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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모 토요 칼럼] 26.06.13.

작성자辰泉(具滋文)|작성시간26.06.13|조회수34 목록 댓글 0

(김광모 토요 칼럼 2065.6.13)
<방위산업은 번개사업에서
율곡사업으로 진군>

1. 방위산업의 법제화

일반적으로 국가의 계획사업을 전국가를 동원하여 추진하려면 육성법을 만들어 법제화함이 필요하다.

정부는 방위산업의 주무부를 국방부로 정하고 주무부인 국방부가 방산 물자를 발주하는 입장에서 방산을 위한 최초의 법률로써 "군수조달에 관한 임시조치법"을 제정 공포하였다.

이에 따르면 방위산업이란 군이 필요로 하는 병기와 장비를 생산하고 발주하여 구먜하는 것을 말한다고 했다.

여기서 군이라 함은 현역과 예비군을 통털어서 말한다고 하였다.

이사업을 국방부는 ADD의 시제후 방산의 실용단계로서 10만 명의 養兵을 주장한 조선조 중기시대의 이이선생의 호를 따서 작전명령으로 율곡사업이라고 명명했다.
.
각군을 대신하여 국방부가 방산 물자 실물구매를 위하여 1년만에 발주하는 단계로 올라서는 것이니 대단한 것이었다.

병기를 발주를 하는 국방부와 생산을 담담하는 상공부에 각각 방위산업
국을 신설하여 볘테란 담당자로 국방부에 유삼식 소장과 상공부에 이광덕 국장을 임명하였다.

상공부에서는 청와대가 결정한 바에 따라 방산은 민간이 추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상공부는 청와대( 경제 2)와 협의하여 방산업쳬를 지정하였다.

방산업체는 희망업체와 10대 기업체를 행정명령으로 지징하였고
지정업체는 지정됨을 영광으로 생각했다.

2. 방위산업 육성추진 위원회

방위산업은 박정희 대통령의 친정 사업으로 하여 청와대가 직접 관리하는 최고의 사업임을 획실히 한 바 있다.
.

청와대가 발표한 방위산업 기본 원칙은 다음과 같다.

(방위산업 추진 원리원칙)
ㅣ) 자주국방을 위해 군이 필요로 하는 병기와 장비 그리고 물자를 국산화하여 전력화한다.

2) 국산화 함에 있어서 최고의 제 품을 염가로 단기에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3. 방위산업은 정부의 중화학 정책과 병행하여 추진한다.

4. 한국의 방위산업은 민간추진 원으로 하며 군공창의 건설은 지양한다.

5. 생산을 실현화할 수 있도록 한국 식 육성 방안을 고안하여 추진한다

이에 따라 법령에 의하여 관계장관으로 구성된 대통령이 참석하는
방위산업육성 추진위원회를 설치하였다.

청와대 경제 2가 간사가 되어 추진 위원회를 개최하며 방산은 국방부나 경제총괄 기구인 EPB가 아닌 박정희 대통령의 직접 프로젝트 형태로 추진한 것이다.

개최장소도 정부청사 5층 중화학 기획단 회의실에서 개최하였다.

이상과 같은 방산 추진은 자금이 없어 실질적인 진전은 미미한 가운데매스컴에 의한 방위성금이 생겨 났고 방산을 정책적으로 지원하기 위하여 정부는 75년에 방위세를 신설하여 방산자금을 약간 보유하게 되었다.

방위성금은 공고에 공작기계 선반 설치용으로 사용되었고 방위세는 율곡사업에 사용되었다.

EPB가 건의한 것과 같이 돈 많은 나라가 방산을 합시다 해서 추진한 것이 아닌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안목에 의하여 추진된 것이다

(여기서 방산과 관련하여 박정희 대통령의 위대하심을 종합 요약하여 보기로 하겠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60년대의 10년간의 1) 공업 입국 2) 수출제일주의를 근간으로 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여 1960년대의 빈곤과 기근의 보리고개 시대를 타파하였습니다.

단군시조가 한반도에 국가를 안 든 이래 처음으로 추진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서 성공하여 10년간의 겅제성장률은 8.8%였고 수출성장률은 41.3% 였습니다.

