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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말씀

(자)재의 수요일 3/6

작성자esthel|작성시간19.03.06|조회수70 목록 댓글 0

(자)재의 수요일

‘재의 수요일’은 사순 시기를 시작하는 날이다. 교회가 이날 참회의 상징으로 재를 축복하여 신자들의 머리에 얹는 예식을 거행하는 데에서 ‘재의 수요일’이라는 명칭이 생겨났다. 이 재의 예식에서는 지난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축복한 나뭇가지를 태워 만든 재를 신자들의 이마나 머리에 얹음으로써, ‘사람은 흙에서 왔고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창세 3,19 참조)는 가르침을 깨닫게 해 준다. 오늘 재의 수요일에는 단식과 금육을 함께 지킨다.

오늘 전례

▦ 오늘은 재의 수요일입니다.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는 재의 예식 말씀을 묵상하며 주님께 간절히 청합시다. “저희가 모르고 죄를 지었을지라도 뉘우치며 살고자 하오니, 갑자기 죽음을 맞지 않게 하시고, 회개할 시간을 주소서.”

말씀의 초대

요엘 예언자는, 이제라도 단식하고 울고 슬퍼하면서, 마음을 다하여 주님께 돌아오라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과 화해하라며,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이고 구원의 날이라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자선을 베풀 때, 기도할 때,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하지 말라며, 사람들이 아니라 숨어 계신 아버지께 보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너희는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 요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2,12-18
12 주님의 말씀이다.
이제라도 너희는 단식하고 울고 슬퍼하면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13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주 너희 하느님에게 돌아오너라.
그는 너그럽고 자비로운 이, 분노에 더디고 자애가 큰 이
재앙을 내리다가도 후회하는 이다.
14 그가 다시 후회하여 그 뒤에 복을 남겨 줄지
주 너희 하느님에게 바칠 곡식 제물과 제주를 남겨 줄지 누가 아느냐?
15 너희는 시온에서 뿔 나팔을 불어 단식을 선포하고 거룩한 집회를 소집하여라.
16 백성을 모으고 회중을 거룩하게 하여라.
원로들을 불러 모으고 아이들과 젖먹이들까지 모아라.
신랑은 신방에서 나오고 신부도 그 방에서 나오게 하여라.
17 주님을 섬기는 사제들은 성전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울며 아뢰어라.
“주님, 당신 백성에게 동정을 베풀어 주십시오.
당신의 소유를 우셋거리로, 민족들에게 이야깃거리로 넘기지 마십시오.
민족들이 서로 ‘저들의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 하고 말해서야 어찌 되겠습니까?”
18 주님께서는 당신 땅에 열정을 품으시고 당신 백성을 불쌍히 여기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5,20─6,2
형제 여러분, 20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권고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빕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21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6,1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권고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2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은혜로운 때에 내가 너의 말을 듣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6.16-1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2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3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4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5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6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16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17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18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재의 축복과 재를 머리에 얹는 예식

<강론이 끝난 다음, 주례 사제는 손을 모으고 서서 말한다.>
+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하느님 아버지께서 넘치는 은총을 베푸시어
참회의 뜻으로 우리 머리에 얹는 이 재에
강복해 주시도록 간청합시다.


<잠깐 침묵하며 기도한 다음, 사제는 팔을 벌리고 계속한다.>
+ 하느님, 비천한 사람을 굽어보시고 속죄하는 사람을 용서하시니
저희 기도를 자애로이 들으시고
이 재를 머리에 받으려는 하느님의 종들에게 + 강복하소서.
저희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사순 시기의 재계를 충실히 지키고 마음을 깨끗이 하여
성자의 파스카 축제를 잘 준비하게 하소서.
우리 주 …….
◎ 아멘.

<또는>

+ 하느님, 죄인들의 죽음을 바라지 않으시고 오직 회개를 바라시니
저희의 간절한 기도를 인자로이 들으시고 자비를 베푸시어
저희 머리에 얹으려는 이 재에 + 강복하소서.
저희가 바로 재임을 알고
먼지로 돌아가리라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사순 시기에 정성껏 재계를 지켜 죄를 용서받고 새 생명을 얻어
부활하시는 성자의 모습을 닮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
◎ 아멘.




