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바오로 사도는 소아시아 킬리키아 지방의 타르수스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율법을 엄격히 준수하도록 교육받은 철저한 유다인이었다.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던 그였으나,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하고 극적으로 회심한 뒤 그리스도의 사도로 변신하였다. 교회가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을 별도로 지내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발현으로 이루어진 그의 회심이 구원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바오로 사도는 많은 이방인의 눈을 뜨게 하여 그들을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세력에서 하느님께 돌아서게 하였다.
말씀의 초대
바오로는 백성에게, 신자들을 박해하던 자신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사도가 된 경위를 말한다(제1독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일어나 예수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며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22,3-16
그 무렵 바오로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3 “나는 유다 사람입니다.
킬리키아의 타르수스에서 태어났지만 이 도성 예루살렘에서 자랐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조상 전래의 엄격한 율법에 따라 교육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모두 그렇듯이
나도 하느님을 열성으로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4 또 신자들을 죽일 작정으로 이 새로운 길을 박해하여,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포박하고 감옥에 넣었습니다.
5 대사제와 온 원로단도 나에 관하여 증언해 줄 수 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서 동포들에게 가는 서한까지 받아 다마스쿠스로 갔습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고 와
처벌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6 그런데 내가 길을 떠나 정오쯤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큰 빛이 번쩍이며 내 둘레를 비추었습니다.
7 나는 바닥에 엎어졌습니다.
그리고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고
나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8 내가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여쭙자,
그분께서 나에게 이르셨습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자렛 사람 예수다.’
9 나와 함께 있던 이들은 빛은 보았지만,
나에게 말씀하시는 분의 소리는 듣지 못하였습니다.
10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내가 여쭈었더니,
주님께서 나에게 이르셨습니다. ‘일어나 다마스쿠스로 들어가거라.
장차 네가 하도록 결정되어 있는 모든 일에 관하여
거기에서 누가 너에게 일러 줄 것이다.’
11 나는 그 눈부신 빛 때문에 앞을 볼 수가 없어,
나와 함께 가던 이들의 손에 이끌려 다마스쿠스로 들어갔습니다.
12 거기에는 하나니아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율법에 따라 사는 독실한 사람으로,
그곳에 사는 모든 유다인에게 좋은 평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13 그가 나를 찾아와 앞에 서서,
‘사울 형제, 눈을 뜨십시오.’ 하고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그 순간 나는 눈을 뜨고 그를 보게 되었습니다.
14 그때에 하나니아스가 말하였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선택하시어,
그분의 뜻을 깨닫고 의로우신 분을 뵙고
또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게 하셨습니다.
15 당신이 보고 들은 것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그분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16 그러니 이제 무엇을 망설입니까?
일어나 그분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며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또는>
<네가 해야 할 일을 누가 일러 줄 것이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9,1-22
그 무렵 1 사울은 여전히 주님의 제자들을 향하여 살기를 내뿜으며
대사제에게 가서, 2 다마스쿠스에 있는 회당들에 보내는 서한을 청하였다.
새로운 길을 따르는 이들을 찾아내기만 하면
남자든 여자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겠다는 것이었다.
3 사울이 길을 떠나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그의 둘레를 비추었다.
4 그는 땅에 엎어졌다.
그리고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고
자기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5 사울이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6 이제 일어나 성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누가 일러 줄 것이다.”
7 사울과 동행하던 사람들은 소리는 들었지만
아무도 볼 수 없었으므로 멍하게 서 있었다.
8 사울은 땅에서 일어나 눈을 떴으나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손을 잡고 다마스쿠스로 데려갔다.
9 사울은 사흘 동안 앞을 보지 못하였는데,
그동안 그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10 다마스쿠스에 하나니아스라는 제자가 있었다.
주님께서 환시 중에 “하나니아스야!” 하고 그를 부르셨다.
그가 “예, 주님.” 하고 대답하자 11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곧은 길’이라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 있는 사울이라는 타르수스 사람을 찾아라.
지금 사울은 기도하고 있는데,
12 그는 환시 중에 하나니아스라는 사람이 들어와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을 보았다.”
13 하나니아스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성도들에게 얼마나 못된 짓을 하였는지
제가 많은 이들에게서 들었습니다.
14 그리고 그는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들을 모두 결박할 권한을
수석 사제들에게서 받아 가지고 여기에 와 있습니다.”
15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거라. 그는 다른 민족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선택한 그릇이다.
16 나는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그에게 보여 주겠다.”
17 그리하여 하나니아스는 길을 나섰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사울에게 안수하고 나서 말하였다.
“사울 형제, 당신이 다시 보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도록 주님께서,
곧 당신이 이리 오는 길에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셨습니다.”
18 그러자 곧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일어나 세례를 받은 다음 19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렸다.
사울은 며칠 동안 다마스쿠스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지낸 뒤,
20 곧바로 여러 회당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선포하였다.
21 그 말을 들은 자들은 모두 놀라며, “저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예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자들을 짓밟은 자가 아닌가?
또 바로 그런 자들을 결박하여 수석 사제들에게 끌어가려고
여기에 온 것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22 그러나 사울은 더욱 힘차게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증명하여,
다마스쿠스에 사는 유다인들을 당혹하게 만들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5-18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15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16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
17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곧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18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영성체송
갈라 2,20 참조
나는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노라.
