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 임상심리학 오까노 모리야 지음 일진 옮김(운문승가대학강사) 제1장 동과 서의 심리학 유식학(唯識學)은 대승불교의 심층심리학이라고도 말할 수 있으며 종파로서는 법상종(法相宗)의 가르침이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서 일반인에게는 그다지 알려져오지 못했지만 상당히 깊고 정밀한 인간통찰과 심리분석을 내포한 매력적인 학설이다. 여기에서 그 대표적인 고전 유식 30송(頌)을 초개인심리학(transpersonal psychology)적인 시점에서 인간성장의 가이드북이라는 좀 색다른 관점으로 이해해 보고자하며 본장에서는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어느 정도의 예비지식적인 설명을 하고자 한다. 명상심리학 유식학은 물론 불교인 이상, 불타의 계통을 이어 받았지만 보다 넓은 시야에서 말한다면 인도의 명상의 전통안에서 생겨난 학문이라는 사실에 주의를 환기시켜 두고 싶다. 인도에는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좌선, 명상, 요가수행의 장구하고 심오한 정통이 있었으며, 불타 이래 아득한 옛날부터 몇백 년 동안 끊어지지 않고 맥을 이어 숨쉬고 있었기 때문에 결코 불타가 창시자라거나 불교의 전매특허라고 말할 수는 없다. 유식학을 형성했던 사람들은 학문적으로는 유가행파(瑜伽行派), 또는 유가행유식파(瑜伽行唯識派)라고 불려지고 있다. 유가(瑜伽)라고 하는 것은 요가로서 산스크리트음의 한역이다. 즉 유가행파는 유식이 불교적인 요가, 명상실천을 오랫동안 쌓아오면서 싹튼 이론임을 나타낸다. 이를테면 유식의 기본적이 개념인 '아라야식'이나 '마나식'도 실제수행의 체험 안에서 생겨나왔다. 다시 말해서 '임상(臨床)의 지(知)'이지 단순한 이론적 요청에 의한, 머리에서 짜낸 이론을 위한 이론이 아니다. 유식은 오늘날에 와서는 방대한 문헌을 가진 엄밀하고 복잡한 이론체계로 변했지만 초기에는 바로 수행자들의 '현장의 지혜'였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식은 언뜻 보면 상당히 어렵게 보이지만 그 안에 담긴 체험과 실제의 느낌을 알기 쉽도록 전문용어를 최소화하고 핵심적인 내용을 정확하게 설명하면 누구든지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더욱이 명상을 조금이라도 체험한다면 그 이론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보다 실감 있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가 있을 것이다. 게다가 유식을 바르게 이해한다면 현대의 심층심리학과의 통합을 도모해 볼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무의식의 발전 유식의 '식(識)'이라고 하는 것은 크게 말해서 마음이고 유식(唯識)이라고 하는 말은 글자 그대로 '오직 마음' '모든 것은 마음에 의한 것이다'라고 하는 이 학설의 기본적인 주장을 요약한 명칭이다. 이미 명칭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모든 것을 마음의 작용으로 보고 마음이 어떤 형태로 작용하는가를 심도 있게 추구한 이론이라는 의미에서 진정한 심리학이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불교는 붓다 이래 '마음'의 문제에 초점을 맞춘 사상이며 그런 의미에서 유식파가 형성되기 이전부터도 상당히 심리학적이었다. 그러나 원시불교나 대승불교의 중관(中觀)·공사상(空思想)에서는 마음을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의 5가지 감각과 의식(意識)의 육식(六識)구조를 파악하고 있으며 심층심리학적인 이론은 전개되어 있지 않다. 거기에 비해서 부파불교의 전개 속에는 일종의 심층심리적인 통찰이 진전되어 유식에 이르러서는 처음으로 6식에 '마나식'과 '아라야식'을 더해서 8식 구조론, 말하자면 불교의 심층심리학이 확립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불교사에 더해서 보다 넓게는 인류의 의식의 진화사라는 관점에서 본 인간의 자기통찰의 깊은 면까지도 붓다가 고통과 윤회의 세계를 벗어나 해탈을 얻기 위해서 수행한 결과는 없어져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세상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인도한 경지[覺]에 이르기에 부족하지 않는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말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유식의 중요한 용어인 '아라야'라고 하는 말 자체는 원시경전인 『아함경』에도 있으므로 새롭게 만들어진 용어는 아니다. 