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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단 의식 예불

[스크랩] 관음시식 (글쓴이: 우리스님 )

작성자지엽|작성시간08.09.09|조회수471 목록 댓글 0

관음시식
글쓴이: 우리스님

관욕을 마치고 가지예성을 진행하고 나서 영가를 영단에 안치하였으면, 곧바로 이어서 신중단을 향하여 신중작법을 진행한다. 그리고 상단을 향하여 불공을 하는데 주불이 부처님일 경우는 삼보통청을 진행하고, 법당 내에 지장보살님을 모셨거나 주불이 지장보살님일 경우는 지장청을 진행하면 된다. 주불로 부처님을 모신 경우라 하더라도 지장청을 해도 무방하다.

부처님이나 지장보살님을 청하여 영가를 극락세계로 인도하여 달라는 요지의 불공을 드리고 나면 이 공양을 신중단에 내려 권공을 드려야 한다.

영가를 위하여 영가법문을 하고자 할 때는 관욕을 마치고 바로 영가법문을 하면 되며, 회심곡을 할 경우는 상단불공을 진행하다가 축원을 하기 전에 위패를 부처님 앞에 안치하고 향로와 촛대를 갖추고 진행하면 된다.

신중님에 대한 권공이 끝나면 이제는 관욕을 마치고 영단에 모셔놓은 영가를 상대로 관음시식을 진행해야 한다. 관음시식을 진행할 때는 소리만 따라 할 것이 아니라 더욱더 정신을 집중하여 그 뜻을 깊이 관하도록 힘써야 한다.




<원 문>

거불(擧佛)

나무극락도사아미타불(南無極樂導師阿彌陀佛) (1배)

나무좌우보처관음세지양대보살(南無左右補處觀音勢至兩大菩薩) (1배)

나무대성인로왕보살마하살(南無大聖引路王菩薩摩訶薩) (1배)




<<역 문>>

(극락 삼귀의)

극락세계로 이끄시는 스승 아미타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좌?우에서 도우시는 관세음?대세지 두 큰보살님께 귀의합니다.

아주 크게 성스러운 인로왕보살님께 귀의합니다.




<진 행>

신중단에 대한 퇴공이 끝나면 영단을 향하여 극락교주 아미타불, 좌우보처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인로왕보살의 극락의 네 성인에 대한 거불을 해야 한다. 여기서는 필자의 임의대로 극락회상의 성인께 귀의한다는 의미로 극락삼귀의라 하였다.

목탁과 요령 태징에 맞추어 대중이 함께 일어서서 거불성으로 같이 해야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앉은 채로 염불성으로 한꺼번에 같이 할 수도 있다.

일어서서 거불성으로 할 때는 거불을 할 때마다 큰절을 해야 하지만 앉아서 염불성으로 진행할 때는 인로왕보살마하살을 외울 때 반배를 하면 된다. 두 가지 경우 모두 제자들은 삼정례를 시키도록 한다.




<해 설>

거불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부처님의 이름을 거명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필자의 임의대로 거불을 극락삼귀의라 하였는데, 극락세계에는 극락세계를 건설하여 주인 되시는 아미타부처님과 극락세계의 장엄을 유지하는 아미타불의 마흔여덟 가지 원력에 의해 구성된 진리의 세계, 그리고 아미타불을 도와 극락세계를 장엄하고 중생들을 제도하시는 보살님들이 계시다. 그러므로 아미타불과 아미타불의 48대원과 아미타불의 권속들인 관음?세지보살님과 인로왕보살님께 귀의하는 형태를 취하게 되므로 극락삼귀의라고 이름붙여 보았다.

관세음보살은 자비를 상징하고, 대세지보살은 세력, 즉 복력을 상징한다. 극락세계에 계신 아미타불의 원력은 두 보처보살인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의 능력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관세음보살의 자비에 의하여 중생들이 극락에 가서 날 수 있으며, 극락세계의 모든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완전히 갖춰지는 것은 대세지보살의 세력, 큰 복의 힘에 의해서이다. 그리고 이 극락세계로 중생을 인도하는 분이 인로왕보살님이다.

관음시식을 통해서 영가를 천도하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극락세계의 네 성인께 귀의해야 한다.




<원 문>

거량(擧場)

거사바세계(據娑婆世界) 차사천하(此四天下) 남섬부주(南贍部洲) 해동(海東) 대한민국(大韓民國) 산(山) 사(寺) 청정수월도량(淸淨水月道場) 원아금차(願我今此) 지의성심(至意誠心) 생전효행(生前孝行) 사후(死後) 제당(第當) (49일(日), 백일(百日)) 지신(之辰) 천혼재자(薦魂齋者) 거주(居住) 행효자(行孝子) 복위(伏爲)

소천망(所薦亡) (엄부(嚴父)) 소천망(所薦亡) 영가(靈駕)

재설(再說) 원아금차(願我今此) 지의성심(至意誠心) 생전효행(生前孝行) 사후(死後) 제당(第當) (49일(日), 백일(百日)) 지신(之辰) 천혼재자(薦魂齋者) 거주(居住) 행효자(行孝子) 복위(伏爲) 소천망(所薦亡) 영가(靈駕)

삼설(三說) 원아금차(願我今此) 지의성심(至意誠心) 생전효행(生前孝行) 사후(死後) 제당(第當) (49일(日), 백일(百日)) 지신(之辰) 천혼재자(薦魂齋者) 거주(居住) 행효자(行孝子) 복위(伏爲) 영가(靈駕) 영가위주(靈駕爲主) 복위기부(伏爲記付) 상세선망(上世先亡) 사존부모(師尊父母) 다생사장(多生師長) 누대종친(累代宗親) 제형숙백(弟兄叔伯) 자매질손(姉妹姪孫) 원근친척(遠近親戚) 등(等) 각열위영가(各列位靈駕) 차도량내외(此道場內外) 동상동하(洞上洞下) 유주무주(有主無主) 일체애고혼(一切哀孤魂) 제불자등(諸佛子等) 각열위영가(各列位靈駕) 내지(乃至) 철위(鐵圍) 산간(山間) 오무간지옥(五無間地獄) 일일일야(一日一夜) 만사만생(萬死萬生) 수고함령(受苦咸靈) 제불자등(諸佛子等) 각열위영가(各列位靈駕) 내지(乃至) 겸급법계(兼及法界) 보여군생(普與群生) 사생칠취(四生七趣) 삼도팔난(三途八難) 사은삼유(四恩三有) 일체유정무정(一切有情無情) 애고혼(哀孤魂) 제불자(諸佛子) 등(等) 각열위열명영가(各列位列名靈駕)

착어(着語)

영원담적(靈源湛寂) 무고무금(無古無今) 묘체원명(妙體圓明) 하생하사(何生何死) 변시(便是) 석가세존(釋迦世尊) 마(摩) 갈엄관지시절(竭掩關之時節) 달마대사(達摩大師) 소림면벽지가풍(少林面壁之家風) 소이(所以) 니련하측(泥蓮河側) 곽시쌍부(槨示雙趺) 총령도중(?嶺途中) 수휴척리(手携隻履)

제불자(諸佛子) 환회득(還會得) 담적원명지(湛寂圓明底) 일구마(一句?) (양구(良久))

부앙은현현(俯仰隱玄玄) 시청명역력(視聽明歷歷) 약야회득(若也會得) 돈증법신(頓證法身) 영멸기허(永滅飢虛) 기혹미연(其或未然) 승불신력(承佛神力) 장법가지(仗法加持) 부차향단(赴此香壇) 수아묘공(受我妙供) 증오무생(證悟無生)




<<역 문>>

(도량을 거듬)

사바세계 이 사천하 남염부제 해동 대한민국 도(시) 군(구) 동 번지 산에 있는 청정하고 뛰어난 도량 사에서 에 거주하는 행효자 가 영가께 지극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살아계실 때는 효도를 다하다가 돌아가신 지 어언 49일을 맞아 천도를 하고자 합니다.

거듭 설하건대, 지금 지극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살아계실 때 효행을 다하던 에 거주하는 행효자 가 돌아가신 아버지 영가의 49재일을 맞아 망 엄부 영가를 청하옵니다.

재삼 설하건대, 지금 지극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살아계실 때 효행을 다하던 에 거주하는 행효자 가 돌아가신 아버지 영가의 49재일을 맞아 망 엄부 영가와 영가를 위주로 복위가 되거나 기부가 되는 웃대 세상에서 먼저 가신 스승과 부모 되는 영가, 오랜 생에 걸쳐 어른 되었던 영가, 여러 세대에 걸친 종친들과, 형과 아우, 숙부와 백부, 언니와 누이, 조카와 손자, 멀고 가까운 친척 되는 모든 영가 내지 이 도량 안과 밖의 동네 위나 동네 아래에 주처가 있거나 없거나 슬프고 외로운 영가와 모든 불자들의 여러 영가, 철위산으로 둘러쳐진 무간지옥에서 하루낮 하루밤에 만 번 살아났다가 만 번 죽는 고통을 받는 모든 영가, 내지 아울러 모든 법계에 널리 모여 사는 무리들과 태?란?습?화로 태어나는 네 가지 생령들과 일곱 가지 갈래와 여덟 가지 어려움의 지옥?아귀?축생 삼악도와 네 가지 은혜가 있는 욕유?색유?무색유 세계의 일체 마음(유정)이 있거나 마음이 없거나 한 슬프고 외로운 혼과 모든 불자들의 여러 영가를 모두 청하옵니다.

(착어)

신령스러운 근원은 맑고도 고요하여 옛과 지금이 다르지 않고, 묘한 본체는 뚜렷이 밝은데, 어떤 것을 태어남이라 하고 어떤 것을 죽음이라 하는가. 곧바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마갈다국에서 관문(6근의 문)을 닫는 때가 있었으며, 달마대사는 소림굴에서 (9년 동안) 면벽하신 가풍이 있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니련선하 옆에서 관 밖으로 두 발을 보이셨고, 총령을 넘어가는 도중에 손에 짚신 한 짝만 들고 가셨습니다.

모든 불자들이시여, (이 자리에 동참한 영가와 대중들이시여) 한 생각 돌이키면 맑고 고요하고 뚜렷이 빛나는 근원을 얻을 것입니다.

제 일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잠시 후 요령을 세 번 울리고)

(고개를) 구부리면 숨어버리고 우러르면 나타나서 보고 들음이 밝고 역력하구나, 곧바로 한 생각 돌이켜서 단박에 법신을 증득하면 영원히 배고픔을 면할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부처님의 위신력과 법의 가지에 의지하여 이 향단에 내려와서 나의 묘한 공양을 받으시고 태어남이 없음(없는 진리)을 깨달아 증득하소서.




<진 행>

거불이 끝나면 법주가 요령을 세 번 흔들고 나서 천도를 하고자 하는 목적과 도량의 이름과 제자의 이름과 영가의 이름을 거드는 거량을 세 번하고 착어 법문을 하면 된다.




<해 설>

거량은 오늘 천도를 할 영가들에게 행효자 가 무슨 목적으로 이 재단을 차렸는가를 아뢰는 순서이다.

흔히 말하기를, 귀신은 이야기를 하기가 무섭게 알아듣는다고 한다. 즉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이 재를 진행하는 의도를 영가에게 잘 알려야만 한다. 영가를 빠짐없이 불러내서 묵은 업장을 소멸시키고, 모자라는 복덕을 보충하고, 어리석은 마음을 깨우치게 하여 극락세계에 태어날 인연(因緣)을 심어주고자 청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간절한 마음으로 세 번 알린다. 또 그것도 모자라서 주인공되는 영가가 여러 생 동안에 신세진 모든 영가, 또 돌보아 주어야 할 모든 영가에게 고하여 천도재에 왕림할 준비를 갖추게 하는 것이 거량의 목적이다.

중생은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농사짓지 않으면서도 곡식을 먹을 수 있고, 베짜지 않으면서도 몸을 가리는 옷을 입을 수 있고, 자동차를 만들지 않으면서도 차를 타고 다니고, 직접 바다에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지 않고서도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것은, 무수하게 널려 있는 중생들의 수고로움 때문이다. 이것은 일종의 은혜 받음이다. 그러므로 모든 인연 있는 영가를 불러서 천도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천도할 영가를 복위나 기부로 하여 여러 다른 영가를 불러서 천도하려는 것은 매우 큰 의미를 갖고 있다. 만약 천도하려는 영가의 아버지 되는 영가가 아직 천도되지 못하였다면, 그 아버지 되는 영가가 먼저 천도되어야만 오늘 천도하려는 영가를 올바로 천도할 수가 있을 것이다.

오늘 영가가 극락으로 가려면 천도되지 못한 영가의 아버지 영가는 그야말로 크나큰 장애물이 아닐 수 없을 것이요, 설사 아버지 영가를 그대로 두고 아들 영가만 극락에 천도되었다 하더라도 악도에서 고통받는 아버지 때문에 아들 영가의 마음이 극락의 즐거움에 계합하지 못할 것이 자명하다. 그러므로 아들 영가가 머무는 극락은 이미 극락이 아닌 곳으로 변해버릴 것이다.

무수한 세월 동안 윤회를 거듭하는 동안에 우주 법계 안의 유정이나 무정들 모두가 인연닿지 않는 것 그 무엇이 있을까? 그러므로 궁극적으로는 그들 모두 천도되어야만 천도하려는 영가가 올바로 천도되는 것이다.




<착어 해설>

착어는 법주가 영가를 상대로 법문하는 시간이다.

여기서 신령스러운 근원이라 함은, 중생의 근본 마음자리, 즉 불성을 말한다. 그 불성에 어찌 옛날과 지금이 다를 것이며, 본체가 본래로부터 뚜렷이 밝은 것이라면 죽었다든지 태어났다든지 하는 생사라는 것을 어디 물을 곳이 없다는 말이다.

옛날에 육조 혜능스님이 황매산에 있는 오조 홍인스님을 배알하자, ?너는 어디 사람이며 무엇하러 왔느냐??고 물었다.

혜능은, ?미천한 제자는 영남 신주 사람인데 먼 길을 와서 스님을 모시려고 함은 오직 성불하고자 함이요, 다른 목적은 없습니다?고 대답하자, 다시 홍인스님이 힐난한다.

?네가 신주에서 왔다면 오랑캐가 아니냐? 어찌 성불할 수 있겠느냐??

혜능이 다시 답하였다. ?사람이야 남?북이 다르겠지만 어찌 불성에 남?북의 구별이 있겠습니까? 남?북인의 몸은 각기 다를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지닌 불성이야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흥인과 혜능의 대화에서 보듯이 불성에 남?북이 다르지 않듯이 옛과 지금이라고 해서 중생의 근본 마음자리인 불성에 다름이 있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또 혜능대사의 임종을 오대제자 중의 한 사람인 신회 선사가 제자들과 지키고 있었다. 이때 다른 제자들은 모두 울음을 참지 못하였으나 신회 선사만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이에 혜능이 말하였다.

?너희들 중 오직 신회 하나만 선악을 초월하였고, 명예와 불명예가 아랑곳 없고 슬픔과 즐거움이 없는 경지에 도달하였구나. 너희들이 슬피 우는 것은 내가 어디로 갈 것인지 몰라서 그런 것 아니냐. 그러나 나는 내가 갈 곳을 알고 있다. 만약 갈 곳을 모른다면 어떻게 너희들에게 말할 수 있겠느냐? 너희들이 슬퍼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내가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안다면 슬퍼할 이유가 없을텐데. 법성은 나고 죽고, 가고 오는 데 구애됨이 없느니라.?

혜능대사의 말씀은 태어남과 죽음이라는 것은 본래 구분이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법성 진리를 깨닫기 위하여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마갈타국에서 모든 침식을 잃어버리고 하루 쌀 한 톨 가지고 지내는 생활을 6년 간이나 계속하였다. 또 달마대사는 중국에 건너와서 양무제를 만나보고 아직 선법(禪法)을 전할 시기가 아님을 알고 소림굴에서 9년 동안이나 벽을 대하고 참선하면서 제자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후 면벽하는 것은 참선가의 가풍이 되었다.

