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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자신의 선악관으로만 사람들을 살게 하셨다.

작성자예젤죤|작성시간26.06.18|조회수33 목록 댓글 0

◈하나님이 자신의 선악관으로만 사람들을 살게 하셨다.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들을 에덴 동산에 거하게 하시면서 오직 선악과만은 따먹지 못하도록 금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만물의 선과 악, 다시 말해 '옳고 그름'은 그것들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만이 올바로 구분할 수 있을 뿐, 지음 받은 피조물들이 저마다 자기의 주관적인 생각을 근거로해 만물과 만사의 '옳고 그름'을 임의로 규정하게 되면, 피조물은 온통 다툼과 분쟁으로 지새우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의 대한민국 종북 반역 세력들이, 지키고 실행하여야만 참된 해석이 가능한 국법을 김정은의 잣대로 임의로 해석하고 적용해 온 국민들을 괴롭하고 있습니다. 자식들 중 어느 하나가 자신의 잣대로 부모님의 언행을 임의로 논단하거나 또 형제들의 '옳고 그름'을 임의로 주장하게 되면, 어느 부모가 그를 자식으로 취급하겠으며 또 어느 형제가 그의 독단적인 악행에 대해 반발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자신이 만든 자식 같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선악관으로 세상에서 행세하게 되면, 그것은 사람들 모두가 온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으로 자처하는 짓이기 때문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세기 2:17)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선악관(善惡觀)으로만 세상사를 판단하여야만 평안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창조 세계의 최초의 반역자 사단이,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의 대표가 된 사람들이 하나님의 선악관(善惡觀) 하나로만 사는 것보다, 저마다 자기 육신 위주의 선악관(善惡觀)으로 살아가도록 선동질하였으니 이게 바로 하나님만이 먹을 수 있는 선악과를 사람들도 따먹도록 속인 짓입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저마다의 선악관(善惡觀)을 갖고 자신의 선악관에 합당치 않는 자들과는 사생결단으로 싸우게 되었습니다.

 마귀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선악관(善惡觀) 하나로만 살게 하는 영안(靈眼) 대신, 사람들 저마다의 선악관(善惡觀)으로 살게 하는 육안(肉眼)을 우선 순위에 두었습니다. 영안은 부자지간의 분수와 도리를 존중해 확립케 하고 또 만물과 만사의 전후좌우와 분수와 도리에 맞도록 가르치나. 더듬이 저질 육안은 물질의 대소(大小)나 강약(强弱)이나 미추(美醜) 같은 것들을 근거로해 행세하려 합니다. 그래서 영안을 지닌 사람들은 아무리 사단처럼 육적인 것들로 광대하고 화려하고 웅장하더라도 그것들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안에 합당치 않고 저질스럽고 추악하면 하늘의 천사들도 부모님도 국가도 이웃들도 모두 무시해 짓밟아 버립니다. 그러나 육안을 중시하는 종북 반역 세력들만은 육적인 것들로 부강하게 되면, 마치 제 죽을 날 알지 못하는 송아지들처럼 천방지축 마구 날뛰게 뒵니다.

