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금주의 말씀

(백)주님 세례 축일 1/13

작성자esthel|작성시간19.01.13|조회수30 목록 댓글 0

(백)주님 세례 축일

‘주님 세례 축일’은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 받으신 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주님의 세례는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드러낸 사건이다. 그러므로 주님 공현 대축일과 깊은 관련이 있다. 전례력으로는 이 주님 세례 축일로 성탄 시기가 끝나고, 다음 날부터 연중 시기가 시작된다.

오늘 전례

▦ 오늘은 주님 세례 축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께 성령을 내리시고, 하느님의 아들로 선포하십니다.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도 만민의 주님께서 전해 주신 평화의 복음을 전하기로 다짐합시다.

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이다.”라는 주님의 말씀을 전한다(제1독서). 베드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나자렛 예수님께 성령과 힘을 부어 주셨다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 성령께서 내리시고,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소리가 들려온다(복음).

제1독서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이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2,1-4.6-7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
2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3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4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리니
섬들도 그의 가르침을 고대하리라.
6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고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였으니
7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또는>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리니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0,1-5.9-11
1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 너희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
2 예루살렘에게 다정히 말하여라.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 죗값이 치러졌으며
자기의 모든 죄악에 대하여 주님 손에서 갑절의 벌을 받았다고 외쳐라.
3 한 소리가 외친다. “ 너희는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아라.
우리 하느님을 위하여 사막에 길을 곧게 내어라.
4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거친 곳은 평지가 되고 험한 곳은 평야가 되어라.
5 이에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리니 모든 사람이 다 함께 그것을 보리라.
주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9 기쁜 소식을 전하는 시온아, 높은 산으로 올라가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예루살렘아, 너의 목소리를 한껏 높여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라.
유다의 성읍들에게 “너희의 하느님께서 여기에 계시다.” 하고 말하여라.
10 보라, 주 하느님께서 권능을 떨치며 오신다. 당신의 팔로 왕권을 행사하신다.
보라, 그분의 상급이 그분과 함께 오고 그분의 보상이 그분 앞에 서서 온다.
11 그분께서는 목자처럼 당신의 가축들을 먹이시고
새끼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하느님께서 예수님께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0,34-38
그 무렵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나는 이제 참으로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35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
36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곧 만민의 주님을 통하여
평화의 복음을 전하시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을
37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이 세례를 선포한 이래 갈릴래아에서 시작하여
온 유다 지방에 걸쳐 일어난 일과,
38 하느님께서 나자렛 출신 예수님께 성령과 힘을 부어 주신 일도 알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또는>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거듭나고 새로워지도록 우리를 물로 씻어 구원하셨다.>

▥ 사도 바오로의 티토서 말씀입니다. 2,11-14; 3,4-7
사랑하는 그대여,
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습니다.
12 이 은총이 우리를 교육하여, 불경함과 속된 욕망을 버리고
현세에서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도록 해 줍니다.
13 복된 희망이 이루어지기를, 우리의 위대하신 하느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우리를
그렇게 살도록 해 줍니다.
14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시어,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해방하시고 또 깨끗하게 하시어,
선행에 열성을 기울이는 당신 소유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3,4 그러나 우리 구원자이신 하느님의 호의와 인간애가 드러난 그때,
5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한 의로운 일 때문이 아니라 당신 자비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거듭나고 새로워지도록 물로 씻어 구원하신 것입니다.
6 이 성령을 하느님께서는 우리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셨습니다.
7 그리하여 우리는 그분의 은총으로 의롭게 되어,
영원한 생명의 희망에 따라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 하늘이 열렸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5-16.21-22
그때에 15 백성은 기대에 차 있었으므로,
모두 마음속으로 요한이 메시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다.
16 그래서 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말하였다. “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21 온 백성이 세례를 받은 뒤에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에 내리시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영성체송

요한 1,32.34 참조
보라, 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보았다. 그래서 이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증언하였다.

