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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화목(花木)
막음의 덕(淸德)을 지닌 군자(君子), 대나무(竹)를 쓰다.
“但守靑春色 低頭任風雪
나는 청춘의 푸르름 고이 지킬 따름 머리 숙여 눈보라에 몸을 맡긴다오.”
- 이식(李植) 송죽문답(松竹問答) 中 -
강한 바람과 눈이 쌓이는 어느덧 12월도 막바지다. 추위도 매섭게 절정에 다다르는 듯하다. 이러한 추위와 강한 바람 속에서도 푸른빛을 잃지 않고 그 곧음을 지킨다고 말하는 대나무. 이식의 송죽문답은 지난 시간에 이야기한 바 있는 소나무와 대나무의 문답을 읊은 시로, 대나무의 곧고 푸르른 줄기의 강직성을 한마디로 잘 정의해주고 있다.
대나무는 일상적으로 우리말로는 ‘대’, 대나무‘로 불리우고 한자어로는 ’竹(죽)‘이라고 한다.
허진(許愼)의 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에서는 “竹冬生草也 故字從倒草”이라 하여 대나무를 ‘초(艸)’ 자를 뒤집은 모양이라고 풀이하기도 하였다.
또한, 대나무는 ‘죽(竹)’이란 호칭 외에도 여러 다른 이름이 있다. 대체로 대나무의 속성과 관련하여 붙인 별칭(別稱)으로, 차군(此君), 투모초(妬母草), 포절군(抱節君), 존자(尊者), 고인(故人) 등으로 불린다.
또한, 대나무의 덕성(德性)을 애호(愛好)하여 다른 사물과 아울러서 사군자(四君子), 세한삼우(歲寒三友), 삼청우(三淸友), 청우한우(淸友), 한우(寒友), 오우(五友) 등으로 명명하기도 한다.
이러한 이름들은 대나무가 가진 상징성과 관련이 깊은 이름들이다. 대나무가 우리 선조의 사랑을 받은 나무였던 만큼, 그것이 가진 의미와 상징성도 분명하고 다양했다.
山中竹(산중죽, 산 속의 대나무)
- 김시습(金時習) -
綠竹出巖嵬 바위 모퉁이에 솟은 푸른 대나무
托根巖下土 바위 아래 땅에다 뿌리를 붙였구나
老去節兪剛 늙어 갈수록 더욱 굳어지는 절개
蕭蕭藏夜雨 우수수 밤비를 머금었구나
根系化昌龍 뿌리는 뻗어 푸른 용으로 되고
枝短不棲鳳 가지는 짧아 봉황이 깃들지 않는구나
幹凌雪霜侵 줄기는 차가운 눈서리를 능멸하나
影受風月弄 그림자는 바람과 달의 희롱을 받는구나
却恨長深谷 도리어 안쓰러워라, 깊은 골짜기서 자라
欠遇徽之諷 왕휘지 풍자를 만나지 못한 것을
我來久徘徊 내가 와서 오랜 시간 배회하다
嘯吟忘出洞 휘파람 불며 시 읊으며 골짝 벗어남을 잊었다
日暮輕颯起 해 저무니 가벼운 바람이 일어나
衰衰相摩哄 사각사각 부딪히는 소리 들린다
似歎無知音 그 소리 몰라줌을 탄식 하는 듯
空山悲憁慟 빈산에는 아쉬운 듯 서글퍼지는구나
탁월한 문장력으로 유명한 조선 전기 학자 김시습도 대나무 시를 읊으며 대나무의 기개를 노래했다. 이러한 시(詩)를 비롯한 서(書), 화(花) 등에서도 대나무는 문인이 즐겨하는 소재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대나무는 한시에서 많이 나타나는데, 이를 상징성과 내용에 따라 분류하자면 다음과 같다.
■ 군자(君子)
군자란 유교의 문인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을 말한다. 유교문화의 영향이 컸던 전통시대 문인들은 학문과 삶의 최종적인 지표를 항상 군자에 두었다. 그들은 산수자연은 물론 여러 동식물에서도 군자의 덕성과 품성을 발견하고, 문학과 예술로 그들을 찬미했다. 매난국죽(梅蘭菊竹)을 일러 사군자(四君子)라 칭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사군자(四君子), 이산(李蒜, 1752-1800), 종이에 수묵, 각 77.9x45.1㎝
사군자 가운데서도 대나무는 ‘죽지청(竹之淸)’이라 하여 淸德(청덕, 맑은 덕)을 상징했다.
매난국죽의 덕성(德性)을 상호 대조하여 梅之韻(매지운, 매화의 운치), 蘭之香(난지향, 난초의 향기), 菊之潤(국지윤, 국화의 윤기), 竹之淸(죽지청, 대나무의 맑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대나무는 대부(大夫)의 기개(氣槪)가 있다고도 한다. 즉, 매화는 처사의 아취가 있고, 난초는 왕자의 향취가 있으며, 국화는 걸사(傑士)의 풍도가 있고, 대나무는 대부의 기개가 있다.
(梅有處士之趣,
蘭有王者之香,
菊有傑士之風,
竹有大夫之氣).
그중에서도 군자의 상징으로 가장 먼저 빈번하게 등장한 것이 바로 대나무이다. 대나무는 이미 춘추시대(春秋時代) 이전부터 군자의 상징성을 지닌 식물로 널리 알려졌다. 이후 수많은 시인묵객들에 의해 군자의 표상으로 상징화되었고, 동아시아 문인들의 문화적 심상으로 자리 잡았다.
당대(唐代) 시인 백거이(白居易, 772-846)는 대나무의 품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나무는 현자(賢者)와 비슷하니, 어째서인가.