 사단이 하나님께로 발생되는 영안(선악관)을 존중하였더라면, 결단코 하나님의 신하된 자기 자신이 창조주 하나님을 반역하고자 하는 생각 자체가 반생명의 망동임을 깨닫고 자제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주신 영안 위에다 자신의 뜻과 생각을 더 존중히 여기는 더듬이 촉각류와 같은 까막눈 육신의 색안경을 뒤덮어 쓰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옳다 그르다'라고 판단하기만 하고 믿음으로 순종해 지키지 않았습니다. 마치 정상적인 정신 상태로는 부모님께 행패 부릴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불량배 같은 자식들이 술에 만취하여 부모님에게 행패부리는 짓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마귀가 영과 육으로 조성된 사람들을 찾아가 영안으로는 하나님을 볼 수 없도록 하기 위해 영안 위에 육신의 색안경을 뒤덮어 씌어 그것으로만 세상 만사를 논단케 하였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만은 오로지 모든 피조물이 믿음으로 지켜야 할 말씀이라는 것을 망각한 순간, 육신의 육안에 색안경을 끼고 선악과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이때의 선악과는 심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워 결국 따먹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태복음 24:35) 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발휘되고 말았습니다. 이후부터 사람들은 자신들의 머리카락과 땀구멍끼지 헤아리고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은 믿지 않고, 다만 세상 육적인 것들에 눈이 밝은 소경들의 말만 믿고 따르게 되었으며, 또 더듬이 촉각류에 불과한 육신의 육감(肉感)으로만 만물과 만사를 더듬거리며 무엇을 아는 체 하였으며, 또 세상에 불어닥칠 모든 재앙에 대해 미리 대처하지 않고 그저 육신의 육안에 보이는 대로 세상 재물과 쾌락만 탐해 즐겼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악과를 따 먹게 된 인간들의 결정적인 후유증이자 돌이킬 수 없는 폐해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과일만은 따먹지 못하도록 금하였습니다. 즉 사람들이 선악과를 따먹게 되면, 그 때부터 하나님의 영안에 비하면 까막눈 수준에 불과한 인간 육신의 육안(肉眼)이나 육감(肉感)으로 거룩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영의 형질과 또 영의 말씀을 무시한 채 그가 만드신 광대무변한 우주만물 속에서 자생해 보려고 소경처럼 더듬거리게 되었으며, 또 자기 육신이 영의 주인이 되어 자기 몸을 운전하여야 할 영(생각과 마음)의 실체마저 한낱 육신의 두뇌적인 작용이나 심장 작동에서 발생되는 생체적인 감각(마음) 정도로만 취급하였으며, 또 존재의 근원되신 하나님마저 사람들의 자체적인 지혜와 능력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없었을 때에 찾아 구하는 가상의 신으로만 취급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두가 소경된 인간 육신의 까막눈(육안)으로만 세상 만물과 세상 만사의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약육강식 사상의 폐해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 육신의 육감적(肉感的)인 지식과 능력과 안목이 닿을 수 있거나 미칠 수 있는 곳까지만 무엇이든 존재할 수 있고 또 그것이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실물들로 취급해 두려워할 뿐, 그 이외의 인간 육신의 육안(肉眼)이나 육감(肉感)이 닿지 않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적인 형체와 힘과 능력들은 모두 자연적으로 발생되는 힘, 곧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거나 지진이 발생하거나 별들이 떨어지는 일들은 다만 그것들이 지닌 스스로의 힘에 의해서만 발생된 자연적인 힘일 뿐, 결코 그것들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의 뜻이 친히 개입해 좌우되는 현상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때문에 인간 육신을 좌우하여야 할 운전수가 된 영혼이, 하나님의 영과 천사들의 영과 또 자신들과 똑 같은 형질을 지닌 이웃 사람들의 육신 안에 거하는 영들과 직접 의사 소통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육신의 까막눈(육안)이 자신의 영과 다른 사람의 영 사이를 가로 막는 절영체(絶靈體) 노릇을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처음에 만들어졌을 때에는 육신의 육안(까막눈)을 잣대 삼아 만물과 만사를 분별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룩한 영안으로 하나님과 천사들을 대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따먹게 되자 육신의 까막눈이 창조주 하나님과 그가 만드신 만물과 만사의 선악을 임의로 규정하려 하였으며, 또 그 더듬이 촉각으로 영의 실체와 우주만물과 자신들의 근본까지 재규명하려 하였습니다.

