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 여행13 - 양저우의 수서호 공원에서 대운하를 완성시킨 수양제를 생각하다!
양저우 扬州(양주) 에 도착해 청나라때 조성된 대나무로 유명한 정원 거위안 (介园 개원)을
보고는 차로 서우시후궁위엔 瘦西湖公园 (수서호공원) 에 내려 안으로 들어갑니다.
이 도시 양저우 扬州(양주)는 베이징에서 시작해 항주까지 이르는 중국 대운하 의 중요
거점으로 중국을 통일하고 대운하를 완성한 수양제 가 세차례나 방문한 도시입니다.
대운하 (大运河)는 북쪽의 베이징에서 남쪽의 저장성(浙江省) 항저우 까지
이어지는 수로 체계로 기원전 5세기 이래 구간별로 건설되었습니다.
서기 7세기 강남을 정복한 수(隋) 왕조 시대에 공사가 광범위하게 진행되었는데....
통신과 쌀등을 운송했으니 13세기에 이르러는 중국의 주요 하천 5개를 이었습니다.
중국의 역대 왕조들이 양쯔 강과 화이허 강 유역에서 수도인 베이징 까지
식량과 생활 필수품을 수월하게 운반하기 위하여 건설하였다고 하네요!
남북조 시대의 북방 유목민이 지배하던 화북에서 선비족인 북주의 외척 양견이 581년에
북주를 타도하여 수(隋) 를 건국하고 589년에 남조의 진(陳)을 쳐서 통일합니다.
둘째 아들 양광 은 총사령관으로서 52만명의 대군을 이끌고 나가 단숨에 진을 쓰러뜨리고
한나라 이래 400년 만에 중국을 통일하고는 그 공으로 황태자의 자리 에 올랐습니다.
원래 문제 양견 은 장남인 용을 황태자로 정했으나 어머니인 독고 황후에
의해 양광이 황태자 가 되었던 것인데.... 2년후에 황후는 사망합니다.
문제는 멸망한 진의 황녀 선화(宣華) 부인을 사랑하다가 병상에 눕게 되었는데 간병하던
선화부인을 태자 양광이 폭행하려 하자 부인이 소리치니 문제는 모든 것을 눈치챕니다.
때문에 광이 황제를 시해하고 새 황제에 올랐지만 백성들의 불평을 무마하기 위해 남북을
잇는 대운하 를 건설하고, 만리장성 을 보수하고 영토를 넓혀 대제국을 수립하려 했지요?
중국에는 “남선북마(南船北馬)”라는 말이 있으니 화북에서는 말 을 이용하는 교통수단이
중심을 이루었고 화중과 화남에서는 배를 이용하는 내륙 수운 이 중심을 이루었습니다.
중국에서는 일찍이 전국 시대부터 관개사업과 운수를 위한 운하 를 만들었으나
남북조 시대 전쟁과 혼란으로 수많은 운하가 파괴되었습니다.
문제도 양자강과 회하를 잇는 산양독(山陽瀆) 을 완성시킨 바 있으니 양제는 그
사업을 이어 100만명의 농민 을 동원해서 5개월 동안 작업을 강행합니다.
그 결과 황하에서 동북으로 뚫린 영제거 (永濟渠) 와 황하에서 회하를 잇는 통제거
(通濟渠) 및 양자강에서 전당강을 잇는 강남하 (江南河) 가 개통되었습니다.
이들 운하의 전체 길이는 1,900㎞에 이르며 그 너비는 30m 내지 60m 에 이르니 이는
대공사로 만리장성·피라미드 와 함께 세계 3대 토목 공사 중 하나로 꼽힙니다.
양제는 운하가 완성되자 용선(龍船) 을 비롯한 수많은 호화선을 건조하여 미녀를 태우고
술잔치를 벌이면서 강남에 유람하니 605년 완성된 통제거로 하남(낙양)으로 부터
이곳 강도(양주) 까지 유람한 양제의 행차는 호화로움으로 후세 까지 이야깃거리가 됩니다.
수천척의 배에 후궁들과 고관들을 태운 선단은 길이가 200리에 이르렀고
배를 끌기 위해 동원된 인부만도 8만명 에 달했으며....
양제가 탄 용선 의 길이는 200장(606m), 높이는 4장 5척(14m) 에
이르는 4층 짜리 배로서 방이 무려 100개 이상 이었다고 합니다.
강도(양주)에의 행차가 있고 나서 2년후 양제는 이번에는 육로로 북방 행차에 나서니
태행산맥을 횡단하는 마찻길이 개설되고 유림에서 동으로 뻗은 장성 을 쌓았습니다.
이 공사에 100만 명이 징발되었고 인부의 사망률이 50~ 60%에 이르렀으니 만리장성 은
황하부터 서쪽을 제외한 현존하는 장성(명때 건조) 의 위치와 거의 같다고 합니다.
양제는 남방의 임읍(林邑, 참파) 을 병합하였고, 동방의 유구(流求, 대만) 와
남방의 수마트라 적토국(赤土國) 으로 하여금 조공을 바치게 하였습니다.
양제는 612년 부터 3회에 걸친 고구려 원정 을 단행하였으니 한 무제 시대의
대제국을 실현하려 한 것이니.... 곧 한사군을 부활 하려한 것입니다.
113만 대군과 200만의 수송대 를 이끈 제1차 친정 이후 614년까지 3회에
걸친 고구려와의 전쟁은 모두 양제의 실패로 끝나게 됩니다.
양제의 한반도 원정이 실패로 돌아가자 돌궐족이 반기 를 드는데 그들의 포위를 뚫고
서울로 돌아왔다가 즉시 용선을 출동시켜 보다 안전한 남쪽 강도(양주) 로 향합니다.
강도(양주) 에 머물기 2년째인 618년 수양제 는 그 비와 자식들과 함께 반란을 일으킨
근위병들에 의해 이 도시 "양저우(양주)" 에서 "살해" 되고 수나라는 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