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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무궁화(無窮花) / 한국의 화목(花木)

작성자Bliss Kim|작성시간18.02.14|조회수1,079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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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화목(花木)

 

 

 

나라꽃, 무궁화(無窮花)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대한의 꽃 무궁화. 무궁화가 대한민국의 국화(國花)라는 사실은 너무나 기초적인 상식이지만 하필 많고 많은 꽃 중에 무궁화가 언제 어떠한 이유로 국화가 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무지한 것이 사실이다.

 

 

 

1989년 7월, 청량리 길가에 핀 무궁화

 

 

무궁화는 그 꽃이 크고, 색상 또한 자색, 홍색, 분홍색, 백색 등으로 다양하여 일찍부터 정원의 관상수와 울타리나무로 사랑을 받았다. 고대인들은 어린잎을 이용해 국을 끓여먹기도 했고, 풍을 치료하는 중요한 약제로 이용하기도 했다. 또, 차로도 만들어 마셨는데, 이것은 불면증에 효능을 보이는 등 그 쓰임이 다양했다.

 

또한 무궁화는 예부터 동양인들과 세월을 함께한 꽃으로 문인들의 사랑을 받기도 했다.

 

 

 

<鄭風 有女同車>

有女同車, 顔如舜華. 將翶將翔, 佩玉瓊琚. 彼美孟姜, 洵美且都.

有女同行, 顔如舜英. 將翶將翔, 佩玉將將. 彼美孟姜, 德音不忘.

 

 

앞서 나오는 ‘순화(舜華)’와 ‘순영(舜英)’은 무궁화의 처음 이름이다. 여기서 ‘순(舜)’이란 ‘순(瞬)’의 의미로 아침에 피었다 저녁이 되기 전에 지는 무궁화의 순간성을 반영한 것이다.

 

 

 

 

‘근(槿)’은 무궁화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백은 무궁화가 동원의 어떤 꽃보다도 아름답지만 빨리 시듦이 안타깝다고 노래했다. 

 

 

 

 

조선 임수간(1665-1721)은 이 시에서 흰 무궁화를 작약이나 매화보다 낫다고 칭송하며 무궁화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했다.

 

 

 

 

조선 서거정의 『붉은 무궁화』라는 시이다. 계속하여 피고 지기를 반복하는 무궁무진한 무궁화가 떠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임보다 나음을 말하고 있다.

 

 

“무궁(無窮), 다함이 없어라”

 

‘순화(蕣華)’, ‘순영(蕣英)’, ‘근화(槿花)’ 외에 목근(木槿), 주근(朱槿), 조균(朝菌), 조화(朝花), 일급(日給), 중태(重台), 왕증(王蒸), 화상화(花上花), 일급(日及), 번리초(藩籬草), 평조수(平條樹), 청명리(淸明籬) 등 이 모두가 무궁화를 일컫는 말들이다.

 

‘무궁화’라는 이름은 우리나라에서만 썼다. 그 사실은 이규보의 글과 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장로(長老) 문공(問公)과 동고자(東皐子) 박환길(朴環吉)이 각자 근화(槿花)의 이름에 대하여 논하였다. 한 사람은 ‘무궁(無窮)’이라고 말하며, 무궁의 의미는 이 꽃이 피고 지는 것이 무궁하다는 뜻이라고 하였다.

또 한 사람은 ‘무궁(無宮)’이라고 말하며, 무궁의 의미는 옛날 군왕이 이 곷을 사랑하였는데, 육궁(六宮)의 궁녀들이 무색(無色)하여서 그랬다는 것이었다. 각자 고집하여 결론을 내리지 못하였다. 그로 인하여 백낙천(白樂天)의 시를 찾아서, 그 운(韻)을 취하여 각자 한 편씩을 짓고서 또한 나에게도 회답하도록 권하였다.

 

 

 

 

무궁(無窮). ‘다함이 없다’라는 뜻이다.

