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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눈 속에 붉은 절조(節操), 동백(冬栢) / 한국의 화목(花木)

작성자Bliss Kim|작성시간18.02.14|조회수139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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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화목(花木)

 

 

 

 

 

눈 속에 붉은 절조(節操), 동백(冬栢)

 

 

 

 

강희안 화목구품 중에는 4품에, 『화암수록(花菴繡錄)』에서는 운치를 취하는 3등급에 속하는, 선지와 같은 기상이 있어 ‘선우(仙友, 신선의 벗)’라고도 불리던 꽃. 춘삼월(春三月). 푸르디 푸른 잎 사이로 드디어 도도한 그 붉은 얼굴을 드러내는 동백꽃이 흐드러질 시기이다.

 

동백은 겨울철인 11월부터 다음 해 5월까지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 그리해서 생겨난 이름이 바로 겨울에 꽃을 피운다는 ‘동백(冬柏)’이다. 동백나무는 고려시대 기록에서 처음으로 드러나며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동백은 다양한 의미로 상징화 되었고 우리 선조의 시와 그림, 생활 깊숙이 함께 하며 지금까지도 우리 곁에서 한국의 역사를 지켜가고 있다.

 

 

■ 기록에서 보이는 동백

 

桃李雖夭夭 복사꽃 오얏꽃 비록 아름다워도

浮花難可恃 부박한 꽃 믿을 수 없도다.

松柏無嬌顔 송백은 아리따운 맵시 없지만

所貴耐寒耳 추위를 견디기에 귀히 여기도다.

此木有好花 여기에 좋은 꽃 달린 나무가 있어

亦能開雪裏 눈 속에서도 능히 꽃을 피우도다.

細思勝於栢 곰곰 생각하니 잣나무보다 나으니

冬栢名非是 동백이란 이름이 옳지 않도다.

 

| 이규보(李奎報,1168-1241),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文集)』

 

 

위의 시는 고려의 문신 이규보는 그의 시문집인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文集)』에 실은 내용이다. 한시에서 동백을 읊은 것은 이것이 처음으로 우리나라 문헌상에서 동백이란 식물의 이름이 최초로 등장한 것이기도 하다. 이규보는 이 시에서 동백은 추위를 견디며 아름다운 꽃을 피워 내는 식물로 그것의 이름이 잣나무에 비하는 ‘겨울 잣나무’ 라는 것은 마땅치 않은 것이라며 칭송했다.

 

 

 

 

 

 

고려의 문신 이규보는 그의 시문집에서 동백과 매화의 청아한 절개를 읊으며 사랑스럽다고 노래하고 있다. 여기서 ‘춘백(春栢)’과 ‘홍백(紅栢)’은 동백나무를 일컫는 말이다.

 

 

“忠肅王朝蔡洪哲以罪流遠島思德陵作此歌王聞之卽日召還

或曰 古有此歌洪哲就加正焉以”

“충숙왕 때에 채홍철(蔡洪哲)이 죄를 범하고 먼 섬으로 귀양 갔는데 그가 덕릉(德陵-충선왕을 가리킴)을 사모하고 이 노래를 지었더니 왕이 듣고 곧 그날로 소환하였다.

그런데 혹자의 말은 예로부터 이런 가사가 있었는데 채홍철이 가사를 수정 첨가하여 자기 뜻을 붙인 것이라고도 한다.” 

|『고려사』 제71권

 

 

『고려사』에서 말하는 이 노래의 제목은 ‘동백목곡(冬栢木曲)’으로 아쉽게도 가사는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그 제목에 나오는 이름을 통해 동백(冬柏)의 존재를 확인할 뿐이다.

 

 

“倻山 明上人 送木 瓢來人 云得之萬德社冬柏樹”

“야산의 명상인이 나무 표주박을 보내왔는데,

가지고 온 사람이 만덕사의 동백나무에서 얻은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동백나무로 표주박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동백나무는 목재가 단단하여 가구재 등으로 많이 이용되었는데 이 시에서는 동백나무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보다는 나무가 가진 특성이 드러나는 요소를 발견해볼 수 있다.

 

 

동백화 피온 꽃은 눈 속에 붉어시니

설만장안(雪滿長安)에 학정홍(鶴頂紅) 의연(依然)하다.

어끄제 그런 바람 간밤에 이런 눈에 높은절 고은빛을 고침이 없어시니

춘풍도리화(春風桃李花)는 도로혀 부끄럽다.

 

|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위의 시는 고산 윤선도가 유배지 추자도에서 읊은 노래로 눈 속에 피어 있는 동백의 붉은 꽃잎의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다.