이와 같이 나고 죽음이 본래 없는 까닭으로 부처님께서는 시신을 넣는 관 밖으로 두 발을 보이셨고, 달마대사는 중국에 선법을 전하고 총령을 넘어 인도로 가는데 주장자 끝에 짚신 한 짝만 들고 가더라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곽시쌍부의 일화를 잠시 들어보자.

부처님께서는 세수(世壽)를 다하시고 니련선하 앞의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하셨다. 모든 장례절차를 마치고 화장을 하기 위해서 관 밑에 쌓아 놓은 장작더미에 불을 붙이려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불을 붙이려고 해도 불이 붙지 않았다. 얼마 후, 부처님의 상수제자인 가섭존자가 와서 부처님을 모신 관을 오른쪽으로 세 바퀴 돌고 나서 부처님 발쪽에 대고 정례를 하고 슬피 울면서 ?어찌 부처님의 열반이 이리도 빠르십니까??라고 울부짖었다. 그러자 부처님의 두 발이 일곱 겹이나 되는 관 밖으로 쑥 나왔다. 가섭이 그제서야 울음을 그치고 두 발에 예배를 하였다. 두 발이 다시 관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관에서 저절로 불이 일어나서 화장을 해 마쳤다.

만약 부처님이 열반하셨지만 정말 죽고 사는 존재라면 어찌 죽은 송장이 그것도 일곱 겹이나 되는 관 밖으로 두 발을 내밀 수가 있을 것인가? 이미 생사와 시공을 초월한 것이다.

달마대사가 짚신 한짝만 들고 총령을 넘아갔다는 일화도 재미 있다.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파초선을 타고 바다를 건너 양자강을 통하여 양나라로 들어갔다. 양나라의 임금인 무제는 절과 탑을 짓는 불사를 매우 좋아하여 전국에 8만4천이나 되는 탑과 절을 지었다. 그리고 불교의 불살생계를 지키도록 하였다.

인도에서 고승이 왔다는 소식을 들은 양무제는, 달마대사를 궁중으로 청하여 법문을 듣게 되었다. 양무제는 자기가 추진한 불사의 공덕을 자랑하고 싶었다.

?내가 이와 같이 많은 탑사를 지었는데 공덕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무 공덕도 없소.? 달마대사는 한 마디로 딱 잘라 말하였다. 화가 난 양무제는 달마대사를 단칼에 처형을 하였다.

그런데 천축국을 다녀오던 사신이 총령에서 달마대사를 만났다. 대사는 짚신 한 짝을 주장자에 매달아 어깨에 걸고 총령을 넘어가는 것이었다. 어찌된 영문인가. 무제가 얼마 전 궁궐에서 달마대사를 처형하는 것을 보았는데, 처형된 대사가 살았으니 모골이 송연하도록 놀랐다. 게다가 달마대사는 사신에게 ?양무제도 안녕하시냐?고 안부까지 묻는 게 아닌가. 궁궐로 돌아온 사신은 이 사실을 양무제에게 보고하였다. 양무제는 달마대사를 장사지냈던 무덤을 파 보았다. 그런데 관 속에는 달마대사의 시신은 없고, 오직 짚신 한 짝만이 덩그라니 놓여 있었다.

이 예화는 삶과 죽음이 없다는 것을 바로 보여주고 있다.

이것을 영가에게 말하여 줌으로써 오늘의 영가들이 바로 깨달아 무생법인을 얻도록 하려는 것이다. 오늘 천도재에 동참한 모든 영가들에게 한 생각을 돌이켜서 깨달으라고 주문한다. 그러면 일체의 번뇌와 죄업이 사라진 자리, 진여의 세계가 드러나 맑고 고요하고 뚜렷하게 빛나는 근원을 얻는다고 한 것이다.

일구마, 즉 ?제일구는 무엇인가??라는 말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불교의 참뜻은 무엇인가??라는 말이다. 선가에서 상용하는 말이다.

제일구라는 것은 진리 당체를 직접 지칭하는 말이다. 제일구가 무엇인가라는 물음 직후에 곧바로 요령을 세 번 울리는데, 요령을 세 번 울리는 것이 바로 제일구에 대한 대답이다. 이 요령을 세 번 울리는 소식을 알아듣지 못하는 영가를 위하여 다시 사족을 달아 설명을 붙이는 것이 다음 구절이다.

진여 법계는 원만하여 일체의 걸림이 없고 생사가 없는데, 중생들이 고개를 구부리고 쳐들듯이 번뇌를 일으켜서 진여 법계를 배반하였다. 그 배반으로 말미암아 생사윤회에 떨어지게 되었는데, 고개를 수그리는 것은 죽음을 말하는 것이요, 고개를 드는 것은 태어남을 말한다. 그러나 이 죽고 사는 가운데서도 참 마음의 작용은 뚜렷하여 보고 들음이 밝고 역력하다.

한 생각, 번뇌 즉 아집을 일으키면 곧 나고 죽는다는 생각이 일어나 생사의 관념에 떨어지고, 한 생각을 돌이켜 아집을 버리고 진여 법계를 바로 보면, 거기에서 법신을 체득하게 된다. 그런 법신 자리에 무슨 배고픔이나 목마름 따위가 있을 것인가. 그러므로 오늘 이 자리에서 참마음 자리를 깨달아 무생법인<1/4>-<1/4>태어나지 않는 법의 자리를 얻어 해탈하라는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먹고 마시지 않더라도 목마름과 주림이 없게 된다는 것이다.

만약 이와 같이 깨닫지 못하면 반드시 목마름과 주림이 남아 있게 된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위신력에 따라 이 향기로운 단에 내려와서 삼밀가지에 의하여 행하는 법의 공양을 먼저 받고 그 다음에 태어남이 없는 진리를 깨달아서 해탈하라는 것이 착어법문이다.




<원 문>

진령게(振鈴偈)

이차진령신소청(以此振鈴伸召請) 명도귀계보문지(冥途鬼界普聞知)

원승삼보력가지(願承三寶力加持) 금일금시래부회(今日今時來赴會)

천수착어(千手着語)

상내 소청(上來 召請) 제불자등(諸佛子等) 각열위영가(各列位靈駕)

자광조처연화출(慈光照處蓮花出) 혜안관시지옥공(慧眼觀時地獄空)

우황대비신주력(又況大悲神呪力) 중생성불찰나중(衆生成佛刹那中)

천수일편위고혼(千手一片爲孤魂) 지심제청(至心諦聽) 지심제수(至心諦受)

신묘장구대다라니(神妙章句大陀羅尼

「나모 라다나 다라야야, 나막 알야바로기데새바라야 모디 사다바야 마하사다바야 마하가로니가야, 옴 살바 바예수 다라나 가라야 다사명 나막, 까리다바 이맘 알야바로기데새바라 다바 니라간타 나막, 하리나야 마발다이샤미 살발타 사다남 수반 아예염 살바 보다남 바바 말아 미수다감, 다냐타, 옴 아로계 아로가마디 로가디가란데 혜 혜 하례, 마하모디사다바 사마라 사마라 하리나야, 구로 구로 갈마 사다야 사다야, 도로 도로 미연데 마하미연데, 다라 다라 다린나례새바라, 자라 자라 마라 미마라아마라 몰데, 예혜 혜 로계새바라 라아 미사 미나사야 나베사미사 미나사야 모하 자라 미삼 미나사야, 호로호로 마라호로 하레 바나마나바, 사라사라 시리시리 소로 소로 못댜 못댜 모다야 모다야, 매다리야 니라간타 가마사 날사남 바라하라나야 마낙 사바하, 싯다야 사바하 마하싯다야 사바하 싯다유예새바라야 사바하, 니라간타야 사바하, 바라하목카 싱하목카야 사바하, 바나마 하따야 사바하, 자가라욕다야 사바하, 상카 섭나 네모다나야 사바하, 마하라구타다라야 사바하, 바마 사간타 니샤 시체다 가릿나이나야 사바하, 먀가라 잘마 니바사나야 사바하, 나모 라다나 다라야야, 나막 알야바로기데새바라야 사바하」

약인욕요지(若人欲了知) 삼세일체불(三世一切佛)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파지옥진언(破地獄眞言) 「옴 가라디야 사바하」

해원결진언(解寃結眞言) 「옴 삼다라 가다 사바하」

보소청진언(普召請眞言) 「나모 보보제리 가리다리 다타아다야」

나무상주시방불(南無常住十方佛) 나무상주시방법(南無常住十方法) 나무상주시방승(南無常住十方僧)

나무대자대비(南無大慈大悲) 구고구난(救苦救難)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나무대방광불화엄경(南無大方廣佛華嚴經)




<<역 문>>

(요령을 울리는 노래)

금일 영가시여, 이 요령 울려 널리 청하오니

명부의 귀신 세계 널리 들어 아시고서

삼보님의 본원력에 힘입어서

오늘의 이 법연에 모두 왕림 하옵소서

(천수다라니 착어)

위에서 청한 모든 불자 영가시여

자비광명 비추는 곳마다 연화가 피어나고

지혜 눈으로 관찰할 땐 지옥도 사라지리

다시 또한 대자대비의 신비하신 진언은

중생을 찰나간에 성불하게 합니다

영가를 위하여 천수 1편을 독송하리니,

지극한 마음으로 잘 듣고 지극한 마음으로 잘 받아 지니소서

신묘장구대다라니

「나모 라다나 다라야야 ~ 새바라야 사바하」

만약 어떤 사람이 궁극적인 지혜로써

삼세의 일체 부처님을 알고자 하면

마땅히 법계의 성품을 관할지니

일체 모든 것은 오직 마음으로 짓는다는 것임은

지옥을 깨뜨리는 참말씀

「옴 가라디야 사바하」

원수 맺힘을 푸는 참말씀

「옴 삼다라 가다 사바하」

널리 청하는 참말씀

「나모 보보제리 가리다리 다타아다야」

온 세계의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온 세계의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온 세계의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크신 사랑?크신 슬픔 고난 속의 중생을 건지시는 관세음보살님께 귀의합니다.

대방광불화엄경에 귀의합니다




<진 행>

착어 법문이 끝나고 나면 법주가 요령을 세 번 울리고 진령게를 하는데, 앞의 한 구절을 법주가 하고 나면 바로 바라지가 뒷 구절을 맡아서 목탁으로 진행하면 된다.

천수 착어를 진행할 때 법주가 요령을 세 번 울리고 나서 착어를 낭독하고 ?지심제청 지심제수?에 요령과 목탁을 함께 내리고 나서 신묘장구대다라니부터 대방광불화엄경까지는 법주와 바라지가 함께 진행하면 된다.




<해 설>

진령게의 설명은 대령 강의에서 해설한 바 있으니 참조하면 된다. 단, 두 번째 구절이 ?금일영가보문지?에서 ?명도귀계보문지?로 바뀌었으므로 이 부분만 해설하기로 한다. 명도(冥途)란 죽은 뒤의 세계, 저승세계를 명도라고 한다.

사람이 숨을 거두게 될 때 혼신이 몸에서 빠져 나가면 곧 어둠에 직면한다. 중음신(영가)은 어둠의 세계를 49일 동안 경험하게 되는데 일 주일만에 한 번씩 오는 빛을 따라 간다고 한다. 일 주일마다 무지개 색깔로 오는 빛은 밝은 빛으로부터 점점 시간이 지나면 어두운 빛이 온다고 한다. 과보가 좋지 않은 영가는 밝은 빛을 두려워 하여 따라가지 못하고, 그 어두운 빛을 좋아하여 따라가지만 빛이 밝지 못할수록 좋지 않은 세계에 가서 나게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명계에 떨어진 중생들이 두려워 하지 말고 반드시 밝은 빛을 따라가도록 하는 생각을 가지고 관(觀)을 하면서 의식을 진행해야 한다.

소납이 초등학교 3학년 때 99세 된 증조할머니께서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는 날 아침이 되어 날이 환하게 밝아 오는데 증조할머니께서는 세상이 어둡다고 자꾸만 문에 불을 밝히라고 말씀하셔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혼이 이승을 떠나 저승 명계로 가시느라 자꾸 어둡다고 하신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불교에서는 임종한 사람은 중음신이라고 부르지만 보통 사람들은 귀신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보통 말하기를 귀신이라고 부른다. 귀신이라는 것은 일종의 헛몸을 가진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승에 사는 중생들은 정신과 육신 두 가지를 모두 갖추어 한시적이긴 하지만 자신의 의지를 갖고 자신의 생각대로 살 수가 있다. 하지만 귀신들은 일종의 정신만 있고, 그 정신이 깃들 곳을 아직 찾지 못한 상태로 뒷 몸(다른 생)을 결정받을 때까지는 무주고혼이라 할 수 있다.

만약 49일이나 백 일 또는 3년이 되어도 다른 중생의 몸을 받지 못하면 명계를 헤매는 진짜 무주고혼으로 귀신이 될 것이다. 그런 귀신들이 사는 어둠의 세계를 명부의 귀신 세계라고 표현하였다.

?귀신 세계에 널리 들리라?고 하였는데, 귀신 세계에 있는 49재를 받는 영가와 그 영가의 모든 신세지고 은혜받아 인연있는 모든 영가들이 널리 요령 소리를 듣고 이 재를 지내는 자리에 왕림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요령을 흔들며 진령게를 하는 뜻이다. 요령은 작지만 그 소리가 사람의 폐부까지 깊이 파고든다. 요령을 이용하여 명부의 귀신 세계 중생들에게 천도재의 메시지를 전달코자 하는 것이다. 요령 소리를 듣고 오시되, 삼보님이 중생을 구제하여 주기로 한 본원력에 의지하여 오늘 이 자리에 모두 빠짐없이 오시라는 것이다.

그런 다음 영가를 위하여 천수다라니 1편을 일러 준다.

이 천수다라니는, 관세음보살의 수행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을 때에 천광왕정여래라는 부처님께서 이 다라니 설하는 것을 듣고서 초지보살의 위치에서 단 번에 8지보살의 위치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 즉 천수천안을 얻어 모든 중생들이 누구든지 부르기만 하면 가서 구원하여 줄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났다는 대단한 신통력을 가진 다라니이다. 이 다라니를 독송하면 좋은 곳에 태어나는 열 다섯가지 과보를 얻는다고 한다.

첫째는 어질고 착한 통치자를 만나고,

둘째는 항상 좋은 나라에 태어나고,

셋째는 항상 좋은 시절을 만나며,

넷째는 항상 좋은 벗을 만나며,

다섯째는 항상 육체적으로 결함이 없으며,

여섯째는 진리를 향하는 마음이 깊어지며,

일곱째는 계를 범하지 않으며,

여덟째는 가족들이 모두 우애 있고 화목하며,

아홉째는 항상 의식이 풍족하며,

열째는 항상 남의 공경과 대접을 받으며,

열한째는 항상 재물을 남에게 빼앗기지 않으며,

열두째는 바른 뜻으로 구하는 일이 모두 이루어지며,

열세째는 하느님이나 용 등 선신들이 항상 보호하여 주며,

열네째는 항상 태어나는 곳마다 부처님을 뵙고 법문을 듣게 되며,

열다섯째는 바른 법을 듣고 그 이치를 잘 깨우치게 된다고 하였다.

천수착어는 이와 같이 훌륭한 다라니를 영가를 위해 일러주기 전에 하는 법문이다.

?자비의 광명이 비추는 곳에 연꽃이 피어나고?라고 하였는데, 연꽃은 불교의 상징 꽃이지만 여기서는 극락세계의 상징적인 표현이다. 오늘 모든 영가를 모셔서 극락으로 인도하고자 하는데, 극락세계는 법장 비구의 대자비의 원력과 수행으로 만들어진 산물이다. 그러므로 극락세계에 가고자 하는 중생은 즉 자비스런 마음을 가져야 그것이 아미타 부처님의 근본적인 뜻과 맞는다는 말이다. 연화장세계 - 극락세계에 가서 나고 싶으면 좋지 않은 마음을 버리고 자비심을 가지라는 말이다.