무궁화는 여름 내내 피고 지고 다시 피기를 끝없이 반복한다. 생명력 또한 강하여 가지를 꺾어 거꾸로 꽂아놓으면 이내 뿌리를 내리고 살아난다. 끝없이 피어나는 꽃과 질긴 생명력을 가진 무궁화, 그 이름이 더없이 잘 어울린다.

 

“무궁화나라”

예부터 무궁화는 우리나라를 지칭하는 말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근역(槿域)’이라는 것은 ‘무궁화 나라’라는 뜻으로 우리나라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이 말의 근거는 다음에서 찾을 수 있다.

 

 

군자국(君子國)이 그 북쪽에 있다. …… 훈화초(薰華草)가 있는데, 아침에 나서 저녁에 죽는다.

-『산해경(山海經)ㆍ해외동경(海外東經)』中-

 

 

이 기사에 나오는 ‘훈화초’를 후대의 주석가들은 ‘목근(木槿)’이라고 상정했는데 이는 곧 무궁화를 말한다. 또한, 신라 최치원이 신라를 ‘근화향(槿花鄕)’이라고 지칭한 용례도 있다.

 

 

鳥獸哀鳴海嶽嚬 새도 짐승도 슬피 울고 바다와 산악도 찡그리는데

槿花世界已沈淪 무궁화세계가 이미 멸망 하였네

秋燈掩卷懷千古 가을 등불 아래 책을 덮고 천고의 역사를 회고하니

難作人間識字人 인간세상에서 지식인 노릇이 어렵 구나

 

-황현(黃玹) 『절명시(絶命詩)』-

 

 

한일합방 소식을 듣고 음독 자결한 순국시인 매천(梅泉) 황현의 『절명시』이다.

여기서 황현은 우리나라를 ‘근화세계(槿花世界)’ 즉, 무궁화나라로 표현했다.

 

“무궁화를 새기다”

근대에 와서 무궁화는 복식을 비롯한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물로 널리 사용되었다. 무궁화 문양은 대한제국기에 개정되는 서구식 군복(軍服)과 훈장, 문관의 대례복(大禮服) 등에 활용되었는데, 처음 등장한 것은 1892년 닷냥 은화에 그 꽃가지가 묘사된 것이다.

 

 

 

 

 

이 주화 전면의 중심에 금액의 숫자가 쓰인 부분에 오른쪽으로는 오얏꽃 가지, 왼쪽으로는 무궁화 가지가 쓰였고, 꽃잎이 네 장이나, 무궁화의 특징인 수술이 높게 올라와 있는 것을 보아 무궁화를 형상화한 것임을 짐작케 한다.

 

많은 꽃들 중 왜 하필 무궁화가 국가와 관련된 문양으로 쓰였을까. 그것은 아마도 공식적으로 국화(國花)가 제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앞서 등장한 시조 속 무궁화의 모습들과 함께 ‘나라꽃’ 또는 ‘겨레꽃’의 의미로 통용되고 있었던 인식이 무궁화를 국화로 채택하게 되는 배경을 만들었으리라 생각된다.

 

1895년 육군 복장에는 무궁화를 형상화한 문양이 더욱 다양하게 사용되었고 훈장에도 무궁화 문양이 쓰였다.

 

 

 

자응장

 

 

자응장에서는 태극 문양을 중심으로 무궁화 꽃과 잎이 사방으로 놓인 모습이 나타난다.

 

 

 

훈장 증서의 태극, 오얏꽃, 무궁화 문양. 1902

 

 

훈장증서 장식 테 문양의 왼쪽에 무궁화 꽃가지가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부수적인 문양으로 쓰였던 무궁화는 1901년 발행된 이화우표의 시쇄우표(試刷郵票)에서 중심 문양으로 자리 잡는다.

 

 

 

무궁화 문양 시쇄우표(試刷郵票)

 

 

무궁화 문양이 가장 전면적으로 사용된 것은 서구식 문관 대례복에서였다. 1900년대에 외교관을 지낸 박기종(朴琪淙,1839-1907)의 대례복에는 가슴 전면에 무궁화 자수가 좌우로 4송이, 여밈에 3송이가 큼지막하게 놓여 있다.