대나무 뿌리는 견고하니, 견고함으로써 덕을 세우므로 군자는 그 뿌리를 보면 잘 세워 뽑히지 않을 것을 생각한다. 대나무의 성질은 곧으니, 곧음으로써 몸을 세워 군자는 그 곧은 성질을 보면 중립하여 기울지 않을 것을 생각한다. 대나무 속은 비었으니, 비어 있음으로써 도를 체행하므로 군자는 그 댓속을 보면 응용하여 겸허히 받아들일 것을 생각한다.
대나무 마디는 곧으니, 곧음으로써 뜻을 세우므로 군자는 그 마디를 보면 이름과 행실을 가다듬어 편탄하거나 험하거나 한결같을 것을 생각한다. 무릇 이와 같기 때문에, 군자들이 그것을 심어 뜰을 채운다.
-하략-
- 백거이(白居易)의 「양죽기(養竹記)」중-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유사한 글들이 고려시대 이래로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다음은 우리나라 문인들이 대나무에 대해 어떠한 인식을 갖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대나무가 가진 덕이라 하는 것은 다섯이다.
첫째는 속이 비어 통하였다는 것이며, 둘째는 강한 재목이 된다는 것이며, 셋째는 몸이 곧은 것이며, 넷째는 마디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며, 다섯째는 색이 변치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대나무에는 두 가지 복이 있나니, 오래 산다는 것이 첫 번째요, 무리가 번성한다는 것이 두 번째이다.
이에 군자가 대나무에서 구하는 것이 있으며, 대나무를 닮고자 한다.
대나무가 군자를 닮았다고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군자는 마음이 비어있으니, 이에 가운데 있으면서 이치에 통달한다고 했으며, 군자는 스스로 힘쓰니, 이에 드러내지 않으면서 굳세게 이겨낸다고 했으며, 군자는 의지하지 않으니, 이에 그 올곧음이 화살과 같다고 했으며, 군자는 지나치거나 등한히 하지 않으니, 이에 행함이 모두 절도에 맞는다고 했으며, 군자는 구차히 꾸미지 않으니, 이에 의로움이 안색에 나타난다 했다.
이것이 대나무가 군자를 닮은 것이다. 군자는 이런 덕을 가졌기에, 사람들이 반드시 사랑하고 기뻐하며, 그를 찬탄하는 것이다.
- 풍고(楓皐) 김조순(金祖淳, 1765-1832) 「죽설(竹說」-
■ 청덕(淸德)
군자의 이미지와 더불어 관련이 깊은 대나무가 가진 덕은 ‘맑음의 덕(淸德)’이다.
김조순은 다섯 가지의 덕성과 두 가지 복을 겸비한 대나무를 군자의 덕성과 복락을 두루 지닌 존재로 노래하며 대나무의 군자적 풍모와 덕성을 강조하고 있다.
쇄∼쇄∼하는 소리와 두터운 그늘과 저녁의 그림자는 달빛을 희롱하며 특히
서늘한 모습이 눈에 덮여 있을 때 가장 좋은 경치가 된다.
- 이인로(李仁老) 「죽취일이죽(竹醉日移竹) -
고려시대 문인인 이인로(李仁老)는 화암(花菴) 송타(1567-1597)는 “화목십팔우(花木二十八友)”에서 대나무를 ‘청우(淸友)’라 하였고, 「죽존자전(竹尊者傳)」을 지은 혜심(彗諶) 스님은 『진각국사어록(眞覺國師語錄)』에서 대나무의 좋은 덕성(德性) 가운데 하나로 “기운청량(其韻淸凉)”이라 하여 대나무가 맑고 서늘한 기운을 가지고 있음을 언급하였다.
■ 고절(孤節)
지조와 절개는 의리와 명분을 중시하는 전통사회의 문인사대부들에게 가장 중요시되는 덕목이었다. 원칙과 신념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사람들을 지사(志士)나 열사(烈士)라 부르며 숭상했다. 또한, 유교문화권에서 최고의 인간상이라 할 수 있는 군자(君子)가 갖추어야할 주요한 덕목에서도 지조와 절개는 빠지지 않았다. 옛 선인들은 종종 인간이 아닌 나무나 풀과 같은 자연물에서도 지조와 절개의 덕목을 발견하고 기리며, 자신의 이상적 지향을 실어내었다.
통죽, 이정(1554-1622), 비단에 수묵, 148.8x69.8cm
그 중에서도 대나무는 줄기가 곧게 뻗어 있고 마디가 뚜렷하다. 마디와 마디 사이는 속이 비어 있어 대통을 이루며 막혀 있어 강직함을 유지한다. 비나 눈, 바람에도 유연하게 휘어지되 결코 굽어진 채로 자라지 않고 잎은 사시사철 푸름을 유지한다. 이러한 특성 덕에 선인들은 대나무를 주로 강직한 지조를 지닌 선비로 인식했다.
고려시대 문인인 이인로(李仁老, 1152-1220)가 지은 「월등사죽루죽기(月燈寺竹樓竹記)」에 일부인 다음 글은 대나무에 대한 옛 문인들의 인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바다가 얼 정도로 추워도 잎이 떨어지지 아니하며, 쇠가 녹을 정도로 더워도 마르지 않습니다. 푸르고 싱싱하게 사철에 변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그를 숭상하며, 군자는 그를 본받으려 합니다. 지방이나 시절에 따라 그 뜻을 바꾸지 않으니 대나무의 지조가 그런 것입니다. "
대나무의 늘 푸른 변치 않는 모습은 윤선도가 읊은 <오우가(五友歌)>에서도 잘 드러난다.
나모도 아닌 거시 플도 아닌 거시
곳기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뷔연
다
뎌러코
시예 프르니 그를 됴하 노라
-『고산유곡(孤山遺稿)』<산중신곡(山中新曲)> 中-
윤선도는 수(水)ㆍ석(石)ㆍ송(松)ㆍ죽(竹)ㆍ월(月)을 오우(五友)로 칭하면서 대나무의 곧음(정직(正直))과 사시에 푸름(상청(常靑))을 통해 대나무의 절개를 표현하고 있다.