?지혜의 눈으로 관찰하면 지옥도 공하게(사라지게) 된다?는 말은 진리를 깨달은 입장, 즉 법성진리에 계합한 차원에서 지옥을 관하면, 지옥은 연기의 관계로 나타난 것이고 실제 있는 것이 아니라 본래는 없는 것을 알게 된다는 말이다.

여기서 ?공하다?의 해석을 일반인이 알기 쉽게 ?사라진다?로 하였다. 연기로 이루어진 공이라는 법계의 입장에서는, 지옥은 인연따라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일 뿐 실제로 있다고 할 수 없으며, 그렇다고 없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그 대치할 말이 없으므로 그냥 ?공(空)?해진다고 말하고 사라진다고 해석한다.

다시 또한 대비신주의 힘은 찰나 사이에 중생을 성불하게 한다. 관세음보살이 한번 듣고서 초지보살에서 8지보살로 뛰어 올라 천수천안을 얻었다는 말은 이미 한 바가 있다. 이렇게 훌륭한 다라니를 영가를 위해 독송하여 줄테니 다른 잡생각이나 망령된 생각을 놓아버리고, 잘 듣고 잘 받아들인다면 지옥은 곧 사라지고 극락이 눈 앞에 펼쳐지게 된다는 말이다. 신묘장구다라니를 한 편 읽은 연후에 다시 화엄경의 게송을 외운다.

만약 어떤 사람이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아 삼세의 부처님을 알고자 하면 마땅히 법게의 성품을 관하라. 그러면 눈 앞에 나타나는 모든 것들은 마음 먹은 바대로 나타난다. 부처라는 것은 어떤 고정된 성품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법계의 성품이라는 것은, 진리의 세계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 법계라는 것은 본래 그 자체는 아무런 모양새도 걸림도 없이 인연따라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인데, 중생들이 마음을 일으키는 데 따라 세간의 모양이 다르게 나타난다. 악하고 삿된 마음을 일으키면 지옥 세계가 나타나고, 착하고 바른 마음을 일으키면 천상 세계가 나타나더라는 말이다.

그러하니 파지옥진언을 통하여 악하고 삿된 마음을 파하여 지옥을 깨뜨리고, 해원결진언을 통하여 원수맺히고 원망하는 마음을 없앤다. 다음에 보소청진언을 통하여 모든 삼보를 널리 청하여 귀의하고 대방광불화엄경 최상의 달마를 청하여 귀의하도록 하는 것이다.




<원 문>

증명청(證明請)

나무일심봉청(南無一心奉請) 수경천층지보개(手擎千層之寶蓋) 신괘백복지화만(身掛百福之華?) 도청혼어극락계중(導淸魂於極樂界中) 인망령(引亡靈) 향벽련대반(向碧蓮臺畔) 대성인로왕보살마하살(大聖引路王菩薩摩阿薩) 유원자비(唯願慈悲) 강림도량(降臨道場) 증명공덕(證明功德)

향화청(香花請) (3번)

가영(歌詠)

수인온덕용신희(修仁蘊德龍神喜) 염불간경업장소(念佛看經業障消)

여시성현내접인(如是聖賢來接引) 정전고보상금교(庭前高步上金橋)

고아일심귀명정례(故我一心歸命頂禮)

헌좌진언(獻座眞言) 「옴 바아라 미라야 사바하」

다게(茶偈)

금장감로다(今將甘露茶) 봉헌증명전(奉獻證明前) 감찰건간심(鑑察虔懇心)

원수애납수(願垂哀納受) 원수애납수(願垂哀納受) 원수자비애납수(願垂慈悲哀納受)




<<역 문>>

(증명법사를 청하여 모심)

지극한 마음으로 손에는 천 길이나 되는 보산개를 들으시고, 몸에는 백 가지 복으로 된 꽃다발을 걸치시고, 맑은 영혼을 극락세계로 인도하시고 망령(돌아가신 혼령)을 이끌어 푸른 연화대로 향하게 하시는 크신 성인 인로왕 큰보살님을 받들어 모시오니, 자비로써 이 도량에 내리셔서 (49재의) 공덕을 증명하여 주시옵소서.

향과 꽃으로 청하옵니다 (3번)

(노래로 맞이함)

어짐 닦고 덕 쌓아 용왕과 선신들 기쁘게 하고

염불하고 경을 보아 업장을 소멸케 하고

이같이 성현께서 오시어 영접하여 인도하사

뜰 앞의 높디높은 황금 다리 거닐게 하시네

저희들이 일심으로 귀명정례 하나이다

자리를 드리는 참말씀

「옴 바아라 미라야 사바하」

(차를 올리는 노래)

이제 감로의 차를 마련하여

증명 전에 받들어 올리오니

재자들의 간절한 마음 살피시사

자비를 드리우사 거두어 주옵시고

어여쁘게 여기시어 받으시옵소서




<진 행>

법주가 요령을 세 번 울리고 나서 합장하고 ?나무일심봉청?하고 반배를 하면서 요령을 잡고 흔들면서 청사를 진행하면 된다. 법주가 청사를 세 번 연달아 진행하고 나면 바라지는 받아서 목탁을 내리고 ?향화청?을 세 번 외우고 연달아 가영을 외우는데, ?고아일심귀명정례?를 할 때에 목탁을 내리며 절을 하면 된다. 이때 신도들도 목탁에 맞춰 절을 하도록 한다.

법주가 다시 요령을 잡고 세 번 울리고 난 다음에 합장 반배를 하면서 ?헌좌진언? 제목을 외우고 다시 요령을 잡고 흔들면서 진언을 외우면 된다.

다게는 바라지가 목탁을 한 번 내리고 다게를 진행하다가 원수애납수에서 목탁을 내리면 되는데, 이때 법주도 같이 요령을 내리면서 원수애납수를 같이 외우면 된다.




<청사 해설>

불교에서는 제일의 진리, 또는 수행으로 얻어지는 결과인 깨달음이 가장 중요시된다. 깨닫고 못 깨닫고는 모든 점에 있어서 크나큰 차이를 갖게 된다. 올바로 깨달았느냐, 그렇지 못하냐의 문제는 바로 진리적(올바른 - 正) 입장에 서 있느냐, 아니면 그렇지 못하느냐(그릇된 - 邪)를 묻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불교의식을 행할 때는 먼저 깨달은 이를 증명(법사)으로 모시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일을 행할 때, 선지식의 검토나 인증을 받는 것이다.

여기 49재를 모시는 입장에서 영가를 확실하게 극락으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오늘의 천도재를 증명해주어야 할 증명법사가 필요하다. 그 역할을 인로왕보살님을 청하여, 꼭 증명하여 주시고 영가를 인도하여 주실 것을 부탁드리는 것이다.

특히 인로왕보살은 영가를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보살님인데, 어느 한 보살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법회 처소에 따라 다른 분이 인로왕보살로 등장한다. 8만 장경상에 인로왕보살이라는 고유명사가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만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에 ?사부대중들이 8재계를 일 년 혹은 삼 개월간 받아지키고 이 선근 인연으로 서방 극락세계에 가고자 하는 이가 약사유리광여래의 이름을 들으면, 목숨을 마칠 때 여덟 보살이 나타나서 그곳으로 가는 길을 보여줄 것이다(示其道路 - 引路). 그러면 곧장 그 세계의 여러가지 색깔의 연꽃 속에 저절로 태어나게 될 것이다?고 되어 있다. 이렇게 8보살이 곧 인로왕보살 - 길을 가리켜 주는 보살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 『아미타경』에 보면 평소에 아미타불을 열심히 부르면, 임종할 때에 아미타불께서 좌우에 관음 세지 양대보살을 거느리고 영가를 영접하러 오신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 진행하고 있는 천도재는 영가가 생전에 아미타불 명호를 직접 부른 경우보다는, 사후에 가족들이 영가의 명복을 위해서 마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영가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천도재에 있어서 극락세계의 주인이신 아미타불은 주불이 되고, 좌우보처 관음 세지와 명부와 지옥세계에서 헤매는 중생을 하나도 남김없이 구원하기로 서원하신 지장보살이 인로왕보살이 된다.

그러나 청사에 보면 인로왕보살님은 한 손에는 천 층의 보산개(일산)를 들으시고, 몸에는 백 가지 복으로 된 꽃다발을 걸고서, 맑혀진 영혼을 극락세계로 인도한다 하였다. 인로왕보살변상도는 다른 데서는 보이지 않고, 오직 돈황에서 출토된 탱화에서만 한 손에는 깃발을 들고, 한 손에는 향로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되어 있다.

보통 지장보살님은 지옥을 드나들며 지옥중생을 제도해야 하므로, 영락을 걸치지 않고 머리에 띠를 두르고 석장을 든 모습이다. 다른 보살님들과 달리 검소한 장삼차림으로 나투는 경우가 많으므로 인로왕보살님이 지장보살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여튼 인로왕보살은 일종의 아미타불의 특사라고 할 수 있다. 극락세계에 가서 나기를 발원하는 모든 중생들을 극락으로 인도하겠다는 원을 세우고, 그 원을 달성하여 부처님이 되신 분이 아미타불이므로 자신의 본원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직접 가거나 사신을 파견해야 한다.

인로왕보살은 부처님이 파견하는 특사이므로, 딱 무슨 보살이라고 단정지어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천도하려는 영가의 인연에 따라 여덟 보살 가운데 한 분이 특사(인로왕보살)로 나오신다. 영가가 생전에 지은 여러 인연과 영가의 권속들이 재를 올리고 의식을 집전하면서 짓는 공덕을 증명하고, 영가의 업장이 올바로 소멸되어 극락으로 갈 수 있도록 하는 준비와 인도를 담당하는 것이다.



<가영 해설>

인을 닦고 덕을 쌓아 용신을 기쁘게 하고, 염불과 간경을 하여 업장소멸하는 것은 영가가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현께서 오시어서 영가를 영접하여 인도하사 뜰 앞에 높디높은 황금사다리를 보여 주어 극락세계로 걸어가게 하는 것은 인로왕보살이 하는 것이다.

뜰 앞에 황금사다리를 놓아 영가로 하여금 그 위에 오르게 한다고 하였는데,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에서 ?목숨을 마칠 때 여덟 보살이 나타나서 그곳으로 가는 길을 보여준다(示其道路)?고 하신 것과 같은 맥락의 말씀이다.

인로왕보살이 하는 일은 영가를 천도하는 법당의 뜰 앞에 극락으로 가는 길을 보여주는 것, 즉 황금의 다리, 즉 반야용선을 띄워주는 일이다. 그렇게만 하면 누구든지 좋은 곳으로 가서 행복하게 되고 싶다는 열망에 따라 황금사다리를 타고 극락으로 올라갈 것은 뻔한 이치이다. 그래서 뜰 앞에 황금교를 보여주는 것이다. 황금교를 보여주는데도 딴 데로 가는 이들이야 어찌해 볼 도리가 없지 않겠는가. 다만 그 반야용선이나 황금의 사다리를 타고 극락세계로 가야 하는 것은 영가의 몫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런 황금사다리나 반야용선을 가지고 극락세계로 인도하여 주시는 인로왕보살님께 귀의를 하는 것이다.




<헌좌진언 해설 >

청사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보살님을 청하였으면 그에 맞는 자리를 권해드리고 다음의 다게에서 차를 공양하여야 한다. 헌좌게는 생략이 되고 곧바로 헌좌진언을 하도록 되어 있다. 부처님이나 보살님께 드리는 헌좌진언 「옴 바아라 미라야 사바하」를 하고 이어 차를 올리는 다게를 하면 된다. 앞의 여러 의식편 해설에서 헌좌진언이나 다게는 누차 설명한 바 있으므로 다시 설명하지 않는다.




<원 문>

고혼청(孤魂請)

일심봉청(一心奉請) 실상이명(實相離名) 법신무적(法身無跡) 종연은현(從緣隱現) 약경상지유무(若鏡像之有無) 수업승침(隨業昇沈) 여정륜지고하(如井輪之高下) 묘변막측(妙變莫測) 환래하난(幻來何難) 원아금차(願我今此) 지의성심(至意誠心) 생전효행(生前孝行) 사후(死後) (49일(日)) 지신(之辰) 천혼재자(薦魂齋者) 거주(居住) 행효자(行孝子) 복위(伏爲) 소천망(所薦亡) (엄부(嚴父)) 영가(靈駕) 유원(唯願) 승불위광(承佛威光) 내예향단(來詣香壇) 수첨법공(受霑法供)

일심봉청(一心奉請) 약인욕식불경계(若人欲識佛境界) 당정기의여허공(當情其意如虛空) 원리망상급제취(遠離妄想及諸趣) 영심소향개무애(令心所向皆無碍) 원아금차(願我今此) 지의성심(至意誠心) 생전효행(生前孝行) 사후(死後) (49일(日)) 지신(之辰) 천혼재자(薦魂齋者) 거주(居住) 행효자(行孝子) 복위(伏爲) 소천망(所薦亡) (엄부(嚴父)) 영가(靈駕) 유원(唯願) 승불위광(承佛威光) 내예향단(來詣香壇) 수첨법공(受霑法供)

일심봉청(一心奉請) 인연취산(因緣聚散) 금고여연(今古如然) 허철광대영통(虛徹廣大靈通) 왕래자재무애(往來自在無碍) 원아금차(願我今此) 지의성심(至意誠心) 생전효행(生前孝行) 사후(死後) (49일(日)) 지신(之辰) 천혼재자(薦魂齋者) 거주(居住) 행효자(行孝子) 복위(伏爲) 소천망(所薦亡) (엄부(嚴父)) 영가(靈駕) 영가위주(靈駕爲主) 복(伏) 위기부(爲記付) 상세선망(上世先亡) 사존부모(師尊父母) 다생사장(多生師長) 누대종친(累代宗親) 제형숙백(弟兄叔伯) 자매질손(姉妹姪孫) 원근친척(遠近親戚) 일체애고혼(一切哀孤魂) 제불자등(諸佛子等) 각열위영가(各列位靈駕) 유원(唯願) 승불위광(承佛威光) 내예향단(來詣香壇) 수첨법공(受霑法供)

향연청(香煙請)

가영(歌詠)

제령한진치신망(諸靈限盡致身亡) 석화광음몽일장(石火光陰夢一場)

삼혼묘묘귀하처(三魂渺渺歸何處) 칠백망망거원향(七魄茫茫去遠鄕)

안좌게(安座偈)

제불자등각열위영가(諸佛子等各列位靈駕) 상래(上來) 승불섭수(承佛攝受) 장법가지(仗法加持) 기무수계이임연(旣無囚繫以臨筵) 원획소요이취좌(願獲消遙而就座) 하유안좌지게(下有安座之偈) 대중수언후화(大衆隨言後和)

아금의교설화연(我今依敎設華筵) 종종진수열좌전(種種珍羞列座前)

대소의위차례좌(大小依位次第坐) 전심제청연금언(專心諦聽演金言)

수위안좌진언(受位安座眞言) 「옴 마니 군다리 훔 훔 사바하」

백초임중일미신(百草林中一味新) 조주상권기천인(趙州常勸幾千人) 팽장석정강심수(烹將石鼎江心水)

원사망령헐고륜(願使亡靈歇苦輪) 원사고혼헐고륜(願使孤魂歇苦輪) 원사제령헐고륜(願使諸靈歇苦輪)




<<역 문>>

참다운 모습은 이름을 떠나 있고 법신은 자취가 없건만 인연따라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이 거울 속의 모양이 있다가 없어짐과 같고 (업)연을 따라 오르고 내리는 것이 마치 우물 속을 두레박이 오르내림과 같아 묘한 변화 헤아릴 수 없으니, 환과 같은 옴이 어찌 어렵겠습니까? 원하건대, 지금 이제 지극한 정성으로 살아생전 효를 다하던 가 (돌아가신 아버지) 영가의 49일재를 맞이하여 천도하고자 (돌아가신 아버지) 영가를 청하오니, 바라옵나니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지하여 이 향단에 오시어서 법공양을 받으소서.