 

 

 

무궁화 자수가 수놓인 박기종의 대례복. 20세기 초, 부산박물관

 

 

1910년 11월에 미국에서 발행한 국민회 입회 증서에서도 태극을 중심으로 무궁화 꽃가지를 두른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국민회 입회증서, 1910

 

 

“나라꽃 무궁화”

1908년 『해조신문(海朝新聞)』에 실린 <애국가> 가사에는 현재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애국가 가사 후렴이 그대로 나와 있다.

 

 

一. 성자신손 오백 년은 우리 황실이요, 산고수려 동반도는 우리 본국일세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二. 충군하는 열성 의기 북악같이 높고 애국하는 일편단심 동해같이 깊어

三. 천만 인의 오직 한 맘 나라 사랑하여 사농공상 귀천 없이 직분만 다하세

四. 우리 나라 우리 황실 항천이 도우사 만민공락 만만세에 태평독립하세

 

-『해조신문(海朝新聞)』 大韓隆熙 二年 五月 二十六日(1908.5.26자)-

 

 

후렴구에서 대한 사람의 꽃인 무궁화의 존재가 부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신문인 『신한국보(新韓國報)』의 “乾元節慶祝盛況”이라는 기사에서도 가 국가(國歌)는 아니지만, 국가에 버금가는 노래로 불렸던 것을 알 수 있다.

 

 

一. 승장신손 천만년은 사롱공상 귀천업시 직분만 다하세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二. 충군하는 일편단심 북악같이 높고 애국하는 심심의기 동해같이 깊어

三. 천만인 오직 한 마음 나라 사랑하여 사농공상 귀천없이 직분만 다하세

四. 우리나라 우리님금 황천이 도우사 군민동락 만만세에 태평독립하세

 

 

『해조신문』은 1908년 2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간행된 순한글 일간지이고, 『신한국보』는 당시 하와이의 호놀룰루에서 민국회(民國會)가 발행하던 신문이었다.

 

국내에서 발행하지 않았던 신문에서 ‘무궁화’가 국토의 상징으로 쓰인 가사가 실렸다는 것은 당시 국가 상징이 억압받던 상황에서 무궁화가 민간에서 나라의 꽃으로 인식되어 가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일제 강점기에는 남궁억(南宮檍)을 중심으로 무궁화 심기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동아일보』의 「조선국화(朝鮮國花)」무궁화의 내역(內歷); 조생석사(朝生夕死)로 영원(永遠)……금수강산(錦繡江山)의 표징(表徵), 고래로 조선에서 숭상한 근화가 무궁화로 변해 국화가 되기까지”라는 기사에는 대한제국의 국화가 무궁화였는가 한 독자들의 물음에 답하는 방식의 무궁화가 국화가 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동해 쪽에 줄기를 대고 무궁화 꽃이 피어 있는 모습의 자수 지도는 무궁화가 국토를 상징하는 도상으로 자리 잡았었음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무궁화 자수 지도(1920-1930년대), 독립기념관

 

 

이렇듯 무궁화는 당시 국가라는 개념적 외연을 상실한 시대 상황을 반영, 국토의 상징으로 무궁화를 대입시키고자 하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무궁화는 ‘나라꽃’이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나라 대신 민족을 투영하여 ‘겨레의 꽃’이 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마침 서대문 독립공원에서는 지난 8일부터 오는 15일까지 ‘2011년 나라꽃 무궁화 축제’가 열리고 있다고 하니 행사에 참여해 무궁화에 관련된 다양한 전시와 체험을 즐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무궁화는 단순한 의미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꽃이 되지 않았다. 일제시대 억압과 고통의 세월을 함께 견뎌온 숭고한 꽃이다. 애국가 후렴처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은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한국 땅이다. 어쩌면 무심하게 흘려들었을 그 가사를 들으며, 그냥 지나쳤을 길가에 핀 무궁화를 보며, 한번쯤은 길고 긴 역사를 함께해온 그 꽃의 의미를 되짚어 보는 것은 어떨까.