 영과 영 사이, 곧 영들끼리는 모든 의사(意思)가 거리낌 없이 소통됩니다. 하나님이 갖고 계신 선악관(善惡觀) 하나로만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가 부자지간의 관계임을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상태의 사람들을 사단이 이간질해 틈을 만들었고, 그 틈 사이에다 흙으로 조성된 인간 육신의 선악관(善惡觀)을 끼워 넣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선악관 하나로만 살아갈 때에는 하나님의 영안으로 영과 육에 속한 모든 것들을 정확무오하게 알 수 있었으나, 사단의 꾀임으로 하나님의 선악관을 버리고 자기 육신의 더듬이 육감에서 발생되는 선악관으로 세상 만물과 만사를 살펴보게 되자, 그만 육신의 육안(肉眼)이 영안(靈眼)의 콩깍지가 되어 영들 사이의 의사 소통을 끊는 절영체(絶靈體) 노릇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과 하나님 사이, 또 사람(영)과 사람(영) 사이에 하나님의 선악관(善惡觀) 하나만 존재하였을 때에는 사람들이 맑고 밝고 정확한 영안으로 하나님과 사람들의 내면 실체와 정황을 인식할 수 있었지만, 인간 육신 육감의 선악관(善惡觀)이 주제넘게 개입하게 되자 그때부터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사람의 영안은 콩깍지 수준의 육안에 뒤덮이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볼 수 있었던 맑고 밝고 정확한 영안이, 콩깍지 수준의 육안으로 뒤덮이게 되자 사람의 육신은 자기 주인된 영혼마저 부인하게 되었고, 또 김일성 일가들처럼 이웃 주민(영)들끼리도 직접 의사 소통을 하지 못하고, 다만 콩깍지 수준의 육안만 속일 수 있는 거짓 행위로 삼팔선을 만들어 이웃들을 속이고 속으며 살아가도록 한 것이 바로 사단의 한반도 경영입니다.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욥기 19:26) 하심 같이, 사람이 콩깍지 수준의 절영체(絶靈體), 곧 인간 육신의 육감(肉感)으로만 만물과 만사의 선악(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판단하려 할 때에는, 결코 거룩한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 볼 수가 없고 모두 다 자신들이 상상하고 꾸며볼 수 있는 거짓되고 허황된 우상의 하나님만 만들어 섬기게 됩니다. 이런 콩깍지 수준의 절영체를 벗겨 버리고 태초에 주어진 영안, 곧 창조주 하나님 한 분의 선악관(善惡觀) 하나로만 살려고 할 때에는 비로소 참된 하나님의 실체와 이웃 사람들의 존귀함을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무지막지한 인간 육신의 육안을 기준 삼는 자들은 오늘날의 종북 반역 세력들처럼 무슨 일이든 고통과 혼돈만 가중시킬 뿐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고통과 혼돈을 보십시오. 하나 뿐이어야 할 국가관(선악관)만 가져야 할 국민들에게 빨갱이들의 가증스러운 국가관을 뒤집어 씌워 영안(靈眼)을 무디게 하여 국가백년대계는 물론이거니와 통일의 길마저 가로 막습니다. 저들의 국가관(선악관)으로 나라를 다스릴 때에는 콩깍지로 뒤덮인 소경들이 되어 자신들은 물론이거니와 이웃과 사회와 나라마저 갈바를 모르고 더듬거리게 됩니다. 세상이 이 같은 혼돈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된 근본 원인은, 세상의 빛과 소금노릇을 하여야 할 기독교인들이 영안을 지닌 성령의 가르침은 따르지 않고, 육신의 까막눈으로만 말하는 신학자(목사님)들, 곧 세상 죄를 꾸짖고 책망하다 받는 고통이 두려워 선을 악하다 하고 악을 선하다 하는 자들을 추종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한1서 2:15~17) 하셨습니다. 여기에 쓴 이 글들은 오래 전에 이미 기록되어 전하여 졌으나, 저들은 콩깍지가 덧 쉬운 까막 눈 더듬이로 이 글이 유명한 신학자들의 글이 아니라 하여 무시해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진리에 속한 모든 말과 글은 어떤 피조물에게도 무시당하지 않고 반드시 말하고 기록된 그 뜻 그대로만 세상 일을 진행시킬 뿐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거룩한 성령만이 그들의 개인 교수가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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