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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동화

[불교신문 신춘기작 -김혜란 지음]아침으로 간 아이

작성자백운 곽영석|작성시간26.06.23|조회수1 목록 댓글 0


[불교신문 신춘문예 가작]동화 부문


아침으로 간 아이
                                                                - 김혜란


누렁이 생각에 잠을 설친 선재는 늦잠을 자는 바람에 스님께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비질에 쓸데없이 힘이 들어가 흙먼지만 사납게 풀풀 날리는 중입니다.

선재보다 나이가 더 많은 누렁이는 형제처럼 의지하고 함께 뒹굴던 친구였습니다. 그런 누렁이가 작년인가부터 치적치적한 눈에 눈꼽을 한 줌 매달고 다니더니, 며칠 전 명을 다해 떠나고 만 것입니다.

가슴이 물어뜯기는 것처럼 아파 와 선재는 서럽게 울었습니다.

선재는 먼 시선으로 요사채 옆 은행나무를 봅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누렁이의 집이 있던 곳입니다.

“누렁아….”

당장이라도 꼬리를 흔들며 달려올 것 같아 낮게 불러 보지만 누렁이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선재야!”

스님이 법당에서 나와 댓돌로 내려서십니다. 퉁퉁 부어 있기는 했어도 어느 새 빗살처럼 결 바르게 쓸어 놓은 마당을 보고 스님은 미소가 번집니다.

“오후에 귀한 손님이 오실 거다. 방을 치워 놓도록 해라.”

“할머니 시키면 되잖아요.”

퉁퉁 부은 볼이 더욱 불거져 나오는 선재를 향해 스님은 미소를 지어 보이십니다.

“공양주 보살님은 오늘 못 오실 거다. 잊었느냐?”

딸이 아기를 낳아서 그 곳에 가신다던 할머니 말이 이제야 생각났습니다.

‘치이~, 하필 이럴 때….”

선재는 툇마루에 엎드려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뭉개뭉개 모여드는 구름이 솜사탕도 되고 토끼도 되고 누렁이 얼굴도 됩니다.

심술궂은 바람이 누렁이의 얼굴을 밀어내고 다른 모양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처마 밑으로 내려온 바람이 부산스럽게 풍경을 흔들어 대는 걸 보면 구름이 비를 숨기고 있는 것인지 모릅니다.

지금처럼 바람이 절마당을 훑고 다닐 때면 누렁이는 비 냄새라도 맡는 것처럼 코를 쳐들고 킁킁거렸습니다. 젖뗄 때 떨어져 나왔다던 고향 바다 냄새가 그리워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물을 유난히 좋아한 누렁이는 비가 오면 마당을 겅중겅중 뛰어다녔습니다. 덩달아 겅중거리다 어김없이 스님께 한걱정 듣기는 했지만, 살갗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의 느낌이 좋았고, 풀 냄새와 어우러진 비 냄새도 왜 그렇게 좋았는 지 모릅니다.

선재는 누렁이처럼 코를 쳐들고 킁킁거려 봅니다.

“선재야, 공양미 좀 내오거라.”

공양주 할머니 대신 오늘은 스님이 저녁밥을 지으실 모양입니다.

“곧 손님이 오실 테니 넉넉히 내오거라.”

스님은 우물가에서 호박잎을 씻고 계십니다.

“누렁이 집은 어디다 치우셨어요?”

스님 앞에 쪼그려 앉아 쌀을 씻던 선재는 심통맞게 묻습니다.

“가는 걸 잡고 놓아 주지 않으면 가는 길이 더 힘들어지는 게다. 누렁이는 보내 주고 공양미는 잡아 두거라.”

선재는 깜짝 놀라 바닥으로 흘러 내리는 쌀알을 손으로 받아 냅니다.

가슴을 쓸고 지나가는 낮은 풍경 소리에 숨겨진 서늘한 바람이 누렁이의 숨결처럼 스쳐갑니다. 눈물 대신 외로움 한 조각이 손 끝에 와 닿는 쌀알 속에 흩어져 내릴 때 일주문쯤에서 자동차 소리가 조심스럽게 들려 옵니다.

명치 끝이 알싸한 선재의 눈에 감빛 노을이 들어옵니다. 그 노을 속으로 조금씩 솟아오르는 크고 작은 그림자의 모습이 선명해집니다.

스님을 향해 합장하는 엄마 옆에 누렁 강아지를 품에 안고 선 아이의 말간 눈동자가 선재와 마주칩니다.

선재의 텅 빈 가슴으로 또다시 풍경 소리가 들려 옵니다.