그러나 유식사상이 확실하게 형성된 것은 기원 1세기에서 3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해심밀경』으로부터이다. [그외 작자 불명의 『대승아비달마경』이 있으며 이것은 부파불교의 아비다르마를 대승불교의 입장에서 해석한 것이라고 하지만 산스크리트 원본도 한역본도 남아있지 않다. 따라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헌은 『해심밀경』이다.] 그리고 보다 나중 것으로 추측되는 『능가경』이 있다. 이 경전은 달마 등, 초기 선종에서 상당히 중요시되었으며 선(禪)에는 의지하는 특정 경전이 없지만 만약 정한다면 『능가경』이라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그후 3세기와 5세기에 걸쳐서 미륵[270-350, 『유가사지론』, 무착(310-390), 『섭대승론』, 세친(320-400, 『구사론』, 『유식20론』, 『유식30론』]등 유식의 대표적인 사상가들이 출현했으며 유식학의 체계가 완성되었다. 서양심리학에 속하는 '무의식의 발견'은 물론 선구자는 있다해도 결정적인 의미로는 19세기말 프로이드의 업적이라고 말해지고 있다. 그런데 유식에서는 늦게봐도 3세기, 프로이드보다 약 1600년 전에 '마나식', '아라야식'이라고 하는 심층심리학이 발견되어 있었던 것이다. 세친이 유식학을 집대성한 시점에서 생각해도 1500년 이전에 무의식의 발견은 이미 되어 있었으며 이것은 견해에 따라서는 대단한 사실이다. 그러나 유식은 본래 무명, 번뇌로부터 깨달음이라고 하는 의식·인격의 변용과정과 의미를 밝히는 실천적, 실용적인 이론임에도 불구하고 일단 집대성되고 나서부터는 점차 실천으로부터 멀어져서 필요이상으로 난해하고 자기폐쇄, 자기충족적인 순수이론체계로 되었으며 문헌해석, 주석, 교리상의 의론(議論)이 전개되어질 뿐, 보다 실질적인 삶의 문제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는 경향이 강해졌다. 유감스럽게도 프로이드나 융의 경우처럼 심층심리로부터 비롯된 다양한 증상과 그 원인의 규명, 치료법의 개발[히스테리, 노이로제, 분열증 등의 정신병리와 일상생활에서 오는 고민, 갈등문제, 게다가 문명비판과 전쟁의 원인에 대한 통찰까지]이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중국으로 흘러들어가서 명상, 선정은 밀교, 천태, 그중에서도 선의 전매특허가 되었으며 특히 선종에서는 『능가경』을 중시하는 파가 쇠퇴하면서 8식을 설하지 않는 『금강경』을 중시했으며 '교외별전(敎外別傳)''불립문자(不立文字)'를 표방하고 이론화를 혐오하는 파가 성행하게 되었다. 한편 현장계의 법상종의 유식은 점점 순수이론이 되면서 임상과 이론의 생산적인 상호관계를 상실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선의 대표적인 존재로 간주되는 임제만 하더라도 선에 들어가기 전에 유식을 배웠으며 『임제록』의 설법에는 그 영향이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임제의 경우도 실천에 치우쳤으며 유식을 기초로 한 선의 실제체험을 통하여 한층 더 깊고 상세한 심층심리학적 통찰을 전개하지는 못했다. 무아와 윤회 유식에서의 무의식의 발견은 프로이드와는 달리 정신병리나 성(性) 연구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다. 인간은 왜 생노병사의 고통을 되풀이하는 윤회를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어떻게 하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가? 어느 정도의 명상, 수행단계에 도달하면 해탈이 실현되는가의 탐구로부터 아라야식의 발견에 이르렀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정신분석의 경우도 유식의 경우도 물음이 답을 규정하고 있다. 유식에는 물음을 성립시키고 있는 '윤회'라고 하는 패러다임이 '아라야식'이라고 하는 개념의 토대가 되어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인도에는 전통적으로 윤회라고 하는 사고 유형이 있었다.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한 번 죽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고 여러 가지 형태를 취해서 다시 태어나므로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고대 인도의 종교가들은 이 환생을 거듭하면서 끝나지 않는, 고통에 찬 윤회가 있다고 전제하고 뭔가를 함으로써 그것으로부터 해방되어 탈출하는 것, 즉 '해탈'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석존은 '윤회'와는 대조적으로 '무아'를 주장했다. 