고국화죽(故國花竹)들아 우리를 웃지마라
임천구약(林泉舊約)이야 니즌적이 업건마
성은(聖恩)이 지중(至重)
시니 갑고가려
노라
눈마
휘여진
를 뉘라셔 굽다던고
구블절(節)이면 눈속의 프를소냐
아마도 세한고절(歲寒孤節)은 너
인가
노라
직픔 「고국화죽(故國花竹)들아」는 충성에 대한 시조로서 위국단충(爲國丹忠)의 작품 감군은(感君恩)을 노래한 것이고, 원천석의 시조는 고려의 멸망을 읊은 것이다.
두 시조에서의 竹 역시 엄동설한에서 푸르름을 계속하는 대나무의 지조와 절개의 상징성을 빌린 것이라 볼 수 있다.
■ 정조(貞操)
남자들과 대나무가 절개의 상징으로 결부되었다면 아녀자들에게 대나무는 부녀자의 절조를 상징했다. 대나무에 이러한 상징성이 부여된 것은 순임금의 아내가 되었던 요임금의 두 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에 얽힌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순임금이 순행을 하다 병고로 세상을 뜨자, 창오(蒼梧)에 장사를 지냈다. 이 소식을 들은 아황과 여영은 순임금이 묻힌 곳에 가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상수(湘水)가에서 서로 붙들고 울다가 상강에 몸을 던져 순임금의 뒤를 따랐다. 이때 두 비가 흘린 눈물이 튀어 상강의 대나무의 얼룩이 생겨나 소위 ‘반죽(斑竹)’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내용을 담은 것이 바로 다음의 시조이다.
창오산(蒼梧山)
진후(後)에 이비(二妃)
어듸가고
긔 못죽은들 셔름이 엇더던고
천고(千古)이
알니
댓숩힌가
노라
이것은 후에 ‘상강이비(湘江二妃)’나 ‘상비죽(湘妃竹)’, ‘반죽(斑竹)’ 등으로 그 의미가 한층 심화 확산되고 문예의 소재로 빈번하게 등장하면서 이는 곧 부녀의 절개를 상징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했다.
■ 강호한정(江湖閑情), 은일과 풍류
죽리탄금도 <선면> (竹裡彈琴圖 <扇面>), 김홍도(金弘道, 1745 ~ ?), 수묵채색화, 23.5x63.7cm
강호한정이란 자연 속에서 안빈낙도하는 삶을 추구하며 한가하게 풍류를 즐기는 태도를 말한다. 죽(竹)의 작품 중 강호한정을 나타낸 시조가 가장 많이 나타난다.
초당(草堂)에 낫
여 一等竹 들어메고
조대석양(釣臺夕陽)에 무심(無心)이 안
시니
백구(白驅)도 한가(閑暇)이 너겨 짐즛희롱(戱弄)
더라
네 일흠 대라
니 반죽(斑竹)인가 자죽(紫竹)인가
만상강(滿湘江) 어듸두고 내 앏
와 넘노
다
청풍(淸風)아하 부지마라 유흥(幽興)겨워
노라
대심거 을을삼고 솔갓고와 형자(亨子)로다
백설(白雪) 덮힌곳에 날잇
줄 제뉘알니
정반(庭畔)에 학배회(鶴徘徊)
니 긔벗인가
노라
대나무는 강호한정의 심상과 함께 은일의 매개체로도 자주 상용되곤 했었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죽림칠현(竹林七賢)’의 고사이다.
죽림칠현은 정치적 혼란기를 맞아 세속을 멀리하여 죽림에 모여 시(詩)ㆍ문(文)ㆍ금(琴)ㆍ기(基)ㆍ청담(淸談)ㆍ술을 즐기며 지냈던 현자들인데, 둔세은일(遁世隱逸)의 대표적 인물들이다. 이로 인해 ‘죽림(竹林)’은 특정 지명이나 단지 하나의 공간적 개념의 의미를 넘어서 속세와 떨어져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는 문화적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독좌탄금, 이도영(李道榮, 1884-1933), 비단에 담채, 22.5x26.5cm
대나무 그 자체가 은일이나 한유의 의미를 뚜렷이 가지고 있지는 않으나 대나무로 인해 조성된 ‘죽림(竹林)’ 등의 공간적 배경이 곧 은일이나 한유를 상징하는 인문적 배경으로 진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 효(孝)
대나무는 효행을 연상시키는 상징으로도 자주 사용되었는데 이는 맹종죽(孟宗竹)과 등찬죽(燈纘竹)의 고사와 관련되어 있다.
먼저 맹종죽에 관한 고사는 다음과 같다.
오(吳)나라의 좌대어사 맹종이 효도가 깊었는데, 죽순을 좋아하던 그 모친이 동짓날에 돌아갔다. 이에 맹종이 숲에서 슬피 우니 죽순이 나와 이를 얻어 제사에 바쳤다는 이야기와 단순히 그 모친이 죽순을 좋아하여 한겨울 숲에 들어가 목 놓아 슬피 우니 죽순이 나와 이를 가져다 공양하였다는 이야기 등이 전해지는데, 양자 모두 맹종의 지극한 효행을 기리는 내용이다.
어쨌든 이 고사는 후일 효행의 대표적인 사례로 자리매김하며 「삼강행실도」등에도 등재된다. 맹종죽이 죽순의 이칭으로 쓰일 정도로 이 고사의 호소력과 영향력은 매우 컸다.
맹종죽에 못지않게 효행의 고사에 등장하는 대나무가 등찬죽(燈纘竹)이다. 이는 남제(南齊) 무제(武帝)의 11왕자였던 남해왕(南海王) 자한(子罕)의 효행과 관련된 것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한은 그 모친인 등용화(燈容華)가 병으로 눕자 주야로 기도를 하였는데, 밤에는 대나무로 등을 이어 밤을 밝히고 쉬지 않고 기도를 했다. 그러던 중 세월이 흘러 등을 이어주던 대나무의 가지와 잎이 무성해지자 그 모친의 병도 나았다는 이야기이다.
