네가 여길 왜 왔니? 누가 시켰니? 첩자인가?”
설레설레 흔들던 정이가 아주 애련한 표정으로.
”멀리 보고 싶어.“
생뚱한 소리로 바싹 마른 목을 간신히 세우는 것이다. 작다. 그리고 다섯 살 암탉 중에서도 유독 몸집이 가늘고 약해 보인다. 뱅칠 씨가 정이를 잡아가지 않는 것도 ‘너무 말라 먹을 데가 없으니 달걀이나 받아먹자’라는 이유였단다. 그 정이가 명이암탉보다 2미터 이상 더 높은 데까지 올라서서 멍하니 서 있곤 하니 그 또한 뜨악하면서도 신선한 사태이다. 그물망을 뚫고 나온 장장 25미터가 넘는 팽나무 꼭대기에 푸른 잎들이 우산 씌우듯 받쳐있는 그 자리였다. 나뭇가지 중간 즈음에 몰래 은신처를 둔 청소년 중병아리에게 지렁이 하나를 먹이려던 명이암탉이 얼떨결에.
“용이에게 주는 걸 들켰으니 큰일 났네.”
지렁이를 삼키는 사춘기 중병아리를 본 정이가.
“이름이 용이였군요. 걱정 마. 나는 입에 테이프 붙이고 죽는 날까지 비밀로 할 거야.”
“나는 목숨 걸고 이 아이를 보호하는 거야. 이 사실을 땅에 파묻고 절대 발설하면 안 돼.”
그래서 질풍노도 수컷 하나가 크고 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깊은 베일에 감춰지는 중이었다. 둘이 ‘비밀의 동지’가 되면서 오랫동안 꽁꽁 지켜진 것이다. 당연히 숑이도 몰랐다. 스스로 태평성대라고 분석하며 여전히 기가 팍팍 뻗친 채.
“이 나라에는 남자가 나 하나뿐이다. 음하하.”
스무 평짜리 협소한 공간을 ‘나라’라고 허풍을 떨어도 못 들은 척 ‘그런가 보다’했다. 괜히 대들었다가 날카로운 부리에 찍히는 것보다 살짝 외면하면서 몸을 성하게 보존하겠다는 판단이다.
그 순간 팽나무 위에서 뭔가 검은 물체 하나가 푸시시 떨어지는 것이다. 호박덩이처럼 쿵 떨어지는 게 아니라 낙하산 내리듯 사뿐히 주저앉는 게 특이했다. 용이가 나뭇가지를 헛디뎌 거꾸로 매달리다가 발가락이 빠진 것이다. 안마당에 떨어지기 직전 날개를 활짝 펴는 순발력으로 낙하 속도를 줄이면서 다치지 않았지만.
들킨 게 문제이다. 내리자마자 암평아리 틈에 재빨리 섞이긴 했으나 경이가 하얀 부리를 딱딱 떨며.
“남자닷! 풋풋한 사춘기 소년이야. 우와 – 저 꿈틀대는 근육 좀 보아. 우리와는 뼈대부터 달라.”
호들갑 떨면서 금세 소란이 일어난 것이다. 숑이도 눈이 어리둥절 동그래졌다. 볏 하나가 발그스레 달아오르기 시작하는 게 필시 수놈이 맞으니, 어렵쇼, 예상치 못한 황당 사태이다.
‘이상하다. 어디서 박혀 있다가 굴러왔을까? 지금은 어리지만 순식간에 기골이 장대한 어른이 될 텐데…… 빨리 처치하잣.’
그러면서 아주 잠깐 두려움도 엄습하는 것이다. 세상에 나온 지 8년차가 넘으면서 기운이 쇠해지는 느낌으로 조급증이 더 심해진 탓도 있다.
‘도대체 철통같은 점검 코스 중 어디서 펑크기 났을까? 빨리 죽여 후환을 없애야 이 나라가 안종된다. 저 수컷의 몸이 찰진 근육질로 자리잡기 전에 불길한 징조의 싹을 잘라야 한다. 불순분자 제거는 빠를수록 완벽해진다.’