실체로서 변화하지 않고 그것 자체로 존재하는 나[我, 아트만]와는 하나라고 생각하는 종교적, 철학적 전통이 있었다. 그러나 그와는 대조적으로 석존은 아트만이라고 하는 것은 없다고 주장했다. 거기에 석존, 불교의 독자성이 있다고 하는 것이 통설이다. 석존은 '무아'를 주장했다. 그러나 '윤회'라고 하는 인도의 전통적 사고방식에 대해서는 분명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것 같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전통에 강한 구속을 받고 있는 이후 불교도들에게는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래서 후의 불교사상가들에게는 '실체가 없는 것이 어떻게 윤회하는가'라는 것이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아트만이 있다면 윤회한다는 사실도 부사의한 것은 아니다. '아트만은 동일하지만 형태만 바뀌어서 어느 때는 소가 되기도 하고 어느 때는 인간이 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곤충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트만은 일관되게 변화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설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석존은 그런 것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 원칙은 부정할 수 없다. 실체적인 아트만과 같은 것은 없어도 윤회는 있다. 이러한 두 가지 명제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로 불교학자들은 상당히 고심한 듯하다. 이야기가 다소 옆길로 빗나가지만 현대 과학주의에 물든 우리들처럼 '윤회하는 것은 없다'고 말해 버린다면 이론은 산뜻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중요한 사실도 동시에 지나쳐버리게 된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상당히 신화적이지만 생태학적인, 모든 생명의 연속성에 대한 의미 깊은 직관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고대 인도사상·불교는 처음부터 단순한 개인을 초월한, 현대식으로 말하면 '초개인'적인 시점에서 인간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많은 초개인 심리학자의 보고에 의하면 정신치료나 동양종교의 수행을 통해서 또는 자연발생적으로 '전생체험', '윤회전생의 체험', '다른 생명체와의 일체화 경험' 등은 심리학적 체험으로서는 꽤 빈번한 것이 사실이며, 그것을 단지 환상이라든지 망상이라고 규정짓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한다. 그것은 그렇다치고 되돌아와서 석존 이후의 불교사상가들은 윤회라고 하는 인도사상의 전통을 무시하지 못했다. 동시에 석존의 '무아'라고 하는 사고방식은 불교의 근간이기 때문에 그렇게 간단히 떼어놓을 수는 없었다. 이 두 사상의 모순을 조화시키기 위해서 가능했던 생각이, 이 생으로부터 다음 생으로, 또 그 다음 생으로 생명을 보전해서 가는 뭔가가 무아, 즉 실체는 아니라고 하는 사실과 모순되지 않는 형태일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즉 이것이다 저것이다 하고 분명하게 확정지을 수 있는 실체는 아니지만 생명을 보전해가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부파불교 안에서는 파에 따라서 '근본식(根本識)', '유분식(有分識)', '궁생사온(窮生四蘊)'등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렀다. 유식학파, 유가행파에서는 그것을 '아라야식'이라고 불렀다. 즉 실체로서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생명의 순간에 행한 선악의 '업[카르마]'을 다음 생에 전하고 그 생에서 또다시 다음 생으로 전하는 윤회의 매개인 카르마를 전하는 모체로서 '아라야식'을 상정함으로써 이론의 모순을 조화시켰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유식은 앞에서 기술한 '임상(臨床)의 지(知)'일 뿐만 아니라 '이론적 요청'이기도 하다. 윤회[생명의 연속성에 대한 직관]와 무아[존재의 비실체성에 대한 자각]를 통합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이론적 요청에 의해 아라야식[생명정보에 대한 이론]이 탄생해 온 것이다. 