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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신학성경연구]구약성경에서 보는 여성

작성자예수사랑|작성시간14.09.28|조회수31 목록 댓글 0

구약성경에서 보는 여성

 
 
 

김 경 래 (전주대학교 교수 / 구약학)
 
 

 

 

들어가는 말

 

구약성경은 일반적으로 결혼한 남자 성인을 대상으로 정하고 기록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게다가 주로 언급되고 등장하는 인물도 대부분 남자 성인들이다. 이러한 사실은 혹시 구약성경이 여자에 대하여 차별 대우 내지는 무시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여자에 대한 구약성경의 가르침은 이런 경솔한 판단과는 거리가 멀다. 이를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성경적'(biblical)이라는 표현을 바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성경적'(biblical)이라는 표현은 어떻게 정의를 내리느냐에 따라 몇 가지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애매모호한 표현이다. 성경에 기록되거나 반영된 것은 무엇이든지 다 '성경적'인 것인가? 또는 성경에서 요구하거나 지시하는 것이 '성경적'인 것인가? 아니면 기독교에서 성경을 토대로 하여 신학적 원칙으로 삼은 것이 '성경적'인 것인가? 필자는 나름대로 '성경적'이라는 표현을 성경에서 궁극적으로 원하거나 요구하는 것,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그의 백성 가운데 형성되기를 원하시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제한하여 생각하고자 한다. 이 경우에 '성경(적)'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뜻'과 상통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성경적'이라는 표현을 위하여 이처럼 제한된 정의를 내린 다음에 생각해야 할 것은 '성경(적) 문화'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성경(적) 문화'는 비록 그것이 하나님이 뜻하시는 것일지라도 시대와 지역 또는 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성경문화는 신앙의 본질이 아니고 그 신앙을 표현하는 방법 내지는 양상(樣相)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일부다처제를 자주 접하게 되는데, 이에 대하여 무조건 비난하여서도 안되고, 무조건 옹호할 수도 없다. 다만 당시의 문화적 배경을 충분히 검토한 후에, 그것을 뛰어 넘어 하나님이 본래 인간에게 요구하시고 원하시는 형태의 결혼이 어떠한 것인지 살펴보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 다음에야 우리는 비로소 '성경적 결혼관'을 논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여자에 대한 성경의 기록도 당시의 시대 및 문화적 배경을 고려한 후에 이해하여야만 올바른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남자와 대등한 존재로 지음받은 여자

 

먼저 하와의 창조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남자에 대한 여자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 이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에덴 동산의 아담, 그는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에덴 동산의 관리를 위임받은 청지기로서 막중한 책임을 지게 되었다. 하나님은 아담 혼자서 이 일을 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보신다. 그래서 아담을 위하여 그에게 걸맞은 배필을 줄 계획을 세우신다. 아담은 하나님이 지으신 각양각색의 동물들 중 어느 하나도 자신에게 걸맞은 짝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허탈감에 빠졌을 것이다.

이제 아담의 허탈감을 채우실 분은 아담을 지으신 하나님밖에 없었다. 아담과 완전히 대등한 자격을 갖춘 존재로서 아담을 도울 수 있는 또 다른 생명체를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창조 작업이 전개되었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수술과도 같았다. 하나님은 먼저 아담을 깊은 잠에 빠지게 하셨다. 이를테면 아담이 고통을 느끼지 못하도록 전신마취를 시킨 셈이었다. 그 다음에는 아담의 옆구리를 열고 갈빗대 하나를 꺼내셨다. 그 갈빗대가 있던 자리에는 살로 대신 채우시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그 갈빗대로 아담의 상대역을 할 여자를 만드셨다.