오늘의 묵상
오늘은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본디 교회를 박해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그런 그를 선택하시어 복음 선포의 선봉장으로 삼으셨습니다. 교회 안에도 많은 인물이 있었을 텐데 교회를 박해하던 바오로를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오로만큼 ‘열정적’인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오로는 믿으면 그 믿는 것에 목숨을 내어던질 줄 아는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눈이 멀었다는 것은, 열정이 어떻게 사람의 눈을 멀게 만드는지 잘 보여 줍니다. 사랑은 눈멀게 합니다. 눈이 멀지 않았다면 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믿는 것을 위해서는 앞뒤 안 가리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차갑거나 뜨거운 것을 좋아하시지 미지근한 것을 좋아하시지 않습니다(묵시 3,16 참조). 사람이 미지근해지는 이유는 열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옆을 보지 못하게 눈을 가린 말처럼 앞만 보고 달려갈 수 있어야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잘못되었다면 바오로처럼 주님께서 바로잡아 주실 것입니다.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말을 듣고 “머물까, 떠날까?”만을 고민했다면, 결코 홍해를 건너지 못했을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려면 ‘결단’이 필요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지금도 바오로 사도와 같은 열정적인 인물을 찾고 계십니다. 교회 안에 없으면 밖에서라도 찾으실 것입니다. “‘적당히’ 믿는다.”란 말은 믿지 않는다는 말과 같습니다. 배우자를 어떻게 적당히 믿을 수 있겠습니까? 바오로는 믿음을 위해서는 적당히 할 줄 몰랐기에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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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바람은 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글,사진♡
회심 이전의 바오로 사도(사울)는 금수저 출신의 잘 나가던 청년이었습니다. 비록 디아스포라 출신 유다인이었지만, 유다교 정통 가문의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예루살렘 유학파인데다가 로마 시민권까지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 제국 전체 인구는 약 5천만명이었는데, 그 중에서 로마 시민권자는 고작 50만명뿐이었습니다. 당시 그들이 누리던 특혜는 대단했습니다. 이렇게 사울은 갖출 것을 다 갖춘 청년이었기에, 당대 유다인들 사이에서 차세대 지도자로 입에 오르내릴 정도였습니다.
머리가 비상한데다 지칠 줄 모르는 학구열까지 겸비했으며, 상당한 필력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만일 그가 말을 갈아타지 않고 율법 교사의 길을 계속 걸었더라면, 아마도 율법 학자로서의 최고봉에 도달하고도 남을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사울은 조상대대로 전해내려온 자신의 신앙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했습니다. 당연히 그의 눈에 그리스도교는 이단 중의 이단이었으며, 일망타진하고 척결해야 할 악의 무리였던 것입니다. 이런 연유로 그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체포와 박해에 가장 최일선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신자들을 죽일 작정으로 이 새로운 길을 박해하여,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포박하고 감옥에 넣었습니다. 나는 동포들에게 가는 서한까지 받아 다마스쿠스로 갔습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고 와 처벌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사도행전 22장 4~5절)
그런데 우리 주님은 참으로 묘하신 분, 알다가도 모를 분이십니다. 그런 사울에게 주님께서 큰 빛으로 다가서십니다. 회심 당시 사울의 나이는 20대 중후반으로 추정됩니다.
추측컨데 사울은 예수님보다 5살 정도 나이가 작았습니다. AD 5년경 타르수스에서 출생, AD 33년경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회심, AD 58년경 예루살렘에서 체포 및 로마로 압송, AD 68년경 로마에서 순교.
주님께서 발산하신 광채가 얼마나 강하고 눈부셨으면, 멀쩡하던 사울은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습니다. 그의 눈은 순식간에 멀어버렸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체포하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었고, 그런 일이라면 어디든 달려가던 혈기왕성하던 사울이었는데, 이제 그 누군가에 의지하지 않으면 단 한걸음도 홀로 걷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눈부신 광채 앞에 잘 나가던 사울(12부족 시대를 마감하고 최초로 이스라엘 왕좌에 오른 사울왕처럼), 율법주의에 빠져 교만하기가 하늘을 찔렀던 사울이, 순식간에 인생의 깊은 바닥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번갯불에 콩구워먹듯 갑작스레 주님을 만난 사울이었기에, 회심 과정도 전광석화처럼 신속했습니다. 그토록 자랑스러워했던 이름, 그러나 빛좋은 개살구같은 이름, 허울뿐인 자신의 옛이름, 사울을 버립니다. 그리고 한없이 자신을 낮추는 의미로, 당대 가장 흔하고 평범하던 이름이었던 바오로로 개명하게 됩니다.
바오로 사도의 회심은 너무나 전격적이고 극적인 것이어서, 주변 사람, 유다교 사람들이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이든, 의구심 가득찬 눈길을 거둘 수가 없었습니다. 한쪽으로부터는 변절자, 배신자라는 낙인이, 다른 한쪽으로부터는 짙은 의심의 눈초리가 그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회심 이후, 바오로 사도에게는 멀고도 험난한 여정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컸던지 후에 그는 이런 고백까지 하게 됩니다. “나의 바람은 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 편이 훨씬 낫습니다.”(필리피 1장 23절)
오늘 하루, 바오로 사도의 그 사무치는 회심, 그 힘겨웠던 전도 여행길, 초대 교회의 기틀을 놓기 위한 상상을 초월하는 희생과 헌신에 깊이 감사하는 날이어야겠습니다. 그분의 그 큰 인내와 노고 덕분으로 인해 오늘 우리 교회가 서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