돌멩이 위에 서서 심호흡을 한 다음 포효하듯 ‘혹키횻’ 소리를 질렀다. 차렷 자세로 시선을 집중하는 닭들을 내려보며, 예전에 주장하던 구호 문장과 똑같이.
“죽여야 안정된다.”
그 수평아리 하나 따위를 죽이기 위해 망설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부리를 세우며 돌진하는데 뭔가 ‘파다닥’ 소리로 숑이의 앞이 탁 막혔으니 어리둥절한 노릇이다. 웬일일까, 몸집 작은 암탉들 몇몇이 겹겹으로 에워싸며 용이를 보호하는 것이다. 맨 앞에 선 모가지가 낭창낭창 가느다란 명이암탉이 격한 눈빛으로.
"안돼. 내가 21일 내내 품어서 낳은 애야.”
숑이가 어이없다는 듯 혀를 내두르며.
“대꾸하면 너도 죽인다. 남자는 딱 하나만 있어야 하는 유구한 전통을 깰 수 없다. 혼란으로 망하기 전에 처단으로 예방한다.”
명이암탉도 물러서지 않고.
“안 돼! 나는 이 작은 생명 하나를 탄생시키려고 3주 내내 쪼그려 앉기만 했어. 닭니(鷄蝨)가 따개비처럼 달라붙어 등허리 피딱지 벅벅 긁으면서도 주린 배 참고 견디면서 옴싹달싹 않고 견뎠어. 온몸으로 낳은 아이야.”
“물러섯! 당장.”
숑이가 눈을 부라리며 소리쳐도.
“병아리 때는 딱딱한 씨알도 조근조근 씹어 입안에 조물조물 넣어주었어.”
“입에 넣어주는 건 제비 새끼나 비둘기들이니 하는 썰렁한 짓이야. 태어나자마자 스스로 먹이를 찾지 못하는 잘못된 관행부터 ‘닭의 생존 규칙’에 어긋난다. 꺼졋!”
그렇게 협박과 설득을 병행하는데.
“용이를 한 번만 살려주세요. 숑이왕(王) 능력이면 죽이는 건 아무 때나 가능하니까요.”
왜소증 정이가 소매를 당기는 바람에 주춤했는데 울보쟁이 팡이까지 눈물을 뚝뚝 흘리며 함세하면서 분위기가 더 출렁거렸다. 딱 두 마리, 영이와 경이만 고개를 모로 돌려 차마 쳐다보지 못한 채 시간이 흐르기만 기다리는 중이다.
“나에게 반기를 들다니, 감히.”
격분한 숑이가 닥치는 대로 온몸을 콕콕 찍어대자 ‘꼬꼬꼬’ ‘꼬꼬댁’ 비명과 함께 난장판이 되었다. 이번에는 늙은 암탉 짱이까지.
“괴롭히지 마.”
꼬부랑꼬부랑 애처롭게 막아서더니
“오랫동안 너에게 시달렸어. 제발.”
기실 숑이도 경로 예의상 늙은 암탉 짱이한테만큼은 함부로 대하지는 못헀는데.
“내 나이 열한 살, 이미 닭의 수명을 넘겼으니 죽어도 여한 따위는 없어. 당신도 여덟 살이 됐으니 곧 기운이 쇠해지는 연륜이야.”
그 소리에 숑이도 ‘아차, 내가 기운이 빠지는 걸 들켰나 보다’ 하며 가슴이 철렁하는데.
“힘센 권력자보다 나이 든 민초의 말이 옳은 거야.”
최고령 연장자가 쐐기를 박자 숑이도 주춤주춤 흔들린 것이다. 그 바람에 다른 암탉들도 어깨걸이 스크럼을 더 강하게 엮을 수 있었다. 명이암탉도 콧등에 철철 흐르는 피를 닦으며 들릴락 말락 귀엣말로 용이에게.
