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8년간 숨겨진 한글의 비밀. 세종이 아니었다 - YouTube
이 영상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이후 448년간 겪었던 수난의 역사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글이 어떻게 살아남아 현재에 이르렀는지를 다룹니다.
한글의 창제와 수난의 역사:
- 창제 배경: 세종대왕은 백성들이 억울한 일을 당해도 글을 몰라 호소하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겨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글자를 만들었습니다(3:01-5:34). 창제 당시 세종은 심각한 시력 저하와 가족들의 죽음 등 개인적인 고통 속에서도 3년간 비밀리에 작업을 진행했습니다(0:00-0:49, 4:21-5:05).
- 조선의 탄압: 한글은 창제 직후부터 최만리를 비롯한 사대부들의 반대에 부딪혔고, 세종 사후 전담 부서가 폐지되었습니다(0:58-1:33, 5:37-11:03). 이후 연산군 시기에는 금지령까지 내려지는 등 조선 왕조 448년 동안 공식적인 국문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1:33-2:14, 11:47-12:35).
연산군이 한글을 금지한 진짜 이유는?
영상에 따르면, 연산군이 한글을 금지한 결정적인 이유는 자신을 비판하는 내용의 벽보가 한글로 붙었기 때문입니다. (11:47 - 11:53) 당시 벽보에는 '지금 우리 임금은 신하를 파리 머리 뜯듯이 죽인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고, 이에 분노한 연산군은 즉시 한글 가르치기 및 배우기를 금지하고, 한글 책을 불태우며 이를 사용하는 자를 참형에 처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11:53 - 12:18)
한글을 지켜낸 사람들:
- 민중의 생명력: 공식 문서에서는 외면받았지만, 왕실 여성과 사대부 집안의 여성들을 중심으로 편지(언간) 등에 쓰이며 일상 속에서 한글은 계속 살아남았습니다(13:03-13:35).
- 조선어학회: 일제강점기에는 우리말 자체를 말살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조선어학회 학자들은 전국 각지의 사투리를 수집하고 사전을 편찬하며 우리말을 지켜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학자가 옥사하는 희생을 치렀습니다(14:05-16:55).
- 간송 전형필: 훈민정음 해례본의 행방이 묘연하던 시기, 간송 전형필은 막대한 사재를 털어 이를 구입하고 6.25 전쟁 중에도 품에 품고 피난을 다니며 원본을 지켜냈습니다(17:17-19:59).
결론: 한글은 세종대왕이 만들었지만, 448년의 탄압과 일제의 말살 정책을 뚫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만든 주역은 바로 우리 국민들이었습니다. 현재 한글은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문자로서 디지털 시대에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문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20:06-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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