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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작성자처음처럼|작성시간26.06.19|조회수112 목록 댓글 0

사람들은 결국 그 끝에서는 누구를 찾습니다. 젊어서 찾는 사람도 있지만 그 수가 적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조선시대가 아니다 보니 극단적인 삶을 살지만 않으면 누구를 찾지 않습니다. 가족도 형제도 친구도 이웃도 神도 찾지 않습니다. 그리 어렵게 살지 않다 보니 남을 찾아서 도움을 청할 필요를 느끼지는 못합니다. 이 땅에 기독교(천주교)가 들어온 일제강점기 때에는 조선의 백성 전부가 자신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어느 神이든 사실 가리지 않고 그 믿음을 따라가기는 했습니다.

먹을 것을 주고 그리고 멸시천대를 받기만 하던 자신들을 선교사들이 한 인간으로 대하여 주는데 그들이 전하는 神을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태어나서 부모에게도 받지 못하였던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종교를 통해서 자신의 깊은 마음속에서부터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복음서와 바울서신이 전하는 예수님이 다른 것은 아니지만 바울은 구원(이상)이고 복음서는 에수님의 실제 삶을 다룹니다. 안타까운 것은 지금은 그 삶을 불편 없이 맞다 보니 사람들이 생활에서 종교를 벗어납니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바울이 전하는 예수님을 찾는 것을 봅니다.

정말로 죽을 때가 아니라 지금이 참 중요한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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