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일기당세(一騎當世) 믿음만이 세상을 이긴다.
농부가 기름진 밭에다 포도나무를 심는 것은, 포도나무로 하여금 땅 속에 뿌리를 깊이 뻗고 줄기가 자라나게 한 후 수많은 가지들을 통해 하나님과 사람들을 기쁘시게 할 포도 열매를 맺기 위함입니다. 농부(뿌리)는 하나님이시며, 줄기는 예수님이시며, 줄기에서 뻗어 나간 가지들이 그리스도인들로서, 이 가지들은 수많은 형질의 여러 가지 포도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므로 포도나무 가지가 뿌리와 줄기의 뜻에 합당한 튼실한 열매를 맺을려면, 반드시 뿌리로부터 오는 영양분(뜻)을 온전히 흡수하기 위해 줄기에 밀착해 붙어 있어야 합니다. 즉 뿌리에서 뽑아올린 영양분이 줄기를 거쳐 가지에 이르기 때문에 포도나무 가지들은 여하한 경우에도 줄기에 밀착되어야만 뿌리로부터 공급되는 영양분으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요한복음 15:5~6) 하심 같이, 포도나무 가지가 된 그리스도인들 또한 줄기가 되시는 예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영양분(말씀)을 집접 공급받지(순종해 지키지) 못하고, 그냥 줄기에 형식적으로 매달려 있는 척 하는 거짓된 가지(신학자나 목사) 노릇을 하게 되면, 반드시 말라 죽어 뿌리와 줄기의 기대치에 맞는 열매도 맺지 못해 결국 농부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잘리움을 당하여 불 속에 던져집니다.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라는 말씀은, 가지 된 그리스도인들이 줄기가 된 예수님(성령님)께로부터 직접적으로 영(하나님)의 말씀(양식)을 공급받아 지키고 순종하였을 때를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포도나무 가지가 된 그리스도인들이 말라 죽은 상태로 그냥 줄기에 붙어 있을 때에는, 그게 바로 형식적으로 줄기에 매달려 있는 외식하는 자들이 되어 예수님의 본 말씀(영양분)을 전혀 받아먹지 못하게 됩니다. 식물인 포도나무 가지가 줄기로부터 오는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하면 매말라 열매를 맺을 수 없듯, 인간 포도나무 가지(그리스도인)들도 줄기가 되신 예수님(성령)으로부터 영의 양식(말씀)을 공급받지(순종하지) 못하면, 하나님과 사람들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의의 열매를 결단코 맺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이치 때문에 예수님이 이 같이 말씀하셨는데, 오늘날의 신학자(목회자)들이 이 말씀을 제 임의대로 요리해 만들어 내 놓은 음식(설교)들을 보십시오. 이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힘써 지키고 순종하는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이 자신들의 죄악을 대신해 죽어 주셨다는 사실만 굳게 굳게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많은 교인들이 줄기가 되신 예수님으로부터 공급되는 영의 양식을 공급받지 못해 말라 죽은 상태로 줄기에(예수님께) 매달려 이름 팔이 노릇만 합니다. 신학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곧 에덴 동산에서 사단이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도록 유혹한 짓과 똑 같습니다.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라는 말씀은 신앙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적으로 지키고 순종하였을 때를 두고 한 말씀이었건만, 저들 신학자(목사)들은 교인들에게 예수님의 본 말씀(영양분)을 친히 먹게끔(지키게끔) 하지 못하게 하고, 자신들의 인간적인 뜻과 야욕으로 해석된 거짓된 복음의 해석들만 듣고 지키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보다 주의 종으로 자처하는 자들의 말을 지키고 따르는 일이 바로 가지가 줄기에 붙어 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즉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교인들을 포도나무 줄기가 되신 예수님께 맡겨 달라붙어 있지 못하게 하고, 오직 자신들의 말만 잘 듣는 죽은 가지들이 되게 합니다. 그래서 이 시대의 교인들 대부분이 예수님의 말씀은 지키지 않아도 목사들의 말만은 잘 따릅니다.
예배라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뵙고 그의 뜻을 찾아 배우는(구하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목사들은 자신들이 연구하고 기획한 종교 의식 행위를 예배 행위라고 주장하며, 또 자신들의 설교 시간 전에 성가대라는 특수 음악인들을 동원해 찬송을 음악적으로 감미롭고 장엄하게 하는 일에 총력을 기우리게 합니다. 옛 사도들과 뭇 성도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고 따른다는 이유로 자신들을 미워해 죽이고자 하는 군중들의 규탄소리를 찬송 삼아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증거)하였건만, 저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실생활 속에서 지키지 못해 영이 매말라 죽은 자들이 부르는 음악을 위한 음악으로 자신들의 메마른 심령을 달래고자 합니다.
예배에 참석한 교인들 대부분이 하나님(예수님)의 본 말씀을 먹고 지키지 못해 메말라 죽어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아름답게 장식된 교회 강단과 그에 준하는 분위기를 연출해 보이고자 하는 음악을 위한 음악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배경 삼아 설교하긴 하여도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본 말씀을 필히 지키게 할 각오와 열정은 전혀 전하여 주지 못하고, 다만 듣는 이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본 말씀을 지키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만족해 하고, 또 남몰래 저지른 죄악에 대한 불안한 심령을 무마시키는 일들을 은혜 받은 일들로 취급합니다. 이런 헛된 예배자들의 뜻에 부응하는 설교가 이 시대 목회자들의 설교 요지입니다.