이것은 현대 물리학의 물질관, 생물학의 유전자론, 생태학의 에고시스템(ego-system)론, 심층심리학의 무의식 등과 대조하면서 읽으면 상당히 시사적인 깊은 사고체계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만일 이것이 유가행 체험을 하기 위해서 상정된 것뿐이라면 이론적 요청에 의한 공허한 억지일 것이다. 그러나 '아뢰야식'은 살아가면서 하는, 체험이 뒷받침된 임상적인 지식도 포함된 것이다. 구사(俱舍)와 유식 먼저 또 하나의 전제에 대해서 설명해 두고자 한다. 석존 이후 기원전 3세기에서 2세기경 불교는 몇몇 부파로 분열되었으며, 여러 부파 안에서 비교적 평이한 석존의 말들은 종교 철학적으로 세밀한 분석이 가해져서 체계화 되었다. 이것을 '아비다르마'라고 부른다. '아비[향새서, 대해서]' 다르마[법, 존재]'라는 의미다. 현대적으로 말하면 '존재에 대한 분석'이다.[이렇게 말해도 물론 불교의 성격상 필연적으로 심리분석에 비중이 달려 있었다.] 이 흐름의 대표적인 문헌을 『아비다르마·고샤[아비다르마의 장]』한역으로는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 약해서 『구사론』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구사론과 유식 30론(論)의 주석서인 『성유식론(成唯識論)』이 불교의 이론적 연구의 기본 문헌으로 되어 왔다. 여담이지만 불교를 공부하는 학생들 사이에 '유식 3년, 구사 8년'이라는 말이 있다. 이 두 이론을 마스터하는데는 구사를 먼저 8년을 공부하고 그리고 나서 유식을 3년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현대의 이론적인 사색에 익숙한 사람의 경우는 그렇게 많이 걸리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 정도로 난해하고 상세한 학설임에는 틀림없다. 구사에서 이루어진 상세한 심리분석은 유식에 거의 완전하게 취급되어 있다. 구사론과 유식 30론이 동일한 저자(세친)에 의해 쓰여졌다는 통설에 의하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론을 따지지 말고 침묵하고 앉으라'고 하는 선과는 달리 구사·유식의 흐름은 다소 지나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가능한한 이론적으로 분석, 설명하려 한다. 그러나 초기 유식에서는 실천과 이론사이에 상당한 균형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시간이 지나쳠서 점차 번잡한 이론체계로 되고 임상, 수행과는 멀어졌으며 게다가 그 반동으로 선은 이론경시, 임상편중의 방향으로 향하게 된 것은 누가 뭐래도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대승불교의 흐름과 유식 오래지 않아서 서기 1-2세기경 부파불교에 대응해서 '대승불교'가 흥성했다. 법화(法華)사상, 반야(般若)사상, 공(空)사상, 화엄(華嚴)의 유심(唯心)사상, 정토(淨土)사상,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승사상으로서는 대단히 중요한 여래장사상 등이 일제히 출현했다고 한다. 유식사상은 이와 같은 대승불교의 제조류(諸潮流, 그 중에서도 주로 보살사상, 공(空)사상, 화엄경의 유심사상)와 부파불교의 아비달마의 전통을 흡수, 집대성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 일단 불교사의 통설인 것 같다. 동서(東西)심리학 이처럼 석존으로부터 세친까지 대충 잡아도 천년의 임상적, 이론적인 누적으로부터 탄생된 유식은 오늘날 우리들이 바르게 읽어 이해한다면 서양 심라학의 성과를 흡수, 재편성, 통합할 수 있을 정도로 장대한 이론적인 틀이 아닐까도 느껴진다. 실제로 서양심리학이 들어 왔을 때 'consciousness'는 '의식'으로, 'self'는 '자아'로 번역되었는데 그것 자체도 본래는 유식과도 관계가 있는 불교 용어였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다른 학문분야와 마찬가지로 이미 우리말 어휘폭으로도, 이론적 지반으로서도 서구 심리학을 이식하기에 충분한 토양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서구의 과학적 심리학의 전통은 기껏해야 백년을 지나지 못했으며 우리나라에 수입된 것은 과학주의, 객관주의, 실험주의적 심리학이었다. 과학주의적인 심리학은 오래지 않아서 심리학이라고 말하면서 주관적인 '마음'의 개념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관찰 가능한 '행동'만을 연구대상으로 인정하는 행동주의를 탄생시킴으로써 유식과는 상당히 접촉하기 힘든 접근이 되었다. 