<사제는 말없이 재에 성수를 뿌린다. 그다음에 사제는 모든 사람의 머리 위에 재를 얹어 주며 말한다. >


+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또는>
+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그동안 아래의 노래를 부른다.>


첫째 따름 노래
◎ 베옷으로 갈아입고 잿더미에 앉아 단식하며
주님께 눈물로 간청하세.
우리 하느님은 한없이 자비로우시니
우리 죄를 용서하시리라.



둘째 따름 노래 요엘 2,17; 에스 4,17⑩ 참조
◎ 성전 문과 제단 사이에서 주님을 섬기는 사제들이
눈물로 간청하리라.
용서하소서, 주님, 당신의 백성을 용서하소서.
주님, 당신을 찬송하는 입을 막지 마소서.



셋째 따름 노래 시편 51(50),3
◎ 주님, 저의 죄악을 없애소서.

<시편 51(50)편의 각 절 끝에 셋째 따름 노래를 반복할 수 있다.>


응송 바룩 3,2; 시편 79(78),9 참조
◎ 저희가 모르고 죄를 지었을지라도 뉘우치며 살고자 하오니,
갑자기 죽음을 맞지 않게 하시고, 회개할 시간을 주소서. *
주님, 당신께 죄를 지었사오니,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 저희 구원의 하느님, 저희를 도우소서.
주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저희를 구하소서.
◎ * 주님, 당신께.
<다른 알맞은 노래도 부를 수 있다. 재의 예식이 끝나면 사제는 손을 씻은 다음, 보편 지향 기도를 바치고 보통 하던 대로 미사를 계속한다.>
<신경 없음>

영성체송

시편 1,2-3 참조
주님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은 제때에 열매를 맺으리라.

오늘의 묵상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 되고자 하는 유다인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하는 세 가지 실천 덕목이 있는데, 바로 기도, 자선, 단식입니다.
제1독서의 요엘 예언자가 이야기하듯이 하느님 앞에서 올바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며, 그분의 자애와 자비하심, 동정을 청하고 재를 뿌리고 단식하며 사순 시기를 시작하는 오늘, 예수님께서는 올바른 기도, 자선, 단식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그분의 뜻에 따라 자선을 베풀며, 스스로 죄인임을 통감하고 그 죄를 속죄하며 단식을 하는데, 이를 행할 때 남들에게 보이려고, 남들에게 보상받으려고 자랑하듯이 해서는 안 됩니다.
의로운 이들은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자선을 베풀고, 기도하며, 표시 나지 않게 단식하는 이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잘 보여야 할 분은 사람들이 아니라, 숨어 계신 아버지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숨은 일도 다 보고 계신 아버지 하느님만 신경 쓰고, 그분 눈에 들고자 애쓰며 살아갈 때, 우리 죄로 말미암아 어지럽혀진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아버지께서 의로우신 것처럼 의로운 사람들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마태 5,48 참조).
오늘은 하느님을 잊고 살아가던 우리가 사람의 눈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눈만을 신경 쓰고 살아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사순 시기의 시작입니다.(염철호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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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십자가가 다가올 때, 십자가 위에 매달려 계신 예수님께 우리의 시선을 고정시킵시다!

유럽이나 남미의 가톨릭 국가들에서는 재의 수요일 하루 전날, 큰 축제를 성대하게 지냅니다. 카니발이라고도 하고 사육제(謝肉祭)라고도 합니다.

재의 수요일부터 40일간 계속되는 사순절 기간 동안에는 평소 즐겨 먹던 육식을 자제해야 하니, 기괴한 복장과 분장, 가면을 쓰고, 산더미처럼 차려 놓은 다음, 원없이 먹고 마시고 노는 조금은 웃기는 축제입니다. ‘고기여! 잘 있거라!’고 외치며 고기와 잠시 작별하는 셈입니다.

우리 한국 신자들에게는 그리 크게 와닿지 않는 축제입니다만, 우리도 또 다시 시작한 사순절을 맞아, 이 은혜롭고 특별한 시기에 걸맞는 의미있는 노력을 시작할 순간입니다.