교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지켰더라면, 저들의 찬송은 바울과 실라의 옥중 찬미처럼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여 모든 매인 것들을 끊게 합니다. 하나님이 그때 그들이 부른 옥중 찬미는 즐겨 들어도, 화려한 교회 강당 무대 위에서 고운 음성으로 박자와 악기에 맞추어 부르는 음악을 위한 음악은 듣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다가 발이 착고에 채워져 감옥에 갇혔어도 그들은 그 일을 감사하고 찬송하였으니, 하나님이 이 어찌 기뻐 들으시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시대의 교인들이 이런 감사 기도와 찬송을 할 수 없게 되자,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사람들이 듣기 좋은 음악을 위한 음악으로 예수님(말씀) 없는 자신들의 심령을 자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뭇 교인들의 찬송 또한 하나님이 듣지 않습니다. 어린 아이가 부모님이 자신의 노래를 듣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에만 신명나게 부모님이 기뻐하시는 노래를 할 수 있을 뿐, 부모님이 외면해 듣지 않을 때에는 노래할 힘을 잃고 중단해 버립니다. 이 시대 교인들의 찬송이 이러합니다. 이렇게 되자 목사들은 무당들의 행습을 본받아 손발짓 다 동원해 흥을 돋웁니다. 부흥사들의 난리법석들을 보십시오. 자신들이 얼마나 하나님께 외면 당하였다는 것을 그대로 반증하고 있습니다. 저들이 하나님의 본 말씀을 먹고(지키고)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더라면, 하나님이 귀 기울여 저들의 기도와 찬송을 즐겨 듣고 모든 매임을 풀어주었을 것입니다.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도록 돕는 것이 전도자(목회자)들의 본분(몫)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일이 십자가 지는 것과 같은 고통이라 하여 그런 일은 배제해 버리고, 다만 자신들의 말만 지키게 한 것이 바로 이 시대 목사들의 뻔뻔스러운 목회 행태입니다. 이 같은 행태가 바로 포도나무 가지가 된 교인들로 하여금 포도나무 줄기가 되신 예수님께로부터 공급되는 하나님의 영양분을 차단케 하고, 그 대신 생명력이 없는 목사들의 허황된 거짓말(신학)만 듣게 됩니다. 즉 포도나무 줄기가 되신 예수님의 언행은 따르지 않고, 이미 포도나무 줄기와 차단되어 말라 죽은 목사들의 말만 듣게 되니 이런 교인들이 어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가지가 열매를 맺을려면 줄기와 어떤 상태가 되어야 합니까? 가지들은 줄기로부터 영양분을 공급받기 위해서는 조그만 틈도 용납지 않고 밀착되어 붙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줄기가 되신 예수님께 밀착된 산 가지인지, 예수님과 단절된 죽은 가지인지를 알려면,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애쓰는 신앙생활이었는지, 죽은 목사들의 말만 잘듣는 신앙생활이었는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수의 통로는 오직 예수님의 언행 뿐이기 때문에 참된 신앙인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의 열매를 맺을려면, 반드시 줄기가 되신 예수님께 밀착되어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질 않고 예수님과의 관계가 차단된 죽은 목사들의 말로는 결코 의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포도나무 줄기가 되신 예수님께 말라 죽은 상태로 간신히 매어달려 있는 신앙인들은, 이제부터 친히 예수님의 본 말씀을 믿음으로 지키고 따라서 예수님과의 관계가 세상 어느 누구와의 관계보다 더욱 친밀하게 되어 하나님의 생명력과 영양분을 가득 받아 의의 열매를 많이 맺는 그리스도인들로 온전히 거듭 태어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이런 상황이 되면, 한반도 거민 모두를 김일성 일가들과 그들을 추종하는 종북 반역 세력들로부터 벗어나 해방시켜 주십니다. 신앙인들의 이런 회개 없이는 그 어떤 국내외적인 영웅호걸들도 동북아 한반도에서는 참된 평안과 행복을 정착시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민족에게 은밀히 일깨워 준 믿음이 있었으니, 그 믿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버지께 대한 일기당세(一騎當世)의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일기당세(一騎當世)의 믿음이란? 자기 혼자서라도 자신을 낳고 양육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세상만 의지하는 모든 사람들과 싸워 이기는 믿음입니다.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고린도후서 10:4~6) 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이론들이 무었이겠습니까? 온갖 무신론에서 탄생된 마귀의 생각들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보다 돈과 권력과 세상 부귀영화가 낫다고 하는 세상 모든 사람들의 말들을 비롯해 거짓과 불법불의와 음란방탕한 짓들로 즐기려는 세상 모든 쾌락들입니다.
사람들의 참된 신분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세상의 모든 충효로운 자녀들과 또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 목숨 바쳐 싸우는 이순신 장군 같은 분들은, 오직 부모님의 뜻과 말씀에 합당하고 또 국법과 국민의 뜻에 합당한 일이라면 죽음을 각오하면서 부모급에 속한 분들의 말씀(국법)을 순종해 지킵니다. 성도들이 죽음을 무릎 쓰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까닭은,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자신들이 세상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자지간의 이런 순수한 사랑은, 우주만물의 모든 힘을 다 합쳐도 깨뜨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일기당세(一騎當世)의 믿음이기 때문에 이런 믿음으로 국가와 국민에게 충성하는 공직자이거나 또 부모님께 효도하는 자식들이나 또 남편에게 절개를 지키는 여인들은, 세상의 그 어떤 형질의 덩치와 숫자와 능력과 권세와 권모술수와 이치와 이론으로도 깨뜨릴 수도 없고 분리시킬 수도 없습니다.
http://cafe.daum.net/kblw 기독 애국 신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