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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이 생존하였다고 해서 모두 산 사람이 아니다.

작성자예젤죤|작성시간20.09.30|조회수49 목록 댓글 0

◈육신이 생존하였다고 해서 모두 산 사람이 아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 하신 말씀은, 육신이 살아 숨쉬며 의식을 갖고 생존한 모든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말씀은 얼핏 보아 심히 독선적인 내용으로만 보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이 하는 말씀만이 참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요즘 같은 민주주의 개인 인권 시대에 다른 세상 모든 사람들의 말과 글과 사고방식은 모두가 거짓된 말이요 그릇된 글이요 죽은 유령의 사고방식이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독선적인 내용의 말은 이 뿐만이 아닙니다. 즉
"제자 중에 또 하나가 가로되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마태복음 8:21~22) 하신 말씀도, 땅에서 호흡하며 활동하고 있는 상태의 모든 사람들을 생명을 가진 산 자로 취급지 않고, 이미 호흡이 끊어진 송장 취급을 하고 있으며 또 이 송장을 장사지내려고 하는 자녀들이나 호상객들조차도 모두 죽은 자로 취급하였으며, 오직 예수님과 예수님께 속한 자만이 산 사람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서 하신 말씀들 중에 상당한 부분의 말씀들이 이처럼 듣는 사람들로부터 몽둥이 뜸질 당할 내용들이 많습니다. 특히 위와 같은 말씀들은 공맹 도덕에 깊이 빠져 죽은 부모를 신격화시키는 동양권 사람들에게는 당장에 사교로 취급 받기에 충분한 내용들입니다. 그래서 산 부모나 죽은 부모에 대한 효심이 강한 동양권 사람들이 다른 대륙의 사람들보다 기독교의 전도가 늦어졌습니다. 만일 동양권 사람들에게 성경말씀의 영향력이 조금이라도 존재하였더라면, 오늘날 기독교가 이토록 본토 주민들에게 무시와 박해를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무튼 무시와 핍박이 강할수록 그에 상응한 하나님의 상급은 더욱 풍성한 것이니 이제 와서 조상 탓할 필요는 없습니다.

 온 인류의 식자들과 기득권자들이 예수님의 선행과 자비에 대해서는 별도로 취급해 존중하여도 이와 같은 독선의 뜻으로 보이는 말씀들에 대해서는 그 모든 선행과 자비심을 상쇄하고도 남을 분노를 유발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내용의 말씀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전혀 모르는 무지한 사람들로부터 독선과 오만의 소리로 곡해받을 소지가 많았으나 그래도 죽음을 각오하고 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정직하고 진솔한 내용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기가 한 이러한 말씀만이 목숨을 부지해 갖고 호흡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교훈을 두고 인간의 유일무이한 진리와 생명과 길로 자처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세기 2:16~17) 하심 같이,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었어도 그 즉시 호흡이 끊어져 죽은 것이 아니라, 구백삼십 년 동안 자녀들을 낳으며 생존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죽었다고 하는 건 육신의 호흡(목숨)이 끊어진 순간 상태를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비록 육신이 호흡해 기식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해 믿지 않거나 불순종한 상태로 살게 되면, 그의 삶(목숨)은 영생하신 하나님과 함께 영존할 수 있는 생명체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반역한 천사, 곧 사단 마귀(무신론, 공산주의)와 함께 살다가 끝내는 지옥 형벌에 던져질 죄악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삶은 죄악을 숙성시키기 위한 죽음(지옥)의 삶이기 때문에 마치 김일성 일가들의 특혜를 받고 사는 빨갱이들과 같습니다. 그래도 짐승 같은 자들은 빨갱이로 살더라도 육신이 편하고 호의호식하게 되면 그것을 복으로 취급할 뿐, 지옥에 이르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삶이 진정한 생명의 삶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말씀)이 차단된 상태에서 살아가는 모든 죄인들이 아무리 이 세상에서 호의호식하고 음란방탕하고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더라도 그 삶의 종점이 육신의 죽음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참담한 지옥형벌을 예약해 놓고 난후 마지막 진수성찬을 즐기는 짓이기 때문에 그들 모두를 죽은 자, 곧 하나님의 영(말씀, 법)이 차단된 자들로 취급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영(말씀)을 버리고 죽음으로 치닫는 사단의 반역 사상을 따라 선악과를 따먹은 그 시점부터가 이미 죽는 것보다 더 못한 지옥 형벌에 이를 죄악을 숙성시키는 삶이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창세기 3:22~23) 하심 같이, 사람이 비록 육신이 호흡하고 생존할지라도 생명나무의 실과, 곧 죽음의 교훈(사상)을 삼켜 이기는 예수님의 언행, 곧 하나님 아버지께 대한 자식된 분수와 도리를 깨달아 지키지 못할 때에는 아무리 육신의 목숨으로 사단과 함께 히죽거리며 생존할지라도 그 삶은 마치 짐승들이 도축장에서 잡혀 죽기 위해 살이 찐 상태의 삶입니다. 이런 자의 삶은 산 자의 삶이 아니라 잡혀 죽기 위해 태어난 짐승들의 삶입니다.