제 지난 사순시기를 돌아보니, 매년 비슷한 후회가 반복되었습니다. 이번 사순절은 뭔가 좀 달라져야 할텐데, 뭔가 나아져야 할텐데, 하고 결심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성삼일이요, 부활절이었습니다.

사순절에 걸맞는 단식이나 자선, 기도나 사랑의 실천은 손톱만큼도 못해놓고, 부활절 계란 그리기 때, 계란만 원없이 먹으면서 허탈해하던 기억, 부활성야 미사 때, 부활찬송이나 알렐루야를 노래하기가 너무 쑥스럽던 기억들이 떠오릅니다.

이번 사순 시기를 시작하면서, 여러 많은 계획들과 결심들보다는 한 가지 노력에만 좀 더 집중해볼까 합니다.

어쩔수 없는 근본적 한계와 부족함을 지닌 인간 존재로서, 일상적으로 다가오는 매일의 고통과 십자가 앞에서, 더 이상 투덜거린다거나, 주저리주저리 불평불만을 늘어놓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이번 사순 시기, 고통과 십자가가 다가올 때 마다, 다른 누군가를 바라보고 원망할 것이 아니라, 십자가 위에 매달려 계신 예수님과 시선을 맞춰봐야겠습니다. 주님의 고통에 비교하면 내가 겪고 있는 고통은 새 발의 피라고 여기면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내 십자가를 바라봐야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통과 십가자가 다가올 때 마다, 여러가지 이유로 고통받고 있는 이웃들과 깊이 연대한다는 마음으로 견뎌보도록 하겠습니다.

언젠가 제가 고통에 대해 묵상을 하다가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고통이라고 해서 다 같은 형태의 고통이 아니라는 결론입니다. ‘어디서 다가온 고통인가?’ 즉 고통의 원인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분류가 가능했습니다.

첫번째는 우리 인간 측의 잘못이나 과오, 그릇된 삶의 습관으로 인한 고통입니다. 갑자기 제가 알고 지내던 ‘껌 좀 씹던’ 한 청소년이 떠오릅니다. 안그래도 위험한 모터 사이클(오토바이)을 제발 좀 타고 다니지 말라고 해도, 절대 말을 안들었습니다.

정 타고 싶으면, 꼭 헬멧을 착용하고, 빗길이나 야간에는 가급적 타지 말고, 과속이나 급방향 전환을 절대 하지 말라고 그리도 신신당부했건만...

멋부린다고 헬멧도 쓰지 않고, 긴 머리를 휘날리며, 엄청난 소음과 클랙슨을 울리며 달립니다. 핸들도 한 손으로 잡고, 과속에, 급브레이크에, 자동차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면서, 그렇게 몇시간이고 달리더군요.

결과는? 대형 추돌 사고 결과, 팔다리 골절에, 전치 1년의 선고를 받고 입원할 수 밖에요. 늦게서야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부속 병원 경당으로 가서‘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어찌 제게 이런 극심한 고통을?’하고 울부짖으니, 분명 하느님도 웃으셨을 것입니다.

이런 류의 고통은 인간 측의 과실로 인해 다가온 고통입니다. 예방이 100퍼센트 가능했던 고통이니 그 누구를 탓할 수도 없습니다. 그저 가슴 크게 치며 한님의 자비를 바래야겠지요.

그러나 또 다른 류의 고통이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정말이지 억울하게 다가온 고통입니다. 난데 없이 돌 하나가 내 인생의 창문을 깨고 날아 들어와, 나를 울부짖게 합니다. 바로 신비로서의 고통이요, 주님께서 보내신 십자가입니다.

신비의 십자가 앞에서는 방법이 없습니다. 도망가려 하면 점점 더 커집니다. 그저 그 십자가 꼭 끌어안고, 십자가 위에 매달려 계신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유일한 처방입니다.

우선은 그 어떤 위로나 설명도 귀에 들어오지 않겠지만, 어떻게 해서든 한 걸음 뒤로 멀찌기 물러서서 그 십자가를 바라보고, 좀 더 너그러운 시선으로 십자가를 바라보는 ‘긍정화 작업’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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