 

근세에도 여전히 동백꽃은 시의 소재로 사랑받고 있다.

 

 

 

 

이렇듯 옛 기록에서부터 현재까지 그 아름다움을 찬미 받아온 동백은 그 아름다움에 걸맞은 의미 또한 다양했다.

 

 

 

허백련(許百鍊) 삼우군자(三友君子)

 

 

 

■ 청렴·절조

동백꽃은 예로부터 매화와 함께 이른 봄을 알리며 청렴하고 절개를 지키는 인간의 이상적 모습으로 인식되었다. 그리하여 선비들은 동백을 매화와 함께 엄한지우(嚴寒之友)로 부르며 칭송해 마지않았다.

 

이것은 동백나무가 이와 비슷한 당대 절개의 극치를 말하던 세한삼우(歲寒三友)-소나무, 대나무, 매화나무-와 견줄만한, 그에 뒤지지 않는 청렴과 지조를 의미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와는 달리 남쪽 지방에서 동백꽃은 때로 환영을 받지 못하기도 했다. 따뜻한 곳을 좋아하는 생태적 특성상, 동백의 주 서식지는 전남과 거제, 남쪽 해안을 중심으로 분포한다.

조선시대 많은 선비가 억울한 누명을 쓰거나, 원치 않게 관직에서 물러나 도성에서 멀리 떨어진 남쪽 지방으로 귀양을 가야만 했다. 이곳에서 자신들의 쓸쓸하고 타들어가는 속과는 다르게 빨간 꽃잎을 활짝 펴 보이며 봄을 알리는 동백꽃은 선비들에게는 야속하기만 한 반갑지 않은 꽃이었다.

게다가 꽃이 질 때에는 꽃이 통째로 뚝 떨어지는 까닭에 많은 선비가 자신의 모습을 이에 빗대며 마음을 졸이고는 했다 한다. 이는 동백이 가진 자체의 상징성보다는 당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귀양을 가야만 했던 선비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었다고 봐야겠다.

 

■ 번영과 장수

동백나무는 엄동설한을 견디고 사계절 내내 푸른 잎을 지킨다 하여 장수를 표상했다. 남쪽 지방에서는 동백나무가 많이 분포하기도 하거니와 이러한 길상의 의미가 더해져 초례상에서 송죽을 대신하여 꽂히기도 했다. 이는 동백나무 잎이 가진 푸르름처럼 변치 않고 오래오래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연유한 것이다. 시집, 장가가는 행렬에서 어린아이들이 동백 나뭇가지를 흔드는 것 또한 이와 비슷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다.

 

■ 다자다남(多子多男)

동백나무는 많은 열매를 맺는 까닭에 다자다남을 상징하며 또한, 여성의 임신을 돕는다고 믿기도 하였다. 이와 관련된 미신으로 동백나무 가지로 여자의 볼기를 치거나 동백나무 막대기로 여자의 엉덩이를 치면 남자아이를 잉태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는 동백이 가진 특성의 상징화가 널리 민간에게까지 미쳤음을 알 수 있게 한다.

 

 

■ 조매화(鳥媒花)

 

 

冬栢榴生南方海邊。葉冬靑。十月以後開花。色深紅。耐久不凋。蓋古所謂山茶花也。

每花開時。有翠鳥來食木花蘂。夜或棲止樹間。

崔元祐題茂珍客舍詩。脩竹家家翡翠啼是矣。

 

 

위 내용은 조매화인 동백나무의 특성을 잘 서술하고 있다.

동백나무는 특이하게도 수분이 벌과 나비가 아닌 새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꽃을 조매화라고 하는데 꽃이 크고 화려한 열대지방에서는 이러한 조매화를 간혹 보게 되나, 우리나라는 거의 유일하다.

동백나무의 꿀을 먹고 사는 이 새의 이름 또한 ‘동박새’라 부른다. 동백나무에는 꿀이 많이 나므로 벌과 나비가 찾아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곤충이 활동하기에 너무 이른 계절에 꽃이 피므로 녹색, 황금색, 흰색 깃털이 아름다운 작은 동박새가 주로 그 임무를 맡는 것이다.

 

 

■ 천연기념물

 

- 고창(高敞) 선운사(禪雲寺) 동백나무 숲

 

 

 

고창 삼인리의 동백나무숲은 백제 위덕왕 24년(577) 선운사가 세워진 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나무의 평균 높이는 약 6m이고, 둘레는 30㎝이다. 절 뒤쪽 비스듬한 산 아래에 30m 넓이로 가느다랗게 주변을 감싸고 있다. 선운사 동백은 가장 유명한 절경으로 꽃피는 시기가 4월 중순으로 다소 늦은 편이다.