오늘의 묵상

세례를 통하여 모든 신자는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임에도 하느님의 자녀처럼 살지 못하는 이유는, 세례를 물로만 받고 성령으로는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믿음’을 선물합니다.
내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믿어야 하느님의 자녀가 됩니다. 늑대에게 키워진 아이는 자신이 늑대라고 믿을 것입니다. 자신이 늑대라고 믿으면 사람처럼 두 발로 걸어 다닐 수는 없습니다. 아이가 사람이 되려면 자신이 사람임을 믿어야 합니다. 사람은 믿는 대로 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하늘에서 들려오는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소리를 들으십니다. 세례는 이렇듯 내 정체성이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 곧 ‘하느님’임을 확고하게 믿게 만드는 예식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은 하느님입니다. 사람의 자녀는 사람으로 살고, 하느님의 자녀는 하느님으로 삽니다. 사람의 자녀는 세상에 집착하며 살고, 하느님의 자녀는 하느님 뜻에 ‘순종’하며 삽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자녀는 오늘 제1독서에서처럼 또한 “종”이기도 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순종하는 자녀를 사랑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느님께 순종하시어, 오늘 제2독서에서 증언하는 것처럼, 세상을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많이 하셨습니다. 사람이 사람임을 믿으면 두 발로 걷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본성상 사랑을 실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전삼용 요셉 신부)
............................................................................................................................................
2019년 1월 13일 주님 세례 축일
♡갑곶성지 조명연 신부님♡

급하게 차를 타고 가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다른 일을 하다가 시계를 잘못 봐서 약속시간에 늦게 된 것이었지요.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차가 많이 밀리는 것입니다. 약속시간에 가까울수록 초조해지고 있는데, 앞 차의 운전수가 딴 짓을 하고 있는지 신호가 바뀌었는데 움직이지를 않는 것입니다. 이제는 초조함이 화남으로 바뀌게 딥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앞 차가 가라고 뒤에서 내 차로 부딪혀서 밀겠습니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경적을 울리겠지요. 그래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있나보다.’하면서 차선을 옮겨서 갈 것입니다. 만약에 급하고 화가 난다고 앞 차를 뒤에서 박아버린다면 더 늦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등산 가는 사람이 힘들다고 산에게 “너는 너무 높아. 좀 낮춰줘.”라고 말할까요? 산에게 불평한다는 것이 소용없음을 알기에 그냥 우직하게 산에 오릅니다. 비가 온다고 해서 “비 멈춰!”라고 말하고 화를 낼까요? 아닙니다. 우산을 쓰면 됩니다.

사람과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그 사람은 움직일 수 없는 ‘산’과 같고,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비’와도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대신 변할 수 있는 내가 바뀌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변화하려는 노력을 보고 감동을 하게 되지요. ‘나를 위해서 저렇게 노력하는구나. 나도 바꿀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 연약한 인간의 몸을 취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물론 죄로 가득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하지요. 그러나 우리들이 스스로 변화할 수 있도록 당신께서 먼저 변화하셨던 것이 아닐까요? 우리 역시 죄를 미워하고 선을 실천할 수 있도록, 미움과 질투의 삶에서 사랑과 용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스스로 변화할 수 있게 직접 모범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주님의 이 모범은 오늘 우리들이 기념하는 주님의 세례를 통해서 더욱 더 분명해집니다. 아무런 죄도 없으신 분께서 회개의 세례를 받으십니다.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그분께서 왜 물로 세례를 받으셨을까요? 분명히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신데 왜 그런 모습을 보였을까요? 바로 그 대답을 세례 받은 후 하늘에서 들린 목소리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해서 교만에 차서 사람들을 지배하는 모습이 아니라, 한없이 낮아져서 오히려 사람을 섬기려는 겸손함이 바로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이 하느님의 뜻을 직접 당신의 몸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이지요.

지금 우리는 어떤 변화로 낮아지고 있을까요? 그래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용서하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있을까요? 나의 모습은 하느님으로부터 칭찬의 말을 들을 수 있을까요?

오늘의 명언: 사랑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 나서야 한다. 비록 그것이 몇 시간, 혹은 며칠, 혹은 몇 주에 이르는 실망과 슬픔을 뜻한다 해도(파울로 코엘료).

사진설명: 세례를 받으시는 주님.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