유식과 접촉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무의식'의 심리학은 1859년 헬름 홀츠의 『무의식적 추론』, 1869년 본 하르트만의 『무의식의 철학』, 그리고 1896년 프로이드가 자신의 체계를 '정신분석'이라고 이름붙였을 때 비로소 분명한 형태를 취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불교측면에서의 심층심리학과의 대화로서는 일본의 경우 몇몇 학자가 활동하고 있지만 선(禪)과 정신분석의 어느 쪽이 보다 심오한가 하는 다소 우열비교 형태에 머물러 있으며, 불교를 현대사상과 대조한다면 당연히 불교심리학으로서 유식이 소개되지만 그 경우 프로이드·융 등의 심층심리학과의 비교, 나아가서는 통합을 시도하는 내용은 언급되어 있지 않다. 특히 정신의학, 임상심리학계에서 전쟁 전후까지는 정신분석이 상당히 특수하고 이단적인 것으로 취급당했으며 게다가 융의 분석 심리학은 비과학적인 신비적 인상을 받았다. 60년대를 전후해서 프로이드 학파와 융 학파의 노력에 의해서 심층심리학의 사회적 발언권이 커졌지만 정신의학, 심리학계의 세력으로서는 대단하다고 할 수 없는 것 같다. 한국에서도 그러한 사정은 조금도 다르지 않는 것 같다. 동서심리학의 통합이라는 문제는 뒤로 하고라도 아직 서로에 대한 대화마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는 실정이다. 최근들어 정신의학의 토대위에 불교적인 교양을 적용하고 인간성 심리학과 선을 결부시키지만 오히려 서양심리학의 입장에서 본 동양심리학을 역수입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여전히 심리학계의 주류는 일관성있게 과학주의적인 실험 심리학이며 전반적으로는 불교에도 정신분석에도 무관심하다. 게다가 불교측에서는 심리학에 대한 관심이나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지만 실제적 시도의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유식·불교의 상황, 초기에 도입된 심리학의 성격, 심리학·정신의학계에서 소수파, 이단으로 취급받으면서 학문으로서의 승인을 얻기에 바빴던 정신분석의 사정 등으로 동서심리학의 통합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것은 안타깝게도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미국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먼저 심리학회는 과학주의적인 실험심리학에 의해 독점당하지 않았으며 특히 제2차대전경 나치로부터 추방당한 우수한 정신분석자가 적극적으로 수용되었으며 전후 정신분석은 행동주의와 나란히 심리학계의 제2세력이 되었고 게다가 발전, 자기비판, 수정 등이 일어났다. 더군다나 그러한 양대세력에 불만을 느낀 메슬로, 메이 등의 심리학자들이 제3세력인 인간성·실존심리학을 제창했다. 거기에 더해서 1960년 전후 크리스트교가 설득력을 잃으면서 상대적으로 선이 지식인의 관심을 받았으며 그 중에서도 서해안에서는 티벳 밀교, 요가, 도교, 이슬람의 신비주의 등 동양종교가 일종의 붐으로 일어났다. 처음에는 기성의 크리스트교와 심리학에 만족할 수 없었던 지식인들의 다소 앝은 동양적 취미수준을 넘지 못했던 점도 있었지만 오래지 않아서 깊은 수준으로 발전한 것 같다. 예를 들면 프롬은 다이세쯔와의 대화속에서 커다란 영향을 받았고, 부노와와 왓쯔는 선과 심리요법의 통합을 시도했으며, 프로이드학파의 정신의학자인 아사죠리는 상당히 일찍부터 동양종교의 영향을 받고 국제적으로는 알려져 있지 않는 '정신통합'을 도입했고, 60년대말에는 메슬로가 자기실현, 자기초월, 최고의 경지에 도달하는 신비체험까지 포함하는 '초개인심리학'을 제창했으며, 또 구로프는 초월체험을 임상적으로 실험·입증하고 윌바는 마침내 정신분석, 실존심리학, 인간성 심리학, 선, 요가, 크리스트교, 신비주의 등을 포괄해서 동양과 서양의 심리학을 통합하는 마음의 스펙트럼 구조론과 탄생시의 자아 이전의 의식에서부터 자아확립을 거쳐서 자아를 초월하기까지의 정신발달단계론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나 자신도 70년대 전반에는 자기초월 심리학과 거의 같은 방향에서 유힉의 이론구조를 기본틀로 하면서 심리학을 통합하는데 심혈을 기울여 왔다. 여기서는 그러한 맥락에서 유식을 '대승불교 심리학[범부에서 보살로의 의식변용의 심리학]'이라는 새로운 각도에서 읽어보고자 했다. 그러나 보다 상세한 사적 고찰은 전문서에 양도하고 다만 유식학이 대승불교 흐름의 한 정점으로 성립되었다는 사실과 현대의 문제에 답할 수 있는 방향으로의 변환을 시도해 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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