인연이 모였다 흩어지는 것은 옛과 지금이 모두 같아 텅비어 맑고 넓고 커서 신령스레 통하여서 가고 옴이 자유로와 걸림이 없습니다. 원하건대, 지금 이제 지극한 정성으로 영혼을 천도하려는 재자 가 엎드려서 (돌아가신 아버지) 영가의 49일재를 맞아 망부 영가를 청하오니, 오직 원컨대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지하여 이 향단에 오시어서 법공양을 받으소서.

만약 어떤 사람이 부처님의 경계(경지)를 알고자 하면 마땅히 그 마음을 허공과 같이 하여 망령된 생각과 모든 헐떡거림을 멀리 떠나보내고 그 마음으로 하여금 일체의 걸림이 없게 하라 하였습니다. 원하건대 지금 이제 지극한 정성으로 살아계실 때 효행을 다하던 거주 가 (돌아가신 아버지) 영가의 49일재를 맞아 망부 영가와 영가의(를 복위나 기부로 하여 먼저 가신) 부모나 스승되는 모든 영가, 여러 대에 걸친 종친들과 백부나 숙부가 되는 영가, 형제 자매 조카가 되는 영가, 멀고 가까운 모든 친척되는 슬프고 외로운 영가들과 모든 인연 있는 영가들을 청하오니, 오직 원컨대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지하여 이 향단에 오시어서 법공양을 받으소서.

향을 사러 청합니다 (3번)

(노래로 맞이함)

모든 영가시여, 목숨(기한)이 다하여 몸을 잃었으니

돌불같이 빠른 세월 속의 한바탕 꿈이로다

삼혼은 고요히 어디로 돌아가셨으며

칠백은 아득히 먼 곳으로 가버렸네

(안좌게)

모든 불자등과 각 여러 영가시여, 위에서 이미 부처님의 섭수하심을 받아 법의 가지에 의지하여 이미 죄에 얽매임이 없어져서 법연에 임하였으니 원컨대 한가로움을 얻어 법연에 나가소서. 아래에 편안하게 앉는 노래가 있으니 대중은 따라서 합창하시오.

내가 지금 가르침에 의거하여 화연을 베풀고

갖가지 진수를 자리 앞에 마련하였습니다

크고 작은 영가시여, 차례대로 앉으셔서

일심으로 부처님의 말씀을 자세히 들으소서

지위따라 편안하게 앉는 참말씀

「옴 마니 군다리 훔 훔 사바하」(3번)

(차를 드리는 노래)

백 가지 초목 중 새로운 한 맛을

조주스님은 몇 천 번이나 권했던가

돌솥에 강심수 고이 달였사오니

망령이여, 드시고서 윤회에서 벗어나소서

고혼이여, 드시고서 윤회에서 벗어나소서

모든 영가여, 드시고서 윤회에서 벗어나소서




<진 행 >

법주 요령을 세 번 울리고 나서 앉은 채로 합장하고 반배하면서 ?일심봉청?을 하면서 요령을 잡고 진행하다가 ?유원?에서 요령을 한 번 채고 내리면 된다. 이와 같이 세 번을 하고 나면 바라지는 목탁이나 태징을 내리고 향연청을 세 번 외우고 가영을 외우면 된다.

다음에 법주 요령을 세 번 울려 위에서 청한 영가들이 모두 자리에 앉도록 착어를 하고 난 후 바라지가 받아서 안좌게 ?아금의교설화연~?을 외우면서 목탁을 내린다. 다시 법주 요령을 세 번 울리고 ?수위안좌진언?을 하고 바라지는 다게를 외우면 된다. 다게를 외울 때는 재자들에게 삼배를 하도록 한다.




<해 설>

관음시식의 고혼청은 천도에 있어서 처음 대령에서의 고혼청과 같다. 다만 청사의 내용과 법문을 바꾸어서 할 수 있겠으나 여기에서는 삼청을 진행하는 청사의 순서만 바뀌었을 뿐 내용은 동일하다.

그동안 여러 번의 의식절차를 통하여 영가를 청하는 내용을 접하게 되었는데, 이제 다시 영가를 청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천도재를 진행하는 순서상 처음에 대령을 할 때에 고혼을 청하는 의식을 집전하였으면 그만일텐데 그 뒤에도 여러 번의 영가를 청하는 의식 절차가 등장하고 똑같은 고혼청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 왜 이렇게 번잡하게 되었을까?

하나는 대령과 관음시식을 분리하여 따로 진행하는 경우에는 각각의 고혼에 대한 청사를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또 하나는 인간의 심성이 자주 변하고 어지럽듯이 영가의 마음도 다를 바 없으므로 의식을 진행하는 동안 혹여 영가가 다른 데 정신을 팔지 못하도록 하는 데 있다. 천도하려는 모든 영가가 빠짐없이 참석하도록 하기 위하여 여러 번에 걸쳐 간절한 마음으로 청사를 진행하는 것이다.

관음시식의 고혼청에서 청사를 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청사를 진행하는 법주의 마음이 법계의 실상 - 참다운 모습을 관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법주가 올바로 법계의 실상을 관한다면 바로 그 자리가 극락정토로 변화하게 된다. 이것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손가락으로 대지를 툭 건드리는 순간, 우주법계가 화장장엄세계로 변하는 것과 같은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영가를 불러서 천도하는 데 첩경은 영가로 하여금 법계의 참다운 모습을 깨닫도록 하여, 그 법계에서 노닐도록 하는 데 있다. 대령강의를 진행할 때는 청사의 자세한 내용은 관(觀)을 통해서 증득해야 할 선구(禪句)이기 때문에 해설을 하지 않았으나, 여기서는 대강을 언급하고자 한다.

법계의 참다운 모습은 이름을 떠나 있고 법신은 자취가 없어 업연따라 일어났다 없어지는 것이 마치 우물 속의 두레박이 오르내림과 같다고 하였다.

법계의 진정한 모습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직관을 통해서 법계의 모습을 관해야만 그 모양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어떤 고정된 실체를 갖고서 왔다갔다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자기가 지은 업연을 따라 과보를 받아 태어나서 어느 정도 생을 누리다가, 다시 업연이 다하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 업을 따라 윤회하는 모양은 마치 깊은 우물에서 물을 푸기 위한 두레박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모습과 같으며, 천상?인간?아수라?축생?아귀?지옥의 6도에 업을 따라 오르내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오르내리는 변화는 헤아리기가 어렵지만, 하나로 통해버린 실상의 세계(법계)에서는 오고 가는 것이 실체가 있지 않아 환 - 그림자 같다. 그러므로 먼 곳에 있다 하더라도 못오실 바가 없으니, 오늘 49재(천도재)를 맞아 아드님이나 따님 또는 부인이나 남편, 손자 등이 간절한 마음으로 영가를 청하오니, 부디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지하여 천도재를 올리는 이 자리 - 법석에 와서 법공양을 받아 해탈하거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라는 말이다.

실상에서 올바로 보면 삶과 죽음이라는 것은 실체가 없어 인연따라 나타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실제로는 태어남이라는 것도 죽음이라는 것도 없다. 이것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으므로 각자 법계의 모양을 잘 관해 보아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재청에서 보면 인연이 모였다 흩어지는 것은, 옛과 지금 다르지 않고 우주의 본체는 텅텅 비어 넓고 크고 신령스레 통하여서 오고 감에 자유로와 아무런 걸림이 없다고 하였다.

인연이 모였다 흩어진다는 것은 태어남과 죽음을 말한다. 즉 인연이 주어지면 모양새가 나타난다. 이것을 태어났다고 하고, 그 인연이 다하면 모양새가 허물어게 된다. 이것을 죽음이라고 한다. 그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전혀 다르지 않은 진리라는 말이다.

그런데 법계의 모양은 텅비었고, 아주 맑고, 넓고 클 뿐만 아니라 신령스레 통하였다 하였다. 이것은 법계의 모양이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육신의 눈으로 보면 서울과 부산은 서로 떨어져 있고, 한국과 미국은 따로 떨어져 있으며, 너와 나는 서로 떨어져 있는 모양으로 보인다. 하지만 법계에서는 본래 한 세계이므로 여기에 계합만 하면, 곧 하나임을 알게 되므로 서로 통하여 있다는 말이다. 오늘 영가를 청하건대 부처님의 위신력을 입는다면 어디 계시더라도 즉시에 오실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곧 오시라는 말이다.

삼청에서 보면 만약 어떤 사람이 부처님의 경지를 알고자 하면, 그 마음을 맑히기를 허공과 같이 하여 망령된 생각과 모든 헐떡거림(집착)을 멀리 떠나보내고 그 마음으로 하여금 일체의 걸림이 없게 하라 하였다.

부처님은 진리를 올바로 깨달아 깨달은 바대로, 즉 진리 그대로 사시는 분이다. 부처님의 경지를 알고자 한다면 곧 진리의 세계, 참다운 법계에 계합해야 한다. 법계에 계합하려면 일체의 망령된 생각과 헐떡거림, 즉 번뇌를 없애야만 한다. 그리고 법계의 참모습을 배반하고 이루어진 번뇌의 업과 과보로 이루어진 모든 것에 대한 집착이 없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마음에 일체의 걸림이 없게 된다.

걸림이라는 것은 자신의 마음에 무엇인가 건더기를 남기는 것을 말한다. 탐욕심을 가진 자, 성냄을 가진 자, 어리석음을 가진 자는 모든 것에 걸림을 갖게 마련이다. 내가 남보다 무엇을 하더라도 더해야 하는데, 더 잘나야 하는데, 더 많이 가져야 하는데 등등 걸리는 것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모든 할 일을 다 마친 사람을 무위진인(無爲眞人)이라고 하였다. 즉 무슨 일을 하더라도 탐진치 삼독을 떠난 상태에서 밥먹고 말하고 똥누고 가고 오는 사람을 말한다. 욕심을 가지지 않은 자는 집착하지 않아 성을 낼 필요가 없고, 성을 내지 않은 자는 헐떡거리지 않으며, 지혜있는 자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래야만 부처님의 경지를 알 수 있는 법계의 모양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오늘 모든 영가들은 허공과 같은 마음으로 모두 이 법연에 내려와서 법공양을 받으라는 말이다.

여기서는 향화청이 아니고 향연청이다. 향을 사르며 청한다는 말이니 다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가영은 대령에서 자세히 해설하였으므로 생략한다.

안좌게는 편안하게 앉는 노래이다. 위에서 이미 부처님의 섭수하심을 받아 법의 가지에 의지하여 이미 죄의 얽매임이 없어져서 법연에 임하였으니, 원컨대 한가로움을 얻어 법연에 나가소서 라고 하였다.

대령과 관욕을 통하여 온갖 번뇌에 물든 몸과 마음을 정화시킨 영가들에게 다시 법의 가피에 의지하도록 법문을 계속 일러주어 번뇌를 끊게 하는 것이 천도의식의 기본이다. 그러므로 관음시식에 있어서 고혼을 세 번 청하는 데 있어서도 그냥 청하는 것이 아니다. 법계의 참된 모양을 보여주고 그 법계의 움직이는 모양을 보여주고, 법계를 배반하고 생사계에 떨어진 영가의 실상을 알려주어 그 생사의 세계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법문으로 일관된 것이 고혼청의 내용이다. 그렇게 법계를 관하고 생사의 세계를 벗어나 열반의 세계에서 한가롭게 노닐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49재는 단순하게 영가에게 음식을 주는 것이 아니다. 속적으로 법문을 일러주어 영가로 하여금 진여법계의 실상을 깨닫도록 하는 것이 그 참다운 목적이다. 그러므로 영가들에게 순서대로 편안하게 앉아 부처님 말씀을 자세하게 들으라는 것이다. 이렇게 수위안좌진언을 통하여 편안하게 앉은 영가들에게 다시 - 조주 스님이 법을 물으러 오는 모든 이들에게 차를 권하였듯이 - 차를 대접하여 목마른 갈증을 해소시켜주고, 그 다음에 진수를 들어 일체의 허기를 면하고 윤회하는 마음을 씻어내도록 하는 것이다.




<원 문>

선밀가지(宣密加持) 신전윤택(身田潤澤) 업화청량(業火淸凉) 각구해탈(各求解脫)

변식진언(變食眞言)

「나막 살바 다타아다 바로기데 옴 삼바라 삼바라 훔」

시감로수진언(施甘露水眞言

「나무 소로바야 다타아다야 다냐타 옴 소로소로 바라소로 바라소로 사바하」

일자수륜관진언(一字水輪觀眞言) 「옴 밤 밤 밤 밤」

유해진언(乳海眞言)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밤」

칭양성호(稱揚聖號)

나무다보여래(南無多寶如來) 원제고혼(願諸孤魂) 파제간탐(破除?貪) 법재구족(法財具足)

나무묘색신여래(南無妙色身如來) 원제고혼(願諸孤魂) 이추루형(離醜陋形) 상호원만(相好圓滿)

나무광박신여래(南無廣博身如來) 원제고혼(願諸孤魂) 사육범신(捨六凡身) 오허공신(悟虛空身)

나무이포외여래(南無離怖畏如來) 원제고혼(願諸孤魂) 이제포외(離諸怖畏) 득열반락(得涅槃樂)

나무감로왕여래(南無甘露王如來) 열명영가(願我各各) 열명영가(列名靈駕) 인후개통(咽喉開通)

획감로미(獲甘露味) 원차가지식(願此加持食) 보변만시방(普遍滿十方) 식자제기갈(食者除飢渴)

득생안양국(得生安養國)

시귀식진언(施鬼食眞言) 「옴 미기미기 야야미기 사바하」

시무차법식진언(施無遮法食眞言) 「옴 목역능 사바하」

보공양진언(普供養眞言) 「옴 아아나 삼바바 바아라 훔」

보회향진언(普廻向眞言「옴 사마라 사마라 미마나 사라 마하 자가라바 훔」




<<역 문>>

비밀한 가지를 베푸오니 몸과 마음 윤택해지고 업의 불길 모두 소멸하여 각기 해탈하옵소서.

음식을 변화시키는 참말씀

「나막 살바 다타아다 바로기데 옴 삼바라 삼바라 훔」

감로수를 드리는 참말씀

「나무 소로바야 다타아다야 다냐타 옴 소로소로 바라소로 바라소로 사바하」

한 마디로 수륜삼매를 관하는 참말씀

「옴 밤 밤 밤 밤」

젖의 바다와 같이 부드럽게 하는 참말씀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밤」

(성스러운 부처님의 명호를 찬탄하여 드러냄)

다보여래 부처님께 귀의하옵나니, 모든 고혼, 인색과 탐욕 버리고서 법의 재물 갖추게 하옵소서

묘색신여래 부처님께 귀의하옵나니, 모든 고혼, 추한 모습 떠나고서 좋은 모습(원만상호) 갖추게 하옵소서

광박신여래 부처님께 귀의하옵나니, 모든 고혼 여섯 가지 범부의 몸 버리고서 허공과 같은 몸 깨닫게 하옵소서

이포외여래 부처님께 귀의하옵나니, 모든 고혼, 모든 두려움을 떠나 열반락을 얻도록 하옵소서

감로왕여래 부처님께 귀의하옵나니, 모든 고혼, 모든 영가 목구멍이 열리어서 감로의 맛 획득하게 하옵소서

원컨대 이 가지의 음식이 온 세계에 두루하여 먹는 자마다 주림과 목마름을 면하옵고 극락국에 왕생하게 하여지이다.

아귀에게 밥먹이는 참말씀

「옴 미기미기 야야미기 사바하」

차별 없이 법공양을 베푸는 참말씀

「옴 목역능 사바하」

널리 공양하게 하는 참말씀

「옴 아아나 삼바바 바아라 훔」

널리 회향하는 참말씀

「옴 사마라 사마라 미마나 사라 마하 자가라바 훔」




<해 설>

이제까지 영단에 법단을 꾸며 제수를 진설하고, 영가를 불러 자리에 앉히고 우주 법계의 현상을 설명하여 법계에 들도록 하는 법문을 구구절절이 하게 해주었다.