■ 장수(長壽)
묵죽서화 (墨竹書畵), 김조순(金祖淳, 1765-1832), 종이에 수묵, 28.4x34cm_ 총 10폭으로 구성된 풍고 김조순의 묵죽 서화병풍으로 자신의 병을 고쳐준 경보선생에게 감사의 뜻으로 제작하여 선물한 작품이다.
대나무는 사군자의 대표적인 소재로 알려져 있지만, 장수를 기원하거나 경하하는 축수의 의미로도 이용되기도 했다. ‘죽(竹)’과 ‘축(祝)’은 ‘Chu’로 발음되는 동음이자(同音異子)로 수석(壽石)이나 영지(靈芝) 등과 함께 그려져 축수(祝壽)의 의미를 나타냈다.
김조순은 그의 아들인 황산(黃山) 김유근(1785-1840)의 생일을 맞아 대나무를 그려주면서 장수를 기원한 다음 글을 전한다.
"특별히 8폭의 대나무를 그려 너에게 준다. 대나무란 것은 오래 사는 물건이고, 그 덕이 군자를 닮았다. 8폭으로 한 것은 100세나 90세는 사람마다 바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성인도 오히려 70세를 기약하셨으니, 80도 어려운 것이다. 사람마다 역시 건강하게 살기를 바랄 수는 있지만 고금의 현인군자도 대개 그러하셨다. 내 이제 이 한 폭으로 10년을 해아리겠으니, 너로 하여금 지금부터 다시 40년을 살게 한다면, 나와 너는 모두 갖추게 되어 여한이 없을 것이다."
아들의 40번째 생일을 맞아 대나무 8폭을 그려주며, 40세를 다시 살아 80세를 넘기기를 바라는 애틋한 부정이 묻어나오는 글이다.
■ 벽사
대나무는 식물 중에서 벽사에 효험을 지닌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 이유로 중국에서는 현재까지도 섣달 그믐날부터 정월 초하루에 폭죽(爆竹)을 터뜨리는 풍습이 전해오는데 그 기원은 다음과 같은 고사에서 연유한다.
"서쪽의 산에 키가 한 장(丈)이 넘는 산도깨비가 살고 있었는데, 누구든 도깨비를 만나는 사람은 반드시 병을 앓곤 했다. 이전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이 도깨비를 매우 두려워하여 사방으로 도망하여 숨어 살았다. 또한, 조석으로 대나무를 부록에 던져 그 터지는 소리로 도깨비를 쫓고자 하였다. 그 소리에 과연 산도깨비가 놀라고 두려워하여 숨어서 달아나니, 비로소 재난이 점차 사라졌다. 후세에 종이로 화약을 싸서 묶어 대나무 터지는 것을 대신하게 되니, 이런 종류의 풍속이 남게 되었다(野崎誠近. 1992: 80)."
생대나무를 태우면 폭죽이 터지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러한 굉음(轟音)으로 잡귀를 쫓고자 한 것이다. 우리의 풍습에도 새벽에 문 밖에서 대를 태워 그 소리로 잡귀를 쫓는데 이는 중국의 풍습에서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대나무는 푸름(靑), 맑음(淸), 서늘함(凉), 바름(正), 곧음(直), 굳셈(剛) 등의 성질로 군자(君子) 청덕(淸德), 고절(孤節), 정조(貞操), 강호한정(江湖閑情), 은일과 풍류, 효(孝), 장수(長壽), 벽사 등 다양한 의미로 통용되며 추앙받았던 고고한 식물이었다.
지금도 담양 소쇄원을 들어서는 길목에는 큰 숲을 이룬 대나무들이 이 추운 겨울을 온 몸으로 이겨내고 있다. 추위에도 더위에도 늘 같은 푸르름으로 그 몸을 맡기는 대나무. 현세에는 이러한 군자의 정신을 가진 이들이 몇이나 될는지, 대나무를 노래한 선조의 시들 덕에 절로 부끄러운 마음이 고개를 든다. 오늘은 대나무 그 맑음의 덕, 그 군자의 기개를 되짚으며 이를 마음속에 아로 새겨보련다.
이렇듯, 대나무는 푸름(靑), 맑음(淸), 서늘함(凉), 바름(正), 곧음(直), 굳셈(剛) 등의 성질로 군자(君子) 청덕(淸德), 고절, 정조(貞操), 강호한정(江湖閑情), 은일과 풍류, 효(孝), 장수(長壽), 벽사 등 다양한 의미로 통용되며 추앙받았던 고고한 식물이었다.
지금도 담양 소쇄원을 들어서는 길목에는 큰 숲을 이룬 대나무들이 이 추운 겨울을 온 몸으로 이겨내고 있다. 추위에도 더위에도 늘 같은 푸르름으로 그 몸을 맡기는 대나무. 현세에는 이러한 군자의 정신을 가진 이들이 몇이나 될는지, 대나무를 노래한 선조의 시들 덕에 절로 부끄러운 마음이 고개를 든다. 오늘은 대나무 그 맑음의 덕, 그 군자의 기개를 되짚으며 이를 마음속에 아로 새겨보련다.
오소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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養竹記 / 白居易
竹似賢,何哉?竹本固,固以樹德,君子見其本,則思善建不拔者
대나무는 현명한 사람과 비슷한데, 왜 그런가? 대나무 뿌리는 단단하여, 단단함으로써 덕을 세우고 있다. 군자는 그 뿌리를 보면, 곧 뽑히지 않는 훌륭한 덕을 세울 것을 생각하게 된다.
竹性直,直以立身,君子見其性,則思中立不倚者
대나무의 성질은 곧아서, 곧음으로써 자신의 몸을 서게 하고 있다. 군자는 그 성질을 보면, 곧 어느 편에도 의지하지 않는 마음이 서게 할 것을 생각하게 된다.