 

오소미 기자

 

 

 

 

 

 

 

李白 詠槿 / 全唐詩·

 

園花笑芳年,

池草豔春色。

猶不如槿花,

嬋娟玉階側。

芬榮何夭促,

零落在瞬息。

豈若瓊樹枝,

終歲長翕赩。

 

嬋娟 곱고 아름답다, 달을 지칭하는 말, 곱다

玉階 옥처럼 곱게 만든 섬돌.

 

夭促 :요절(夭折)

零落 ①권세(權勢)나 살림이 줄어서 보잘것없이 됨 ②초목(草木)이 시들어 떨어짐

瞬息 [명사] 순식간. 일순간. 극히 짧은 동안.

豈若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어찌 그렇겠는가?

 

瓊樹 구슬나무. 인품이 고결함을 뜻하는 말임 :

不異瓊樹枝(불이경수지 ; 구슬나무의 가지와 다르지 않구나.)<강엄江淹>

伏枕思瓊樹 臨軒對玉繩(복침사경수 임헌대옥승 ; 베개에 엎드려 경수 같은 그대를 생각하고, 난간에 나와서는 옥승 별을 마주하노라.)<두보杜甫 기유협주백화사군40운寄劉峽州伯華使君四十韻>

 

 

1. 美玉:~玉。~莹。

2. 喻美好的:~瑶。~室。~姿。~筵。~章(美好的诗文)。~葩。~林宴(泛指皇帝宴请新科进士的宴会)。~枝玉叶。玉液~浆(美酒)。

3. 中国海南省的别称:~崖。~州。

 

1. 一種美玉。《廣韻•平聲•清韻》:“瓊,玉名。”《詩經•衛風•木瓜》:“投我以木瓜,報之以瓊琚。”毛亨•傳:“瓊,玉之美者。”

2. 骰子。《後漢書•卷三十四•梁統傳》“六博”句下章懷太子•注引鮑宏博經曰:“用十二棋,六棋白,六棋黑。所擲頭謂之瓊。”

3. 美好的、精美的。如:“瓊漿”、“瓊樓玉宇”。《紅樓夢•第三十五回》:“只因那寶玉聞得傅試有個妹子,名喚傅秋芳,也是個瓊閏秀玉。”

 

瓊樹

1. 仙树名。魏 张揖 曰:“琼树生 崑崙 西流沙滨,大三百围,高万仞。” 唐 曹唐 《小游仙诗》之七五:“琼树扶疏压瑞烟,玉皇朝客满花前

2. 形容白雪覆盖的树 南朝 宋 谢惠连 《雪赋》:“庭列瑶阶,林挺琼树。” 唐 李商隐 《对雪》诗之二:“已随 江令 夸琼树,又入 卢家 妬玉堂。”

3. 树木的美称

4. 喻品格高洁的人

5. 喻美女

 

瓊樹 구슬나무. 인품이 고결함을 뜻하는 말임 :

不異瓊樹枝(불이경수지 ; 구슬나무의 가지와 다르지 않구나.)<강엄江淹>

伏枕思瓊樹 臨軒對玉繩(복침사경수 임헌대옥승)<두보杜甫 기유협주백화사군40운寄劉峽州伯華使君四十韻>

 

 

瓊枝

1. 传说中的玉树。

2. 喻嘉树美卉 . 唐 王涯 《望禁门松雪》诗:“金闕晴光照,琼枝瑞色封

3. 喻贤才。 唐 李德裕 《访韦楚老不遇》诗:“今来招隐逸,恨不见琼枝

4. 喻皇族子孙。 唐 萧颖士 《为扬州李长史贺立太子表》:“琼枝挺秀,玉叶资神。”

5. 喻美女。 唐 韦应物 《鼋头山神女歌》:“皓雪琼枝殊异色,北方絶代徒倾国

6. 喻灯烛。 明 刘基 《正月十五夜灯火大开作》诗:“夜寒衾冷漏声迟,卧看琼枝绽金粟。”

7. 木棉树的别名。 清 厉荃 《事物异名录·树木·棉》:“木棉,一名琼枝。”

 

 

瓊枝: 붉은 경수(瓊樹)·옥수(玉樹)의 가지. 경수의 가지를 꺾어 먹으면 장생(長生)한다는 전설이 있다.

