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닐 플랜팅가는 탁월한 설교자다. 그의 설교는 소문나 있다. 뛰어난 수사에서 오는 호소력과 기발하고 독특한 성경 해석과 적용이 그의 설교의 매력이다. 여러분은 이 묵상집을 읽을 때 성경 본문을 상투적으로 이해하기보다 좀 더 깊이, 때로는 낯설게 읽는 방식으로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플랜팅가가 자신의 책을 설교가 아니라 묵상집으로 제안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플랜팅가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말씀들을 가지고 통상 해오던 방식과는 다르게 씹고 또 씹도록 우리를 인도해 준다. 이런 점에서 플랜팅가의 글은 ‘반추’ 또는 ‘묵상’이라 부를 수 있다. 묵상이란 입안에 넣은 포도알처럼 씹고 또 씹어 단맛을 충분히 맛볼 때까지 반복해서 말씀을 입에 담고, 생각의 실을 자아 가며 자신의 삶과 말씀을 연관시키는 활동이다. 성경 묵상을 통해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결국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이다. 평안, 오래 참음, 겸손, 자기부정, 사랑, 공감, 환대, 배려, 이 모든 미덕은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빚어내시는 성품이다. 이러한 성품을 가지고 이 땅에서 살아갈 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고 이웃에게 유익을 끼칠 수 있다. 이 책에 담긴 방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천천히, 조금씩 묵상하는 습관을 키워 보면 말씀과 함께 역사하시는 성령으로 선한 성품이 빚어지고, 선한 삶의 열매가 맺히게 될 것이다.
임목사의 밑줄
30p
사실을 말하자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감전사하는 것에 더 가까울 것이다. 하나님은 구원하기 위해 먼저 죽이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욕망은 곧 죽음을 향한 동경이다. 우리의 중독은 죽어야 한다. 우리의 교만과 시기는 죽어야 한다. 우리의 끔찍한 절망이 죽어야 한다. 우리를 아래로 끌어내리는 것은 모두 죽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비로소 일어나 그리스도의 미덕으로 옷 입고 무덤에서 걸어 나오시는 예수님처럼 햇살 속으로 나아갈 수 있다.
114~115p
십자가가 자석처럼 우리를 끌어당기는 이유는 우리가 당하는 악을 설명해서가 아니다. 죽어 가는 주님을 숙고함으써 어린아이들의 죽음, 중년을 할퀴는 암, 전 세계에서 테러리스트들이 일으킨 고통을 마침내 이해할 수 있어어가 아니다. 아니다. 십자가는 그런 일들을 거의 설명해 주지 않는다. 우리가 눈을 들어 도움의 원천인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운명에 함께 하시는 분이시고 따라서 그분을 신뢰할 수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대하시는 어떤 방식을 싫어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합당하다고 여기시는 어떤 것에 깜짝 놀라기도 한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히 이해한다. 하나님은 냉담한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고난을 당하시고, 그분의 고통은 우주의 가장 심오한 마법 가운데 우리의 믿음을 통해 혈류 속에 영원히 머무르는 항독소로 변한다.
143p
C. S. 루이스는 조지 맥도널드에게서 빌려 온 비유를 써서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이 살아 있는 집이라고 상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오셔서 그 집을 다시 지으십니다. 처음에는 그분이 하시는 일이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분은 하수구를 고치고 지붕에 새는 곳을 막는 등의 일을 하십니다. 그런 것들은 필요한 일이므로 여러분은 놀라지 않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 가 그분은 집을 마구 때려 부수기 시작하십니다. 말도 못하게 아플 뿐 아니라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도대체 그분은 무슨 일을 하시는 걸까요?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그분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집을 짓고 계신 겁니다. 이쪽에는 한쪽 벽을 새로 세우고 저쪽에는 바닥을 더 깔고 탑을 새로 올리고 마당을 만드시는 거지요. 여러분은 보기 좋은 작은 오두막집을 생각했는데 그분은 궁전을 짓고 계십니다. 그리고 친히 그 궁전에 들어와서 살 작정이십니다.
188p
C. 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끝부분에는 회심한 그리스도인이 악마의 유혹을 떨쳐내고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는 대목이 나온다. 천사들이 그를 환영한다. 그런데 그 천사들을 보았을 때 그는 자신이 그들을 언제나 알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이 혼자라고 생각했던 때에 천사들이 각각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게 된다. 천사들이 그를 위해 개입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제 그는 이 은총의 천사들에게 "누구십니까?"가 아니라 "그러니까 줄곧 당신들이었군요."라고 말할 수 있다.