竹心空, 空以體道. 君子見其心, 則思應用虛受者.
대나무 속은 비어서, 비어있음으로써 도를 체득하고 있다. 군자는 그 빈 마음의 속을 보면, 곧 자기의 마음을 비우고 남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응용할 것을 생각하게 된다.
竹節貞, 貞以立志. 君子見其節, 則思砥礪名行, 夷險一致者.
대나무 마디는 곧아서, 곧음으로써 뜻을 세우고 있다. 군자는 그 마디를 보면, 곧 자기 이름과 행실을 갈고 닦아서 順道에서나 險道에서나 한결 같을 것을 생각하게 된다.
夫如是,故君子人多樹之,為庭實焉。
이러하기 때문에 군자들이 이것을 많이 심어 정원수로 삼고 있는 것이다.
貞元十九年春, 居易以拔萃選及第, 授校書郞.
정원 19년 봄에, 拔萃科에 급제하여 교서랑 벼슬이 제수되었다.
始於長安, 求假居處, 得常樂里故關相國私第之東亭而處之,
처음 장안에 와서 빌리어 살 곳을 구하다가 상락리의 작고하신 관국공 사저의 동쪽 정자에 거쳐하게 되었다.
明日,履及於亭之東南隅,見叢竹於斯,枝葉殄瘁,無聲無色
明日, 屨及于亭之東南隅, 見叢竹於斯, 枝葉殄悴, 無聲無色.
다음 날 정자의 동남쪽 모퉁이로 산책을 나갔다가 거기에 대나무 숲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는데, 가지와 잎새가 말라죽어 볼품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詢乎關氏之老, 則曰此相國之手植者. 自相國捐館, 他人假居, 繇是, 筐篚者斬焉,
관상국 댁의 늙은 하인에게 물어보니 “이것들은 관상국께서 손수 심었던 것입니다. 관상국께서 집을 내어놓아 다른 사람이 빌려 살게 되었는데, 이 때부터 광주리를 만드는 자들이 베어가기도 하고
彗帚者刈焉,刑餘之才,長無尋焉,數無百焉
篲箒者刈焉, 刑餘之材, 長無尋焉, 數無百焉.
대나무 빗자루를 만드는 자들이 잘라가기도 하여, 형벌을 받듯 잘리우고 난 나머지 대나무들에는 한발 길이로 자란 것도 없고 그 수도 백이 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又有凡草木雜生其中,菶茸薈鬱,有無竹之心焉。
又有凡草木, 雜生其中, 噴走灰蔚, 有無竹之心焉.
또 뭇 풀과 나무들이 그 속에 섞여 나서 무성히 잡다하게 되어 대나무는 없어진 듯한 마음까지 갖게 하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居易惜其嘗經長者之手, 而見賤俗人之目, 翦棄若是, 本性猶存.
나는 이것들이 일찍이 훌륭한 분의 손을 거쳤으나 천하고 속된 사람들의 눈에 띄어 이처럼 잘려지고 버려지게 되었으나 그 본성만은 그대로 보존되고 있음이 애석하였다.
乃芟芟蓊薈,除糞壤,疏其間,封其下,不終日而畢。於是日出有清陰
乃刪翳薈, 除糞壤, 疏其間, 封其下, 不終日而畢, 於是日出, 有淸陰,
이에 무성한 초목은 잘라내고 더러운 흙은 긁어내고 대나무 사이를 넓혀주고 그 아래 흙을 북돋아 주었는데, 하루가 다 가기 전에 일을 끝내었다 이렇게 하여 해가 뜨면 맑은 그늘이 생기고
風來有清聲,依依然,欣欣然,若有情於感遇也
바람이 불어오면 맑은 소리가 들리며, 휘청휘청 기쁜 듯 하여, 마치 감정이 있어 은덕에 감사하고 있는 듯 하였다.
嗟乎!竹植物也,於人何有哉?以其有似於賢,而人愛惜之,封植之,況其真賢者乎?
嗟乎, 竹植物也, 於人何有哉, 以其有似於賢, 而人猶愛惜之, 封植之, 況其眞賢者乎.
아아! 대나무는 식물이다. 사람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대나무가 현명한 사람과 비슷하다고 해서
사람들은 그것을 애석하게 여겨 북돋아 심어주었으니 하물며 진정 현명한 사람에 대해서야 어떠하겠는가?
然則竹之於草木, 猶賢之於衆庶.
그러니 대나무를 보통 풀과 나무에 비긴다면 마치 현명한 사람과 보통 사람들을 견주는 것이나 같다.
嗚呼, 竹不能自異, 惟人異之, 賢不能自異, 惟用賢者異之.
아아! 대나무는 스스로 기이함을 나타낼 수가 없는데도 오직 사람들이 그것을 기이하게 대해주고 있다. 현명한 사람도 스스로 기이함을 나타낼 수는 없는 것이고 오직 현명한 사람을 등용해야할 사람이 그를 기이하게 해주어야 한다.
故作養竹記, 書于亭之壁, 以貽其後之居斯者, 亦欲以聞於今之用賢者云.