“우선 피하고 훗날을 도모하자. 내가 지렁이 많이 줄 테니 힘을 더 키우고 나중에 위풍당당 나타나야 해. 독재자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빨리."
그렇게 바리케이드를 보호막 삼아 용이를 낑낑 밀어 올리는 중이다. 지금은 명이암탉과 정이, 짱이, 울보 팡이까지 ‘닭의 띠’ 연결로 맞서면서 어지간히 자신감이 붙은 상태였다. 다른 닭들까지 용이 엉덩이를 받쳐주면서 팽나무 꼭대기로 무사히 오르면서 일단락되었다. ‘휴우 ’하며 안도의 한숨을 뿜던 명이암탉이.
"어른이 되면 나는 네 아내가 될 꺼야.”
“그래요. 변치 않는 사랑으로.”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아름다운 사랑으로 부부가 되는 게 너무 지당했다. 개와 고양이도 그렇고 흑염소와 토끼까지 모두 통했다. 부녀지간이나 모자지간에서 부부로 변신하는 행복한 러브스토리이다.
팽나무 위로 몰래 배달하는 시스템이 한동안 유지되었다, 그러면서 용이의 몸이 눈에 띄게 강해지면서 질풍노도처럼 가속도가 붙더니 어느새 팔팔한 청년 태가 나는 것이다. 발톱의 윤기가 번뜩였고 날개만 파닥여도 이파리가 쉥쉥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모이를 먹을 때에도 이제는 전혀 겁에 질린 표정이 아니었다. 팽나무 수간(樹幹)의 뭉툭한 부분을 짚고 점프를 한 다음 여유롭게 총총 오르는 동작도 예사롭지 않다. 그렇게 날이 가고 달이 저물면서 이제는 숑이조차 힐끔힐끔 쳐다만 볼 뿐 공격 포즈를 취하지 못하는 것이다. 용이의 목덜미까지 두꺼워지면서 우람한 장군 풍모부터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닭들도 새롭게 솟는 붉은 볏을 볼 때마다.
“후아 –. 튼튼하고 잘 생겼당.”
“상남자와 아이돌의 합종이야. 나도 저런 아들이 있었으면…….”
언제부터였나, 용이가 돌연 정이의 몸에 올라타기도 했다. 엄마 또래 암탉들과 짝짓기 놀이에 빠지며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주 조그마한 소리로.
“나무 꼭대기에서 무얼 했나요?”
“높이 올라갈수록 넓은 세상이 눈에 박히는 거야. 벌판 너머 서해안 간척지를 볼 때마다 두근두근 뛰는 가슴을 처음 느꼈어.”
“먹는 거는 아니잖아요.”
“먹을 때보다 심장박동이 더 팔팔 뛰는 거야. 지금 이해가 가지 않으면 나중에 알려줄게. 눈물겹게 먹먹한 세상의 스토리를.”
왠지 ‘닭장의 권력’이 바뀔 듯한 느낌으로 또 몇 달이 지나더니.
어느 날 용이가 운동장 한복판으로 우뚝 나서서.
“독재자여. 한판 붙자.”
정식 선전포고와 함께 일대일 결투를 신청한 것이다. 숑이는 그 사이에 다시 나이 한 살을 더 먹은 만큼 불안감이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피할 방도도 없었다. 다른 닭들이 증인으로 빙 둘러서 있어서 여차하면 비겁자가 되므로 빼도 박도 못하는 것이다. 어느새 세월이 흐른 걸까, 마주 선 투계장이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젊은 용이 쪽으로 몰리는 느낌이다. 허벅지 근육이 꿈틀거리고 눈빛도 레이저처럼 반짝반짝 쏟아진다. 자, 이제 ‘원수가 된 부자지간의 결투’가 시작되었다.