선재는 아이가 영 맘에 들지 않습니다. 부처님 앞에서 모자를 벗지 않아도 내버려 두는 스님도 이해되지 않았지만, 저녁 공양하는 내내 모자 벗을 생각을 하지 않는 아이가 더 얄밉기만 합니다.

엄마는 스님의 목탁 소리에 맞춰 삼천배를 시작했고, 요사채 툇마루에 앉은 아이의 눈동자는 신기한 듯 내내 선재를 따라다닙니다. 아이의 품에 안긴 누렁 강아지를 볼 때마다 죽은 누렁이가 생각나 심사가 어수선한 선재는 아이의 시선에 더욱 화가 납니다.

설거지를 마친 선재는 자기 방에 아이를 위해 자리를 깔아 놓아야 합니다.

방으로 들어가려던 선재는 얄미운 아이의 모자를 재빨리 잡아챕니다. 아이의 민머리가 불빛에 반짝이자 선재의 얼굴에 얄궂은 웃음이 번집니다.

“민머리 주제에 그런 청바지 입고 다녀도 돼냐?”

“화장실이 어디야?”

물음에는 미소만 슬쩍 내비치고 화장실을 찾는 아이를 보니 무시당한 것 같아 더욱 속이 꼬입니다.

선재는 손전등을 비추고 앞서 산길을 오릅니다.

꼬불꼬불 산길을 오르고 내리더니 어둠 속에 낮게 앉은 화장실을 턱끝으로 가리킵니다. 아이는 선뜻 들어서지 못하더니 누렁 강아지를 선재에게 넘겨 주며 걱정스럽게 묻습니다.

“...기다려 줄 거지?”

“겁쟁이구나?”

“아니야!”

아이는 버럭 소리지르고 화장실로 성큼성큼 걸어갑니다. 잠시 후 발소리를 죽이고 다가간 선재는 귀신 소리를 내며 화장실 문을 흔들어 댑니다.

“엄마야!”

화장실에서 뛰쳐나온 아이의 얼굴이 손전등 아래 창백합니다.

“겁쟁이 맞잖아, 킥킥!”

“아니야, 아니라니까!”

“좋아, 겁쟁인지 아닌지 확인하러 가자.”

선재는 누렁 강아지를 안은 채 아이의 손을 덥석 잡아 이끕니다. 가늘고 차가운 아이의 손을 잡자 왠지 가슴이 서늘해집니다.

다람쥐처럼 산길을 오르는 선재를 따라가는 아이의 숨이 턱까지 차오릅니다. 그럴수록 선재는 더욱 의기 양양하게 발길을 내딛습니다.

스산한 바람이 산길을 훑으며 따라오고, 축축한 공기가 아이의 이마에 맺힌 땀을 끈적이게 합니다. 달리듯 산길을 오른 선재는 산등성이에 있는 석굴 안으로 들어갑니다.

“우리 스님이 공부하시는 곳이야.”

선재가 더듬거려 성냥을 찾아 초에 불을 붙이는 동안 아이는 헐떡이는 숨을 고릅니다.

“여기서 한 시간만 혼자 있어 봐. 그럼 겁쟁이가 아니라는 걸 믿어 주지.”

절마당에 들어서는데 후둑후둑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번개가 어두운 하늘을 일순간 밝히더니 천지를 쪼갤 듯한 천둥이 뒤따릅니다. 누렁 강아지가 선재의 품으로 파고듭니다.

불안한 눈으로 하늘을 보는 선재의 귀에 스님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아이는 자고 있느냐?”

“예? 예...”

스님은 안타까운 시선으로 불 꺼진 요사채를 바라보십니다.

“타고난 명이야 어쩌겠느냐마는 어미의 정성이 갸륵하니 좋은 곳으로 갈 게다.”

순간 선재는 깜짝 놀랍니다.

“누가 어딜 가요?”

“함께 온 아이가 몹쓸 병으로 제 명을 다 못 채울 것 같다는구나.”

“몹쓸 병이라니요? 그럼 죽는 건가요? 우리 누렁이처럼?”

“나무 관세음보살...”

스님은 다시 법당으로 들어가시고 선재는 우산을 들고 빗속을 내달립니다.

작은 손전등 불빛이 빗줄기 속에서 흔들리고, 흘러내리는 흙탕물 때문에 자꾸만 발이 미끄러집니다. 좁은 산길을 오르고, 내리막길을 구르듯 달리고, 불어나기 시작하는 계곡물을 철벅거리며 건너는 선재의 마음은 급하기만 합니다.

불빛이 새어나오는 석굴 입구에 오도카니 앉은 아이가 미소지으며 손을 흔듭니다. 젖은 생쥐꼴로 뛰어오던 선재는 우뚝 멈춰 섭니다.