그러므로 <양죽기>를 지어 정자의 벽에 써 놓아 뒤에 여기에 살게 될 사람들에게 남겨주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지금의 현명한 사람을 등용해야 할 사람들에게도 이 뜻이 알려지도록 하려는 것이다
養竹記作者:白居易 唐
竹似賢。何哉?竹本固,固以樹德,君子見其本,則思善建不拔者;竹性直,直以立身,君子見其性,則思中立不倚者;竹心空,空以體道,君子見其心,則思應用虛受者;竹節貞,貞以立志,君子見其節,則思砥礪名行夷險一致者。夫如是,故君子人多樹之,為庭實焉。
貞元十九年春,居易以拔萃選及第,授校書郎,始於長安求假居處,得常樂里故關相國私第之東亭而處之。明日,履及於亭之東南隅,見叢竹於斯,枝葉殄瘁,無聲無色。詢於關氏之老,則曰此相國之手植者,自相國捐館,他人假居,繇是筐篚者斬焉,彗帚者刈焉,刑餘之才,長無尋焉,數無百焉,又有凡草木雜生其中,菶茸薈鬱,有無竹之心焉。居易惜其嘗經長者之手,而見賤俗人之目,翦棄若是,本性猶存,乃芟芟蓊薈,除糞壤,疏其間,封其下,不終日而畢。於是日出有清陰,風來有清聲,依依然,欣欣然,若有情於感遇也。
嗟乎!竹植物也,於人何有哉?以其有似於賢,而人愛惜之,封植之,況其真賢者乎?然則竹之於草木,猶賢之於眾庶。嗚呼!竹不能自異,惟人異之,賢不能自異,惟用賢者異之。故作《養竹記》,書於亭之壁,以貽其後之居斯者,亦欲以聞於今之用賢者雲。
출처 : 維基文庫. 自由的圖書館
한국문집총간 > 매월당집(梅月堂集) > 梅月堂詩集卷之五 > 詩○竹
山中竹
綠竹出巖隈。托根巖下土。老去節愈剛。蕭蕭藏夜雨。根逬化蒼龍。枝短不棲鳳。幹凌雪霜侵。影受風月弄。却恨長深谷。欠遇徽之諷。我來久徘徊。嘯吟忘出洞。日暮輕颯起。戛戛相摩閧。似歎無知音。空山悲憁恫。
한국문집총간 > 풍고집(楓皐集) > 楓皐集卷之十六 > 雜著
竹說
竹有爲德者五。一通中。二剛材。三體直。四節不可滅。五色不可改。
有二福。長生一也。茂族二也。故君子有取乎竹者。以其似之也。
其似之也如何。君子虛心。故曰黃中通理。君子自強。故曰。沈潛剛克。君子不倚。故曰其直如矢。君子不踰閑。故曰。發而皆中節。君子不苟容。故曰。義形于色。此竹之似君子也。是故。君子有是德。則人必愛悅而詠歎之。
其詩曰。瞻彼淇澳。菉竹猗猗。悅之而不能已。愛之而不能忘。詠歎之不足。則誦禱之。
其詩曰。君子萬年。保艾爾後。
又曰。文王孫子。本支百世。萬年則生斯長矣。本支則族斯茂矣。此君子之似竹也。夫有君子之德。然後可以比竹。有竹之福。然後可以稱君子。君子之有取也亦宜。庭有竹。朝暮對焉。於是筆之爲竹說。甲申仲春春分之日。
고전번역총서 > 동문선(東文選) > 동문선 제4권 > 오언고시(五言古詩)
죽취일 001]에 대를 옮겨 심으면서(竹醉日移竹)
이인로(李仁老)
예와 지금은 한 언덕의 담비요001] / 古今一丘貉
하늘과 땅은 진정 여관집이로다 / 天地眞籧廬
차군(대[竹]) 홀로 취하여 / 此君獨酩酊
정신 없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네 / 兀兀忘所如
강산은 비록 변했지마는 / 江山雖有異
풍경은 예와 다름없다 / 風景本無殊
다시 술에서 깨어날 필요없으니 / 不用更醒悟
창을 들고서 술 못 먹게 하는 도학자를 쫓으리라 / 操戈便逐儒
사마천도 일찍 먼 데 놀았고 002]/ 司馬嘗客遊
공자도 또한 나그네 되었었네 002] / 夫子亦旅寓
신정에서 마주 대해 울었거니003] / 新亭相對泣
그들은 실로 아녀 같았네 / 數子眞兒女
차군 박처럼 매달려 있어004] 부끄러워하여 / 此君恥匏繫
어디 가도 하늘이 막지 못하네 / 所適天不阻
구태어 누에 올라 / 何必登樓吟
실로 아름다우나 내 땅이 아니다005]고 읊조릴 것 없느니 / 信美非吾土
[주C-001]죽취일 : 죽미일(竹迷日)이라 하는데, 5월 13일 이날 대를 옲겨 심으면 무성하게 잘 자란다고 한다.
[주D-001]예와 지금은 한 언덕의 담비[丘貂]요 : 한(漢)나라 양운(揚惲)이 말하기를, “진(秦)나라가 충량(忠良)한 신하를 죽여서 멸망하더니, 예와 지금이 한 언덕에 사는 담비와 같다.” 하였다.
[주D-002]사마천도 …… 되었었네 : 사마천은 20세 때 강호(江湖)를 주유(周遊)하였고, 공자는 늘 타국에 손[客]으로 돌아다녔다.
[주D-003]신정(新亭)에서 …… 울었거니 : 진(晉)나라는 외래 민족에게 중원(中原)을 빼앗기고 강동(江東)으로 옮겨 갔는데, 하루는 여러 사람들이 신정(新亭)에 나와 놀다가 술이 거나하게 취하자, “산하(山河)는 다르지 않으나 풍경이 예와 다르다.” 하면서 서로 보고 울었다.
[주D-004]박[匏]처럼 매달려 있어 : 공자(孔子)가 불힐(佛肹)의 부름을 받고 가려 하니, 자로(子路)가 말리었다. 공자가 말하기를, “내가 어찌 박[匏]이나 오이[苽]냐. 한 군데 매여 살게.” 하였다.
[주D-005]실로 …… 아니다 : 한(漢)나라 왕찬(王粲)이 난세를 만나서 고향을 떠나 형주(荊州)로 가서 유표(劉表)에게 의탁하고 있을 때에 누(樓)에 올라 부(賦)를 짓되, “비록 실로 아름다우나 내 고장이 아니니 조금인들 머무르랴.” 한 구절이 있다.