두 마리 수탉이 마주서면서 공기가 얼음장처럼 쩌렁쩌렁 갈라졌다. 숑이가 먼저 날개를 퍼뜩뛰어들자 용이도 공중으로 몸을 솟구쳤다. 거친 숨소리와 날갯짓 소리가 뒤섞이면서 구경꾼 암탉들까지 숨소리를 내지 못했다.
푸타탁 꼭꼭 꼬끼횻, 죽어랏!
타타타타타타 네가 죽어랏 코콕.
잠시 떨어져 서로 원을 그리며 천천히 움직이는데 문득 용이의 붉은 볏이 치켜올라가면서 몸집이 한껏 커보였다. 둘은 잠시 거리를 두었다가 다시 돌진했다. 물고 뜯고 찍는 곳마다 피가 터지면서 겨우 3분 정도 지났을 뿐인데.
끄으악.
생각보다 훨씬 빨리 막이 내렸다. 박빙 승부를 점치던 몇몇 관람객들의 예상도 모두 허당으로 빗나갔다. 겨우 1분 남짓 이후 늙은 숑이가 엉거주춤 밀리는가 싶더니 곧바로 밑바닥에 깔리는 게임이 된 것이다. 마침내 목을 축 늘어뜨리면서 대항을 포기하면서 흩어진 깃털들만 바닥으로 쏠려가는데.
“내가 이겼다.”
용이가 아비 숑이의 머리를 발바닥으로 지근지근 누르다가 구경꾼 닭들을 향하여.
“잘 들어횻!”
어느새 일렬종대로 늘어선 암탉들이 예전의 그 습(習)대로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는데.
“그물망의 바뀐 규칙이오.”
모두 용이에게 집중하며 고요, 고요에 빠졌다.
“이제부터 대장이라고 부르시오. 왕이란 건 아무래도 대포급 허풍 같으니 혹시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회의를 통해 호칭도 떠올려 보시오.”
아, 하는 감탄사가 동시다발 터지는데.
“음식 순서도 여러분끼리 의논해서 결정하시오. 이제부터 모든 걸 심사숙고한 토론으로 정합니다.”
그렇게 암컷들끼리 결정하는 논의 구조가 숑이 시대와 현격하게 다른 차별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예전과 달라진 게 거의 없었다. 형식은 바뀌었으나 내용상 변화가 전혀 없는 것이다. 민초들끼리 장시간 토론을 통한 밥 먹는 순서 역시 예전과 똑같아서.
먼저 새로운 권력자 용이가 포만감으로 꽉 찰 때까지 배를 실컷 먹는다. 그때까지 다른 닭들은 그물망 가장자리를 배회하며 대장을 경호한다. 그다음으로 은인(恩人) 명이암탉 순번이다. 다시 총애받는 정이와 팡이같은 암탉들이 배를 채웠으니 옛날의 ‘숑이 왕국’ 시국과 비슷한 룰이다. 아니다. 예전보다 더 강박하게 조일 때가 훨씬 많았다. 회의 소집도 지겨운데 발언 목록까지 미리 제출해서 검열받으라는 것이다.
“영이가 비서실장 하시오. 아무래도 예전에 해본 캐리어가 있으니.”
바뀐 세상에서도 그렇게 예전의 숑이 왕국 2인자가 그 자리를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그때는 독재였지.”
영이는 예전의 숑이 세계를 사정없이 비판하면서 용이 왕국의 오른팔이 되어 동분서주 뛰었다,
“용이대장 세상은 폭력을 금지합니다.”
그렇게 새 세상을 홍보했으며 또 실제로 그랬다. 그 대신 하루 세 시간 이상의 마라톤 회의 참석을 종용했고 지각이나 결석을 하게 되면 보리알 벌금을 통지했다. 영이가 보는 앞에서 날개를 올리게 하여 일일이 위생 상태를 점검했고 합격과 불합격 판결을 내렸다. 한 술 더 떠 닭들을 조르르 모아놓고.
“목을 올리시오.”
