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계의 인맥, 무엇이 문제인가
그 어떤 예술분야보다도 춤사회의 인맥이란 그 예술성, 사조를 좌우하게 되는 핵의 지점이 될 것이다. 그것은 춤예술이 사람, 즉 몸 자체가 도구가 되는 만큼 그 몸을 훈련받은 직계 선생과 일치되지 않을 수 없는 도제적인 성격이 그 어떤 예술 형태보다도 강하기 때문인 것이다. 따라서 그 무용가를 평가할 때 누구의 제자인가, 어떤 춤테크닉을 연마했는가를 먼저 알고자 하게 되는데 한국의 춤사회는 서양의 예술무용계와 비교해서 더 많은 혼선에 있음을 한마디로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요컨대 예술무용과 교육무용, 그리고 전통무용이 아직 덜 분화된 상태라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이런 난맥상이 80년대 들어와 그 중반을 넘어서면서 차츰 문제의식으로 제기되고 정리되어가고 있는 느낌이긴 하지만, 무용계 안의 인식도는 높아지고 있는 듯해도 관객 및 주변사회에까지 전달되려면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은 분명하다. 아니 시간이 지나더라도 예술무용과 전통무용을 구분 못하고 한 범주 안의 춤으로 보고 있는 인식은 그 정도가 너무 두텁기 때문에 도무지 깨이지가 않을 정도이다.
예술무용이란 춤으로 오늘의 의식을 대변하려는 극장적 행위이다. 극장무용이라고 했을 때 이 개념은 실내공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을 모아놓고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행위를 말한다. 전통무용은 보존되어 온 그 시대의 것이다. 시대의식보다는 박물관적인 가치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예술적 행위(파괴하고 새 것을 찾는 행위)와는 별도로 구별해서 취급해야만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탈춤이나 민속춤의 예능인들도 흔히 무용가라고 부른다. 이 시대의 발언을 춤으로서 해보고자 하는 예술가도 무용가라고 부른다. 따라서 어디서부터가 <춤사회>의 시작이고 끝인지를 분명히 잘라내기가 어려운 실정에 있다.
서양은 민속춤 사회와 예술행위의 춤을 엄격히 구분해 놓고 있고 관객이나 일반사회에서도 충분히 인식되어 있기 때문에 혼동하는 예가 없다. 일본만 해도 전통을 엄격히 지키는 장치가 되어 있어서 현대무용(서구무용을 뜻하는 것이 아닌), 창작무용과 구별이 되어 있다. 우리춤 특히 한국춤에서 이 지점이 우리가 오늘에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인 것이다.
현재 무용계는 한국춤, 현대춤, 발레로 나뉜다. 한국무용이란 용어는 해방 후 어떤 신문기자가 쓰기 시작하면서 비롯되었다고 전하는데 한국무용 속에 전통무용, 민속무용 인맥과 세칭 한국창작무용 인맥에 함께 들어 있다. 전통무용은 통상 궁중무용으로 보아 국립국악원의 정재인구, 민속무용의 한영숙, 이매방, 그리고 그 제자 및 이수자들, 탈춤, 농악 등 민속물들 중에서 춤과 연관된 사람들을 통틀어 볼 수 있다. 지방의 숨어 있는 옛 권방출신의 사람들까지를 포함시킬 수 있다. 또한 부류는 한국춤을 기본으로 한 창작무용의 인구들이다. 여기에는 국립무용단, 서울시립무용단 등 대구, 광주, 시립 무용단을 제외한 국.공립 무용단들이 들어있다. 송범을 필두로 문일지, 김매자, 김현숙, 배정혜, 채상묵, 국수호 등과 한국무용협회의 주요인맥, 기라성 같은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창작 무용가라고 세칭 불리더라도 여기엔 분명한 선이 있는데 최승희, 김백봉의 맥을 받은 신무용류가 있고 이것을 부숴 나가 새 춤을 개발하고 있는 창작 무용군이 있다. 신무용류는 전통춤을 나름대로 요리하여 창작예술의 단계로 끌어올리지 못하고 보이기 위한 춤으로 무대양식화된 부채춤 등이 이에 속하는데 공교롭게도 이들이 현재 무용연구소(무용학원) 군들을 이루고 있고, 예술무용을 추구하는 쪽들은 대학교수들이다. 대학교수 집단도 교육무용과 예술무용에서 혼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무용계가 이들에 의해 개화 발전되어 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국무용협회는 예총 산하 10개 협회의 성격과도 좀 다른 듯하다. 우선 협회를 구성하고 있는 회원의 성격, 표면에 나서서 활동하는 이사장단이나 중심인맥, 이들이 해놓은 결과 등으로 봐서 무용계 전체를 수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 무용협회를 구성하는 핵심은 예술가 집단이라기 보다 여태까지 (금년들어 약간 폭이 넓어지고 있는 듯하지만) 무용학권 조합체처럼 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들의 이익과 친목을 대변할 뿐 무용계 전체를 대변하는 예술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무용사적 큰 흐름을 끌고 나가는 무용가나 단체는 소외당하거나 아예 참가하지 않고 주객이 전도되어 예술성으로 봐서는 아웃사이더들이 핵심분야에 있고 실세들은 정작 독자적으로 한국무용연구회 등을 구성하여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까지 무용계 현실에서 예총 산하 한국무용협회라는 기구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 문제점이 심각하게 고려되기 시작한 것은 대한민국무용제라는 국가지원 행사를 이 단체가 주관하기 시작하면서 국가지원의 창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각종 정부행사의 민간이관 정책에 따라 무용협회가 넘겨 받았고 이것이 <예술가>보다는 공연 실적없는 사람들에게로 주어졌기 때문에 문제점이 심각한 것이었다.
