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호 칼럼>
대구의 잠 못 이루는 밤(3)
‘6·3 지선’이 끝난 지 이십여 일이 지났다. 선거의 과정과 결과를 놓고 이 나라의 여론은 두 파로 나뉘고 있다. ‘부실선 거론파’와 ‘부정선 거론파’. 양자의 차이는 단순히 선거 후의 뒤치다꺼리만이 아니라 앞으로의 국가 발전 방향에 대한 생각 차이와도 연결된다. 이들에 대한 평가 기준은 물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헌법적 가치와 국가 체제의 유지를 담보하는 법치주의다.
부실선 거론 파는 선관위의 관리부실을 인정하면서도 부정선거론이나 재선거론은 일축한다. 검경 수사와 국회 국정조사 등을 통한 진상 규명에 주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검 수사나 재선거를 통해 혹시 부정선거가 밝혀지기라도 하면 자칫 현 체제가 붕괴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주로 여권 즉 더민당 등 좌파세력의 입장이다. 그런데 우파라 할 국힘당의 비당권파 즉 한동훈 지지자들, 이명박 계열, 조선일보 등 족벌 언론 카르텔도 같은 생각인 듯하다.
부정선 거론 파는 이번 선거의 국민 참정권 훼손과 민의 왜곡은 선관위의 단순한 행정 착오나 관리부실 탓이 아니라 특정 정치적 목적을 가진 세력의 선거 시스템 개입을 통한 조작과 기획의 산물이라고 본다. 따라서 공정한 수사와 재선거를 요구한다. 우파의 정통 주류라 할 국힘당 당권파, 광화문 등지에서 활동하는 태극기 세력, 그리고 마침내 선거 불신에 이르게 된 잠실의 젊은 층, 일부 대안 언론과 유튜버 등이 이쪽이다.
좌파는 상수이므로 제쳐두자. 관전 포인트는 일부 우파세력이 부실선 거론파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들이 왜 거기에 있나. 좌파와 같이 그들도 체제의 붕괴가 두렵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박근혜 불법 탄핵과 그에 따른 법치체제 파괴의 공범이라는 원죄가 있다. 이 원죄는 문재인 정권이라는 재앙을 초래했고, 이 책임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다 부정선거 의혹을 외면하는 또 하나의 원죄를 추가했다. 12·3 계엄으로 부정선거가 탄로 날 위기에 처하자 그들은 윤석열도 불법 탄핵했고, 그 결과는 더 이상 사악할 수 없는 이재명 정권의 등장이었다. 부실선 거론파에 속하는 이 일부 우파세력이 좌파 못지않게 윤석열 영구 퇴출에 목을 매고 있는 것은 그가 부정선거 의혹을 제대로 파헤치려 한 데에 있다. 누적된 부정선거 의혹이 다 드러나면 박·윤 두 대통령 불법 탄핵의 추악한 진상도 밝혀질 것이고, 따라서 현 체제의 붕괴와 함께 그들의 설 자리도 없게 될 것이다. 이 일부 우파세력은 좌파 못지않게 이것을 두려워한다.
이들의 공포를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 최근 조선일보의 논조이다. 조선일보가 한동훈·오세훈·이준석을 노골적으로 띄우고 있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것은 그들이 박·윤 두 대통령 탄핵의 공범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그들 한·오의 ‘성공’을 통해 일정한 정치적 지분을 유지 강화하고 ‘원죄’의 족쇄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하고 있다.
반면 장동혁은 못 죽여 수개월째 안달복달이다. 사설과 칼럼이나 기사를 통해 끊임없이 거의 집단 따돌림 수준으로 그를 따돌리려 애쓰고 있다. 말을 듣지 않기(즉 ‘절연’ 하지 않기) 때문이다. 6월 10일 자 《김창균 칼럼》은 제목부터가 『'밉상' 장동혁이 보수 양 날개 펼쳐준 '공로'』인데, 장 대표에 대한 ‘미움’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서 『대표 사퇴 압박에도 버티는 張』 『연명해도 체제 붕괴, 시간 문제』 『쫓겨나는 불명예 선택할 건가』로 소제목을 달아 그를 저주하고 있다. 최근에는 스트레이트 기사를 통해 장동혁에게 부동산 의혹을 제기했다가 근거 없음이 드러나 망신을 샀다. 박근혜 탄핵 정국에서 비리가 폭로된 자사의 주필을 살리기 위한 거래를 시도했으나 실패하자 청와대 민정수석 우병우 죽이기에 취재진을 총동원했던 것과 같은 저질행태다. 반면 한동훈에게는 『韓은 張의 자객 꺾고 차기 우뚝』 하는 소제목을 달아 조선일보의 간절한 염원을 드러냈다.
