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 여행17 - 수서호공원 만화원을 걸어서 수월비경을 구경하고 북대문으로!
10월 26일 양저우 扬州(양주) 에서 거위안 정원 을 보고 서우시후궁위엔 瘦西湖公园
(수서호공원) 에 들러 5개의 정자가 서있는 五亭桥(오정교) 를 구경합니다.
라마교 사원에서 바이타(白塔 백탑) 을 구경하고는 24교 에 도착하는데 수양제가
지은 아치형 다리로 24개의 기둥은 각 24절기 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아치형 예쁜 다리 24교 를 걸어 운하를 건너가니...
여긴 꽃동산 인데 바로 " 만화원(萬花園)" 이라고 합니다.
白塔晴云(백탑청운) 을 거쳐 연못과 아치형 다리 및 정자 가 예쁜 건물
万花园餐飮服务中心 (만화원찬음복무중심) 을 구경하고 더 걸어 올라가니....
오른쪽 길은 만화원 장랑을 지나 동대문으로 나가는 길이라 우린 왼쪽 길을 택하니
잔화정(簪花亭) 인데 왼쪽 너머로 정향서옥(靜香書屋) 지붕 끝이 보입니다.
하지만 우린 똑 바로 걸어가니 거기 보이는 무대는 春江花月夜演出(춘강화월야연출)
이라? 그럼 밤에 춘강변인 이 무대에서 무슨 공연 을 하나 보네요?
좀더 걸으니 바위벽이 나오고 작은 폭포가 되어 물이 떨어지면서 안개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으니, 그럼 이곳은 바로 石壁流淙(석벽류종)
이라고 부르는 곳인 모양인데.... 주변 풍광이 예뻐 잠시 앉아 구경할만 합니다.
마침 여긴 물이 흐르니 春江(춘강) 인 것 같은데 거기에 아치형 석교 가 있고
다리 위에서는 중국인 젊은 연인들이 사진을 찍는 모습이 보기에 좋네요?
십여년전에 공산주의 국가 중국을 방문하고 놀란 것이 내 선입견 으로는
도처에 경찰 이 깔린데다가 사상과 언론의 자유 도 없으니....
사회가 모든 분야에 걸쳐 경직되고 딱딱할줄 알았는데..... 중국의 청춘 남녀 들이
거리나 공원에서 스스럼 없이 진한 "애정 표현" 을 하는걸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인간이란 고정관념과 편견 이 자신도 모르게 자리잡고 있는지라 저렇게 놀라기도
했었는데... 하지만 사랑 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본성 이 아니던가요?
녹죽헌에서 가만히 생각해 보노라니.... 인간의 본성 이란 의식주가 해결되면
술과 가무에 성욕과 사치 가 판을 치고 결국 허황된 욕망 끝에
무느지는 것이니..... 이 도시 양주에서 죽은 수양제 가 그러한가 봅니다!
수나라 양제 시대에 남쪽인 베트남 중부 지역에는 인도네시아계인
참파족 을 대종으로 한 임읍(林邑) 이라는 나라가 존재했습니다.
"임읍" 은 훗날인 10세기 이후 베트남 북부 교주 일대에서 성장한 베트남의 역대 왕조 와
격렬한 항쟁을 되풀이하다가 패해 지금의 다낭에서 남쪽에 위치한 비자야로 천도합니다.
임읍 은 15세기에 베트남의 레(黎) 왕조 와의 싸움에 패하여 비자야 를 점령당한후
17세기 말에는 메콩 델타 까지 빼앗기면서 완전히 패망하고 말았습니다.
그건 머나먼 장래, 훗날에 일어날 일이고 7세기 수양제 재위 말년에 신하들이
임읍에 진귀한 보물 이 매우 많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당시 수나라는 베트남 북부인 교주 를 평정하고 군사를 주둔시키고 있었습니다.
수양제는 베트남 북부 교주에 주둔하고 있는 유방 에게 명해 베트남 중부지방인 임읍 을
치게 했는데.... 임읍의 군주 판지 가 요새를 지켰으나 이내 유방에게 격파당합니다.
수나라 군사 들이 대거 사리강을 건너자 임읍(林邑) 의 병사들은
커다란 코끼리 를 타고 사방에서 수나라군에 포위공격을 가합니다.
수나라 군사들은 물론 중원에서 끌고 온 말 들 역시 커다란 상아를 가진
코끼리 를 처음 본 까닭에...... 혼비백산해 황급히 물러났습니다.
서전에서 패한 수나라의 대장 유방 이 꾀를 내어 땅 위에 함정을 판 뒤 풀로
덮게 한후 군사들이 재차 도전한 뒤 짐짓 도주하자.... 임읍의
병사들이 코끼리를 타고 뒤를 급히 쫓다가 함정에 빠져 난전 이 벌어집니다.
이때 유방이 명을 내려 코끼리를 향해 화살을 난사 하자 아픔을 참지 못한
코끼리 들이 괴성을 지르며 자기편인 임읍의 군진을 향해 내달립니다.
이 틈을 이용해 수나라의 정예병들이 출격해 임읍 병사 1만여명의 목을 벤뒤
추격전을 전개해 과거 후한의 마원 이 교지의 반란을 평정한후
기념물로 세운 동주(銅柱) 를 손에 넣은 뒤 마침내 임읍의 수도를 점령합니다.
그러나 수나라 군사는 풍토병 에 걸려 철군 도중 절반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유방도 병사
했는데 임읍왕 판지 는 수나라 군사가 철군하자 사자를 보내 칭신하며 투항을 선언합니다.
그 얼마 전에 양광 이 남조 진나라 를 평정할 때 휘하 장군인 고영 은 양광의 뜻을
어기고 진숙보의 총희인 장려화(張麗華) 의 목을 베어버린 일이 있었습니다.
장려화 는 머리카락 이 특히 아름다워 길이가 무려 7척에 달했으며
화사한 자태에 총명한데다가 그 행동 까지 조용했다고 합니다.
당시 양광은 진왕 으로 아버지인 황제의 명을 받아 남쪽 진나라 를
정벌하는 총사령관 이었는데, 놓친 열차 가 아름답다고.....
손에 넣지 못한 장려화 에 대한 아쉬움은 훗날 황제가 되어 북쪽 거란을 칠때 사소한
실수를 트집잡아 고영의 목을 베는데... "인간의 탐욕과 원한" 은 끝이 없어라!!!
그러고는 일어나 걸어서 청운당과 금천화마 를 지나 당파성서문유지 를....
구경하고는 "수월비경" 을 거쳐 다시 춘류화방 을 구경합니다.
그리고 송나라 시대에 판 것인지 우물 宋井(송정) 을 지나 드디어 北大門(북대문) 으로
나서는데.... 그럼 남대문 으로 수서호 공원에 들어온지 3시간 반이 지났나 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