문일지, 김매자, 김현자, 국수호, 배정혜, 정재만 등은 한국 창작무용제를 바람직하게 이끌어가고 있는 중추세력들이다. 직업무용단이나 대학의 기반을 통해 이들은 한국 전통춤에서 모티브를 가져오되 예술적으로 성과있는 작업들을 해온 동시에 무용을 타예술 분야와 견주어 대등한 위치로 끌어올리고 있다. 즉 춤의 사회적 위치형성에 적극 기여하고 있는 이들이 문일지의 서울시립무용단 및 한국무용아카데미, 김매자의 한국무용연구회 및 창무회, 김현자의 김현자 춤아카데미, 배정혜의 리을무용단 외에 각대학 졸업생들이 학교단위로 무용단을 구성해서 작품발표회를 갖고 있다. 이들의 작품성을 한국무용과 현대무용의 경계를 넘어서서 <현대한국무용>이나 <한국현대무용>이란 용어를 만들어내고 있는, 나아가서는 <현대무용>으로까지 불리어지고 있다.
현대무용은 통상 서구의 모던댄스를 지칭하고 있는데 이 개념은 점차 발전되어 한국의 창작무용을 일컫게도 되었다 어쨌건 현대 한국에 서구 모던댄스를 들여온 사람은 박외선, 육완순으로 되어 있다. 물론 이시이 바꾸가 1920년대 첫 무대를 가진 것이 현대춤이었고 이에 영향받은 최승희, 조택원이 저항정신이 강한 현대무용을 했다는 기록들이 많이 있다. 문철민 등이 마리 뷔그만의 기법을 들여온 기록도 있는데 최승희가 쇼적인 신무용으로 모두를 점령해버림으로써 우리는 의식있고 작품성 있는 현대춤이 꼬리를 감추게 된 것으로 무용사를 볼 수 있다.
신무용적 한국무용, 민속무용의 바람이 강할 때 서구 현대무용을 우리 사회에 성공적으로 도입하는데 중추역할을 한 사람은 누가 뭐래도 육완순이다. 이화여대를 (어떤 의미에서 현 무용예술의 본산처럼 되어있는) 지키면서 60년대 당시의 서구화, 근대화되어 가는 사회의 바람을 타고 서구 현대무용, 특히 마사 그레이엄 무용을 이 땅에 뿌리 내리게 되었다. 이무렵 국외에서 활동기반을 잡아가는 홍신자의 바람과 육완순을 필두로 만들어지는 김복희, 김화숙, 이정희, 하정애, 박명숙, 이청자 등의 인맥은 컨템퍼러리 무용단을 만들게 된다. 한국 현대무용 협회가 생기고 이를 통해 활동하는 인맥들이 유신말기 대학 확장 정책에 따라 만들어지는 무용과의 교수들로 자리를 잡게 되고 이들의 적극적인 성격, 개화된 예술성, 전위적 행위 등이 한국무용계를 한층 올려놓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들의 활동이 창작 한국무용까지 자극하게 됨은 물론이다.
현대무용협회의 10여년 이상의 빛나는 활동 이후, 그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았다. 결국 현대 무용 협회에서 제대로 능력별로 대우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인맥들이 탈퇴하여 한국현대 춤협회를 만들게 까지 되었다. 김복희, 김화숙, 이정희, 조은미 들이 그들이다. 이들의 춤협회 결성 이유가 사회에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져 매스컴 및 문예진흥원 측의 독자적인 지원금을 받는데 성공하였고, 현대무용계는 양분되어 독자적으로 상호 경쟁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육완순은 또다시 현대무용진흥회를 만들어 현대무용계의 일원화에 힘을 모으려고 애쓰고 있다. 무용협회의 중심인물들이 대학의 교수들이기 때문에 그 대학의 학생 및 졸업생은 당연 그 교수가 속한 협회 멤버로 되어 있다.