이 장엄한 수술 과정, 그것은 하나님의 전체 창조 과정 가운데 가장 특이한 일이었다. 하나님은 아담의 갈빗대 하나를 가지고 아담과 완전히 대등한 자격을 갖춘 또 다른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다. 깊은 잠에서 깬 아담은 자기와 그리도 비슷한 이 새로운 생명체를 보는 순간, "이번에야말로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로구나!"라고 외쳤다. 이제까지 무수한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면서 행여나 자신의 배필을 찾을까 기대했다가 실망한 아담은 마침내 자기에게 걸맞은 배필이 자기 앞에 서 있는 것을 보고는 감격하여 탄성을 터뜨렸던 것이다. 아담은 이 새로운 피조물에게 당장 '여자'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히브리어로 남자는 '이쉬'라고 한다. 그리고 여자는 '이샤'라고 하는데 그것은 '이쉬'의 여성형이다. 남자의 짝이 되는 여자는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에 의하여 이처럼 남자와 대등한 자격을 가지고 창조된 것이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대등한 관계로 창조하시고, 또 그 둘을 최초로 맺어주신 분이다. 구약성경의 가르침에 따르면, 여자는 한 남자와 더불어 부부가 될 때 그 둘이 한 몸을 이루어 함께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 연합체로 바뀌게 된다. 이런 점에서 '부부 관계의 기초는 하나님의 약속'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부부 관계가 만일 두 사람이 속한 집안의 경제적 여건이나 사회적 지위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다면 그것은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부부관계에 있어서 성적인 만족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이 역시 부부관계의 기초가 될 수 없다. 부부 관계는 또 결코 자식에 기초해서도 안된다. 이러한 것들이 부부관계의 기초로 자리잡을 경우 그 부부관계는 쉽게 깨질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결혼을 통하여 부부가 된 사람들은 남편과 아내 모두가 자신들의 결합이 창조주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따라서 이루어진 거룩한 관계임을 깨달아야 한다. 부부는 함께 하나님의 선하신 약속을 받아 그 약속을 믿음으로써 이 땅에 사는 동안 서로 사랑하며 더불어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이 성취되어 감을 체험하는 관계를 이룸이 가장 아름답다. 하나님의 약속을 더불어 믿고 함께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부부라면 두 사람 사이에 비록 가난이 끼어들고 자식이 없고 심지어는 성적인 관계가 결핍할지라도 얼마든지 평화롭고 만족스런 부부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구원과 은혜의 통로로서의 여자

 

인간의 타락 이후 여자는 특별히 '구원과 은혜의 통로'로서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는다. 이를 보여주는 최초의 구절은 창세기 3장 15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창세기 3장 14-15절에는 여자를 꾀어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게 한 뱀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가 기록되어 있다. 그중 특별히 15절의 말씀은 보통 '원시(原始) 복음'이라고 알려져 있다. 뱀에 대한 저주를 담고 있는 이 말씀 가운데에는, 장차 한 특별한 존재를 통하여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담겨 있다. "내가 너를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할 것이다.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

여기서 '여자(특별히, 처녀)의 후손'으로 태어나는 이는 메시야, 곧 하나님이 장차 인간을 위하여 이 땅에 보내실 구원자를 가리킨다. 장차 메시야가 이 세상의 통치권을 장악할 터인데, 그의 통치는 사탄 곧 '옛 뱀'의 세력을 분쇄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메시야, 곧 처녀 마리아에게서 출생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심으로써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셨다. 이처럼 여자는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를 탄생시키는 통로로 사용된 것이다.

창세기 3장 15절의 예언 외에도 구약성경에서 여자들이 구원과 은혜의 통로가 된 예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먼저 탁월한 지도력이나 특별한 지위를 통하여 구원과 은혜의 통로로 사용된 예로는 여사사 드보라(삿 4:4-5:31)와 왕비 에스더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드보라는 한 남자의 아내이면서, 선지자요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바락과 같은 남자 장군보다 훨씬 더 용감한 지도력으로 이스라엘을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서 구원한 여성이다. 에스더는 비록 특별한 영도력을 갖춘 여장부는 아니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페르시아 왕국 왕비로서의 지위를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위기에 처한 자기 민족을 구원한 여성이다. 이와 비슷한 예로서 아벨 성의 한 지혜로운 여인은 성안의 백성들을 지혜로운 말로 설득하여 마침내 성안으로 피해 들어온 반역도 세바의 목을 베어 성밖의 요압에게 던져줌으로써 그 성을 구한 적이 있다(삼하 20:14-22).

둘째로 구약성경에 묘사되고 있는 여성들 중에는 온유한 성품의 소유자로서 단순히 출산을 통하여 구원과 은혜의 통로가 된 예도 찾아볼 수 있다. 이 경우의 대표적인 예를 들라고 하면 아마도 곧바로 모압 여자 룻을 떠올릴 것이다. 남편도 잃고 시동생도 죽었는데, 룻은 왜 끝까지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가고자 하였을까? 답은 오직 하나 뿐이다. 모압 여자 룻이 나오미의 며느리로 들어온 이후로 그녀는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인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되어 그분을 믿고 섬기는 사람(성도)이 되었을 것이다(룻 1:16). 우상 숭배로 가득한 자기 민족 가운데서는 신앙을 지킬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굳이 아무런 희망도 없는 시어머니를 따라가지 않았을까?

룻은 나오미를 따라 유다 땅 베들레헴으로 들어 온 이후로 시어머니를 봉양하고자 열심히 일하였다. 마침 보리 거둘 무렵이어서(룻 1:22) 당분간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보리 이삭을 줍는 일이었다. 긴 얘기를 줄여서 말하자면, 룻이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게 된 일이 계기가 되어, 마침내 성실하고 착한 룻은 보아스의 눈에 들게 되고, 또 시어머니의 지시에 따라 순종함으로써 보아스의 아내가 되었다. 그리고 아들을 낳는데, 그 아들이 바로 다윗의 할아버지인 오벳이다. 룻은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된 것이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다윗은 메시야의 조상이다. 이런 점에서 룻은 아들을 낳음으로써 구원과 은혜의 통로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한나 역시 출산을 통하여 구원과 은혜의 통로가 된 대표적인 여성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녀는 자식 없이 구박당하는 서러움을 하나님 앞에 서원하며 호소하였고, 마침내 아들 사무엘을 얻어 그의 일생을 하나님 앞에 바치게 된다. 사무엘이 성장하여 이스라엘의 사사요 구원자로서, 왕국의 기초를 세운 일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들 외에도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나 그의 아들 이삭의 아내 리브가 등도 모두가 출산을 통하여 구원과 은혜의 통로가 된 사람들이다.