이제는 법단에 차려진 공양물을,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사다라니를 통하여 변식하여, 다섯 여래의 명호를 일러 주고 진언을 통하여 잘 드시도록 하는 절차가 진행된다.

?비밀한 가지를 베푸오니 몸과 마음 윤택해지고 업의 불길 모두 소멸하여 각각 해탈하옵소서?라고 하였다. 선밀가지는 선비밀가지를 줄인 말이다. 밀교의 비밀한 주문으로써 가지하여 음식을 변화시키겠다는 뜻이다. 그러한 가지에 의하여 베푸는 음식을 먹게 되면 이제까지 고단하고 피곤하고 배고파서 고달프던 몸과 마음이 기름지게 되어 윤택하게 살이 찌고, 법식을 먹음으로 해서 업으로 인해 지은 번뇌의 불길이 모두 꺼지고 시원해지게 되므로 각각 모두 해탈을 하라는 것이다.

변식진언은 거칠고 세속적인 음식을 부처님께서 드시던 좋은 공양으로 바뀌게 하는 것이다.

변식진언에 얽힌 유래는 삼보통청 강의를 진행할 때에 자세하게 이야기한 바가 있다.

부처님과 제자들에게 삼 개월 안거 동안 한 바라문이 공양을 올리기로 약속하였다. 그런데 그 바라문은 외도의 꾐에 빠져 약속을 어기고 공양을 올리지 않았다. 부처님과 제자들은 목동들에게 말먹이인 겉보리를 얻어 삼 개월을 지내게 되었다. 모든 제자들은 먹기가 역겨워 매우 힘이 들었는데 오직 부처님께서는 맛있게 드셨다. 아난이 의아해 하자 부처님께서는 당신이 잡수시던 말먹이 공양을 아난에게 주셨다. 아난이 먹어 보니, 그 맛이 세상 어느 음식에도 비할 수 없이 좋았다는 이야기다.

감로수를 드리는 진언은, 보통 물을 한 번 먹으면 영원히 늙지 않고 죽지 않는다는 감로의 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일자수륜관이란 오륜삼매 중의 하나인 수륜삼매를 관하는 것이다. 물이란 본래 모든 만물을 윤택하게 적시어서 생장시키고 체성을 유연하게 하는 두 가지의 공덕이 있다. 그러므로 이 수륜관을 통하여 물이 온갖 만물을 윤택하게 적시어 자라나게 하는 것과 같이 오늘의 조그마한 선근을 수륜삼매를 통하여 증장시키는 의미를 가진다. 즉 수륜삼매라는 것은 윤택해지고 촉촉해져 청량(시원)해지는 의미를 갖고 있다. 수륜관진언을 통하여 수륜삼매에 들게 하여 몸과 마음을 유연하게 하고, 높은 아만과 아상을 조복하고 선법에 따르게 하는 의미로 수륜관진언을 한다.

유해진언의 유해라는 것은 밀교의 용어로 금강계의 대일여래의 지혜의 덕을 일컫는 말로서 대일여래의 지혜의 물을 뜻한다. 경전에 보면 우유라는 것은 아주 좋은 공양으로 묘사되고 있다. 부처님의 수행기를 다룬 『수행본기경』에는 싯달타의 극심한 고행을 보고 감탄하며 같이 수행하던 다섯 비구가 싯달타가 선생녀에게 우유죽을 얻어 먹었다고 해서 타락했다고 그의 곁을 떠나가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과 같이 우유라는 것은 아주 정제된 것으로, 우유에 대한 비유가 『아함경』에는 많이 등장한다.

이처럼 사다라니는 엄청난 뜻을 가지고 있다. 입으로만 진언을 외울 것이 아니라 올바로 관을 하면서 진언을 외워야 한다. 그 다음은 영가에게 성스러운 다섯 부처님의 명호를 들려 준다. 다섯 부처님은 아귀들에게 공양을 베풀 때 모시는 부처님이다.

다보여래는 보승여래라고도 하며, 평등성지(平等性智)를 나타내는 부처님으로서 평등한 마음을 갖게 하여, 인색과 탐욕을 떨쳐 버리고 법의 재물을 얻게 한다.

묘색신여래는 대원경지(大圓境智)를 나타내는 부처님으로서 영가를 대원경지에 들게 하여, 추한 모습을 버리고 원만한 모양을 갖게 한다.

광박신여래는 법계지(法界智)를 나타내는 부처님으로서 범부들이 안이비설신의 여섯 가지 몸을 가지고 ?나?라고 집착하는 생각을 떨쳐 버리고 법계지인 공성을 깨달아 허공과 같음을 깨닫게 한다.

이포외여래는 성소작지(成所作智)를 나타내는 부처님으로 부처님이 수행으로써 모든 팔만 사천의 마군의 공격을 물리치고 성불을 한 것과 같이 모든 고혼들이 두려움을 떠나 열반의 즐거움을 얻게 한다.

감로왕여래는 묘관찰지(妙觀察智)를 나타내는 부처님으로 모든 아귀와 영가들의 목구멍을 크게 열어서 음식을 맛있게 먹도록 한다.

이와 같이 사다라니와 다섯 여래의 위신력을 통하여 영가에게 강제로라도 음식을 먹도록 하는 것이 마지막 절차이다. 오늘 올린 음식이 온 세계에 두루하여 먹는 자마다 주림과 목마름을 여의고 안양국, 극락세계에 가서 나도록 발원하는 것이다.

시귀식진언을 통하여 아귀의 입과 목을 벌리고 밥을 먹도록 하여 주며, 기타 고혼들에게는 빠짐없고 차별없이 평등하게 공양을 하도록 시무차법식진언을 외우며, 보공양진언으로 널리 공양하게 하며, 보회향진언을 통하여 오늘 지은 모든 공덕을 널리 회향하여 공덕을 확대시키는 것이다.

공덕을 지어서 자기 혼자만을 위하여 쓰려는 자는, 조그만 공덕은 이룰 수 있고 조그만 과보를 받을 수가 있다. 따라서 크게 되지 못하고 크게 받을 수가 없다. 그러나 아무리 작더라도 진정으로 자기가 지은 공덕을 남들에게 아낌없이 널리 회향을 하는 사람은, 그 크기가 법계에 가득차게 되고 그 회향되는 만큼 공덕이 늘어날 것이다.




<원 문>

수아차법식(受我此法食) 하이아난찬(何異阿難饌) 기장함포만(飢腸咸飽滿) 업화돈청량(業火頓淸凉)

돈사탐진치(頓捨貪瞋癡) 상귀불법승(常歸佛法僧) 염념보리심(念念菩提心) 처처안락국(處處安樂國)

범소유상(凡所有相) 개시허망(皆是虛妄)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즉견여래(卽見如來)

여래십호(如來十號

여래(如來) 응공(應供) 정변지(正遍知) 명행족(明行足) 선서(善逝) 세간해(世間解) 무상사(無上士)

조어장부(調御丈夫) 천인사(天人師) 불(佛) 세존(世尊)

제법종본래(諸法從本來) 상자적멸상(常自寂滅相) 불자행도이(佛子行道已) 내세득작불(來世得作佛)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 생멸멸이(生滅滅已) 적멸위락(寂滅爲樂)




<<역 문>>

내가 드리는 이 법식이

어찌 아난이 먹던 음식과 다름이 있으리오

고픈 자마다 배부르게 먹어 만족하고

업력의 불길이 단박에 시원해지리니

몰록 탐진치를 버리고서

항상 불법승에 귀의하여

생각 생각마다 보리심 가져

가는 곳마다 편안한 극락정토 이루소서

무릇 모양이 있는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니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님을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

그렇게 온 이 여래께서는 열 가지 다른 이름이 있느니, ?공양 받을 이, 바르게 두루 아는 이, 지혜와 행이 갖춰진 이, 잘 건너간 이, 세간을 가장 잘 아는 이, 스승 없는 이, 장부를 잘 다루는 이, 하늘과 사람의 스승, 깨달은 이, 세간에서 가장 존귀한 이?라고 부른다네

모든 법은 본래로부터

항상 스스로 적멸(고요)한 모양이니

불자가 이와 같이 수행하여 마치면

오는 세상에 부처가 될 것이니라

모든 법은 항상됨이 없으니

나왔다 죽는 법이기 때문이니라

나왔다 죽음이 다하여 마치면

고요하고 고요한 즐거움이 되느니라




<해 설>

?내가 주는 이 법식이 아난이 먹던 음식과 다르지 않다?는 말은 불공의식 등을 진행할 때 누차 설명한 바 있다. 부처님께서 잡수시던 말먹이 겉보리를 아난이 먹어 보니, 이 세상의 어떤 음식과도 비교할 데 없는 맛있는 음식이더라는 데서 나온 말이다.

?배고픈 자마다 배부르게 먹어 만족하게 하면 업력의 불 길이 꺼져서 단박에 시원해지리니?라는 말은, 아귀세계에서 배가 남산만하고 목구멍이 바늘 구멍같아 고통받던 아귀 귀신의 입장에서 보면, 변식을 통하여 잘 정제된 법의 음식을 먹는 이 순간이야말로 모처럼 배가 부르게 된다. 그리고 먹으려고 하기만 하면 불로 변해버리던 음식을 제대로 먹음으로써 업력의 불길이 꺼져 아주 시원하게 된다는 것이다.

영가에게 이러한 좋은 기회를 만났으니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었던 세 가지 독을 한꺼번에 버려라, 그리고 나서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하는 거룩하신 스님들에게 항상 귀의하여, 생각생각마다 부처님처럼 위없이 바른 깨달음을 얻고야 말겠다는 보리심을 갖고서 가는 곳마다 안락국, 즉 편안한 나라 정토가 되라는 것이다. 여기서 안락국은 극락정토라고 할 수 있다.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는 『금강경』 제5여래실견분(진리와 같이 참다움을 보는 분)에 등장하는 사구게로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게송이다. 유위법, 즉 인연에 의하여 형성되어진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진실한 진리의 입장에서 보면 참다운 실상이 아니다. 재를 지내고 있는 영가들의 입장에서 보면, 육신의 형상을 잃어버린 영가가, 중음신으로서 가지고 있는 ?나?라고 생각하는 형상은 육신을 떠남으로써 완전한 허상이다. 만약 모든 상이 상 아님을 보면 즉시 여래를 보리라는 뜻이다. 영가는 자신의 형상을 집착하게 되므로 금강경 사구게를 일러 주어 진리를 깨닫게 하려는 뜻이 있다.

여래는 부처님의 별칭이며 보통 여래라고 하면 석가모니 부처님을 지칭하는 말이다. 석가모니 여래에게는 열 가지 다른 이름이 있는데 이를 별호라 한다. 영가에게 다시 부처님의 훌륭하신 열 가지 이름을 들려 주어, 재를 올리는 인연이 헛되지 않고 부처님과 같이 진리를 깨달아서 고해를 잘 건너가라고 하는 의미이다.

여래(如來)는 진리로부터 온 이, 또는 진리와 함께 온 이라는 뜻이다. 즉 진리를 바탕으로 하여 서 있는, 진리적인 생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응공(應供)은 공양받을 만한 이라고 하는 뜻이다. 아라한의 해석으로 쓰이는 것으로 평등성지를 얻어 모든 것을 평등하게 관하는 지혜를 증득하였다는 뜻이다.

정변지(正遍知)는 바르게 두루 아는 지혜를 갖춘 이라는 뜻으로 전지(全智 - 모든 것을 바르게 아는)하다는 뜻을 가진 별호이다.

명행족(明行足)은 명과 행이 갖춰진 이라는 뜻이다. 명은 지혜로써 법계를 밝게 보는 것이고, 행은 밝게 아는 지혜를 몸으로 실천한다는 뜻으로 두 가지를 완전히 갖추었다는 뜻이다.

선서(善逝)는 ?잘 간 이?, ?잘 건네 주는 이?라는 뜻이다. 본인 자신이 일체 번뇌로 가득한 고해를 잘 건너갔을 때뿐만 아니라 다른 중생까지도 잘 건네주는 이라는 뜻이 있다.

세간해(世間解)는 세간을 잘 아는 이라는 뜻이다. 부처님은 세간을 뛰어 넘은 존재로서 출세간의 법성 진리의 차원에 머무르고 계시지만, 세간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세간을 잘 알아야만 자신도 세간을 잘 건너갈 수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중생도 잘 건네 줄 수 있다.

무상사(無上士)는 더 이상가는 스승이 없다는 뜻이다. 부처님의 깨달음은 다른 스승에게서 배워서 안 것이 아니지만, 다른 어떤 스승보다 높은 진리를 깨달으셨으므로 ?더 이상 위가 없는 스승?이라 하는 것이다.

조어장부(調御丈夫)라는 것은 장부를 잘 제어하신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자기 자신을 잘 조절하여 일체의 번뇌를 버리고 해탈에 이르셨을 뿐만 아니라 다른 다루기 어려운 중생도 잘 다루므로 조어장부라고 하는 것이다.

천인사(天人師)란 천인(天人) 즉 하늘 사람의 스승 또는 천상 세계와 인간 세계의 스승이란 뜻이다.

불(佛)은 바른 깨달음(봇다)을 얻으신 이라는 뜻이다. 인도의 다른 종교에서도 깨달음을 표방하고는 있지만 부처님이라는 표현은 하지 못했다.

세존(世尊)은 세간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이라는 뜻이다. 세간에 있는 모든 스승들 가운데 으뜸이 되며, 우리 인간과 똑같은 인간으로서 누구보다도 위대하신 수행을 통하여 가장 높은 진리를 깨우치고, 다른 이에게 설하여 세존이라고 이름붙인 것이다. 이와 같이 영가에게 부처님의 열 가지 특징이 다른 명호를 들려 준다.

그리고 마지막 법문으로 설산동자가 뒷구절을 얻기 위해서, 나찰에게 자신의 몸을 제공하려고 절벽에서 뛰어내려 법을 구했다고 하는 ?법신게? 법문을 들려 준다.

그럼으로써 영가에게 영가의 몸이 허깨비임을 깨닫게 하여 이승이나 육신에 대한 집착을 끊고 깨달음에 이르러 정토에 왕생시키려는 것이 공양 후의 사구게 법문이다.

?모든 법이 본래부터 항상 고요한 모양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있는 것을 소멸시켜서 고요하게 된 것이 아니라 본래 모양이 고요한 것이다. 진리의 근본인 법성 진리 차원에서는 무슨 특정한 모양새를 갖추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불자들이 도를 수행할 때에 모름지기 이와 같이 언행을 하여 마친다면, 금생에 보처보살의 위치에 오르게 되고 내세에는 반드시 부처님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다음 구절인 ?제행무상 시생멸법 생멸멸이 적멸위락?은 영가에게 아직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집착을 끊게 하기 위하여, 무상한 세계에 대한 법문을 들려 주는 것이다.

모든 것은 전부가 항상됨이 없이 변해 가며, 영가가 죽은 것도 이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러한 죽음의 세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태어났다 죽고 다시 태어났다 죽는 것이 모두 없어져야만 고요한 열반의 세계에 도달하게 된다는 말이다. 영가에게 마지막 남은 집착을 끊고 열반의 세계에 들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를 가진 법문이다.

『아미타경』 등 정토삼부경에서 아미타불께서는 명호를 부르기만 하면, 자신이 직접 오셔서 극락으로 데려가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영가에게 무상법문을 해주고, 부처님의 열 가지 명호를 알려 주고, 아미타부처님의 원력에 의지하여 극락세계에 가서 태어나도록 염불해 주는 것이다.