모가지 때 검사가 끝나면 깃털에 붙은 이(虱) 검사까지 했다. 영이가 늦잠을 잔 팡이를 끌고 와 용이에게.
“대장! 팡이가 세균 묻은 무당벌레를 낼름 삼켰어. 전염병에 걸리면 우리 모두 집단으로 전멸할 수도 있어요.”
“발목을 묶고 1주일 격리시켜.”
“그래요. 벌금으로 겉보리 스무 알은 별도 부과입니다.”
포상금으로 개구리 두 마리를 받은 영이의 입이 귀에 걸리도록 찢어졌고 일주일 격리 통지서를 받은 팡이 혼자 꺼이꺼이 울었다. 본보기가 되긴 했다. 그 후 나머지 닭들도 틈만 나면 겨드랑이 먼지를 털었고 피부가 찢어지도록 발목을 닦았다. 다른 암탉들도 닦고 치우고 회의 참석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 딱 하나, 명이암탉만 챙겨온 음식을 울보 팡이에게 나눠주며.
“많이 먹어야 오래 산다.”
어깨를 두들기며 옆에 있던 정이에게.
“너두 먹을래? 쓰레기장에서 주은 쥐꼬리야.”
정이는 설레설레 흔들며.
“자유가 그리워. 사무치도록.”
정이의 눈동자가 호수처럼 출렁거리거나 말거나.
“먹는 게 최고야.
다독거리며 정이의 입에 쥐꼬리를 내밀기도 했다.
‘꽁지 빠진 닭’ 신세가 된 숑이는 하루하루 먹거리 채우기가 걱정이었다. 구석에 박혀 있다가 빈 틈새가 보이기만 하면 오그르르 뛰어가 끼어들었다. 그런 틈새조차 없을 때는 혼자 쫄쫄 굶으면서.
‘나는 약하다. 앞으로 더 허약해지기 전에.’
맨 끄트머리 서열까지 자발적으로 밀려날 마음도 먹는 중이지만 기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수십 마리 닭의 무리 앞에서 호령하던 시국이 아스라하지만 그건 지나간 일이다. 심지어 비서 영이가 눈에 띄어도 살짝 고개를 돌리며 비실비실 피할 참인데.
용이의 지시를 받은 영이는 하루에 두 차례씩 회의를 소집했다. 불참자에게는 완두콩 열 개를 빼앗거나 굼벵이 육식을 보름 동안 금지시켰다. 그러면서도.
“모두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내시오.”
팡이가 쭈삣쭈삣 망설이다가.
“신체검사 때 아랫도리는 제외했으면 합니다. 너무 수치스……럽……성희롱…….”
그러면 용이가 봉을 땅땅 때리며.
“공동체 보존 정신에 어긋나는 소리요. 전염병이 퍼지면 전원 전멸인데 무슨 한가한 성희롱 타령으로 세상을 혼란케 하다니.”
숑이 시대처럼 특히 혼란을 강조했다.
영이가 장부를 들고 총총총 뛰어오자.
“우리 세상에는 성희롱이란 단어가 없으므로 허위사실 유포로 세상을 혼란케 했으니 겉보리 한주먹 제출에 해당됩니다. 다시 걸리면 그때는 기르이 잘잘 흐르는 육식이 영원히 금지시키고 또 걸리면 사형입니다.”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라고 해서…… .”
그때 용이가 나서서 선심 쓰듯이.
“한주먹은 너무 많으니 절반으로 줄이시오. 그 대신 서약서에 싸인을 하고.”
너그러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러나 서약서에 싸인을 한 팡이가 구석으로 돌아서서 기어드는 소리로.
“몽둥이보다 벌금 서약서가 더 무서워.”
꽁시랑거리는 소리는 아무도 듣지 못한 줄 알았는데.
”회의 독재도 있어.“
상이의 한마디에 우르르 볼멘 소리가 ‘시헐시헐’ 터진다.