ⓒ 한국고전번역원 ┃ 양주동 (역)
동문선(東文選) > 동문선 제6권 > 칠언고시(七言古詩)
죽취일에 대나무를 옮겨 심다001][竹醉日移竹]
이인로(李仁老)
불구름이 허공을 사르니 쇠와 돌이 타는데 / 火雲燒空金石焦
그대의 이 풍채와 운치는 차서 쓸쓸하여라 / 此君風韻寒蕭蕭
한 겨울이 몹시 차서 아교도 부러지려 하지만 / 窮冬凜冽膠欲折
그대의 이 얼굴빛은 진실로 시들게 하기 어렵도다 / 此君顔色誠難凋
그대의 본 절개는 쇠처럼 굳고 / 此君素節堅如鐵
그대의 빈 배에 전연 아무 것도 없다 / 此君空腹渾無物
바람에 읊고 달에 휘파람불면서 긴 재를 지키고 / 吟風嘯月守長齊
옥처럼 여위고 구슬처럼 차면서 얼음처럼 조촐하다 / 玉瘦瓊寒氷自㓗
천공의 마음 씀은 아이 장난과 같아 / 天工用意眞兒戲
그대를 시험하고자 일부러 한 번 취하게 하였다 / 欲試此君聊一醉
둥그런 무지개를 반 하늘에 드리우더니 / 宛宛虹霓垂半天
술샘001]의 천 섬 물을 거꾸로 걷어 올려 / 倒捲酒泉千斛水
아침에 오는 보슬비가 빈 뜰에 듣으니 / 朝來細雨滴空階
깨끗하고 미끄럽기 맑은 국화술이네 / 淨滑眞是蒲萄醅
그대 바람 앞에 한 번 휘파람 내니 / 此君臨風成一嘯
큰 두루미나 황금 술항아리가 필요치 않다 / 窪尊不用黃金罍
허리가 구부러지도록 한창 취했는데 / 腰支偃亞醉正熟
이 몸은 바다에 뜬 좁쌀과 무엇이 다르랴 / 身世何殊浮海粟
길을 따라 몇 리 남짓 돌아오니 / 扶路歸來數里餘
온 몸에는 아직도 푸른 이끼 흔적이 있다. / 滿身尙帶苔㾗綠
비단 포대기의 어린 아이가002] 객토(본 흙이 아닌 새 흙)임을 잊고 / 錦䙀嬰兒忘客土
머리의 뿔은 구슬 같은 이슬에 함초롬히 젖어 있다 / 頭角森然犀玉露
취향의 꿈을 한 번 번쩍 깨어나니 / 惺然一罷醉鄕眠
어느새 골짝이 변하고 언덕이 옮겨졌더라 / 谷變陵移眞朝暮
그대는 장생의 말003]이 황당하지 않음을 모르는가 / 君不見莊生立言非荒唐
술로써 천진을 온전히 하면 마침내 상하지 않는다고 / 得全於酒終無傷
[주C-001]죽취일에 …… 심다 : 음력 5월 13일은 죽취일(竹醉日)이라 하여 이 날에 대를 옮겨 심으면 잘 산다 한다.
[주D-001]술샘[酒泉] : 중국의 주천(酒泉) 고을에 술 샘이 있다 하는데, 여기서는 비를 말한다.
[주D-002]비단 …… 아이 : 죽순(竹筍)을 말한 것인데 죽순을 싼 껍질이 얼룩얼룩하므로 죽순을 비단 포대기에 쌓인 어린애에 비유하였다.
[주D-003]장생(莊生)의 말 : 술에 취한 사람이 수레에서 떨어져도 상(傷)하지 않는 것은 그 천진(天眞)을 온전히 한 까닭이다.《莊子》
ⓒ 한국고전번역원 ┃ 양주동 (역) ┃ 1968
동문선(東文選) > 동문선 제65권 > 기(記)
월등사 죽루죽기(月燈寺竹樓竹記)
석식영암(釋息影庵)
화산(華山) 월등사 서남쪽에 죽루(竹樓)가 있고, 누의 서편 언덕에 대나무 수천 그루가 솟아서 절의 후면으로 둘러 있는데 빽빽하였다. 주장(主掌) 노승인 대선후(大禪侯)가 일찍이 특별히 이를 좋아하였다.
하루는 누(樓) 위에서 손을 모아놓고 주장 노승이 대를 가리키면서 손[客]에게 말하기를, “여러분들은 대의 좋은 점을 좀 말씀하여 주십시오.” 하였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죽순은 훌륭한 식료품입니다. 그 싹이 싱싱하게 나오면 마디는 촘촘하고 댓속은 살이 올라 꽉 차게 됩니다. 이때에 도끼로 찍어서 칼로 다듬어 가지고 솥에 삶아내어 풍로에 구워놓으면 냄새가 좋고 맛이 연하여 입에는 기름이 흐르고 뱃속은 살이 오릅니다. 쇠고기나 양고기가 맛이 없어지고 노린내 나는 산짐승 고기도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아침절 내내 먹어도 싫증이 나지 않을 것이니, 대의 맛이란 이런 것입니다.” 하였다.
어떤 이는 대답하기를, “대는 강하면서도 강하지 아니하고 연하면서도 연하지 아니하여 사람이 사용하기에 적당합니다. 휘어서 만들면 광주리와 상자가 되고 가늘게 쪼개어 엮으면 문에 쓰는 발이 되며 잘라서 짜면 마루에 사용하는 자리가 되고, 잘라서 깎으면 옷상자ㆍ도시락ㆍ술 거르는 체ㆍ소 먹이는 죽통ㆍ대그릇ㆍ조리 따위가 됩니다. 이것이 모두 대에서 나오는 것이니, 대의 목재란 그런 것입니다.” 하였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대가 돋아날 때에는 줄을 지어서 늘어서는데 작은 것, 큰 것, 먼저 나온 것, 뒤에 나온 것이 차례를 이루어 처음에는 뾰죽뾰죽하다가 얼마 후에는 미끈미끈해집니다. 그러다가 대모(玳瑁)001]같은 껍질이 다 벗겨지고 옥같은 줄기가 자라나고 보면, 분가루는 없어지고 껍질이 단단해지며 흰 마디는 뚜렷해집니다. 푸른 연기가 흩어지지 않고 바람소리가 저절로 납니다.
