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망은 하나님께 매맞지 않도록 일깨워 주는 참사랑.
사람의 정당한 책망은,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께 지켜야 할 본분을 망각한 자들에게 그 본분을 일깨워 주는 사랑의 경고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할 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태복음 4:17)는 경고부터 하셨습니다. 이 경고는, 흑암한 죄악 세상에 밝고 빛난 천국의 실세가 임하였으니 시급히 돌이키지 않으면 중징계를 당하게 된다는 경고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께 매맞아 죽을 짓을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된 공직자들은 마땅히 죄인들의 악습을 꾸짖어 책망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사람들을 반역해 죄악을 밥먹듯이 저지르는 자들의 가장 시급한 일은, 골백번도 더 죽어야 할 고통보다 더 흉악한 자들에게서 벗어나는 일, 곧 북한 주민들이 김일성 일가들의 압제에서 벗어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예수님은 동서고금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전해 들은 사고방식과 기호와 습성에 빠져 있는 세상 사람들의 추악한 심령을, 자신의 거룩한 피로 씻어 깨끗게 만들고 예수님이 새롭게 가르쳐 주신 말씀으로 거듭 태어나도록 책망하고 권면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세상 사람들의 심령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서 말미암은 거룩한 영들이 아니고, 하나님과 사람들을 반역한 흉악한 들짐승 뱀(사단)의 악령이라는 걸 일깨워 주는 사랑의 책망입니다. 사람이 기존의 추악한 심령의 그릇에다 이웃을 살리고 구원하는 예수님의 거룩한 영을 담으려면, 기존에 담겨 있는 추악한 악령을 말끔히 제거하고 난 후에라야만 비로소 거룩한 영을 담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담긴 사람이어야만 비로소 종북 반역 세력들 같은 거짓과 불법불의와 음란방탕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이런 청소 작업이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파송된 전도자(공직자)들의 직무, 곧 세상 사람들의 행습이 추악하다는 것을 지적해 주는 사랑의 책망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앞서 온 선지자 세례 요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태복음 3:2) 하셨고, 인류의 죄를 씻기 위해 오신 예수님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태복음 4:17) 하셨고, 그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과 성도들도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회개하라"(마가복음 6:12)고 전파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승천하신 예수님을 대신해 세상에 새롭게 파송된 성령 또한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한복음 16:8) 하셨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파송된 모든 관리(전도자)들은 세상 죄인들이 지니고 있는 추악한 악령부터 먼저 추방해 청소합니다.
그런데 초대 교회의 성도(관리)들은 대체적으로 이런 본분에 충실하였으나, 그 이후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관리들이 우상 숭배의 악습을 회개해 버리지 않는 상태에서 예수님의 교훈을 덧입고 행세하였으니, 이것이 이 시대 교회에서 왕노릇하는 신학입니다. 구약 시대의 신학은 그래도 제사장이나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의 믿음이였지만, 신약 시대에 탄생된 카톨릭교의 믿음은 거의 우상 숭배자들의 악습에서 태어난 믿음입니다. 그런데 이런 카톨릭교의 신학을 단죄한 개신교마저도 성령을 스승 삼는 초대 교회의 믿음이 되지 않고, 세상에서 행세하는 학문 지식에 편승하여 인본주의 신앙으로 치달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대는 예수님께로 태어난 순수한 믿음은 없고, 죄인들의 뜻에 맞는 신학의 믿음만 세상에 팽배하였습니다.
신학이 주관하고 있는 적그리스도인들의 심령에는 대체적으로 이러한 생각과 마음들이 자리 잡고 있었으니, 그게 바로 자신들의 심령 구석구석에 잔존해 있는 옛 사람, 즉 아직도 죄악에 대한 미련들을 끊지 못한 죄악의 잔재들을 그대로 유지한 채 예수님의 말씀을 세상의 죄악된 상식과 어울리도록 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건, 곧 예수님을 믿기 이전의 모든 생각과 마음들을 벗어 던져 버리고 오직 예수님의 생각과 마음들로 만들어진 새 옷을 갈아 입는 일들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고린도후서 7:10) 하심 같이, 신앙인은 마치 결혼을 앞 둔 신부와도 같기 때문에 결혼식 날 신랑 예수를 위해 몸과 마음을 항상 깨끗이 단장하여야 합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을 때에는 아직 예수님과 혼약한 상태이지 예수님과 결혼한 상태, 곧 예수님의 친가가 되는 천국에서의 영원한 동거 상태가 아닙니다. 다시 말해, 사람이 예수를 믿는 즉시 지나간 세월에 저지른 죄값은 다 탕감받고 다시 만날 예수님과 결혼하려고 혼약한 상태와도 같습니다. 그래서 신부감으로 선택된 처녀가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청결케 하는 준비의 때가 바로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사는 새로운 삶입니다. 그러므로 신부감으로 선택받은 신앙인들은 아직도 죄가 완전히 씻겨진 상태가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으로 더러운 죄악들을 하나 둘 씻어 내 버리는 신부단장의 때입니다. 그리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을 어느 순간에 만나든지 간에 항상 그 앞에서 남아 있는 죄악의 부끄러움이 없어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 시작이 절반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처음 예수를 믿음으로 영접해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자신의 죄악 때문에 죽으신 예수님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자기 심령에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죄악의 습성들을 뿌리 채 뽑아 제거하여여야 합니다. 즉 죄악과 단절된 삶을 살고 의와 함께 살고자 하는 열정(사랑)만이 사람의 심령을 청결케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지고 갈 육적인 보화는 없어도 오직 예수님의 말씀으로 깨끗하게 된 심령만은 가지고 가야 합니다. 즉 하나님 보시기에 추악한 죄악이 한 점도 없이 깨끗하도록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죄를 깨닫게(청소) 해 주는 성령의 책망은 늘 무시하고, 그저 "교회에 나가 예수 믿고 복받아 천국에 들어가야지"라는 생각만 하는 게 바로 오늘날 죄악 투성이 신앙인들의 허황된 믿음(신학)들입니다.