경지옥엽 [瓊枝玉葉]옥으로 된 가지와 잎이라는 뜻으로, 아주 귀한 자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瓊枝旃檀 경지전단 ①재덕(才德)을 갖춘 사람 ②잘된 시문(詩文)을 비유적(比喩的)으로 이르는 말

 

당(唐)나라 재상 송경(宋璟)은 그의 <매화부(梅花賦)>에서 '경영'(瓊英)이라 표현했고, 남송(南宋)의 문인 주자지(周紫芝)는 ≪죽파시화(竹坡詩話)≫에서 빙기옥골(氷肌玉骨) 또는 빙자옥골(氷姿玉骨)이라 노래했다.

남송(南宋)의 애국시인 육유(陸游)는 '빙혼'(氷魂)이라 했으며, 역시 남송 때의 시인 양만리(楊萬里)는 그의 매화시에서 매형(梅兄)·매선(梅仙)이라 불렀다.

 

 

 

한국문집총간 > 돈와유고(遯窩遺稿) > 遯窩遺稿卷之二 > 詩

돈와유고(遯窩遺稿) 조선 후기의 문신ㆍ학자 임수간(任守幹)의 시문집.

詠白槿花

 

村居寂莫長靑苔。

忽見瓊華照眼開。

紅藥雖繁難免俗。

寒梅太淡亦堪咍。

豐肌合德熏湯浴。

秀色姮娥降月來。

最是浮花都過盡。

且先黃菊泛深盃。

 

眼開 눈이 뜨이다, 표정이 밝아지다, 얼굴이 활짝 펴지다

紅藥 작약(芍藥). 함박꽃.적작(赤芍), 백작(白芍)

紅藥當階翻 蒼苔依砌上(홍약당계번 창태의체상 ; 작약은 앞 계단에서 나부끼고, 푸른 이끼는 섬돌 위에 끼었네.)<사조謝脁 직중서성直中書省>

 

 

한국문집총간 > 사가집(四佳集) > 四佳詩集卷之五十二○第二十五 > 詩類

紅槿花 / 徐居正

 

紅槿花開秋更催

朝開暮落復朝開

可憐續續開無盡

猶勝情人去不來

 

고전번역총서 > 사가집 > 사가시집 제52권 > 시류(詩類)

빨간 무궁화

 

빨간 무궁화가 피어 가을 다시 재촉하여라 / 紅槿花開秋更催

아침에 피어 저녁에 지고 또 아침에 피네 / 朝開暮落復朝開

서로 이어 끝없이 피고 지는 게 가련해라 / 可憐續續開無盡

한번 가서 아니 오는 그리운 님보단 낫구려 / 猶勝情人去不來

 

 

사가집(四佳集) > 사가시집 제5권 > 시류(詩類)

紅槿花

 

무궁화 붉게 피고 버들가지 문에 비치고 / 紅槿花開柳映門
매실 익을 무렵이라 비는 어둑히 내리니 / 黃梅時節雨昏昏
서늘하긴 엷은 오사모가 가장 좋거니와 / 納涼最愛烏紗薄
취하는 덴 막걸리 텁텁함을 논할 것 없지 / 取醉休論白酒渾
경술을 익힌 소신은 좋은 계책도 없이 / 經術小臣無好策
문명 성대에 깊은 은혜만 입고 있다가 / 文明聖代荷深恩
십 년 동안 청산에 갈 약속을 저버렸더니 / 十年辜負靑山約
낚싯배 낚싯대가 꿈속에 자주 들어오네 / 釣艇漁竿入夢紛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 東國李相國全集卷第十四 > 古律詩

次韻文長老,朴還古論槿花  幷序 

 

長老文公,東皐子朴還古。各論槿花名。或云無窮。無窮之意。謂此花開落無窮。或云無宮。無宮之意。謂昔君王愛此花。而六宮無色。各執不決。因探樂天詩。取其韻各賦一篇。亦勸予和之。

 