대신 춘백이라 불리는 동백꽃과 벚꽃, 진달래꽃이 이 시기 함께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사찰림으로서 문화적 보존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 제184호로 지정되었다.

 

 

- 강진(康津) 백련사(白蓮寺) 동백나무 숲

 

 

 

천연기념물 제151호로 지정된 백련사의 동백숲은 강진에 있는 백련사 부근에 있는데 동백나무 1,500여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으며, 이밖에 굴참나무, 비자나무, 후박나무, 푸조나무 등도 군데군데 자라고 있다. 동백나무의 높이는 평균 7m쯤 되고, 동백꽃이 필 무렵이면 매우 아름다워 이 지역의 명소로 알려졌다.

 

일설에 의하면 이 동백나무들은 모두 다산 정약용이 심었다는 말도 있다. 이는 정약용이 18년간의 유배생활 중 10년을 지냈다는 다산초당이 40분 근거리에 있는 것과 관련지어 볼 수 있는 것으로, 백련사 동백숲은 정약용 선생과 관련된 문화적 장소로서의 가치가 높은 동백숲 절경 중 한 곳이라 하겠다.

 

 

- 옹진 대청도 동백나무 자생북한지

 

 

 

대청도의 동백나무는 명칭이 말하듯이 ‘자생북한지’라는데 그 뜻이 부여되고 있다. 대청도의 동백나무 자생지는 한때 전국적으로 동백나무가 불법 채취될 때 파괴되어 그 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약 60년 전의 기록에 의하면 지름이 20㎝에 이르는 큰 나무가 147그루 있었고 높이 3m에 지름 27㎝의 큰 나무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큰 나무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대청도의 동백나무 자생지는 동백나무가 자연적으로 자랄 수 있는 북쪽 한계지역으로 학술 가치를 인정받아 천연기념물로 제66호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 거제(巨濟) 학동리(鶴洞里) 동백나무 숲

 

 

 

거제도는 동백꽃이 자랑인 곳이다. 동백섬으로 불리는 지심도와 안섬(내도) 등이 있고, 학동 해안을 따라 효자산 아래까지 우거지는 학동리 동백숲은 우리나라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야생동백 군락지 중 하나로, 3만여 그루의 동백이 무리지어 있어 천연기념물 제233호로 지정돼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곳은 2026년까지 생태계보호를 위해 특별보호구역으로 출입이 제한되어 직접 동백숲을 거닐 수 없다.

 

 

■ 동백의 다양한 쓰임

 

동백나무의 열매는 기름이 많아 옛 여인들의 머리 손질에 필수적인 동백기름을 만들 수 있었다. 동백기름은 개화 이전까지만 해도 부잣집 마님이 아니고서는 함부로 쓸 수 없는 고급 머릿기름이었다. 이러한 머릿기름 외에도 동백의 기름은 화장품으로, 등잔불을 밝히는 기름으로 유용하게 쓰였는데, 이에 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기록을 살펴보면, 단종 2년(1453)에는 “전라도 방물인 동백기름은 지금부터 진상하지 말도록 하라.”고 하였고, 중종 4년(1509)에는 “창고에 납입하는 지방의 짙은 황색의 유동 기름과 동백기름은 모두 긴절히 쓰는 것이 아니니, 모두 줄이도록 하라”고 하였다.

 

또한, 동백나무의 목재는 굳고 세밀하여 결이 고른 덕에 기구재, 조각재, 세공재 등으로 사용했다. 껍데기는 검은색이고 안은 백옥같이 흰 결을 갖고 있는데, 이는 건조했을 때 균열이 일어나지 않아 조각용으로 그만인 재료이다. 더불어, 동백나무의 목재는 최고급 숯으로, 이것을 태운 재는 동백회라 하여 염색할 때 매염재로, 그 쓰임이 실로 다양했다고 볼 수 있다.

 

 

 

 

 

몇 년 전, 보길도를 찾았던 기억이 난다. 이곳에 있는 ‘고산 윤선도’의 흔적과 함께 세연정 연못 세연지 주변 푸른 물 위로 떨어져 있던 붉은 동백꽃들을 보며 설레는 봄의 가슴이 더욱 부풀어 올랐더랬다.