회개를 이루어 나가는 일도 없이 다만 예수만 믿고 복받아 천국에 가려는 자들은 모두다 죄를 부등켜 안은 채 물질적인 축복을 받아 남못지 않은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교인들이 바로 이 시대의 교인들이며 이런 교인들을 만드는 교육이 바로 신학이며 이런 신학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곳이 신학교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언행으로 심령을 청결케 하는 일일 뿐, 세상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도덕적인 믿음으로는 도저히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습니다. 그런 뜻에서 예수님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 하셨건만, 이들은 자신들이 신학교에서 터득한 믿음으로도 얼마든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고 우깁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아들된 본분을 다하는 믿음만이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설 수 있는 믿음이건만, 이들 신학자들은 인간 학문지식을 근거로해 연구해석한 자신들의 믿음이 세상 사람들로부터도 떳떳이 인정받을 수 있고 하나님 앞에서도 무난히 인정받을 수 있는 최신식 믿음으로 취급해 가르칩니다. 즉 세상 죄인들로부터도 비학문적이고 비과학적인 무속 신앙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받으려고 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신앙생활보다 죄인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신앙생활만 하려 합니다. 신자가 죄인들에게 인정받는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은, 그러나 그런 믿음은 하나님의 이름을 심히 욕되게 하여 여느 죄인들이 저지르는 죄악보다 더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 일으킵니다.
창세 이후 지금까지 예수님의 하나님께 대한 믿음 이 외에는 어떤 믿음도 하나님께 합당할 수 없습니다. 모세도 그렇고 수많은 사사와 선지자들과 군왕들의 믿음도 모두 저마다의 외골수와 그릇된 생각으로 하나님의 뜻을 한 두 가지 이상 거역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들 중 어느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결코 하나님이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이후의 세상의 그 어느 사람들도 모세의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하거나 그 외 성경에 기록된 기라성 같은 유명 선지자나 군왕들의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다고 하거나, 또 가톨릭교의 교황 중심의 믿음이나 또 그런 교황 중심의 믿음을 단죄해 내치고 자신들이 개발한 개신교 신학 중심의 믿음으로도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특히 이 시대의 믿음은 추악한 정치인들이 우상시해 섬기는 인권과 민주화를 빙자하여 하나님의 본뜻을 심히 훼손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개인의 뜻을 존중해 주는 믿음은 사단이 개발한 최악의 무기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미움받아 온갖 선한 일을 행하고서도 참혹한 십자가 형벌을 당하였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못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 증거함이라"(요한복음 7:7) 하심 같이, 하나님의 뜻을 반역한 자들을 책망하는 것이 인권 침해라면, 국법에 어긋난 행악자를 포박하는 경찰관의 행위도 인권 침해에 해당됩니다. 오늘날 종북 반역 세력들이 국법을 반역한 간첩 짓을 버젓이 자행하는 짓을 보다 못해 윤석렬 대통령이 계엄령으로 저들을 응징하려 하자 저들은 되레 대통령을 내란죄라고 뒤집어 씌웁니다.
그래서 세상 죄악과 싸워 이기려는 신앙인은 찾아볼 수 없고 저마다 죄악을 심령에 품고 교회 안에 들어와 죄악의 악취만 풍기고 있습니다. 회개를 자존심 상하는 일, 즉 개인의 푸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일로 취급하는 자들이 교회 안에 가득합니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요한계시록 3:19) 하신 말씀과 전혀 상관 없는 별개의 신앙인들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요한계시록 2:16) 하심 같이, 이들에 대해 예수님이 오래 전에 검을 뽑아 들었습니다. 회개치 않는 거짓된 신앙인들은 살인자들의 밥이 되게 하며, 미국의 오바마와 바이든 같은 자들은 공산주의자들보다 더 악한 방법으로 기독교의 본질을 훼손시켰습니다.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그 안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동케 한 것이 사람의 육신이며, 이렇게 만들어진 사람의 육신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친구로서 영원한 반려자로 영생하려면, 반드시 하나님께로부터의 삶의 방법과 취향을 배워야만 비로소 하나님의 뜻과 취향에 맞는 아들로서 친구로서 반려자로서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인간 저마다의 생각과 취향을 인권으로 존중해 짐승들도 꺼리는 동성애 짓으로 사람의 존엄성을 훼파해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을 욕되게 하면, 그에 대한 죗벌이 바로 영원한 지옥 불못에 던져지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여! 회개를 이루어 나가는 삶이 참된 신앙생활입니다. 예수님의 언행을 근거로한 성령의 책망을 겸허히 수용하여 날마다 거룩한 심령으로 거듭 태어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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