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형편도 안되고 공부도 못하는 나를
아버지는 시내 학교로 입학을 시켰다.
난 공부가 하기 싫었다.
중학교 1학년 때 꼴찌(61/61)를 했다.
성적표를 가지고
집에 가 내밀 자신이 없었다.
아버지는 교육을 받지 못한 한을
자식을 통해 풀고자 했는데 꼴찌라니...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는 소작농을 하면서도
아들을 중학교에 보낼 생각을 한 아버지를 떠올리면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잉크로 기록된 성적표를
1/61로 고쳐 아버지께 보여드렸다.
아버지는 보통학교도 다니지 않았으므로
내가 1등으로 고친 성적표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아들이 방학을 해서 집으로 왔으니
친지들이 몰려와 "애는 공부를 잘 했나"라고 물었다.
아버지는
"이번에 1등을 했지"라고 했다.
"자식 하나는 잘 뒀어.
1등을 했으면 잔치를 하야지"했다.
당시 우리 집은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살림이었다.
☆☆☆
이튿날
강에서 멱을 감고 돌아오니,
아버지는 한 마리뿐인 돼지를 잡아
동네 사람을 모아놓고 잔치를 하고 있었다.
그 돼지는 우리 집 재산목록 1호였다.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버지"하고 불렀지만
다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달려 나갔다.
그 뒤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겁이 난 나는
강으로 가 빠져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에서
물 속에서 숨을 안 쉬고 버티기도 했고,
주먹으로 내 머리를 내리치기도 하였다.
충격적인 그 사건 이후 나는 달라졌다.
항상 그 일이 머리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
그로부터 17년 후
나는 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내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부모님 앞에 33년 전의 일을 사과하기 위해
"저 중학교 1학년 때 1등은 요."
하고 말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담배를 피우시던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그만 하거라.
손자(孫子)가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