<원 문>

원아진생무별념(願我盡生無別念) 아미타불독상수(阿彌陀佛獨相隨)

심심상계옥호광(心心常係玉毫光) 염념불리금색상(念念不離金色相)

아집염주법계관(我執念珠法界觀) 허공위승무불관(虛空爲繩無不貫)

평등사나무하처(平等舍那無何處) 관구서방아미타(觀求西方阿彌陀)

나무서방대교주 무량수여래불(南無西方大敎主 無量壽如來佛)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10번 이상)




<<역 문>>

이 생이 다하도록 다른 생각 아니하고

오로지 한 맘으로 아미타불 따르리라

마음으로 한결같이 옥호광명 생각하고

생각마다 한결같이 금색 부처 떠나잖고

염주를 가지고서 법계를 관할 때에

허공을 노끈 삼아 꿰지 못함 없사옵고

평등하신 노사나불 안 계신 곳 없건마는

서방세계 아미타불 관하옵고 구하오니

서방 극락 대교주이신 한량없는 수명 가진 부처님께 귀의하세

나무아미타불 (10번)




<해 설>

『아미타경』에 극락세계에 왕생하고자 하는 자는 한 마음으로 일 주일을 일사불란하게 아미타불을 염하면, 임종시에 아미타부처님께서 좌우에 관음?세지 양대보살을 거느리고 오셔서 그 사람의 이마를 어루만지시면서 극락세계로 인도하신다고 하셨다.

그러나 일심으로 부르는 사람이 적으므로 단지 한 번만이라도 아미타불을 부른 자는 극락으로 데려 가신다고 하셨다. 그것도 잘 되지 않으므로 임종을 한 후에 가족들이 돌아가신 망자를 위하여 지성으로 아미타불을 부른다면 그 망자를 극락세계로 인도하겠노라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관무량수경』에 보면, 극락세계에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열세 가지 관법을 닦으라고 하였다.

첫째는 해가 넘어갈 때의 큰 불같이 생긴 붉은 해를 본 뒤에, 눈을 뜨거나 감거나 간에 그 해의 영상이 똑똑히 남아 있도록 하는 법, 둘째는 물을 생각하되 물이 얼어 유리 같이 투명함을 보는 법, 셋째는 땅을 생각하는 법, 넷째는 나무를 생각하는 법, 다섯째는 보배 연못을 생각하는 법, 여섯째는 칠보로 된 누각을 생각하는 법, 일곱째 연화대를 생각하는 법, 여덟째 부처님의 형상을 생각하는 법과 아홉 번째 부처님의 참 몸을 뵙는 법이 나오고, 열번째 관세음보살을 생각하는 법, 열한번째 대세지보살을 생각하는 법, 열두번째 그 모든 것을 통틀어 생각하는 법과 열세번째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의 몸을 섞어서 관찰하는 등의 열세 가지 관법이 있다.

아미타불을 염불하기 전에 외우는 아미타불 찬탄은 제8부처님의 형상을 생각하는 불상관(佛像觀)과 제9부처님의 참 몸을 생각하는 진신관(眞身觀)의 내용이다.

극락정토에 나려면 일심으로 아미타불 명호를 부르고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아미타불을 외우는 염불행자는 어떠한 생각으로 해야 하는가. 바로 원컨대 나의 몸을 받아 살아 있는 생명이 다하도록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오직 아미타 부처님만을 생각하며 한 맘으로 아미타불을 따르겠다고 다짐한다. 그런 다음에 극락세계의 칠보로 장엄된 연화대를 생각하고, 그 연화대 위에 앉으셔서 미간의 백옥 빛을 가진 터럭으로부터 빛나는 광명을 발휘하시는 부처님의 상호를 항상 생각한다. 눈을 뜨거나 감거나 간에 황금색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아미타불의 금색의 몸을 생각하는데, 잠시도 잊어버리는 일이 없겠다고 맹세하고 다짐해야 한다.

물론 염주를 들고 법계를 관하고 온 허공을 다 꿰뚫어 관하지만, 아미타불만을 찾게 되니 다른 부처님께는 약간 죄송한 마음도 있다. 그러므로 우주 법계에 평등한 보신인 노사나부처님이 계시지 않은 곳이 없으시지만, 오직 서방 극락세계에 태어나기 위하여 아미타부처님만을 관하고 극락정토에 나기를 구한다고 하는 것이다.

많은 부처님 가운데서 오직 아미타불만을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지극한 마음으로, 극락을 건설하고 이끌어 가고 계신 한량 없는 생명의 주인이신 아미타불께만 의지하여 따르겠으니 부처님의 원력대로 하시옵소서 라고 발원하는 것이다.

뒤집어서 말하면 이와 같이 마음을 오로지 하여 아미타불을 염해야만 극락세계에 가서 날 수 있다는 뜻도 된다.




<원 문>

극락세계(極樂世界) 십종장엄 (十種莊嚴) (南無阿彌陀佛)

법장서원수인장엄(法藏誓願修因莊嚴) (南無阿彌陀佛) 사십팔원원력장엄(四十八願願力莊嚴) (南無阿彌陀佛)

미타명호수광장엄(彌陀名號壽光莊嚴) (南無阿彌陀佛) 삼대사관보상장엄(三大士觀寶像莊嚴) (南無阿彌陀佛)

미타국토안락장엄(彌陀國土安樂莊嚴) (南無阿彌陀佛) 보하청정덕수장엄(寶河淸淨德水莊嚴) (南無阿彌陀佛)

보전여의누각장엄(寶殿如意樓閣莊嚴) (南無阿彌陀佛) 주야장원시분장엄(晝夜長遠時分莊嚴) (南無阿彌陀佛)

이십사락정토장엄(二十四樂淨土莊嚴) (南無阿彌陀佛) 삼십종익공덕장엄(三十種益功德莊嚴) (南無阿彌陀佛)




<<역 문>>

극락세계는 열 가지 장엄으로 꾸며졌네 (나무아미타불)

극락세계 이룩하려 원을 세워 수행하신 법장행자 (나무아미타불)

마흔여덟 원력으로 극락세계 이룩했네 (나무아미타불)

아미타불 다른이름 거룩하온 무량수불 무량광불 (나무아미타불)

관음세지 대해중의 큰보살님 보배상호 갖추셨고 (나무아미타불)

아미타불 극락국토 편안하고 즐거움이 가득하며 (나무아미타불)

보배냇물 청정하온 여덟가지 공덕수로 가득찼네 (나무아미타불)

보배스런 궁전앞엔 여의보의 누각들이 솟아있고 (나무아미타불)

낮과 밤이 길고 길어 시분으로 장엄했고 (나무아미타불)

스물넷의 즐거움이 극락정토 가득한데 (나무아미타불)

서른가지 공덕 더해 극락장엄 이루었네 (나무아미타불)




<원 문>

석가여래팔상성도(釋迦如來八相成道) (南無阿彌陀佛)

도솔내의상(兜率來儀相) (南無阿彌陀佛)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南無阿彌陀佛)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南無阿彌陀佛)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南無阿彌陀佛)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南無阿彌陀佛)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南無阿彌陀佛)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南無阿彌陀佛)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南無阿彌陀佛)




<<역 문>>

석가여래 여덟가지 모양으로 성도했네 (나무아미타불)

도솔천에 계시다가 마야부인 태중으로 내려왔네 (나무아미타불)

사월 파일 룸비니에 우협으로 태어났네 (나무아미타불)

사대문 밖 구경하고 무상법을 알게 됐네 (나무아미타불)

2월 파일 한밤중에 성을 넘어 출가하니 (나무아미타불)

히말라야 설산에서 6년동안 (고행하고) 도 닦았네 (나무아미타불)

보리나무 아래에서 8만사천 마군중을 조복받네 (나무아미타불)

녹야원을 시작으로 일생동안 (중생 위해) 전법하네 (나무아미타불)

(2월보름) 사라쌍수 사이에다 자리 펴고 열반하네 (나무아미타불)




<원 문>

다생부모십종대은(多生父母十種大恩) (南無阿彌陀佛)

회탐수호은(懷耽守護恩) (南無阿彌陀佛) 임산수고은(臨産受苦恩) (南無阿彌陀佛)

생자망우은(生子妄憂恩) (南無阿彌陀佛) 연고토감은(咽苦吐甘恩) (南無阿彌陀佛)

회간취습은(廻乾就濕恩) (南無阿彌陀佛) 유포양육은(乳哺養育恩) (南無阿彌陀佛)

세탁부정은(洗濯不淨恩) (南無阿彌陀佛) 원행억념은(遠行憶念恩) (南無阿彌陀佛)

위조악업은(爲造惡業恩) (南無阿彌陀佛) 구경연민은(究竟憐愍恩) (南無阿彌陀佛)




<<역 문>>

여러 생의 부모님의 열 가지 크신 은혜 (나무아미타불)

임신하여 열달 동안 보호해준 크신 은혜 (나무아미타불)

달이차서 열 달만에 낳아주신 크신 은혜 (나무아미타불)

낳으실 때 온갖 고통 잊어버린 크신 은혜 (나무아미타불)

쓴것 먹고 단것은 뱉어먹인 크신 은혜 (나무아미타불)

젖은자리 마른자리 갈아뉘신 크신 은혜 (나무아미타불)

젖을 먹여 길러주신 어머님의 크신 은혜 (나무아미타불)

더러운 것 빨아주신 어머님의 크신 은혜 (나무아미타불)

먼 길 갈 때 걱정하고 근심해준 크신 은혜 (나무아미타불)

자식 위해 악한 일도 마다잖는 크신 은혜 (나무아미타불)

한목숨이 다하도록 걱정해준 크신 은혜 (나무아미타불)




<원 문>

청산첩첩미타굴(靑山疊疊彌陀窟) (南無阿彌陀佛) 창해망망적멸궁(滄海茫茫寂滅宮) (南無阿彌陀佛)

물물념래무가애(物物拈來無?碍) (南無阿彌陀佛) 기간송정학두홍(幾看松頂鶴頭紅) (南無阿彌陀佛)

극락당전만월용(極樂堂前滿月容) (南無阿彌陀佛) 옥호금색조허공(玉毫金色照虛空) (南無阿彌陀佛)

약인일념칭명호(若人一念稱名號) (南無阿彌陀佛) 경각원성무량공(頃刻圓成無量功) (南無阿彌陀佛)




<<역 문>>

겹겹 이은 푸른산은 아미타불 도량이요 (나무아미타불)

망망한 푸른바다 열반세계 궁궐이라 (나무아미타불)

온갖 만물 오고감에 전혀걸림 없건마는 (나무아미타불)

소나무 위 붉은 학을 몇 번이나 보았던고 (나무아미타불)

극락세계 본당 앞의 보름달과 같은 용모 (나무아미타불)

옥빛백호 금빛놓아 온허공을 비추는데 (나무아미타불)

어떤 사람 일념으로 아미타불 부른다면 (나무아미타불)

잠깐 사이 무량공덕 원만하게 이루리라 (나무아미타불)




<원 문>

삼계유여급정륜(三界猶如汲井輪) (南無阿彌陀佛) 백천만겁역미진(百千萬劫歷微塵) (南無阿彌陀佛)

차신불향금생도(此身不向今生度) (南無阿彌陀佛) 갱대하생도차신(更待何生度此身) (南無阿彌陀佛)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 (南無阿彌陀佛)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 (南無阿彌陀佛)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 (南無阿彌陀佛) 일체무유여불자(一切無有如佛者) (南無阿彌陀佛)




<<역 문>>

삼계윤회 오르내림 우물 속의 두레박 같아 (나무아미타불)

백천만겁 지나도록 벗어나기 어렵구나 (나무아미타불)

이몸 가진 금생 안에 제도하지 못하면은 (나무아미타불)

언제 다시 생을 받아 이 몸 제도 하올소냐 (나무아미타불)

하늘 위나 하늘 아래 부처님과 같음 없고 (나무아미타불)

동서남북 둘러봐도 부처님과 비김 없고 (나무아미타불)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다보아도 (나무아미타불)

부처님과 같은 이는 아무 데도 일절 없네 (나무아미타불)




<원 문>

찰진심념가수지(刹塵心念可數知) (南無阿彌陀佛) 대해중수가음진(大海中水可飮盡) (南無阿彌陀佛)

허공가량풍가계(虛空可量風可繫) (南無阿彌陀佛) 무능진설불공덕(無能盡說佛功德) (南無阿彌陀佛)

아미타불재하방(阿彌陀佛在何方) (南無阿彌陀佛) 착득심두절막망(着得心頭切莫忘) (南無阿彌陀佛)

염도념궁무념처(念到念窮無念處) (南無阿彌陀佛) 육문상방자금광(六門常放紫金光) (南無阿彌陀佛)




<<역 문>>

모든 세계 모든 티끌 마음으로 헤아리고 (나무아미타불)

큰바다의 모든 물을 남김없이 마시고서 (나무아미타불)

온 허공을 헤아리고 부는 바람 멈추어도 (나무아미타불)

부처님의 크신 공덕 다 말할 수 없노매라 (나무아미타불)

아미타부처님의 계신 곳이 어디메냐 (나무아미타불)

마음속에 붙들어서 간절하게 잊지 않고(나무아미타불)

생각하고 생각하면 생각없음 이르러서 (나무아미타불)

육근에서 변함없이 금색광명 발하리라 (나무아미타불)




<원 문>

보화비진요망연(報化非眞了妄緣) (南無阿彌陀佛) 법신청정광무변(法身淸淨廣無邊) (南無阿彌陀佛)

천강유수천강월(千江有水千江月) (南無阿彌陀佛) 만리무운만리천(萬里無雲萬里天) (南無阿彌陀佛)

산당정야좌무언(山堂靜夜坐無言) (南無阿彌陀佛) 적적요요본자연(寂寂寥寥本自然) (南無阿彌陀佛)

하사서풍동림야(何事西風動林野) (南無阿彌陀佛) 일성한안여장천(一聲寒雁?長天) (南無阿彌陀佛)




<<역 문>>

보신 화신 참 아니고 망연인줄 바로 아니 (나무아미타불)

법의 몸은 청정하고 넓고 크고 끝이 없어 (나무아미타불)

일천강에 물 있으니 일천강에 달이 있고 (나무아미타불)

만 리 간에 구름 없어 일만 리에 하늘 있네 (나무아미타불)

산 속 절에 밤이 깊어 말 없이 앉았으니 (나무아미타불)

고요하고 고요함이 본래부터 그러한데 (나무아미타불)

무슨 일로 서풍불어 동쪽 숲을 흔드는고 (나무아미타불)

찬기러기 울음소리 온 하늘에 퍼져가네 (나무아미타불)




<원 문>

천척사륜직하수(千尺絲綸直下垂) (南無阿彌陀佛) 일파자동만파수(一波?動萬波隨) (南無阿彌陀佛)

야정수한어불식(夜靜水寒魚不食) (南無阿彌陀佛) 만선공재월명귀(滿船空載月明歸) (南無阿彌陀佛)

원각산중생일수(圓覺山中生一樹) (南無阿彌陀佛) 개화천지미분전(開花天地未分前) (南無阿彌陀佛)

비청비백역비흑(非靑非白亦非黑) (南無阿彌陀佛) 부재춘풍부재천(不在春風不在天) (南無阿彌陀佛)




<<역 문>>

천길되는 낚시줄이 곧게 뻗어 내렸는데 (나무아미타불)

한파도가 움직이니 모든 파도 일어나네 (나무아미타불)

밤이 깊고 물이 차서 고기들이 물잖으니 (나무아미타불)

빈 배 안에 달빛만 가득 싣고 돌아가네 (나무아미타불)

원각산 가운데 한 나무가 생겨나서 (나무아미타불)

하늘 땅 나눠지기 전부터 꽃 피었네 (나무아미타불)

푸르잖고 희지않고 검지도 아니하니 (나무아미타불)

봄바람에 있지 않고 하늘에도 있지 않네 (나무아미타불)




<원 문>

십념왕생원(十念往生願) (南無阿彌陀佛) 왕생극락원(往生極樂願) (南無阿彌陀佛)

상품상생원(上品上生願) (南無阿彌陀佛) 광도중생원(廣度衆生願) (南無阿彌陀佛)