그 닭장 안으로 족제비 하나가 쳐들어왔으니 초비상 사태이다. 예전부터 눈에 익었던 그 노란 털의 송곳니 짐승이다. 문짝 밑바닥 틈새로 발톱을 들이밀고 병아리 하나씩 재빨리 낚아채므로 해적이라 부르던 그 침략자 들짐승이 맞다. 처음에는 주로 동작이 느린 아기 병아리가 사냥의 대상이었다. 뾰족 이빨로 치명상을 입힌 다음 칼날 어금니로 목을 잘라 질질 끌고 나가는 걸 뻔히 보고도 아무 저항도 못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중닭들도 덫에 걸리더니 어느새 수탉까지 위태로울 판세이다. 모이를 주러 온 주인 뱅칠 씨가.
“족제비 때문에 망하겠다. 잘 부화시켜 내년쯤 양계장으로 대폭 확장하려는데 ……휴우.”
튼튼한 철사로 밑바닥 틈새를 엮고 진흙으로 꽁꽁 막았으나 그마저 방비책이 못되었다. 해적 족제비가 침략 타법을 바꾼 것이다. 울타리 뒤쪽 모래알 섞인 흙바닥을 찾아내더니 반쯤 굽은 발톱으로 보름 내내 긁은 것이다. 마침내 땅굴 구멍을 완성하자마자 침투와 행악질이 시작되었다. 그놈의 해적이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면서 닭장 안이 아수라장 난리가 터진 것이다. 짧은 앞발로 박박 긁다가 송곳니를 따악 벌리면.
“으아아악! 피해라.”
소리나 지를 뿐 아무 방법이 없었다. 어미 닭들은 날개 치며 홰 위로 우르르 도망쳤고 오르지 못한 병아리나 늙은 닭들은 후미진 구석에서 오돌오돌 떨어야 했다. 용이도 횃대 위로 몸을 피했는데 문제는 예전의 대장 숑이다. 숑이도 혼신으로 뛰어오르긴 했으나 거기도 마땅한 피난처가 아니었다. 해적이 구부린 뒷발을 ’쓩‘ 튕기며 홰 위로 뛰어오르면서 발바닥이 미끄러지면서 닭들이 두두두 떨어졌다. 그 순간 횃대 구석에서 한쪽 발만 걸친 채 간신히 벌벌 떨던 늙은 숑이가 .
“용이가 싸워라!”
뜨악하게 외치는 바람에 모두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대장이 백성들을 보호해야지, 똑같이 도망치다니.”
그 기발한 꾀가 설득력을 준 것이다.
“……아.”
용이는 물론 다른 암탉들까지 당혹감으로 발갛게 달아오르는데 명이암탉이.
“안 돼. 이빨 없는 조류가 맹수의 맞상대가 될 수 없어.”
“그럼 죄다 죽으란 말이냐?”
“그냥 누군가 하나만 잡혀가면 사태가 일단은 끝난다. 저놈은 딱 한 마리만 먹고 배가 차면 즈이 동굴로 쉬러 가거든.”
그 만류에 싸우지 않을 뻔도 했으나 갑자기 해적이 명이암탉 쪽으로 달려드는 순간 용이의 가슴이 울컥 치미는데, 하필.
“대장이 싸워주지 못하면 우리는 저놈의 이빨에 아무 때나 먹힐 수밖에 없다. 아, 약소 동물의 설움이라니.”
짱이할매까지 거드는 바람에 ‘붙을까 말까’ 두근두근 뛰던 심장이 불끈 일어서는 것이다. 그래, 싸우자.
“멈춰라.”
부리를 꽉 깨문 용이가 복판에 나서면서.
“해적 족제비 놈아. 일대일로 붙자.”
명이암탉이 ‘안 돼’ 하며 만류하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해적이 운동장 가운데로 나서서 손가락 까딱이며 불렀으므로 용이도 퇴로가 없었다. 나머지 닭들은 예전처럼 동그랗게 둘러선 관중이 되어 흥분된 함성으로.