“좋아, 겁쟁이 아니라는 거 인정한다.”

선재는 우산과 누렁 강아지를 아이에게 건네고는 성큼성큼 앞서 걷습니다.

화난 사람처럼 퉁명스럽게 대하지만 사실 미안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같이 쓰고 가자.”

“됐어.”

앞서 걷던 선재가 갑자기 걸음을 멈춥니다. 어느 새 불어나 무섭게 흘러내리는 계곡물을 도저히 건널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선재는 다시 휙 돌아서서 여전히 화난 걸음으로 석굴로 향합니다.

아이는 석굴 입구에 고집스럽게 앉아 있는 선재의 뒤통수를 바라봅니다.

비에 흠뻑 젖은 선재의 몸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 오릅니다.

“그렇게 화난 척하지 마. 난 괜찮아.”

아이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선재는 아무런 대답이 없습니다.

“해 뜨는 게 보고 싶어서 엄마한테 일찍 깨워 달라고 한 적이 있었어. 난 늘 늦잠을 자거든.”

“칫, 해 뜨는 게 뭐 별거라구….”

“그런데 엄마는 깨우지 않으신 거야. 자는 것도 힘들어 보여서 차마 깨우지 못하셨다는 거 다 알면서 엄마한테 막 화를 냈어. 사실 화난 건 아닌데 엄마한테 미안해서 골난 척한 거지 뭐.”

“강아지 이름이 뭐냐?”

“절에 오다가 시장에서 샀는데 아직 이름을 못 지어 줬어.”

“털이… 누렁이네.”

“이 강아지가 날 보더니 꼬리를 흔드는 거야. 한 번도 키워 본 적은 없지만 키워 보고 싶었어.”

“어렵지 않아. 그냥 친구처럼 대하면 돼.”

“강아지 이름만 궁금하고 내 이름은 안 궁금하니?”

“...뭔데?”

“상제. 엄마 뱃속에 있을 때 할아버지가 지어 주신 이름이래. 여자아이든 남자아이든 무조건….”

“어려서 울기 잘해서 상제라고 했다는 상제 보살이랑 이름이 같네?”

아이의 말꼬리를 자르며 공연스레 떠들어 대는 선재에게 아이는 정색을 해 보입니다.

“난 울지 않아. 내가 울면 엄마가 더 힘들어하시는걸. 엄마는 내가 먼저 가야 한다는 걸 도저히 못 받아들이시겠데.”

‘사랑하는 누군가를 먼저 보낸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난 잘 알아.’

잠든 누렁 강아지를 보는 선재의 가슴이 다시 저려 옵니다.

“아픈 것보다 엄마가 슬퍼하시는 게 더 힘들어.”

선재는 쌀을 씻을 때 스님이 하시던 말씀이 떠올라 살며시 눈을 감습니다.

‘잘 가, 누렁아. 하지만 널 잊는다는 뜻이 아니라는 거 알지?’

거센 빗줄기는 조금씩 누그러드는데 계곡을 쓸고 내려가는 물소리는 여전히 요란합니다.

“머리카락이 없어서 나랑 같은….”

“스님인 줄 알았구나?”

질문을 할 때면 평소보다 한 음 높아지는 아이의 목소리는 맑은 날의 풍경소리 같습니다.

“넌 어떤 땐 말하는 게 여자 같은 거 알아?”

말없이 미소 지으며 바라보는 아이의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립니다.

“히~, 배고프다.”

“저녁 공양 때 깨지락거리더라니….”

“하지만 화는 안 나.”

“화?”

“난 배고프면 화가 나거든. 병원에서 검사하느라고 커다란 기계 안에 누워있을 때면 무섭다는 생각보다 배고파서 막 화가 나.”

“난 화가 나면 배가 고파지는데.... 킥!”

“그럴 때면 뻥튀기 과자가 먹고 싶어져. 와작와작 소리나게 먹고 있으면 왠지 아픈 것도 사라지고 기분이 나아지거든.”

“우리 친구 하지 않을래?”

“나 오줌 마려운데...”

선재는 활짝 웃으며 아이의 어깨를 탁 칩니다.

“누가 멀리 가나 시합하자!”

“안 돼! 넌 돌아앉아서 귀 막아!”

화들짝 놀라며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아이의 말에 선재는 어이가 없습니다.

“계집애도 아니고 뭐냐? 아이고, 그래! 안 본다, 안 봐!”

귀를 막고 홱 돌아앉자 벽에 길게 드리운 아이의 그림자가 보입니다. 얼굴 가득 퍼지는 웃음을 참는 선재의 두 눈이 아이의 그림자가 쪼그려 앉는 것을 보고 놀라움으로 점점 크게 벌어집니다.