원공법계제중생(願共法界諸衆生) (南無阿彌陀佛) 동입미타대원해(同入彌陀大願海) (南無阿彌陀佛)

진미래제도중생(盡未來際度衆生) (南無阿彌陀佛)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 (南無阿彌陀佛)




<<역 문>>

열 번 불러 가서 나리 (나무아미타불) 극락정토 가서 나리 (나무아미타불)

상품 상생 가서 나리 (나무아미타불) 모든 중생 제도하리 (나무아미타불)

바라건대 법계의 모든 중생 함께 같이 (나무아미타불)

아미타불 큰원 속에 모두 같이 들어가서 (나무아미타불)

오는 세월 다하도록 중생들을 제도하여 (나무아미타불)

나와 남이 한날 한시 성불하게 하옵소서 (나무아미타불)




<원 문>

나무서방정토(南無西方淨土) 극락세계(極樂世界) 삼십육만억(三十六萬億) 일십일만(一十一萬)

구천오백(九千五百) 동명동호(同名同號) 대자대비(大慈大悲) 아미타불(阿彌陀佛)

나무서방정토(南無西方淨土) 극락세계(極樂世界) 불신장광(佛身長廣) 상호무변(相好無邊) 금색광명(金色光明) 변조법계(遍照法界) 사십팔원(四十八願) 도탈중생(度脫衆生) 불가설(不可說) 불가설전(不可說轉) 불가설(不可說) 항하사(恒河沙) 불찰미진수(佛刹微塵數) 도마죽위(稻麻竹葦) 무한극수(無限極數) 삼백육십만억(三百六十萬億) 일십일만(一十一萬) 구천오백(九千五百) 동명동호(同名同號) 대자대비(大慈大悲) 아등도사(我等導師) 금색여래(金色如來) 아미타불(阿彌陀佛)

나무문수보살(南無文殊菩薩) 나무보현보살(南無普賢菩薩)

나무관세음보살(南無觀世音菩薩) 나무대세지보살(南無大勢至菩薩)

나무금강장보살(南無金剛藏菩薩) 나무제장애보살(南無除障碍菩薩)

나무미륵보살(南無彌勒菩薩) 나무지장보살(南無地藏菩薩)

나무일체청정대해중보살마하살(南無一切淸淨大海衆菩薩摩訶薩)

원공법계제중생(願共法界諸衆生) 동입미타대원해(同入彌陀大願海)

시방삼세불(十方三世佛) 아미타제일(阿彌陀第一) 구품도중생(九品度衆生) 위덕무궁극(威德無窮極)

아금대귀의(我今大歸依) 참회삼업죄(懺悔三業罪) 범유제복선(凡有諸福善) 지심용회향(至心用廻向)

원동염불인(願同念佛人) 진생극락국(盡生極樂國) 견불요생사(見佛了生死) 여불도일체(如佛度一切)

원아임욕명종시(願我臨欲命終時) 진제일체제장애(盡際一切諸障碍)

면견피불아미타(面見彼佛阿彌陀) 즉득왕생안락찰(卽得往生安樂刹)

원이차공덕(願以此功德) 보급어일체(普及於一切) 아등여중생(我等與衆生)

당생극락국(當生極樂國) 동견무량수(同見無量壽) 개공성불도(皆共成佛道)




<<역 문>>

서방정토 극락세계 삼십육만억 일십일만 구천오백 이름과 호 같으시고 크신 사랑 크신 자비 아미타 부처님께 귀의하옵니다.

서방정토 극락세계 부처님 몸 길고 크며 상호 또한 끝이 없어 금색 광명 온 법계를 비추시고 마흔여덟 큰원으로 중생들을 해탈시켜 제도하시는 불가설과 불가설전으로도 다 말할 수 없고 갠지스강 모래와 같은 부처님 나라의 티끌 수와 같은 벼?삼?대?갈대처럼 한없고 끝없는 숫자인 삼백육십만억 일십일만 구천오백 이름과 호가 같으신 크신 사랑?크신 자비 우리들을 이끌어 주시는 스승 금빛 부처님 아미타 부처님께 귀의하옵니다.

문수보살 보현보살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금강장보살 제장애보살 미륵보살 지장보살 일체청정대해중보살님께 귀의하옵니다.

바라건대 법계 내의 모든 중생 모두 함께 아미타불 큰 원 속에 모두 함께 들어가게 하옵소서

시방세계 부처님 가운데 아미타부처님이 제일이시니 구품으로 중생을 건지시니 위덕이 크고 넓으시사

제가 지금 크게 귀의하되 삼업으로 지은 죄 참회하고 제가 가진 모든 복과 착함 지심으로 회향하오니

원컨대 함께 염불하는 모든 이들 목숨 마치고 극락세계에 태어나서 부처님을 뵙고

삶과 죽음 요달하고 부처님과 같이 일체중생 건져지이다

바라건대 나의 목숨 다하려 할 때 일체의 모든 장애 다 뿌리치고

면전에서 저 아미타 부처님을 친견하고 곧바로 편안하고 즐거운 극락세계 가서나길 원합니다

이 공덕 일체에 널리 퍼져 우리와 모든 중생이 극락세계에 태어나서 무량수 부처님을 뵙고

수기를 받고는 모두 함께 성불하여지이다




<해 설>

장엄염불에 나오는 게송은 대부분이 선구로 이루어져 있다. 해설할 수도 있겠으나 선구는 말로서 해설하는 데 중점을 두어서는 될 것이 아니라 각자가 참구하여 그 경지에 대한 경험이나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되므로 해석하는 수준에서 마치고자 한다.

다만 한가지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극락세계를 창조한 이는 아미타부처님이요, 아미타불께서 창조한 극락세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아미타부처님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허락을 받는 방법은 아미타부처님을 일심으로 부르면 된다.

아미타불을 부르는 육자염불 ?나무아미타불?에는 극락세계로 건너갈 수 있는 열쇠가 담겨 있다. ?나무?란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목숨을 바친다?, ?완전히 돌아가 의지한다?라는 뜻이다. 장난삼아 한 번 ?나무아미타불?하고 부르더라도 ?나의 전부를 아미타불 당신께 바치니 마음대로 하소서?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굉장한 내용이다.

아미타란 무량수 - 한량없는 수명(목숨)과 무량광 - 한량없는 빛이다. 영원히 살고 영원히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세계의 주인이라는 뜻이다. 영원히 행복하게 즐겁게 살고자 하는 자는 아미타불께 귀의하여 극락세계에 태어남, 즉 왕생극락하는 것이 첩경이다.

사후에 망자를 천도할 때도 제사의 끝에 생전의 가족들이 아미타불을 일심으로 정성껏 부르면 아미타불의 허가를 받아 영가를 극락세계로 들여보낼 수 있다.




<원 문>

봉안게(奉安偈)

생전유형질(生前有形質) 사후무종적(死後無從跡) 청입법왕궁(請入法王宮) 안심좌도량(安心坐道場)




<<역 문>>

편안하게 받들어 모시는 게송

살았을 적엔 형체와 걸림 있더니

죽은 후엔 아무 종적조차 없구나

법왕의 궁전에 초대하여 맞아들였으니

편안한 마음으로 도량에 앉으소서




<진 행>

7?7재를 모시고 난 다음 7?7재가 계속 이어지거나, 49재를 끝으로 영가를 봉송하여 탈상을 하지 않고 백일재에 탈상하는 경우, 즉 영단에 위패를 모셔두는 경우에 행하는 의식이다. 영단에 위패를 모셔둔 채로 다같이 서서 법주를 따라 재자들은 삼배를 하고 재를 마친다.




<해 설>

사람이 살아있을 때에는 영혼이 육체에 의지하므로 형질이 있다. 형질이란 형태가 있고 그 형태에 따른 모양새를 말한다. 그러므로 물질적인 육신은 걸림이 있어 질애가 있으나, 목숨을 마치면 영혼이 몸을 떠나게 되므로, 비록 몸이 있다고 생각하여 제사도 지내고 죽은 뒤 몇 세대가 지난 후에 천도재를 지내기도 한다. 하지만 실상 영혼의 상태에서는 있다는 생각만 있을 뿐 실재로는 아무런 가시적인 형체가 없으므로 종적이랄 것이 없다.

그러나 육신에 의지하여 평생을 살아온 영가는, 육신의 모양과 같은 영혼에 의지하여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혼이라고 생각하는 개체는 해탈하기 전까지는 실제로는 없지만, 집착 때문에 허상으로 있게 된다. 그러므로 비록 사후라고 하더라도 이를 존중하여 극락세계로 인도하여 성불시켜야 한다. 법문을 계속 일러주어 해탈시키기 위하여, 정중히 법왕의 궁전 즉 법당내의 영단에 봉안하여 후손된 도리를 정성스레 다하도록 하는 것이다.




<원 문>

봉송편(奉送篇)

봉송고혼계유정(奉送孤魂?有情) 지옥아귀급방생(地獄餓鬼及傍生)

아어타일건도량(我於他日建道場) 불위본서환래부(不違本誓還來赴)

제불자(諸佛子) 기수향공(旣受香供) 이청법음(已聽法音) 금당봉송(今當奉送)

갱의건성(更宜虔誠) 봉사삼보(奉謝三寶)

보례시방상주불(普禮十方常住佛) 보례시방상주법(普禮十方常住法) 보례시방상주승(普禮十方常住僧)

행보게(行步偈)

이행천리만허공(移行千里滿虛空) 귀도정망도정방(歸途情忘到淨邦)

삼업투성삼보례(三業投誠三寶禮) 성범동회법왕궁(聖凡同會法王宮)

산화락(散花落) (3번)

나무대성인로왕보살(南無大聖引路王菩薩) (3번)

의상조사법성게(義湘祖師法性偈)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 제법부동본래적(諸法不動本來寂) 무명무상절일체(無名無相絶一切)

증지소지비여경(證智所知非餘境) 진성심심극미묘(眞性甚深極微妙) 불수자성수연성(不守自性隨緣成)

일중일체다중일(一中一切多中一)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일체진중역여시(一切塵中亦如是) 무량원겁즉일념(無量遠劫卽一念)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

구세십세호상즉(九世十世互相卽) 잉불잡란격별성(仍不雜亂隔別成)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

생사열반상공화(生死涅槃常共和) 이사명연무분별(理事冥然無分別) 십불보현대인경(十佛普賢大人境)

능인해인삼매중(能仁海印三昧中) 번출여의부사의(繁出如意不思議) 우보익생만허공(雨寶益生滿虛空)

중생수기득이익(衆生隨器得利益) 시고행자환본제(是故行者還本際) 파식망상필부득(?息妄想必不得)

무연선교착여의(無緣善巧捉如意) 귀가수분득자량(歸家隨分得資糧) 이다라니무진보(以陀羅尼無盡寶)

장엄법계실보전(莊嚴法界實寶殿) 궁좌실제중도상(窮坐實際中道床) 구래부동명위불(舊來不動名爲佛)




<<역 문>>

[받들어 보내는 편]

(받들어 보내는 게송)

고혼과 유정들을 받들어 보내드리오니

지옥과 아귀중생 붙어사는 생령들이여

내가 다른 날에 도량을 다시 세우거든

본래 서원 어김 없이 다시 돌아오소서

모든 불자들이시여, 이미 향그러운 공양 받으시고 이미 부처님의 법음을 들으셨으니, 이제 보내드리고져 하옵니다. 다시 한번 마음을 삼가하고 정성을 다해 삼보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소서

널리 온 세계에 항상 계신 부처님께 절하옵니다

널리 온 세계에 항상 계신 법보님께 절하옵니다

널리 온 세계에 항상 계신 승보님께 절하옵니다

(걸음을 떼는 게송)

천리에 가득찬 허공을 옮겨가다가

돌아가는 길에 망정을 잊으면 정토에 도달한다네

삼업을 던져 정성스레 삼보님께 절하오니

성인과 범부 모두 함께 법왕궁에 모이소서

꽃을 흩어 가시는 길에 뿌립니다

대성 인로왕보살님께 귀의하옵니다










<진 행>

법주와 바라지가 요령과 목탁으로 함께 봉송게를 낭독할 때, 재자들은 마지막으로 영단에 모셔진 위패를 향하여 삼배를 올린다. 다음에는 맏상주가 위패와 영정을 모시고, 동참한 재자들이 영가옷과 향로 촛대 등을 들고 법당의 중앙에 나란히 정열을 하고 부처님을 향해 선다.

법주가 요령을 세 번 흔들고 나서 부처님께 하직 인사를 올리는 의식문을 낭독하고 나면, 요령과 목탁에 맞추어 위패를 모신 재자는 선 채로 위패틀을 내리고 무릎을 굽혀 부처님 전에 세 번 절하면 된다. 기타 재자들은 자기가 가진 집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부처님 전에 같이 세 번 절을 한다.

재자들은 법주와 바라지가 행보게를 할 때도 행보게의 끝에 함께 절을 하고, 산화락을 세 번 외우면 같이 절을 하고, 나무대성인로왕보살을 외울 때도 같이 절을 하면 된다.

다음에는 법성게를 외우며 법당을 세 번 돌고 법당을 나와 소대로 향하게 되는데 법주가 앞에 서고 바라지 위패, 향로, 촛대, 영가 옷을 든 재자들 순으로 일렬로 행진하여 소대까지 따라가면 된다.




<해 설>

봉송편은 천도재를 끝낸 영가를 소대로 데려가서 위패를 사르고 옷가지 등을 태워서 극락세계로 전송하는 의미를 가진 의식이다.

봉송게는 제사를 마친 영가가 떠나기 전에 부처님께 하직인사를 드리는 노래이다. 부처님의 가르침과 위신력으로 극락세계가 있음을 알고, 영가의 육신이나 영혼이 허망한 망상임을 알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 있음을 안 것이다. 그러므로 극락세계로 떠나기 전에 부처님께 정중하게 감사의 하직인사를 올리는 것이다.

그동안 불러서 공양을 대접하고 법문을 일러준 일체 고혼과 유정들과 지옥중생, 아귀중생 그리고 다른 생명체에 붙어서 사는 생령들을 모두 보낸다. 보내되 그냥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다른 날에 도량을 다시 세우거든 오라는 것이다.

내가 다른 날에 도량을 다시 세운다는 말은 천도재를 다시 개설한다는 것이 아니라, 바른 깨달음을 얻고 몸과 마음이 진리로 충만된 부처가 되어 도량, 즉 도장을 세우겠다는 말이다. 본래 서원이란 수행하여 성불하겠다는 것이다. 내가 열심히 수행하여 성불을 할 것이니, 그때에 부디 일체의 악취를 벗어나 깨달아 성불하겠다는 본래의 서원을 잊어버리지 말고 진리의 회상에서 다시 만나자라는 뜻이다.

지옥이나 아귀, 남에게 붙어사는 불쌍한 영혼들이 부처님의 법음을 가득히 담고 떠나가게 된다. 그러하니 부처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떠나가는 것이다.

시방세계에 불보인 부처님과 법보인 가르침과 승보인 스님들이 항상 계신다 함도 다른 말이 아니라, 깨달음을 얻고 진리의 세계에 들어 부처가 된 이의 눈으로 보면, 일체 모두가 실상은 부처님 아닌 없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깨닫고 나니 이 세상은 사바가 아니라 그대로 화장장엄세계라고 하였고, 마음과 부처와 중생이 다르지 않고 차별이 없다는 것이다.

시방은 온 세계를 이름한다. 온 세계에 있는 모든 이는 부처님이요, 모든 움직이는 원리는 가르침이요, 진리를 찾아 구도하는 이는 스님 아닌 이가 없다. 그러므로 시방세계에 항상 계시다라고 말하고 꽉 차 있다고 말한다. 부처님 전에 절하는 것은 모든 삼보님께 감사의 절을 올리는 것이다.

행보게에 말하기를, 천 리에 가득한 허공을 옮겨간다고 하였다. 허공이 어디 천 리만 허공이랴. 끝이 없는 허공을 천 리라 표현한 것이다.