셋째로 인간적인 시각을 통해 볼 때는 비록 이상한 과정을 거치긴 하였지만, 하나님의 특별한 경륜에 의하여 구원의 통로가 된 예도 찾아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본래 유다의 큰 며느리였던 가나안 여자 다말을 들 수 있다. 그녀는 남편을 잃고, 또 바로 밑의 시동생도 잃은 후에 막내 시동생을 받을 가능성도 보이지 않자, 결국은 창녀로 위장하여 시아버지인 유다와 동침하여 쌍둥이 자식을 얻은 비운의 여인이었다. 그러나 이들 쌍둥이 중에 하나가 바로 메시야의 조상 중의 한 사람이 될 줄이야 누가 예견할 수 있었을까? 이런 점에서 창세기 38장의 기록은 구약성경 가운데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밧세바 역시 이런 범주에 속하는 여인이다. 그녀는 본래 다윗의 부하 장수중 하나인 우리야라는 헷 사람의 아내였다. 밧세바는 남편의 군주인 다윗왕이 그녀와 동침한 후에 남편을 억울하게 죽이고, 자신은 남편의 원수인 다윗왕의 왕후가 되는 비참한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런데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밧세바가 난 아들들중 하나가 바로 다윗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된 그 유명한 솔로몬이다.

이들 두 사람과는 약간 다른 경우이긴 하지만, 여리고성의 라합에 대하여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라합의 본래 직업은 기생이었다. 하지만 라합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소문만으로도 그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목숨의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두 명의 이스라엘 정탐꾼을 보호하였다. 그후 라합은 유다 자손인 살몬과 결혼하여 다윗 왕의 조상인 보아스를 낳게 된다(마 1:5).

마태복음 제1장은 구원주이신 메시야를 내기 위해 선택된 집안의 가계를 적고 있다. 아브라함과 다윗으로 대표될 수 있는 이 가문에는 몇몇 기대밖의 이름들도 끼여 있다. 남자의 이름을 위주로 기록한 이 족보에 다섯 명의 여자가 등장하는데, 이들 다섯 중에서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빼면, 위에서 언급된 바 있는 다말과 라합과 룻과 밧세바가 남는다. 이처럼 여자는 단순히 남자와 대등한 상대역으로서 뿐만 아니라, 구원과 은혜의 통로로서 구속사에 있어서 중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잠언에서 제시하는 바람직한 여성상

 

잠언 31장에 '현숙한 여인'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시구가 실려 있다. 잠언 31장 10절에서 시작하여 잠언의 가장 마지막 절인 잠언 31장 31절에서 끝을 맺는 이 시는 매 절의 머리글자가 히브리어 알파벳 순에 의하여 구성된 계획적인 노래이다. 언뜻 그 내용으로 보면, 마치 부지런히 집안 살림을 돌보며 열심히 가내 산업을 일으켜 남편의 지위를 세워주는 '현모양처' 형의 여인을 예찬하는 시로 들릴 수 있지만, 실상 이 시의 핵심 내용은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는 30절의 말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성실한 여인이야말로 남편과 자식들에게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모든 사람으로부터도 칭찬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다. 잠언의 주된 내용중 하나가 아버지가 젊은 아들에게 '음란한 여자'를 조심하라는 당부의 말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잠언 31장 10-31절의 '현숙한 여인'에 대한 찬양시는 본래 잠언을 기록한 목적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잠언을 비롯하여 구약성경의 기록은 전체적으로, 마치 이 세상을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는 남자에게 미치는 여자의 막대한 영향력을 간파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구약성경을 통하여 여자와 남자의 대등한 관계를 살펴보았고, 여자가 특별히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의 통로로 사용되며, 그리고 여자라는 존재가 그의 상대역이 되는 남자라는 인간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오늘날의 성개방 현상은 여성의 지위를 실추시키는데 커다란 공헌을 하였고, 남성들의 교만과 편견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 나타난 여성의 중차대한 역할을 간과하게 하였다. 구약성경을 통하여 우리는 구원사적으로 여자의 위치가 매우 중요함을 살펴보았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여성이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파악하여 바로 설 때, 그런 여성이 속한 가정, 교회, 사회는 번영할 것이라고 굳게 믿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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