쇄쇄하는 소리와 짙은 그늘과 저녁의 그림자는 달빛을 희롱하며 차가운 모습은 눈[雪]에 덮여 있습니다. 이럴 때는 가장 좋은 경치가 되며, 봄에서부터 섣달까지 날마다 여기서 시를 읊을 수 있고, 걱정을 잊을 수 있으며 흥을 북돋을 수 있으니, 대의 운치란 이런 것입니다.” 하였다.
어떤 이는 대답하기를, “대의 키가 1천 길이 되는 것을 심()이라 하고, 둘레가 두어 상(常)이 되는 것은 불(芾)이라 하며, 그 머리에 무늬가 있는 것은 집(箿)이라 하고, 그 빛이 검은 것은 유(箾)라 하며, 가시가 돋힌 것은 파(笆)라 하며, 털이 있는 것은 공()이라 합니다. 공주(邛州)에서 나는 지팡이[笻], 기주(蘄州)에서 나는 저[笛], 강한(江漢)에서 나는 미(篃), 파유(巴渝)에서 나는 도(), 여포(荔浦)에서 나는 포(笣), 원상(沅湘)에서 나는 반죽(斑竹)ㆍ운당(篔簹)ㆍ막야()) 같은 따위의 명칭과 모양이, 생산되는 지방에 따라서 일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바다가 얼도록 추워도 잎이 떨어지지 아니하며, 쇠가 녹도록 더워도 마르지 않습니다. 새파랗게 싱싱하여 사철 변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그를 숭상하며 군자는 그를 본받으려 합니다. 땅이나 때에 따라 그 뜻을 바꾸지 않는 것이니, 대의 지조가 그런 것입니다.” 하였다.
식영암은 말하기를, “그 맛이나 재목, 혹은 운치나 지조로써 이 대를 좋아한다면, 이것은 이른바 그 겉만을 얻고 그 알맹이는 버리는 것입니다. 곧 이 대라는 것은 처음 낼 때부터 쑥 빼어난 것을 보면, 이미 깨달은 기능이 갑자기 전진하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 대가 늙을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것을 보면 뒤에 노력하는 힘이 차츰차츰 증진해 나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가 그 속이 빈 것을 가지고 사람의 성품이 공허한 것을 볼 수 있으며, 대의 곧은 것을 가지고 실상(實相)을 얘기할 수 있습니다. 대의 뿌리가 용(龍)으로 변화하는 것은 부처님이 될 수 있는 비유가 되며, 죽실(竹實)로 봉(鳳)을 먹이는 것은 남을 유익하게 하는 길입니다. 공이 대를 좋아하는 것은 아마도 저런 것이 아니고, 이런 것들에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공이 이르기를, “정말 그대의 말이 의미가 있구나. 그대야말로 대의 좋은 친구로다.” 하였다. 감히 이것을 판에 적어서 후일에 대를 좋아하는 사람의 모범이 되게 하려 한다.
[주D-001]대모(玳瑁) : 열대 지방의 바다 거북의 한 가지이다. 등 껍데기가 삼각형이며 빛깔의 변화가 많다. 껍데기는 대모갑(玳瑁甲)이라 하여 공예 재료로 쓴다.
ⓒ 한국고전번역원 ┃ 임창순 (역)
동문선(東文選) > 東文選卷之六十五 > 記
月燈寺竹樓竹記
華山月燈寺西南隅。有竹樓。樓西阿。有竹數千竿挺立。環寺後林林如也。主老大禪侯。甞酷愛之。一日會客樓上。主老指竹而謂客曰。二三子盍各言竹之美。
或對曰竹之筍。食物之嘉也。方其芽茁然出。節縮而促。笨肥而充。於是乎斧斫之刀宰之。鉶鼎以烹熬。鑪竈以燔炮。香甘脆旨。吻膏腹腴。薄牢豢體節之膳。蔑狸互膻腥之饗。崇朝而之。亦不獲厭。竹之味然也。
或對曰。行剛不剛柔不柔。適人之用。故箞而製之。爲簏爲笥箱。
而緯之。爲箔
于戶。䇝而織之。爲笙䇽于堂。劈而剡之。爲衣
。與食簞與酒籭。與飯牛之䈱。飮馬之篼。筐筥笟籬之屬。皆竹之出。竹之材然也。
或對曰。竹之䉜也。群立伍列。角少長齒後先。始而焉。頃而籊籊焉。迨夫玳瑁之箬旣盡。琅玕之
旣脩。粉銷玉廋。素節森嚴。
翠煙不散。泠風自産。而吟。篟篟而蔭。夕影弄月。寒姿戴雪。賞之尤也。自春徂臘。日以哦咏。可以排悶。可以驅興。竹之致然也。
或對曰。竹之高千丈曰。圍數常曰
。文其頭曰箿。黑其質曰
。有箣曰笆。有毛曰
。邛之筇。
之笛。江漢之篃。巴渝之
。荔浦之笣。沅湘之斑。篔簹
之類。名與狀隨土而不一焉。然其海凍而不凋。金流而不焦。蒼然蓊然。四時不變換者同也。故聖人尙焉。君子倣焉。不以土以時而易其志。竹之操然也。
息影庵曰。夫以味以材以致以操而愛之竹。玆謂得其粗。遺其精者也。則見玆竹生而便秀。知先悟之機頓進也。見玆竹老而益勁。知後修之力漸增也。以竹之虛其中。觀乎空性。以竹之貞其外。譚乎實相。竻之化龍。成佛之喩。之餧鳳。利人之道。公之愛之。非于彼。盖于此也。公曰。旨哉若之言。若誠竹之益友也。敢請識諸板。爲後來愛竹者模範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