槿花之二名。發自吾二友。滯一各不移。若尙左尙右。我將試新勇。兩敵破一手。嘗聞古之人。戱韭以爲九。宮窮亦似戱。初傳自誰口。予獨立可斷。如辨醇醨酒。此花片時榮。尙欠一日久。人嫌似浮生。不忍見落後。反以無窮名。儻可無窮有。二子聞之驚。闔吻如閉牖。我說誠有憑。問君肯之否。如將移諸朝。亦可言亥首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文集) > 동국이상국전집 제14권 > 고율시(古律詩)

문 장로(文長老)와 박환고(朴還古)가 무궁화를 논평하면서 지은 시운을 차하다 병서(幷序)

 

장로 문공과 동고자(東皐子) 박환고가 각기 무궁화(無窮花)의 이름에 대하여 논평을 하였는데 하나는 ‘무궁은 곧 무궁(無窮)의 뜻이니 이 꽃은 끝없이 피고 진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다.’ 하고, 또 하나는 ‘무궁은 무궁(無宮)의 뜻이니 옛날 어떤 임금이 이 꽃을 매우 사랑하여 온 궁중이 무색해졌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다.’ 하여, 각기 자기의 의견만을 고집하므로 결정을 보지 못했다.

그리하여 백낙천(白樂天)의 시운으로 두 사람이 각기 시 한 편씩을 짓고 또 나에게 화답하길 권하였다.

 

무궁화의 두 가지 이름 / 槿花之二名
우리 두 친구로부터 시작했다 / 發自吾二友
각기 아집을 못 버려 / 滯一各不移
굳이 좌라 우라 주장하네 / 若尙左尙右
내 새로운 용기 뽐내어 / 我將試新勇
그대들을 한 손에 부수련다 / 兩敵破一手
듣건대 옛사람들도 / 嘗聞古之人
구(韭)를 구(九)라고 희롱했다오 001]/ 戱韭以爲九
궁(窮)이나 궁(宮)도 모두가 농담이야 / 宮窮亦似戱
맨 처음 뉘 입에서 나왔는가 / 初傳自誰口
나는 쉽게 판단할 수 있으니 / 予獨立可斷
좋은 술 나쁜 술과 같은 걸세 / 如辨醇醨酒
하물며 이 꽃은 잠시뿐이라 / 此花片時榮
하루도 지탱하기 어려운 것이 / 尙欠一日久
허무한 인생과 같음 혐의하여 / 人嫌似浮生
떨어진 꽃 차마 보지 못해 / 不忍見落後
도리어 무궁이라 이름했지만 / 反以無窮名
그러나 과연 무궁토록 있겠는가 / 倘可無窮有
두 사람 이 말 들으면 크게 놀라 / 二子聞之驚
입 다물고 말 못 하리 / 闔吻如閉牖
내 말이 근거 있으니 / 我說誠有憑
그대들 긍정하겠는가 / 問君肯之否
만일 조정에 이 말 옮긴다면 / 如將移諸朝
또한 해수002]라 할 것이네 / 亦可言亥首


[주D-001]구(韭)를……희롱했다오 : 남제(南齊) 때 유고지(庾杲之)가 매우 청빈하여 밥먹을 때면 매양 구저(韭葅 부추로 담근 김치)ㆍ약구(瀹韭 삶은 부추)ㆍ생구(生韭 생 부추)로만 반찬을 하므로, 임방(任昉)이 희롱하기를 “그 누가 유랑(庾郞 유고지)이 가난하다고 했는가. 식탁에 항상 27종의 반찬이 오르는 걸.” 하였는데, 27종이라는 것은 곧 3×9〓27의 뜻으로 ‘韭’의 음이 ‘구’이기 때문에 구(九) 자의 뜻으로 해석하여 농담을 붙인 것이다. 《南齊書 卷34 庾杲之傳》

[주D-002]해수(亥首) : 옛날에 해(亥)의 고자(古字)를 파자(破字)하여 “이(二)의 머리에 육(六)의 몸이다.[二首六身]” 한 설(說)을 인용한 듯하나 자세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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