선재는 머릿속이 하얗게 지워지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불을 사르는 촛불이 불안하게 흔들리다 사방은 곧 어둠에 먹혀듭니다.

어둠 속에 오도카니 앉은 선재와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약속이나 한 듯...

스산한 새벽 공기에 오돌오돌 떨던 아이의 뜨거운 머리가 천천히 선재 어깨에 기대 옵니다.

“춥고 졸린다. 해 뜨는 거 보고 싶은데….”

아이의 힘없는 목소리가 누렁이를 보낼 때보다 더 가슴 아프게 합니다.

간간히 들리는 낙수 소리에 놀란 안개가 희뿌옇게 피어 오릅니다.

어깨와 목덜미로 무게를 실어 오는 아이의 민머리가 뜨거워 선재의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힙니다.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겨우 꺼낸 선재는 만지작거리기만 할 뿐 팔을 올릴 수가 없습니다. 손수건을 꺼내느라 아이의 머리가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머리는 조금씩 차갑게 느껴지는데 선재의 눈꺼풀은 왠지 자꾸 뜨거워집니다.

뎅~

뎅~

뎅~

산자락을 타고 울려 퍼지는 범종 소리에 안개가 흩어집니다.

그 사이로 간밤의 비에 말갛게 씻긴 아침 해가 조금씩 얼굴을 내밉니다.

‘보고 있니? 해가 떠오르고 있어.’

소리 내지 못하는 목울대가 쿨렁이자 선재의 턱끝에 매달렸던 눈물이 떨어집니다. 불안하게 쥐었다 놨다 하는 회색 손수건에 수놓인 연꽃 위로….

언제 잠이 깼는지 누렁 강아지가 선재의 손을 핥아 줍니다.

〈끝〉


/ 동화부문 심사평


자기 목소리 내는 작품 드물어

동화작가는 이야기꾼이자 포교사


- 반칠환 (시인.동화작가)


불교신문 신춘문예답게 불교적인 소재를 다룬 작품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러나 소재를 넘어서 자기 목소리로 말하고 있는 작품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적막한 산사, 스님 한 분과 아이 하나, 풍경소리 아니면 목탁소리. 열이면 아홉 편의 배경이 절 마당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익숙한 소재라 해서 좋은 작품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치열한 고민 대신 택하는 손쉬운 소재주의가 독자를 울릴 수 없다. 불교동화를 표방하는 글쓰기가 경계 없는 불교정신을 몇 마디 설익은 불교용어에 가두어 두는데 앞장서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동화작가가 된다는 것은 포교사가 아니라 이야기꾼이 되는 것이다. 물론 진정한 이야기꾼이 된다면 훌륭한 포교사의 역할까지 아우를 것이다. 불교동화 이전에 동화가 되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가장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박윤주의 〈싸움소 장비〉, 김혜경의 〈콩나물 일기〉, 강경희의 〈바다에서 태어난 나무〉, 김혜란의 〈아침으로 간 아이〉 등 네 편이었다.

박윤주의 〈싸움소 장비〉는 싸움소의 새끼로 태어나 역시 싸움소로 길러지는 소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싸움소 장비는 ‘인간’을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명예’와 ‘자유’를 위해서 싸운다. 흥미로운 소재와, 창작을 위한 성실한 취재가 엿보였으나 문체의 미숙함으로 인해 먼저 제외되었다.

김혜경의 〈콩나물 일기〉는 냉장고 속 깍두기와 사이다와 콩나물이 등장인물로 나온다. 대화체 위주의 간명하고 생기 있는 문장이 장점으로 꼽혔으나 발상의 신선함을 주제의식까지 밀고 가는 구성력과 추진력이 부족했다.

강경희의 〈바다에서 태어난 나무〉는 벌목꾼에게 베어진 무인도의 자작나무가 구도자적인 자세로 오랜 고통을 이겨내고 부처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겨 담는 대장경 경판이 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좋은 소재이나 관념에 치우치고, 활달한 상상력이 없는 게 단점이다.

김혜란의 〈아침으로 간 아이〉를 가작으로 뽑는다. 이 작품도 소재주의의 혐의가 없지 않으나 안정된 문장과 섬세한 묘사가 돋보였다. 다른 작품을 쓰더라도 소재에 묻히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끌어나갈 수 있으리라는 이야기꾼의 자질을 높이 샀다.

다만 작중 인물들의 대사나 행동이 저마다 구축된 성격과 사건의 필연성에서가 아니라 작가의 의도에 따라 작가의 말을 대신하고 있는 점이 아쉽다.

‘아침으로 간 아이’와 함께 동화의 아침에 나오게 된 것을 축하드린다. 건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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