귀도에 정을 잊으면 정토에 도달한다고 하였다. 중생들이 정토에 나지 못하는 것은 마음이 청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이 청정하지 않다는 것은 살아온 삶의 기억을 모두 ?나?라고 집착하여 번뇌를 떠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집착하고 있던 정을 잊어버리기만 하면 청정해져서 그곳이 바로 정토가 된다. 마음에 집착이 많은 이, 욕심이 많은 이가 사는 곳은 그곳이 설사 천당이나 극락이나 하더라도 천당이나 극락이 될 수가 없다.

다음에 삼업을 던진다고 하였는데, 대체 무슨 뜻인가? 삼업을 던진다고 하는 말은 몸과 마음을 다 바친다고 하는 말이다. 몸과 입과 마음을 모두 던지고 바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지은 삼업을 깨끗하게 없애야 한다. 즉 세 가지로 지은 죄를 깨끗하게 참회해야 한다.

그런데 이 세 가지는 실상이 아니고 허상이요, 망상이요, 망념인 것이다. 그러므로 진실하게 삼업을 던지려면 그 몸과 입과 마음을 모두 없애버려야 한다. 나라고 생각하는 집착된 생각을 빼버려야 한다. 그것이 신구의를 던져 정성스레 삼보님께 절함이다. 그래야만 범부와 성인이 모두 깨달아 부처가 되어 법왕궁에 진실로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산화락이란 가시는 길에 꽃을 흩어 뿌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요, 꽃을 뿌린다 함은 곧 마음에 한없는 기쁨을 가지고 극락으로 가는 길을 밟음이다.

공양을 대접 받고 법문을 들었지만, 아직 깨달음을 얻어 해탈한 상태가 아니다. 이미 해탈하여 부처가 된 자라면 굳이 인로왕보살을 따라갈 필요가 없다. 그러나 아직은 업보를 가진 중생이기에 후손들의 자비심에 의하여 인연 지은 극락으로 가기 위해서는 인로왕보살님을 따라 가야만 한다.




<원 문>

[소대작법(燒臺作法)]

금차(今此) 문외(門外) 봉송재자(奉送齋者) 거주(居住) 행효자(行孝子) 복위(伏爲) 소천망(所薦亡) 영가(靈駕) 영가위주(靈駕爲主) 상세선망부모(上世先亡父母) 다생사장(多生師長) 누대종친(累代宗親) 제형숙백(弟兄叔伯) 자매질손(姉妹姪孫) 원근친척등(遠近親戚等) 각열명영가(各列名靈駕) 차도량내외(此道場內外) 동상동하(洞上洞下) 유주무주(有主無主) 일체애고혼불자등(一切哀孤魂佛子等) 각열위열명영가(各列位列名靈駕) 상래(上來) 시식풍경(施食諷經) 염불공덕(念佛功德) 이망연야(離妄緣耶) 불리망연야(不離妄緣耶) 이망연즉(離妄緣則) 천당불찰(天堂佛刹) 임성소요(任性逍遙) 불리망연즉(不離妄緣則) 차청산승(且聽山僧) 말후일게(末後一偈)

사대각리여몽중(四大各離如夢中) 육진심식본래공(六塵心識本來空)

욕식불조회광처(欲識佛祖回光處) 일락서산월출동(日落西山月出東)

풍송가지(諷誦加持)

염시방삼세(念十方三世) 일체제불(一切諸佛) 제존보살(諸尊菩薩) 마하살(摩訶薩)

마하반야바라밀(摩訶般若波羅蜜)

원왕생(願往生) 원왕생(願往生) 왕생극락견미타(往生極樂見彌陀) 획몽마정수기별(獲蒙摩頂授記?)

원왕생(願往生) 원왕생(願往生) 원재미타회중좌(願在彌陀會中坐) 수집향화상공양(手執香華常供養)

원왕생(願往生) 원왕생(願往生) 왕생화장연화계(往生華藏蓮華界)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

소전진언(燒錢眞言) 「옴 비로기데 사바하」

봉송진언(奉送眞言) 「옴 바아라 사다 목차목」

상품상생진언(上品上生眞言) 「옴 마리다리 훔 훔 바닥 사바하」

처세간여허공(處世間如虛空) 여련화불착수(如蓮華不著水) 심청청초어피(心淸淸超於彼)

계수례무상존(稽首禮無上尊)

귀의불(歸依佛) 귀의법(歸依法) 귀의승(歸依僧)

귀의불(歸依佛) 양족존(兩足尊) 귀의법(歸依法) 이욕존(離欲尊) 귀의승(歸依僧) 중중존(衆中尊)

귀의불경(歸依佛竟) 귀의법경(歸依法竟) 귀의승경(歸依僧竟) 선보운정(善步雲程) 복유진중(伏惟珍重)

보회향진언(普廻向眞言)

「옴 사마라 사마라 미마나 사라 마하 자가라바 훔」

화탕풍요천지괴(火蕩風搖天地壞) 요요장재백운간(寥寥長在白雲間)

일성휘파금성벽(一聲揮破金城壁) 단향불전칠보산(但向佛前七寶山)

나무환희장마니보적불(南無歡喜藏摩尼寶積佛) (1배)

나무원만장보살마하살(南無圓滿藏菩薩摩訶薩) (1배)

나무회향장보살마하살(南無廻向藏菩薩摩訶薩) (1배)




<<역 문>>

이제 문 밖에서 받들어 보내드리는 재자 에 거주하는 불자의 아버지 영가와 영가의 옛날 세상의 모든 부모님과 여러 생에 걸친 스승 되거나 어른 되시는 영가, 여러 대에 걸친 종친들과 형되고 아우되었던 영가, 누이와 조카 손자 되었는 영가, 멀고 가까운 친척되는 각 영가와 이 영가와 이 도량 안팎이나 동네의 위나 아래의 주처가 있거나 없는 일체의 슬프고 외로운 영가들이시여!

위에서 이미 음식을 베풀고 경을 읊거나 염불하신 공덕으로 망령된 인연을 여의었습니까? 여의지 못하였습니까?

망령된 인연을 여의었으면 천당이나 부처님 나라에서 마음대로 지내시고 망연을 여의지 못하였으면 이 산승의 마지막 한 마디를 들으소서.

사대가 각기 흩어지니 한 바탕 꿈 속의 일과 같고

육진(색성향미촉법)과 심식도 본래 텅 비었도다

부처님과 조사가 빛으로 돌아간 곳을 알고자 하는가?

해가 서산으로 지니 달이 동쪽에서 솟아 오르는구나

시방삼세에 계신 일체의 모든 부처님과 큰 보살님들이시여, 큰 지혜로써 피안에 이르게 하소서.

가고지고 가고지고, 극락세계 어서 가서

아미타불 친히 뵙고 마정수기 원합니다

가고지고 가고지고, 미타 회상 있으면서

향과 꽃을 늘 가지고 공양하기 원합니다

가고지고 가고지고, 화장세계 어서 가서

나와 남이 모두 함께 부처되기 원합니다

염부전 사르는 참말씀

「옴 비로기데 사바하」)

받들어 보내는 참말씀

「옴 바아라 사다 목차목」)

상품상생에 나는 참말씀

「옴 마리다리 훔 훔 바닥 사바하」)

세간에 있으면서도 허공과 같고 연꽃에 물이 묻지 않음과 같이 마음이 청정해서 세간을 뛰어 넘은 위없는 부처님께 머리숙여 절하옵니다.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승가에 귀의합니다

복덕?지혜 갖추어 존귀하신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일체의 유위를 떠나신 존귀하신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모두 화합하시어 존귀하신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부처님의 경지에 귀의합니다

가르침의 경지에 귀의합니다

스님들의 경지에 귀의합니다

천 리 먼 길 잘 가시길 진정으로 엎드려 바랍니다

널리 회향하는 참말씀

「옴 사마라 사마라 미마나 사라 마하 자가라바 훔」)

불로 태우고 바람 불어 천지가 무너져도

고요하고 고요함이 흰구름 사이에 그냥 있도다

한 소리 휘둘러서 쇠로 된 벽을 허물고

다만 부처님 앞의 칠보산으로 향하여라

환희장마니 부처님께 귀의하옵니다

원만장 큰보살님께 귀의합니다

회향장 큰보살님께 귀의합니다




<진 행>

법당에서 불보살님께 하직인사를 마친 영가를 보내기 위해서는 법주의 뒤를 따라서 위패, 영정, 향로, 촛대, 태울 옷과 지전을 들은 재자의 뒤로 동참 대중 모두가 합장을 하고 행진하여 소대에 이르도록 한다.

소대에 도착하였으면 법주는 요령을 세 번 흔들고 봉송하는 축원을 한 다음 ?차청산승 말후일게?까지 외우고 요령을 한 번 내리고 4구게를 외운 다음 바라지와 함께 ?염시방삼세?부터 ?단향불전칠보산?까지 같이 염불을 하는 동안에 준비한 옷과 지전을 태우고 ?소전진언?을 외울 때에 만들어 붙였던 전과 위패와 영정들을 태우면 된다.

마지막에 스님과 재자가 함께 세 번 반배를 하고 마치면 일체 시식은 끝나게 된다.




<해 설>

봉송문은 그 동안 청하여 염불하고 독경을 해주었던 영가들을 마무리 하여 모두 보낸다는 내용이다.

즉 모든 영가들에게 이미 재를 베풀어 경문을 독송하고 염불을 해주었으니 그러한 법문을 통하여 일체의 망령된 인연을 끊어 버리라고 하였는데, 끊었는지 못 끊었는지를 재차 묻고 있다. 망령된 인연을 끊었다면 천당과 부처님 나라 즉 정토에서 마음대로 잘 지내시고, 끊지 못하였다면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더 들으라는 것이다.

인연이 망령되다는 말은 앞에서도 누차 이야기한 바가 있다. 모든 것은 일체 없는 것이 본질이나 중생들이 쓸데없는 집착으로 아집을 일으켜서 본질의 세계를 벗어나서 일체를 만든다. 내가 있다고 생각하여 실제는 없는 인연을 만들어 있게 한 것이 이 세상의 모든 모습이다. 그래서 一切唯心造라고도 말하고, 『금강경』에서는 일체유위법은 꿈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 같고 번개불과 같아, 모든 모양이 있는 것은 모두 헛되고 망령된 것이니, 이와 같이 관을 해야 본질의 자리 실상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였다.

천당이나 극락에 가려면 현재 번뇌의 몸과 마음 상태로는 갈 수 없다. 깨끗한 곳에 가려면 거기에 합당한 몸과 마음을 갖추어야 한다. 마치 서울대학에 가고자 하는 사람은 서울대학에 갈 실력을 갖추어야 하는 것과 같다. 천당이나 극락은 바로 마음이 청정하여 조촐해진 사람만이 갈 수가 있다. 설사 더러워진 마음으로 천당이나 극락에 가더라도 마음 속에 더러움을 가진 사람에게 그곳은 결코 복락이 가득한 정토일 수가 없다. 천당이나 극락에 가기 전에 마음에서 일체의 망상과 망념을 지워버려야 한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렸고, 현재는 실재성이 없다. 그것은 사라진 사실에 대한 환상이고, 사라진 물거품이고, 사라진 그림자이다. 현재 보고 듣고 하는 일도 실재가 아닌 꿈 속의 일이라고 옛사람들이 누누히 말하지 않았던가! 몸을 구성하고 있던 지?수?화?풍의 사대가 각각 흩어지니, 나라고 알고 살았던 일들을 돌이켜 보면 바로 꿈 속의 일만 같다는 것이다.

객관의 세계인 색성향미촉법과 심식 또한 본래는 없다는 말이다. 주관(안이비설신의)인 6근이 발생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있는 것이 객관이기 때문이다.

?欲識佛祖回光處?라는 말은 묘미가 있다. 인간이 해탈하여 열반하려면 모든 것을 없애고 나서 빛이 되어야 한다. 이 빛이 되신 분들이 부처님과 조사들이다. 그러므로 중생의 마음을 돌이켜서 빛이 된 곳이 회광처이다.

해가 서산으로 지고 달이 동쪽에서 뜨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일체의 인위와 작위가 섞여 있지 않다. 인위와 작위가 있는 것은 유위라고 한다. 해와 달에게는 일체 뜬다거나 진다는 생각없이 그냥 뜨고 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일체의 모든 세계의 부처님과 보살님들이 큰 지혜로써 피안으로 건너신 것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모든 불보살은 자기 없음(무아집)으로써 고통스럽고 유한하고 내가 아니고 더러운 세계를 벗어나 영원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세계로 건너갔다. 그러므로 이 봉송하는 자리에서 이승의 모든 인연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부처님 나라를 생각하며 홀연히 떠나가라는 것이다.

극락에 가서 아미타불 뵈옵고 마정수기 얻어 성불하고, 아미타부처님의 회상에 앉아서 항상 향화로써 부처님을 공양하고 연화장세계에서 일시에 성불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영가를 위해 간절히 또 간절하게 이르고서 소전진언을 통해 위패를 사르고 봉송진언을 통해 정중히 보내고 상품상생진언을 통해 극락세계로 인도한다. 그리고 다시 이 세상에 계시면서도 청정한 몸과 마음으로 일체의 벗어나신 부처님 위없는 부처님께 다시 귀의한다.

이렇게 부처님의 일체 깨달으신 경지까지 귀의해서 부처님의 마음과 같아야 된다. 그러므로 머나먼 길(운정)을 잘 갈 수 있도록 엎드려 또 빌어준다. 이렇게 마음에 극락이 있는 자는 앉고 누워 있는 자기 자리가 극락이건만, 중생들은 자신의 마음 속에 가고 옴이 있는 까닭에 십만팔천 리를 떠나서 극락이 있는 것이다.

다시 보회향진언을 통해서 여태까지 지은 공덕을 모두 회향한다. 왜 회향하는가? 자기 자신이 지은 공덕을 자기가 모두 가지려고 하면 그것은 가짐의 공덕 즉, 유루의 공덕이 되어 나중에 자신의 업보가 된다. 가짐이 없는 공덕, 집착함이 없이 자기 자신의 모든 공덕을 다른 곳으로 회향하면 그것은 곧 무루의 공덕이 되고 참 공덕이 된다. 그러므로 항상 자신의 공덕을 타인을 위해 회향하지만 그것은 참으로는 자신을 위한 것이다.

불로 모든 것을 불살라버리고 엄청난 바람이 불어 천지가 다 무너져도 그 가운데 무너지지 않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진실한 참 자기이다. 그것을 찾으려면 한 번 마음을 크게 돌려 먹고 일체의 자기를 버려야만 철벽과 같은 자신의 업보의 벽을 녹여버릴 수가 있다. 이 수미산과 같은 업보의 철벽을 허물지 않고는 결코 해탈하여 부처님 세계에서 상락아정(常樂我淨)의 참다운 보배를 얻을 수가 없다. 이것이 바로 해탈열반의 부처님 세계인 칠보산으로 향한다는 것이다.

끝에 마무리로서 환희장마니보적불에게 귀의하고, 원만장보살님께 귀의하고, 회향장보살님께 귀의하여 관음시식을 마무리한다.

관음시식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모든 일체는 허상이고 망상이나, 중생들이 그 허상에 집착함으로써 자신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 참으로 돌아가 부처가 되려는 사람이나 정토에 이르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일체를 모두 버려서 진실로 아무것에도 걸림없는 청정함이 될 때 그때가 진실한 부처가 된다는 것이다.

재를 지낼 때, 아무리 음식을 산해진미로 차리고 영가를 위해 일주일 밤낮을 범패를 하더라도 그곳에 참다움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도로(徒勞)에 지나지 않는다. 비록 물 한 그릇을 떠 놓고 재를 올린다고 하더라도 일체의 가짐이 없는 청정함이 진실로 거기에 있다면 앞의 것보다 천 배 만 배나 더 많은 공덕이 있을 것이요, 참 부처님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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