한국현대무용단, 컨텝포러리 무용단(이상 이화여대) 동랑댄스 앙상블,요로 무용단(경희대), 하야로비 무용단(부산여대)등과 양정수(조선대),김신일(공주사대) 등이 무용협회에 속해있고, 김복희, 김화숙 무용단(한양대,원광대), 이정희 무용단 중앙대, 탐 무용단, 조은미 무용단 등이 춤협회에 속해 있다.
발레는 튼튼한 재원을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직업 무용단에 특히 의존하기 않을 수 없다. 국립발레단이 오랫동안 한국무용계를 버텨왔지만 발레예술을 위해 얼마큼 기여를 했는지에 대한 평가는 다분히 부정적이다. 80년대에 유니버설 발레단이 생기면서 우리 발레가 한걸음 도약을 했음은 명백한 일인데 유니버설발레단이 생기기 전 이미 선화예고, 리틀엔젤스를 중심으로 제자를 키워왔던 에드리엔 델라스를 중심으로 한 조직이 한국 발레계에는 크게 기여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국립발레단, 유니버설 발레단 외에 재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발레단은 홍정희 발레단을 비롯해 발레블랑, 발레누보, 세종대학을 중심으로 한 애지회 등이 있다. 이들이 한국발레협회 (회장:임성남)를 만들어서 상호이익을 나누고 있고 홍정희는 한국발레 연구회를 만들어서 이화여대 중심의 제자들을 키우고 있다. 세칭 군소 발레단으로 불리우는 재야의 그룹들은 아카데미성이 강하여 창작발레의 타개점,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발레계의 주요인물로는 임성남, 홍정희 외에 최성이, 김화례(경희대), 서정자(중앙대), 박인자(숙명여대), 서선영(세종대), 조승미(한양대) 등이 자기 무용단을 만들어서 공연활동을 하는 동시에 제자들을 키워내고 있다.
이렇게 현대무용, 한국무용, 발레의 세 군으로 나누어 무용계를 얘기하는 데는 그 모순점이 점차로 드러나고 있다. 춤의 예술적 활동이 덜 활성화되었던 시기에는 교육무용의 갈래에 맞춰 (현무용계가 대학위주로 구성되어 있으니까 자연히 학교 커리큘럼대로 장르를 나눌 수밖에 없었는데) 구분을 했지만 예술적 활동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지금 춤공연도 작품으로 말해져야 하고 무용가도 작가라는 말로 불리워져야 하지 않느냐는 움직임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20대 대학졸업생들의 자기발표회, 일종의 무용가 입문을 위한 무대들이 줄을 잇고 있다. 금년 봄 시즌만 하더라도 20대에서 30대 초반들이 무용계 안의 핵을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이 현상을 보고 세대교체라는 말을 붙이기에는 성급하다고 본다. 세대교체란 나이에 따른 분류가 아니라, 단지 젊은 인맥들이 스승의 줄을 타고 나온다는 자체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이념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무용계의 신진무대를 보면서 문제점으로 보이는 것은 수직적인 인맥구조에 의해 새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속속 등장하는 신인들이 스승의 지시에 의해 무대를 마련하고 있고 그 작품성이 아류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그들을 작품 성격상 신세대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현대무용협회가 주최한 신인무용발표회, 김현자 춤아카데미의 서울 창작 무용제, 창무춤터의 기획공연, 바탕골 현대무용(현대무용협회 주최) 등이 봄무대를 장식했는데 김현자 춤아카데미의 행사만 한국춤, 현대춤의 장벽을 헐고 수평적 공채를 통해 신진 안무가를 선발했고 나머지는 협회단위의 수직적인 행사였다.
무용가들이 제자를 키우고 애정있게 내세워주는 행위의 중요성은 거듭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간 대학교수로, 혹은 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이 제자를 자기 세력화하여 인맥 구성에만 이용한 사례들이 없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능력있는 제자들이 스승의 눈에 어긋나 무대를 저버리지 않을 수 없는 현상까지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춤공연이 양적으로 증가하면서 그 성격도 다양해지고 있다. 앞으로는 이런 수직적 구조로만 무용계가 움직일 수 없게끔 다양해지고 지원 청구도 많아지고 있음도 사실이다. 이해관계에 얽혀 지나친 타협도 곤란하지만 예술활동은 경쟁적으로 하되 좁은 무용을 이 사회를 넓힌다는 공동의 목표로 무용계를 이끌어가고 있는 각 유파의 지도급 인사들이 상부상조하는 미덕도 갖출 때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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