 사람이 육신의 목숨을 위해 이 땅에서 아무리 아방궁 같은 데서 호의호식하며 즐길지라도 생명 되시는 하나님과 차단된 채 죽음의 영인 사단과 함께 살게 되면, 그것은 산 자로 취급되지 않고 다만 사형수가 마지막 진수성찬을 마음껏 퍼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즉 마귀와 함께 참혹한 지옥 형벌을 예약해 놓고 단말마적인 쾌락을 이 땅에서 즐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에게 있는 생명의 교훈, 곧 마귀의 죽은 교훈을 이기게 하는 복음의 말씀으로 살지 못하는 자들의 그 어떠한 부귀영화 권세에도 그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오직 어느 누구든지 육신의 호흡이 끝나기 전에 신속히 자신의 생명나무의 과실을 따먹는 일들에 대해 초미의 관심을 기울여 그 일들을 하게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사망(사단)에 속한 죽은 자들의 최대 이슈는, 얼마나 높은 권력과 재물을 탈취해 부귀영화로 쾌락하느냐 하는 일입니다. 반면에 생명(예수 그리스도)에 속한 산 사람들의 최대 이슈는, 주님 재림시에 얼마나 예수님 가까이 그의 좌우 자리에 앉아 예수님과 함께 죄인들을 심판하느냐 하는 일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죄인의 신분으로 육신이 호흡하고 숨쉬고 있는 것은 영생할 수 있는 영원한 생명이 아니라, 지옥형벌에 떨어지기 직전에 목숨을 유지하고 있는 일입니다. 반면에 의인의 신분으로 육신이 호흡하고 숨쉬고 있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죽음의 영을 이긴 생명나무의 열매들로서 하나님의 영과 연결된 상태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육신이 호흡하고 숨 쉬는 것은 생명이 아니라 영생과 영벌을 분별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기력인 목숨이며, 생명은 오직 하나님의 영과 연결되어 죽음을 삼켜 이긴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목숨(호흡)이 붙어 있는 순간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 하나님의 영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이를 무시하고 하나님의 영과 차단된 죽음의 상태에서 아무리 부귀영화를 꿰차고 천하를 호령할지라도 그것은 죽을 자에게 차려준 마지막 진수성찬에 불과합니다. 이런 자들의 목숨은 살아있으나 죽은 유령에 불과하여 심판날에 산 자의 명단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책에 자기 이름이 기록되었으냐 기록되지 않았느냐를 자가진단해 보려면, 지금 이 땅에서 생명되시는 예수님의 교훈을 지키며 사느냐, 지키지 않으며 사느냐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http://cafe.daum.net/kblw 기독 애국 신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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