꽃이 다 아름답다고는 하지만 윤기가 흐르는 푸른 잎 사이로 얼굴을 내민 빨간 동백의 그 요염한 자태와 추운 겨울을 밀어내는 듯한 그 기상이 오묘하게 조화되어 더욱 예뻐 보인다. 멀리 보길도까지 가진 못하더라도 이번 주말 봄 길을 걸으며, 혹 주변에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붉디붉은 얼굴을 드러낸 동백은 없는지 천천히 한번 둘러봐도 좋겠다.

 

글 오소미 기자

 

 

 

 

 

 

 

 

 

고봉집(高峯集) > 고봉집 제1권 > [시(詩)]

 

물을 길어 담고 매화 가지를 그 속에 꽂으니 꽃술이 모두 벌어지고, 춘백 꽃을 같이 꽂으니 청아하고 기절해서 사랑스러웠다. 용문이 오언시로 기록했기에 화답하여 원기에게 보내다.

〔汲水貯甁 揷梅枝其中 疎蕊皆拆 取春栢英同揷 淸絶可愛 龍門記以五字 聊奉和呈圓機〕

 

물 길어 병에 가득 담으니 / 汲水滿幽甁

찬 매화 그림자 청아하여라 / 寒梅疎影淸

누가 붉은 춘백 꽃도 꽂았는가 / 阿誰着紅栢

취한 눈이 별안간 밝아지네 / 醉眼頓能明

 

한국고전번역원 ┃ 성백효 (역)

 

 

 

점필재집(佔畢齋集) > 점필재집 시집 제10권 > [시(詩)]

 

야산의 명상인이 나무 표주박을 보내왔는데, 가지고 온 사람이 만덕사의 동백나무에서 얻은 것이라고 하였다[倻山明上人 送木瓢來人 云得之萬德社冬柏樹]

 

동백나무의 천 년 묵은 혹을 깎아서 얻었는데 / 山茶斲得千年癭

알고 보니 스님이 만덕에서 가져왔구려 / 知是師從萬德回

나월당 앞엔 바위 틈의 맑은 물이 넘치는데 / 蘿月堂前巖溜漲

문득 속세에 와서는 술그릇과 짝하리로다 / 却來塵土伴樽罍

 

*산다(山茶)를 속칭 동백(冬柏)이라고 한다.

한국고전번역원 ┃ 임정기 (역)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 > 다산시문집 제4권 > 시(詩) >

탐진 풍속 노래[耽津村謠]

 

...

동백나무 잎들은 얼어도 무성하고 / 山茶接葉泠童童

눈 속에 꽃이 피면 붉기가 학 이마 같아 / 雪裏花開鶴頂紅

...

 

학정홍(鶴頂紅)  :

산다(山茶)의 일종. 산다의 일종으로 학정홍(鶴頂紅)이 있는데, 그 잎이 목서(木犀)의 잎과 같아 질이 단단하고 능각(稜角)이 있으며 차잎과 비슷하여 음료(飮料)로도 쓸 수 있기 때문에 차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함.《群芳譜》

 

 

 

 

동문선(東文選) > 동문선 제21권 > 칠언절구(七言絶句)

제무진객사(題茂珍客舍)

 

최원우(崔元祐)

 

대수풀 집집마다 비취가 우는데 / 脩竹家家翡翠啼

비는 한식을 재촉해 시내에 물이 나네 / 雨催寒食水生溪

푸른 이끼와 잔 풀이 돋은 관교의 길에 / 蒼苔小草官橋路

쇠잔한 꽃이 말발굽에 들어가는 것을 볼까 두려워한다 / 怕見殘紅入馬蹄

 

/ 김달진 (역)

 

 

수죽가가비취체(脩竹家家翡翠啼) 최원우(崔元祐)의 시에,

“긴 대 집집마다 물총새 울고, 비가 한식을 재촉하니 물이 시내에 흐르는구나.

푸른 이끼 잔풀 관교(官橋) 길에, 떨어진 꽃이 말발굽에 밟힐까 걱정이로다.” 하였다.

 

 

 

지봉유설(芝峯類說) > 芝峯類說卷二十 > 卉木部

 

...

冬栢榴生南方海邊。葉冬靑。十月以後開花。色深紅。耐久不凋。蓋古所謂山茶花也。每花開時。有翠鳥來食木花蘂。夜或棲止樹間。崔元祐題茂珍客舍詩。脩竹家家翡翠啼是矣。

按劉士亨詠山茶詩曰。小院猶寒未暖時。海紅花發景遲遲。楊愼云海紅而山茶也。又云大曰山茶。小曰海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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