“대장 파이팅!”
응원스크럼을 만들어주면서 용이도 어지간히 버티긴 했다. 용이는 예전에 숑이와 결투를 벌일 때처럼 원을 그리며 빙빙 돌면서 탐색전 후 소소한 공격부터 시작하려 했다. 그러나 해적의 발톱 공격이 너무 빨랐다. 점프와 동시에 용이의 목에서 핏줄기가 펑펑 솟기 시작했다. 족제비 이빨 34개 모두에 힘을 주더니 빠드득빠드득 흔드는 것이다.
“악! 역부족이야.”
발을 동동 구르는 찰나 용이도 부리를 뙤똑 세우며 해적의 왼쪽 눈을 팍 찔렀다. 그리고 아, 보았다. 눈에서 먹물이 뚝뚝 떨어지는 족제비의 몰골을.
“저놈도 당했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해적을 향해.
“바이킹 영화처럼 애꾸눈 해적이 되었네. 굿바이.”
펄쩍펄쩍 빵빠레를 울리며.
“만세에. 이겼다.”
영이, 경이, 창이, 팡이까지 승리의 환호로 뱅글뱅글 춤을 추는 순간 어럽쇼, 용이가 푹 쓰러진 것이다. 물려 찢어진 목에서 피가 콸콸 쏟아지더니 바닥이 금세 빨갛게 적셔졌다. 용이가 그렇게 세상을 떠난 것이다. 숨이 끊어지기 직전 명이암탉을 애절하게 바라보며.
“여보, 나를 낳아줘서 고마워요.”
마지막 한마디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장렬하게 싸워 대장답게 전사했으나 그게 끝이었다. 딱 한 명, 순정파 정이만 혼자서.
“넓은 세상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는데.”
눈물을 흘리자 울보 팡이가 함께 껴안은 게 끝이다. 나머지 닭들은 모두 ‘비극의 현장’을 까맣게 잊은 것이다. 하필 공교롭게도 문짝을 연 뱅칠 씨가 용이의 시체 옆구리를 고무신 코빼기로 툭툭 치며.
“또 당했네. 수놈인데. 제기랄.”
축 늘어진 날개를 꺾어 들더니 펄펄 끓는 안마당 가마솥에 퐁당 집어넣었다. 털을 뽑아 고기를 나누어 아홉 식구 고깃국으로 밥상을 차리더라는 소문도 돌았다. 뱅칠 씨도 미안한 듯한 표정으로 다시 돌아와 모이가 든 바가지를 내밀자 나머지 닭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렇다. 먹이 때문이다. 죽은 용이를 까맣게 잊은 채 바가지의 겉보리를 차지하기 위해 대가리를 구구구 들이미는 것이다. 모이 쟁탈전에서 밀려난 몇 마리도 젖은 땅을 헤쳐서 굼벵이 같은 보양식을 찾을 뿐이었다. 가열차게 싸우다가 전사한 용이 생각은 까맣게 지워졌다.
용이가 죽자마자 암탉들의 눈빛이 일제히 숑이에게 집중되더니.
“힘센 지도자가 필요하다.”
숑이의 마음은 두 가지로 오락가락했다. 이미 ‘나는 늙었고 이제는 약하다’를 주문처럼 외우면서도 한편으론 의외의 추대를 은근히 기대했던 바이기도 했다.
“다시 숑이 수탉을 왕으로 모시자.”
영이가 추대하고 몇몇 암탉들이 동조하면서 원조 보스 숑이가 대장 자리로 귀환하게 된 것도 그렇게 얼떨결이다. 그리고 숑이의 몸이 쇠해지면서 마음이 인자해진 것도 돌발 사태이다. 울타리 규칙을 공표하는 숑이의 눈빛에 글썽글썽 이슬이 젖더니.
“어젯밤 잠을 못 이루고 고민을 했는데.”