놀라운 자립경제성장을 이룩하여 북쪽의 침범에 대하여 부국강병의 안보로서 방산육성을 추진시킨 것입니다.

. 박정희 대통령은 60년대에 수출제일주의에 의한 경제개발 5 개년획을 성공하고 국토 긴 설까지 하여 절망감에 빠져있던 한국인은 스스로 일궈낸 실적에 놀라 희망의 70년대를 맞이한 입다.

그렇다고 선진국이 된 것은 아니었고 천연지원 없는 빈국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한강의 기적도 없었습니다.

⁹9 (한강의 기적이란 76년에 미국의 NEWSWEEK지가 표지에 Koreans are coimng!라고 하고 Han River Miracle 보도함으로 생김)

새로 생긴 하나의 개도국(NICS)에 지나지 않아 선진국의 전유물인 방위산업을 운운할 때가 절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박정희는 "병기는 부품의 결합체"라는 상공부의 오원철 광공 전 차관보가 건의한 기계공학 윈리로 초라하지만 빛나는 ADD의 번개 사업에 의한 시제로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 율곡사업에 의한 앙산시대를 거쳐 중화학 선언으로 중화학을 만나 방위산업이 방산과 중화학이 일심동체가 되어 원자재를 제공하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발진한 중화학의 성공과 더불어 방산도 성공의 길로 올라 섰습니다. (중화학은 추후 별도로 상세히 작성 보고할것임)

그이후 방산추진의 원칙인 민간추진에 따라 상공부가 대중소 방산업체를 지정하고 이들 업체에 의한 피눈물 나는 장기간의 노력 끝에 대성공을 거둔 것입니다.

한국의 방산은 71년 박정희 대통령 지시로 시작하여 정부와 민간 방산업체 그리고 국가괸이 철저한 과학 기술자의 3자의 총화 협동의 작품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최종의 걸작품은 1978년 9월 26일 안흥 백사장에서 시험발사에 성공한 ADD의 대전기계창이 개발한 지대지 유도탄 백곰 발사의 성공입니다.

박정희의 실속 있는 자주국방의 모습을 보여준 것 입입니다.

이러한 찬란한 성공의 결과를 누가 만들었습니까? 왜 위대한 박정희 대통령의 작품이라고 말하지 못합니까!

어떤 좌익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박정희 작품이라고 하는 것은 지나가는 시대가 만든 것이므로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것이라고 폄하 합니다.

이러한 사회 풍조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유민주 이데올로기도 무시합니다. 정말로 한국은 반공을 국시로 하는 자유민주주의국가입니까?

오늘날 최근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만 6-7천 불이지만 61년도에 81불, 72년도에는 318불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우리 나리는 세월이 지나가면서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라고요! 아니면 한국의 오늘날의 선전국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라고요! 하늘의 신이 한국민에만 주신 거라고요!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어찌하오리까?

필자는 박정희 대통령의 청와대 시절 방산과 핵개발 그리고 중화학의 만
8 넌 간의 최초와 최종담당 38세의 청년 비서관으로 시작하여 지금 망백이 된 백발노인은 카톡 칼럼으로 눈물을 머금고 진실을 기록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60년대의 혁명정부에서 오랜 기간 절망감에 빠져 있던 한반도의 국민을 희망의 장래를 개척하는 한편 "하면 된다!" "우리도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갖게 하여 전진하였습니다.

박정희는 73년 100억 달러 수출의 중화학선언을 하여 수츨은 목표의 두 배인 200억 불을 달성하고 정부계획 53억 불의 약 4배를 달정한 것입니다

EPB 한국경제지표 (1982.6)
1981년도
1인당 국민소득 $ 1.635
수출 mm$20,866(2억 불)


세계 경제개발 역사에서 7~8% 정도의 초과 달성은 있어도 초과달성을 2배 또는 4배를 달성했다는 기록
은 없습니다.
.

1인당 국민소득은 1,000 달러 계획에 대하여 1,635불을 달성하였습니다. 그야말로 하늘이 놀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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