6월 17일 자 사설은 제목이 『대표직 연명 위한 "전국 재선거", 도 넘은 민심 왜곡』이다. 장동혁 대표의 ‘전국 재선거 요구’는 자신의 대표직 유지를 위한 것이므로 민심을 왜곡했다고 질타하고 있다. 그러나 댓글 란을 보니 오히려 그 사설을 비판하는 글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정작 민심을 왜곡하고 있는 것은 조선일보인 셈이다. 지지자 수가 많은 댓글을 몇 개 들어보자. 『조선일보가 중앙일보처럼 되고 싶은 모양이군.』 『내가 이 따위 글 보기 싫어 조선일보 구독을 끊었다.』 『전국 재선거가 왜 도 넘는 민심 왜곡인가?』 『민심은 조선이 정 하는 게 아니다. 착각하지 마라. JTBC를 잘 보고 반면교사로 삼아라.』 『그건 가발일보의 생각.」 『조선일보 폐간에 내 한 표 보낸다.』 『조선일보가 선관위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가 되고 있다.』 등.
우리나라는 정치 지형상 일부 우파의 ‘협력’ 없이는 좌파의 집권이 불가능하다. 이 ‘협력’을 정통 우파는 ‘배신’이라 부른다. ‘부실선거론파’에 가 있는 그 일부 우파세력이 바로 ‘배신’의 주역들이다. 박근혜 탄핵도 윤석열 탄핵도 그들의 ‘배신’ 없이는 불가능했다. 도대체 그들은 왜 배신자 소리를 들어가며 좌파에 기웃거릴까. 우선 박·윤 등 우파의 실력자만 제거하면 정권이 자기네들 손에 떨어질 것이라고 착각했다. 이는 좌파의 집요함과 무자비한 정치 술수를 과소평가한 데 다 여전히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우파가 ‘배신’에도 불구하고 자기네들을 지지해 주리라는 또 다른 착각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친중’이라는 점에서도 그들 일부 우파세력은 좌파와 입장을 같이한다. 반 박근혜 계와 친 한동훈 계에 많다. 또 좌파의 언어혼란전술에 넘어가 좌파를 진보, 우파를 보수라 부르기 시작한 것도 그들이다. 미국처럼 양당 모두 자유민주주의체체를 지향하는 나라라면 각 당의 정책 색깔에 따라 진보와 보수로 나눌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한 정당이 인민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비대칭 양당체제이므로 그렇게 구분하면 각 당의 이념적 정체성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진보’는 좌파가 ‘빨갱이’라는 이미지를 탈색하고 긍정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 선점한 용어이다. 좌파는 진보가 될 수 없다. 이에 반해 ‘보수’는 낡고 ‘꼰대’적이고 부정정적인 느낌을 준다. 우리가 만약 좌파를 진보, 우파를 보수라 부른다면 이는 주사파의 인민민주주의를 찬양하는 대신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자랑스러운 우리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모욕하는 일이 된다. ‘보수’가 아니라 ‘자유 우파’ 또는 ‘헌법수호파’이다. 정치용어는 대중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강력한 무기임을 명심할 일이다.
‘배신자 일부 우파세력’에게는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 개헌을 통해 내각책임제 또는 이원집정제로 국가체제를 바꾸는 일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대를 이어가며 권력이라는 밥상에 숟가락을 얹을 수 있다. 박근혜 탄핵과 부정선거 의혹 외면과 같은 원죄로부터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 대한민국이 초고속으로 선진국 대열에 올라선 데는 대통령제라는 의사결정이 빠른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도 큰 몫을 했다. 일본을 보라. 자민당 의원들이 토호가 되어 가업을 잇듯이 의원직을 세습함으로써 집권 자민당 중의원 중 이른바 ‘세습의원’이 30~40%나 되며, 내각 수상이나 장관급으로 가면 절반이 훌쩍 넘는다고 한다. 당연히 정치의 역동성은 떨어지고, 그 결과 일본은 최 선진 기술강국이었다가 지금은 디지털 글로벌 환경에서 뒤처지고 있다.
이 나라의 좌파가 내각책임제에 관심을 갖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위기에 몰리면 ‘배신자 일부 우파세력’과 개헌을 통해 내각책임제와 강력한 지방자치제에 합의할 수도 있다. 이것이 가장 늦게 선진국 대열에 올라선 대한민국이 선진국 중 가장 먼저 중진국 대열로 추락하는 나라가 되게 할 수 있다. 자유 우파(헌법수호파), 특히 이번 지선에서 달콤한 이익으로 유혹하는 좌파를 물리치고 낙동강 전선을 지켜낸 대구 사람들은 눈을 부릅뜨고 이를 감시해야 한다.
아파트 창문이 밝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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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 노래가 그립다. (2026.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