책을 읽듯 띄엄띄엄 더듬으니 목소리조차 카리스마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숑이도 문득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낫다는 심정으로.
“우리 수명은 평균 10년인데 내 나이 여덟 살 후반이니 1,2년 내에 죽을 수도 있다. 자, 세상이 바뀌었으니 ‘새 술은 새 부대’라는 속담처럼 옛날 규칙은 대폭 정비한다.”
앞으로 탄생하는 수평아리는 단 한 마리도 죽이지 않겠다는 선포가 가장 혁명적이었다. 처음에는 갑자기 바뀐 규칙에 어리둥절했지만 사내아이 계집아이 함께 뛰노는 풍경을 떠올리며 가슴이 뛰기도 했다.
“각자 의견을 말하시오.”
아무도 말이 없었는데 문득 정이가.
“우리네 닭들을 제외하면 대개 일대일 성비를 이루고 살지요. 인간이란 종자(種子)가 대표적이고 제비도 암수 한 쌍이 같은 둥지에서 살 비비고 살며 염소나 멍멍이까지 대충은 짝을 맞춘다지요.”
‘수컷이 늘어나는 풍속도’를 처음 경험하는 혼란스러움이 있긴 했다. 그래도 똑똑한 암탉부터 시작해서 두 날개 흔들며 반기는 무리들이 늘어만 갔다. 저마다 암수 병아리를 동시에 키워내면서 세상이 바뀌는 중이었다.
“거기서 뭐 하니?”
명이암탉이 팽나무 꼭대기를 올려보며 큰 소리로 물었다. 처음에는 혹시 정이가 먼저 떠나간 용이를 그리워하며 하늘을 바라보는 줄 알았다. 그런데.
“세상이 너무 넓은 거야. 꼭대기에서 멀리 바라다보면 저 산등성이 아래 가문비나무에도 누군가 멀리 서 있는 나를 오래도록 쳐다보는 것 같아. 아스라하게.”
명이암탉 옆에서 뚫어지게 바라보던 경이가.
“정이가 이상해.”
갸우뚱거리다가 살짝 외면했다. 한때 숑이의 애첩이었던 경이는 최근에 새로 발굴한 청소년 수평아리에 눈독을 들이며 사랑을 갈아타는 중이다.
“울타리를 탈출할 거야.”
그 말을 함께 듣던 울보 팡이가.
“여기는 그냥 놀면서 먹을 수 있는데, 너는 참 특이하구나.”
정이는 슬픈 눈동자로 팡이를 바라보다가.
“인간들은 우리 몸이 커지기를 기다리며 계란을 죄다 빼먹은 다음 몸까지 꼴까닥 잡아먹는 거야. 인삼 넣어 삼계탕으로 끓이거나 기름 가마솥 치킨으로 튀겨 먹다가 거기서 남겨진 살점 몇 개는 다시 닭개장으로 우려먹는다. 또 있어. 수탉들 얼굴에 의지해서 사는 것도 벗어나고 싶어.”
틈새에 끼어있던 영이가.
“그게 운명이지. 힘이 없으니까.”
정이가 다시 영이를 슬프게 바라보며.
“너는 운명이지만 나는 탈출할 거야.”
“헐! 어떻게 먹고 살아가려고?”
정이가 목소리를 낮추며.
“그건 나중 얘기야. 탈출은 울타리 문을 때려 깨부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첫 과정이야.”
“울타리 넘으면 또 울타리가 있어. 추위에 얼어 죽거나 배고파 굶어 죽거나 족제비에게 물어뜯겨 죽을 수도 있어.”
“그래도 괜찮아. 울타리 밖에도 세상이 있다는 걸 나는 이미 알았어. 탈출은 발이 먼저 하는 게 아니라 세상이 넓다는 걸 깨닫는 순간 마음이 먼저 울타리를 넘는 거지.”
팽나무 그늘부터 어둠이 서리면서 ‘탈출’이란 단어가 최초로 등장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